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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콜리마 하이웨이

by Ajan Master_Choi 2010. 3. 10.

콜리마 하이웨이

이 공사엔 수백만명의 정치범들이 동원되고 희생됐다.

1940년부터 진행된 콜리마대로 공사에 연인원 70여만명이 투입됐고, 이 중 2만7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도로 공사 중 죽은 이들을 그대로 묻어, 지역민들은 이 도로를 ‘뼈 위의 도로’로 부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격리된 지역 중 하나인 마가단을 연결하는 도로를 조성하다 죽은 수많은 강제수용 노동자들이 이 도로
밑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콜리마대로에서 바라본 앗카는 쇠락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방치돼 폐허로 변한 건물과 일부 주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다. 콜리마대로를 따라가며 많은 버려진 집들을 볼 수 있었다.

소련 시절에 이 지역 주민들은 다른 지역보다 많은 급여와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혜택의 대부분이 사라진 지금 열악한 생활환경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나은 삶을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있다.

콜리마대로 주변의 다른 도시들처럼 팔랏카도 도로 건설을 위해 설립된 도시다.
이 지역 소수민족 예벤인들의 말로 ‘돌투성이’를 의미하는 ‘팔랴아트칸’이라는 강 이름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했다.

하지만 ‘텐트’를 의미하는 팔랏카라는 러시아어에서 이 도시의 명칭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로 건설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된 텐트가 많이 있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팔랏카는 ‘분수의 도시’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곳엔 몇 개의 분수만 있다.

팔랏카는 러시아 기네스북에 2014년 기준 인구 대비 분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 등재됐다.

당시 주민 수는 3999명이었으니, 대략 주민 수 1000명당 분수 1개꼴인 셈이다.

팔랏카는 달랑 분수 4개를 가진 분수의 도시였다.

뼈의 도로, 가장 추운 도로로 유명한 콜리마 길은 마가단과 야쿠츠크를 잇는 도로이다.
굴라크(Gulag)노동수용소 죄수들이 건설했다고 한다.

마가단이라는 명칭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에벤어로 해양 퇴적물을 의미하는 ‘몬고단’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마른 나무를 의미하는 ‘몬고트’와 관련해 그 더미를 의미하는 ‘몬고단’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에벤어로 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의미의 ‘몬그단’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에벤어 단어에서 마가단이라는 명칭이 유래했고, 현재 러시아 소수민족 에벤인들이 이 지역의 원주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마의 세로 주름, 눈썹, 코는 십자가를 형상화하고 있다.

왼쪽 눈에서는 얼굴 모양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쪽 눈에는 기역 모양의 창문과 그 사이에 매달린 종, 그 아래에는 수번 ‘937’이 보인다.

반대편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수형인과 그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상징물 내부에는 당시 수용소의 위치와 수형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있다.

혹독한 추위와 열악한 산업 기반의 한계를 극복하고 달성된 스탈린 집권기 시베리아의 산업화는 정치적 억압에 희생된 수형인들의 대가 없는 노동 덕분에 가능했다.

개척민開拓民으로는 구한말 시베리아에 들어가 토지를 개척한 함경도 지방의 이주민.

1864년(고종 1) 최운실· 양응범 등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시베리아에 이주, 언어와 생활양식의 불편을 견디며 토지를 개척하고, 1969년 흉작으로 고통을 받는 가난한 농민 35세대를 입주시켜 자기의 토지를 제공했다.

1970년에 다시 96명, 1971년에 70세대 415명이 잇따라 이주,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몇 년 후에는 모스크바에 유학생까지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을 잡게 되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척은 비교적 순조로워, 1974년(고종 11) 25명이 이주, 초가 5채를 짓고 개척리라고 했던 것이 1년이 못되어 신한촌이라는 큰 마을로 발전, 양옥을 짓고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또 1975년에는 안병국·김동삼 등이 나선촌을 개척했으며, 1984년에는 김석우·김정련이 남석동을 개척하는 등 활발한 개척사업을 벌여나갔다.

이처럼 개척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84년 6월에 체결된 경흥개척조약에 의해 우리 동포가 자유롭게 입주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3·1운동 당시에는 우리 동포가 50만에 달해, 항일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세계 곳곳에는 너무나도 위험해 '데스로드(Death Road)'라 불리는 길들이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해 목숨을 걸고 갈 만큼 생명을 위협하는 길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길들은 인간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의 비경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곳에는 그 길을 삶의 방편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의 길을 오가야 하는 사람들, '데스로드'가 죽음의 길이자 곧 생명의 길인 사람들의 이야기'데스로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을 통해 우리 삶의 목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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