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의해 자연이 존재하였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야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영겁의 세월 동안 돌고 도는 세상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신화에서는 자연은 인간을 초월한 섭리를 상징했다.
인간 이전에 스스로(自) 그렇게 존재한(然)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처럼 보였다.
하물며 초월적 자연을 예측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여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이용하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로 나뉘었다.
인류가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 예언자가 있었다.
신이든 정령이든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으로 권능을 얻은 사람들이다.
인간은 예언자를 선지자, 주술사, 마술사, 신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은 인간을 초월한 자연에 맞닿아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하며 감히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날씨를 예견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자연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여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후대의 사람들은 과학이라고 불렀다.
방법론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종교나 과학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세속적인 미신과 신탁이 횡행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의 맹아가 싹텄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과학자는 그 재능 덕분에 영화를 누리며 존경받을 수 있었다.
아테네인 다이달로스는 조카의 재능을 시기한 나머지 살인까지 한 범죄자기는 했지만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능을 지닌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몸을 의탁할 때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건설하여 미노스 집안의 수치인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를 도운 죄로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높은 탑에 갇혔을 때도 다이달로스는 솜씨를 발휘하여 하늘을 날아 유유히 시칠리아로 도망쳤다.
시칠리아에서는 코칼로스 왕에게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어주는가 하면 다이달로스를 쫓아 시칠리아를 침공하던 미노스 왕을 없애버리기까지 한다.
다이달로스는 그리스와 시칠리아의 도처에 아름다운 건축물과 기발한 발명품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 흔적들은 당대에는 물론 후대에까지도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위대한 유산으로 추앙받았다.
명예가 곧 행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아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금지된 지식을 알고 사용한다는 바로 그 속성 때문에 고난당했다.
그리스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트로이에는 카산드라라는 아폴론 신전의 신관이 있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로 아폴론의 환심을 사 예언 능력을 얻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불행의 씨앗이었으니, 카산드라는 영원히 사는 신인 아폴론이 언젠가 자신을 버리리라는 사실을 알고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여느 그리스 신들이 그렇듯, 아폴론도 속이 무척이나 좁았다.
보기 좋게 인간에게 차인 아폴론은 카산드라가 늘 정확한 예언을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
결국 트로이 전쟁의 절정에서 카산드라는 그리스 군이 남긴 목마가 트로이를 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트로이 시민들에게 경고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목마를 성벽 안으로 들였다.
카산드라는 진실을 보지 않는 대중과 현실을 직시한 지식인 사이의 갈등을 예견대로 트로이는 멸망하고 카산드라 자신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전리품 신세가 된 끝에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그리고 카산드라는 높은 지식과 지혜로 존경받지만 때때로 세간의 인식을 지나치게 앞서 무시당하고 마는 역설, 고독한 지식인의 운명을 예언자, 과학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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