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팀 페리스의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Tribe of Mentors)』를 통해서 폴란드 출신의 예지 그레고렉(Jerzy Gregorek)을 알게 되었다.
그는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가 되었고, 시인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멘탈 코치로 높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멘탈 코치라는 말이 나의 눈에 들어 왔다.
인문운동가를 다르게 말하면, 멘탈 코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마틱했던 자신의 삶 이야기를 이렇게 말하였다.
"내 삶에는 많은 선택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더 어려운 선택은 무엇이고, 더 쉬운 선택은 무엇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더 어려운 선택'을 선택했다. 어려운 선택을 하는 순간 오래된 낡은 생각 패턴에 젖어 있던 뇌가 깨어나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에 뛰어드는 느낌, 이것이 곧 내가 살아야 할 가장 확실한 이유였다."
사르트르는 삶을 B와 D사이에 C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B는 Birth라는 태어남을 의미하고,
D는 Death라는 죽음을 의미한다.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사이에 C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C는 Choice라는 선택을 말한다.
여기서 무엇을 선택한다는 말은 무엇을 버린다는 말이다.
선택은, 깊은 생각을 통해, 그 과정과 결과를 상상하고 예측하여, 지금을 대하는 정교하고 엄격한 삶의 태도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되고, 쓸데 없고 거추장스러운 정보들이 핸드폰을 통해 나의 사생활이 쉴 새 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하루를 경계(警戒)하지 않으면, 그런 뉴스들로 나의 생각이 오염되고, 나의 갈 길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여기에서 나에게 최선인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 안목(眼目)이라면, 그 혜안을 감히 실행하려는 행위가 용기(勇氣)이다.
우리는, 이 안목과 용기를 가지고, 선택을 하여야 한다.
오늘 아침에 만나고 있는 예지 그레고렉가 선택하는 방법을 쉽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정말 어려웠던 난관을 극복하고 뭔가를 성취했을 때가 머릿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는다.
이러한 성취와 경험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실제로 쉬운 선택은 우리가 앞으로 나가는 걸 방해하면서 안락하고 즐거운 일에 에너지를 주로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나 힘든 선택을 한다는 것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이때 우리의 뇌는 굳은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를 더 현명하고, 강하고 풍요로운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성이 야만을 이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라톤으로 대변되는 이성철학이 실제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는 탁상공론인 경우가 많은 경우를 보면 그렇다.
삶이 지루하고 신명(神明)이 없었던, 어거스틴(아프리카 알제리 출신)은 엘리야가 들었다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들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이제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섬세하고 미세하지만 강력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었고 자신의 귀로 내면의 소리, 침묵의 소리를 경청하게 되었다.
그 소리를 우리는 "똘레 레게(tolle lege!)"라고 한다.
톨레 레게*를 번역하자면,
'한 가지 원칙을 선택하여 집어 들고, 그 선택한 것을 너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알려라!'란 의미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할까?
이 기준의 원칙은 선하게 살려는 의지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 사막에서 홀로 수도 생활을 했다는 성 안토니우스가 들은 것이,
'너는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였던 것처럼,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14 절을 읽었다고 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 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그때 부터 그는 과거의 어거스틴이 아니라, 미래의 어거스틴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한 순간의 취사선택을 통해 그리스도교라는 웅장한 건물의 틀을 잡은 사람이다.
예수는 앞으로 등장할 그리스도교의 청사진을 찍었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그리스도교의 터전을 마련했고,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외벽을 만든 자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그후, 그의 삶은 단정(端正) 해졌고, 타인과 경쟁하여 제압하려는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제 신의 옷을 입은 자로, 신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처럼, 나는 오늘도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내 일상에서 취사선택을 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오늘 아침은 아주 재미난 시를 만난다.
나는 그렇게 막걸리를 마시면서, 시인같은 생각을 못했다.
사진은 동네 교회의 정원에 심어진 남천나무 열매이다.
빨강이 아침 해를 만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석양처럼 마지막은 늘 화려하다.
'막걸리'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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