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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각설이 이야기

by Ajan Master_Choi 2010. 3. 2.

얼씨구

우리나라의 가족사에 서얼(庶孼)이란 말이 있다.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이다.

氏란 한자는 사내가 자신의 것을 손으로 쥐고 있는 모양이다.

뭔가 준비를 하기 위한 모양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누구의 혈통을 씨라고 한다.

 

절씨구

절깐에서 씨를 구한다란 의미다.
지하자졸씨구는 세상에서 가장 바닥생활을 하던자가 전쟁터에서 졸병으로 허드레 막일을 한 사람인데 그에게로 부터 씨를 구한다란 의미이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의 건장한 사내들의 씨가 전쟁터에서 사라지고 남아 있는 씨가 없었던 시대에 불러진 노래이다.
혼기가 되거나 전쟁터에서 졸지에 과부가 되니 사내를 찾을 수 없고, 각성받이라는 말이 변화되어 각설이가 된 것이다.
各姓받이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으로부터 씨를 받았는데 그 씨가 누구의 씨인지 모를 때 각성받이라 한다.

 

각성받이>각성이>각설이로 변한것이다.

서자는 양반이 양가나 중인의 여자를 첩으로 얻어 낳은 자식을 말하며 얼자란 천민의 여자로부터 얻은 자식을 말한다.
자식이란 가업을 이으며 농촌에서는 생산동력원인데 마땅한 사내가 없으니 그런 천한 사람의 씨라도 얻고 싶은 절박함을
노래한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중들은 사실 천민이였다.

술을 마시는 酒辭로 쓰여지기도한다.
각설이란 깨달은 각(覺), 설할 설(說),저 이(伊)의 이미지로 깨달음을 설파하는 사람을 말한다.

 

각설이의 중흥조는 신라의 원효 대사로 삼는다.
원효대사는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들이 알기 쉽도록 설파하기 위해 무속의 주술에 불경을 첨가하여 바가지를 치면서 민중 속에 들어가 교화하였다.

김춘추는 정치외교로, 김유신은 무력으로, 원효는 불교로 삼국을 통일시킨 것이다.
각설이 원조는 단군 이전→ 한웅 이전→ 한인 시대, 1만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정치는 제정일치 시대로 무속이 각종 주술행위로 요즈음 같으면 선거연설을 했는데 그 연설이 오늘날 각설이 타령과 비숫한 것이다.
(얼의신 설)

우리는 우리의 원형(原型)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고향, 우리의 뿌리를 망각한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하자 당시 지배계층 일부가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거지로 변장하거나 정신병자 또는 병신으로 위장하여 걸인행각을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광대로, 재인才人으로 또는 거지로 전락하여 각설이를 부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록 나라가 망하여 천한 삶을 살지만 자신들이 깨우친 우주자연의 이치를 백성들에게 널리 깨우쳐
민족의 정신과 얼을 부흥시키려는 민중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원효대사가 신라의 불교를 왕실과 귀족들만의 종교에서 벗어나 민중들에게도 불교의 깨우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각설이 타령을 만들어 각설이패로 하여금 쉽고 흥미롭게 널리 전파하여 불러지도록 만든 것이라도 한다.

그 후 조선시대로 건너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건장한 사내들이 전쟁터에서 사라지고 나니, 여인들이 졸지에 과부가 되거나 혼기가 되어도 건장한 사내의 씨를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식을 낳아야 대를 잇기도 하지만, 그 당시 농사는 사람의 힘으로 대부분 짓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서자의 씨도 구하고, 중의 씨도 구한다고 하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

각설이는 타령인 품바를 통하여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이 품바의 내용을 살펴보면,
힘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 잘 나지 못한 자, 등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농민을 비롯한 천민과 상것들의 가슴 속의 억눌린 한과 억울함을 해학과 풍자를 통하여 야유, 허무, 무심, 탄식 등의 형태로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그들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달래줌으로써,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고, 타령을 통하여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면서 민중 속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우리 민족의 삶은 많은 시련과 고초를 겪으며 살아왔기에 이런 품바를 동원한 각설이가 민중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구전문학의 한 부분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각설이’란 낱말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거지들이 밥을 구걸하기 위하여 부르던 노래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각설이를 한자로 ‘각설이覺說理’로 풀이하여 깨달음을 전하는 말로써 그 이치를 알려준다고 풀이 하였다.
각설이를 통하여 성현들의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민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노래, 즉 설법이라는 것이다.
성현들의 가르침을 혼자만 깨달아 아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그 깨달음을 널리 알려주고 모든 사람이 함께 깨달음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각설이는 바로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이렇게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인간의 도리를 널리 깨우쳐 주면 감사의 의미로 공양供養을 올렸다는 것이다.

‘지하자졸씨구(至下子卒氏救)’는 세상에서 가장 바닥 생활을 하던 자로 어딘가 모자라고 신체적으로 불구(至下子)인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최하위 졸병들의 수발을 들며 허드레 막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자라고 불구자인 졸병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는 각설이 타령에 이런 가슴 아픈 의미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각설이 타령은 거지들이 구걸하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슬픈 역사와 각설이 타령에 숨어있는 비애(悲哀)인것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는 ‘전생에 깨달았던 영(靈)은 죽지 않고 이생에 다시 태어난다.’ 라는 뜻이지요.

“이놈의 자식이 이래 봐도 정승판서의 자제로서 ~ ”는 이생에서는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전생에는 정승판서의 아들 이었다는 전생 론을 말하고 있음 이지요.

‘영(靈)은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는데 살아생전에 덕(德)을 쌓지 않으면 다음 생에 이 꼴이 되기 쉬우니 이 사실을 잘 알아라.’ 따라서 각설이는 영(靈)의 윤회(輪廻)를 노래한 선각자들의 민중문화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