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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커트 보네거트? 커트 보니것?

by Ajan Master_Choi 2018. 12. 2.

 

이 책에 대해서 딱 한 마디를 하자면,

'정신 없다' 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내가 만약 서사 위주의 진지한 책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기 때문에,

완독에 대한 강박도 거의 없고,

책포기도 빠른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건강에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히진 않지만^^

어느새 밤마다 더듬거리고 있는 책.

 

나는 어느새 『제5도살장』에서 살고 있었다.

그것은 짭쪼름한 과자와 비슷하다.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순 없지만,

야금 야금 꺼내 먹는 맛.

심야에 긴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먹는 팝콘 같은 것.

 

커트 보네거트?

커트 보니것?

 

인터넷 검색으로

아직 이름 정리도 하나로 안 된 '정신 없는' 작가.

 

이 작가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미움받을 용기』에서 였다.

책의 후반부쯤 철학자가 청년에게

긍정적 포기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며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자기 수용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청년이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를 들먹거린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미움받을 용기』, 262p

 

이 구절은 『제5도살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절로 아멘이 나올 만큼 경건한 기도문이지만

이 책이 절대 경건하지 않으므로

이 구절도 풍자와 포복절도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에서

이 구절에 밑줄을 그으면서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심오할 것으로 착각하면서

읽을 도서목록에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심오하지 않아도 좋은 책은 좋은 책이다.

나에겐 재미와 의미, 둘 다 잡을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니까.

 

이 기준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참고만 할 것!

 

한 번 밖에 못 읽었는데,

오늘 오후에 반납해야 한다.

웬지 아쉽다.

아쉬울 때 헤어져야 좋다고 뭐라고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한 번 더 봐요, Mr.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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