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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위대한 유산

by Ajan Master_Choi 2020. 6. 24.

무에타이 제왕회관 공식블로그 http://nakmuay.co.kr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

일자무식이던 시골 소년 핍은 어느날 우연히 읍내에 있는 미스 헤비셤의 저택에서 양녀처럼 살고 있는 도도하기 짝이 없는 또래 소녀인 예쁜 에스텔러를 만나면서 커다란 심리적 동요를 느낍니다.

그게 결국은 '촌스럽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강렬한 열망'임을 깨달은 핍은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수소문한 끝에 읍내까지 먼 길을 오가면서 알파벳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신사가 되고 싶은 열망'의 아주 작은 출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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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에서 하루 종일 쇳덩어리를 두드리며 연장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착한 매형은 그런 핍을 얼른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힘껏 돕겠다고 거들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도울 능력이 없어 도리어 자책할 뿐입니다.

장래의 희망이라고 해봐야 고작 매형으로부터 대장간 일을 부지런히 배워서 하루 빨리 매형을 도와줄 생각뿐일 정도로 소박하기만 한 어린 핍은 읍내 최고의 부자인 미스 헤비셤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차츰 '새로운 세상'을 엿보게 되지만, 정작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놀라운 사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혈육이라고는 생활력이 강하지만 억세고 사납기만 한 누나와 착한 매형이 전부인 어린 핍에게 '막대한 기대'를 품어도 좋을 만한 후원자의 대리인이 갑자기 시골에 찾아온 것입니다.

후원자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유산 상속'이 언제부터 개시될 것인지는 오로지 후원자의 판단에 달린 상태였습니다.

장차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때까지 핍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유산 상속을 앞둔 귀한 신분'에 충분히 어울릴 만한 '신사 교육'부터 받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어린 핍이 하루 아침에 막대한 유산 상속자로 돌변하게 되자 어린 핍을 핀잔 주거나 구박하기 바빴던 온갖 주위 사람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너나없이 칭송하기 바빴고, 심지어 적잖은 나이 차이가 있는 매형까지도 핍을 '나으리'로 부르는 지경에 이릅니다.

어린 핍에겐 자신이 살던 마을과 읍내가 어느새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그는 대도시 런던으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 양복까지 맞춰 입습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 매형 조와의 이별조차 대수롭잖게 여길 정도로 핍의 마음은 변합니다.

착하디 착한 매형은 그런 핍에게조차 무한한 애정으로 감싸며 기약 없는 기나긴 이별에 눈물을 흘리면서 오로지 핍의 성공만을 간절히 빌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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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런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핍은 차츰 새로운 친구들을 여럿 사귀고 사교클럽을 드나들 정도로 변모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는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어느덧 핍은 조금씩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사치에 빠져들면서 이내 빚까지 늘어나는 지경에 이릅니다.

어느덧 성년을 넘긴 나이에 접어든 핍은 익명의 후원자가 결국 미스 헤비셤일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확신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도 찾지 못한 채 막연히 추측할 뿐이지요.

후원자의 대리인이자 변호사인 재거스는 미스 헤비셤의 법률 대리인을 겸하지만 정작 후원자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허용치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몰라보게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에스텔러는 언제나 핍의 마음 한복판을 가득 차지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핍에게 냉랭하기만 합니다.

언젠가부터 에스텔러는 런던으로 옮겨와 살지만 핍과 만나더라도 그의 연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에스텔러를 향한 간절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결코 그녀의 본심 때문이 아니라 결혼식 당일 아침에 파혼을 당한 충격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미스 헤비셤의 원한 서린 복수심 때문이라고 여긴 핍은 틈나는 대로 미스 헤비셤의 저택을 방문하고, 혼자서는 결코 풀 수 없는 그 단단한 매듭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헤매지만 매번 헛수고에 그칠 뿐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 핍에게 매그위치라는 혐오스런 인물이 찾아 오는데...

자세히 살펴 보니 그 흉악하게 생긴 인물은 어린 시절 핍이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부엌에 남아 있는 음식을 누나 몰래 잔뜩 싸들고 늪지대까지 몰래 찾아가 도와줬던 바로 그 굶주린 탈옥수가 아닌가.

그 이후로 전개되는 놀라운 이야기들은 정말 숨가쁜 긴장과 짜릿한 흥분과 놀라운 반전의 연속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에 팔딱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읽었던 셜록홈즈나 괴도루팡을 다시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디킨스의 이야기 솜씨가 이토록 대중적이면서도,다른 한편으로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성격과 행동 묘사에서 인간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거대한 유산 상속자로 바뀌어 런던으로 훌쩍 떠난 이후로도 핍은 언제나 조와 함께 보냈던 마냥 순수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하지만 그저 짧은 순간에만 그러할 뿐입니다.

정작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고향에 들를 기회가 생기더라도 핍은 읍내에서만 머물 뿐 더이상 매형네 집을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이젠 대장장이로 일하는 매형이 그리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신분과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핍이 줄곧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매형인 조 가저리의 핍을 향한 고결한 우정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결국 먼 훗날 핍이 급격하게 몰락하고 심신마저 피폐해진 끝에 중병을 앓을 때가 되어서야 핍은 다시금 조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구제됩니다.

몹시 휘어지고 부서진 채 마치 먼 여행에서 맨발로 돌아오는 처량한 나그네처럼 딱한 신세에 빠진 핍을 기꺼이 맞아 준 사람도 조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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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 조와 눈물겹게 재회하는 장면은 안타깝기 보다는 차라리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핍이 고향을 떠난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옛시절을 잊고 지내왔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핍이 가슴 깊이 간직했던 소중한 가치는 바로 거기서 다시 복원되기 때문이지요.

둘 사이에 맺어진 끈끈하고 순박하면서도 한없이 따스한 우정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헉과 짐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우정과도 빼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디킨스의 풍요로운 작품 세계를 어찌 한 권의 장편소설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얼마만큼 놀랍고 흥미로운지, 또한 등장 인물들 각각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생생하면서도 위트와 재기가 넘치는 것인지는 "위대한 유산"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위대한 유산"말고도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더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작품들은 틀림없이 "데이비드 코퍼필드"와 "황폐한 집"이 차지할 듯합니다.

제가 위대한유산 다음으로 읽은 데이비드코퍼필드의 경우, 다른 책들에서 이 소설이 언급될 때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 보리라 마음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더랬습니다.

이 책은 작가 스스로도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라고 부를 만큼 사랑했고,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로 꼽았을 정도로 높은 평판을 얻었지만 워낙에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명성만큼 그리 많이 읽히지는 않는 작품이지요.

제가 언젠가 심심풀이로 몹시도 두꺼운 책들의 두께를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준에 따르면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보다도 길며, 무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감동을 받아 곧장 이어서 집어든 "황폐한 집"또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장편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왜 찰스 디킨스의 최고작이라는 평가를 받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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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는 톨스토이만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장편소설가이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톨스토이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는 종교, 과학, 정치, 예술에 대해서는 아주 초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친구들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가 셰익스피어라면, 찰스 디킨스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였습니다.

오랫동안 그저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만 알았던 책들을 감명깊게 읽고 나면 괜히 뿌듯한 느낌이 들기 마련입니다.

아직도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제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위대한 유산"을 통해 뒤늦게나마 찰스 디킨스라는 탁월한 작가를 만난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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