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
1. hedonistic atheist(쾌락주의 무신론자) vs ascetic monk(금욕주의 수도사)..
석가, 예수, 루터, 니체 등에서 보듯
영혼의 여행(spiritual journey)을 갈구하던 이들(전자가 아닌 후자)에 의해 굳건해보이던 종교적 도그마는 도전받고 깨지기를 반복해왔다.
믿으면 천국간다는 유혹적인 수사(enticing deal),
안 믿으면 사후 지옥간다(damnation)는 겁박적인 수사..
지갑을 열고 천국으로 가는 비자인 면죄부(indulgence, visa to heaven)만 사면 죄를 사해준다는 사기..
모두가 종교기득권의 압도적 힘에 눌려 쫄아서 무릎꿇을 때,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로서 종교기득권이던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반기를 들었다.
종교에서 답을 얻고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깊게 파고들어간 이들의 도전이야말로, '강고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종교의 배타성(몰상식성)을 깨뜨릴 값진 도전!!
2. 절대성 부여, 확증편향에 빠지지 말자
-신은 존재한다?
-죄를 지으면 사후 영혼은 벌을 받는다?
-성경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힘(신성, deity)으로 쓰여졌다?
-교황은 절대 옳다?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 있다.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다수가 믿고,
반론제기에 '악마화'로 마녀사냥에 나선다면 안 될 일~~
3. 신은 존재한다?
"네가 신(sky god)에게 10달러를 희생하면, 비가 올 거야. 네가 부모를 받들면 천국에 갈 거야. 그러지 않으면 넌 지옥 가!!"
사피엔스는 어느 지역에 살던 똑같은 얘기를 믿는다.
현실은
①중력과 같은 객관적인 것,
②두통 같은 주관적인 것,
③신앙 같은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 돈, 국가에 대한 신앙(신념)은 상호주관적인 것으로서,
주관적 믿음에 그치지 않고 객관적 현실을 이룬다.
현실에 있어 제3의 레벨인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 레벨은 인간 간 '소통'에 달려있다.
예컨대 '돈'은 전혀 객관적 가치가 없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수십억이 그 가치를 믿기에 그걸로 음식도 사고 음료도 사고 옷도 사는 거다.
어느날 빵집주인이 돈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돈을 내놔도 내게 빵을 팔려 하지 않으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뭐 그럴 수 있지 뭐..
한블럭 내려가 수퍼마켓에 가면 되니까..
근데 수퍼마켓 직원도 초록 색종이에 불과한 돈을 내밀었을 때, 그걸 받지 않으려 한다면?
초록 색종이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1985년 미얀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믿음을 잃었을 때 그 가치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법, 신(종교), 제국도 마찬가지..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상호주관적인 '의미의 그물(web of meaning 예: 법, 군대,entity)'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쥐는 현실의 쥐나 고양이를 보고 냄새맡고 느끼고 피할 줄 알지만, 보거나 냄새맡거나 맛보지 않았던 건 상상하지 못한다.
예컨데 US달러, 구글회사, EU 등은 상상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피엔스는 지난 7만년간 '언어소통'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내고,
그 믿음을 통해 공동체간 강한 결속을 이끌어냈다.
EU나 월드뱅크는 우리 각각이 상상을 나눴기에 존재하는 실체!
다른 동물들은 영혼이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충분한 상상력이 부족하기에 이런 면에서 인간에 딸리는 거다.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확신에 찬 믿음이 우리 스스로 뭔가 하게 부추긴다면, 그건 우리를 실제 돕는다.
항생제는 (신과는 달리) 스스로 돕지 않는 자라도 돕는다.
당신이 항생제를 믿든 안 믿든 당신의 감염을 치료해준다.
현대과학은 '신화'가 차지한 자리를 '팩트'가 대체하도록 한다.
하지만 신화는 여전히 인류를 지배하고 있고,
과학은 신화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만 하고 있다.
상호주관적(intersubfectiv) 현실을 파괴하기는커녕,
상호주관적 현실(돈, 종교, 제국)이 객관적, 주관적 현실까지 예전보다 더 완벽하게 지배하도록 만들고 있다.
컴퓨터와 생명공학 발달로 허구와 현실간 차이가 더 불명확해지고, 사람들은 자신의 허구에 현실을 재구성하곤 한다.
4. 유대인 vs 나찌 공통점은? 모두 '의미의 그물'에 절대성 부여~~
유대교(성경), 이슬람(코란), 힌두교(베다), 불교(불경), 도교, 부두교, 공산주의, 나찌즘, 자유주의..
모두 소위 초인간적 법(superhuman laws)을 경건시하며 앞세운다.
-유대인 부자의 대화
"아빠 왜 돼지고기 먹으면 안돼?"
"그게 세상이 작동하는 법이란다. 랍비가 세상을 만들었다면 돼지고기도 완벽하게 정결했겠지만, 이 세상은 랍비가 아닌 신이 만들었다. 돼지고기 먹지 말라는 건, 신이 명한 바란다. 알겠지? Capeesh?"
-나찌 부자의 대화
"아빠 왜 유대인을 죽여야만 해?"
"그게 세상이 작동하는 법이란다. 히틀러가 세상을 만들었다면 유대인과 아리아인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살았겠지만, 이 세상은 히틀러가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연의 법칙을 판독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지를 알려주는 거란다. 우리가 법을 따르지 않으면, 결말은 비참할 거야. 알겠지? Ist das klar?"
모든 종교의 신앙자(추종자)들은
그들의 종교(신앙, 신)만이 진리라고 확신한다.
5. 교황은 절대 옳다?
'콘스탄티누스의 기증(Donation of Constantine)' 은 750년에서 850년 사이에 조작된 로마 황제의 칙령문서로 중세 유럽의 유명한 사기 문서로 간주된다.
이 문서를 문자 그대로 받들면서, '교황은 절대 옳다(교황의 세속권에 절대성 부여)'는 절대 권위에 모두가 복종해 왔던 것은 다 엉터리였음이 드러난 것..
6. 성경은 신이 쓴 것이다?
'레위기(Leviticus)'는 시나이산에서 신이 모세에게 말한 것으로 한 획도 첨삭되지 않은 신의 말씀이라고 독실한 기독교인(유대인)은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나?
조슈아왕 권위를 높이려는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작성된 신명기(Deuteronomy 기원전 620년)보다도 한참 더 지난 기원전 500년 고대 유대인이 성경구문을 하나의 첨삭없이 섬세하게 기록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예배당(synagogue), 교육기관(yeshiva), 랍비(rabbi)도 없을 때인데 말이다.
레위기에서 동성애 금지(injunction against homosexuality)를 기록한 것은 고대 유대인 사제들의 편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신의 말씀(God's commands)이라 절대화하는 것은 넌센스!!
성서의 기원(provenance)을 이해한다면 성서를 문자 그대로 절대화, 신성화하는 것처럼 우매한 짓도 없음을 알 수 있다.
7. 본말전도(본: 행복추구, 말: 행복추구의 방법)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최대화하려 하는데, 종교주의자는 하늘에 다가감으로써,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증진시킴으로써, 국가주의자는 국부를 극대화함으로써 행복이라는 목표도달의 '방법론'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같은 목표(행복)에 도달하려 각기 다른 모양의 사다리들(방법: 종교주의, 자유주의, 국가주의)이 놓여있는데, 목표 대신 방법을 절대화함으로써 배타성의 오류에 빠지고 갈등과 전쟁의 비극으로 치닫곤 한다.
8. 종교와 과학, bedfellows
1600년에 당신이 파리나 런던으로 간다면 종교적 극단으로 넘치는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런던에서는 카톨릭을 죽이고,
파리에서는 신교도를 죽이고,
유대인은 어디서건 쫓겨나며,
어느 누구도 무슬림에 대해 마음 한켠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학혁명은 종교적으로 관대했던 카이로나 이스탄불보다 런던, 파리에서 일어났다.
콜럼부스, 코페르니쿠스, 뉴턴은 종교적 광신이 가장 극심하고, 종교적 관용이 가장 빈약했던 시기에 놀라운 발견을 발표했다.
종교는 '질서(order)'에 가장 역점을 두고, 과학은 '힘(power)'에 가장 역점을 둔다.
둘 다 '진리(truth)'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표방하지만 접근법이 다른 것이며, 어느 순간 '진리' 그 자체보다 수단(종교-질서, 과학-힘)에 우선순위를 두고 마는 것이다.
9. Modern Covenant
종교나 과학이 "이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다"라며 셋업해놓은 강고한 비타협적 룰(규칙,법)에 의문을 던지고 도전해 나가는 것이 영혼의 여행(spiritual journey)...
현재는 과학과 종교(특히 휴머니즘)가 도그마(Dogma 믿음의 대상)인 상태!!
하지만 이런 '과학-휴머니즘' 계약(covenant)도 포스트-휴머니즘 종교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김경록 PB 관련 KBS보도를 통해 고찰해 보는 '신앙화(확증편향의 절대화)'의 예
KBS에 절대성(절대 옳음)을 부여한 사람은 KBS에서 김경록 PB를
"자기 살겠다고 정교수에게 불리하게 거짓 증언한 악한 인간"
으로 결론내린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이후 어떠한 반론보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김경록 PB=악惡)을 고수할 것이다.
KBS법조팀장이 제보자 김경록 PB의 제보내용을 받아
①조작해서 피해자-가해자 바꿔치기 방송..
②제보내용을 고스란히 검찰에 전달했다는 1시간 반짜리 김경록 PB 육성 인터뷰(알릴레오 방송)를 듣고도 여전히 믿음(김경록 PB=악惡)을 고수한다면 이는 가히 KBS에 대한 '신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상적인 상식과 양심,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김경록 PB님 미안합니다. 그 동안 언론보도를 보고 PB님이 자기 살겠다고 정교수에게 불리하게 거짓 증언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용기를 내어 증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 말하고,
애초에 KBS발 보도를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할 텐데 말이다.
언론이 무섭긴 무섭다.
검언 협업으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 악惡을 낙인찍고 여론몰이해가는 최근 두달의 과정,
그리고 검언 범죄에 확증편향에 빠져 조국악마화에 동조하며 함께 돌을 던지는 40% 안팎의 좀비떼같은 대중..
끔직하다 못해 殺氣를 느낀다.
이들 좀비떼는 아마도
"정경심, PB를 집사처럼 부리다가.. 증거인멸 결정적 꼬리"
같은 최동순 기렉(한국일보)의 보도에 환호하며 김경록 PB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까?
새벽 12시06분에 KBS가 내놓은 공식입장 '법적대응'에 환호하며 박수를 치지 않을까?
2백만민중의 함성에 쫄아서 헛발질 무리수를 연발하는 '검찰-자유당-기렉' 집단에게,
응원의 떡을 보내며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흔들어대지 않을까?
김경록 PB, 유시민과 인터뷰하고,
또 심야에 검찰에 잡혀갔단다.
심야조사 한투 압색.. 징하다 떡검!!
기레기들의 단톡방 대화가 검사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뜨고,
검찰에서 조사받은 게 마사지돼서 기레기들이 실시간으로 받아쓰는 檢言 커넥션..
거짓에 대한 신앙은 이제 접을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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