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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크리스마스

by Ajan Master_Choi 2013. 10. 9.
1세기와 2세기의 저작인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록을 사건으로만 기록되었을 뿐 날짜는 기록되지 않았다.
이는 초대 기독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에 대한 신학적 집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인 이전인 2세기 중엽이 지나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의 저술에서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관심과 탄생 일자에 대한 주장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세기 후반이 지나면서 점차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로마 태양력 3월25일을 수태일로 동일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4세기 고백록의 저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12월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켰다고 기록했다.
그의 삼위일체론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3월 25일에 수태되셨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이미 12월25일이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기록한다.
교회의 전통에서 수난일이며 동시에 수태일인 3월25일부터 상징적인 9개월 이후인 12월25일을 기독교의 그리스도론적 개념으로 탄생일로 본다는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 공인 이전인 3세기부터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했던 북아프리카 지역, 라틴어권의 교회에서는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탄생을 12월 25일에 기념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크리스마스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공교회 시대였으므로, 동부의 헬라어 권역과 서부의 라틴어 권역을 합친 교회 전체가 성탄절을 기념했다고 볼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
오늘날의 이스탄불이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였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며, 당시 로마제국의 율리우스력에 의한 12월25일에 기념되었다.

기원전부터 로마, 이집트 등 이교도 지역에서는 태양 숭배 및 관련 신화에 따라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축일 혹은 농신제로 기념하고 있었다.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에 즈음하여 그 이후부터는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12월 25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로마교회 대주교 율리우스 1세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350년부터 이 축제가 '기독교'의 축제로 인정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기독교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문화에 맞게 토착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태어남을 기념하는 부처님 오신 날의 풍경과는 달리 축제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일반적으로 12월 24일을 전야제로서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며, 일부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12월 26일 박싱 데이에 축구 리그 경기를 치르는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설이나 추석 명절 때 씨름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박싱데이가 포함되면 그 날도 축구를 하고 주말에도 하게 됨으로 보통 한 주에 두 번을 하게 되어 일정이 빡세게 돌아간다.
그래서 영국 축구리그 선수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고역인 것이다.
영국의 박싱데이 축구경기장 모습

미국에서는 세속주의적인 정치인들이 유대인 등 타 종교인들을 배려해서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의미를 조금 희석시켜서 'Happy Holidays'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버락 오바마가 미국 전역에 이를 유행시켰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이제 연휴로 대부분의 미국이 즐기는 날이며 이 때는 거의 모든 업무가 중단된다.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

현대에 와서 성탄절은 종교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그냥 연말에 성대한 이벤트를 하는 공휴일 기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게 성탄절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는데, 동북아시아에서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휴일이 아니다.

일본에는 신이 800만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다신교 국가이다.
조금 농을 한다면 일본인들은 귀신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근대 이후 일본인에게는 천황주의가 깊이 자리 잡았다.
메이지 세력들은 국가 체계를 위해 천황주의를 더욱 신격화하였다.
교토의 신사, 후시미 이나리.
일본인 들은 신사를 방문하여 토착신들에게 소원을 기원한다.
세계인들은 방법은 다르지만 신에게 기원하고 의지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가미가제도 천황주의에 기초한 자살특공대였다.
물론 도그마(허구)였지만 집단을 위해 그런 희생을 하였다.
2차 대전 이후에 천황의 인간 선언이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천황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자리 잡은 존재로 여겨진다.
우리와 정신적 근저가 차이가 많은 나라이다.
이런 면이 일본에 기독교가 뿌리 내리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조선은 유교 원리주의 국가였고 서민들은 불교도 많이 믿었다.
유교와 불교는 20세기에 와서 기독교와 불교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부처님 오신 날은 국가 공휴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