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거울
1.이야기의 출발점에 서서
2019.8.경남 합천에서 추계고등학교축구연맹전 천안A고와 서울B고의 예선경기가 열렸다.
3-0으로 끌려가던 B고가 후반 중간쯤부터 대반격을 시작해 4-3으로 경기를 뒤집는 기적같은 승부가 연출되었다.
이 경기를 승리하며 서울B고는 A고에 이어 조2위로 32강에 진출하였다.
이에 3위로 탈락하게 된 C팀의 지도자와 학부모등의 강력항의에 이어 이 경기장면이 동영상으로 올라오면서 의혹은 증폭되었고 다음날 16일 긴급회의를 연 고교축구연맹은 지도자영구제명의 징계와 함께 해당학교의 3년간 연맹대회출전 금지, 몰수패를 결정했다.
그 후 이어진 불복과정을 거쳐 2020.5월 대한축구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자격정지 7년의 중징계를 최종 결정하였다.
서울B고교는 팀 해체를 결정했고 해당 감독은 축구계를 떠났지만 정작 천안 A고교는
"교장. 교감 선생님과 축구부관계자 등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
라며 차일피일 미루었고,
충남교육청 관계자 또한
"학교 운동 경기부 지도자는 계약직이고 이들의 거취는 학교장의 결정사항이라 교육청이 관여할 부분이 없다"
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지역 축구계와 학부모 및 관심 있는 동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군다나 해당 고교연맹 J모 회장이 '10억 횡령 및 학부모 성폭행 등'에 관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2. 승부조작의 실태에 관하여
승부조작의 문제는 어느 특정 팀. 특정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축구계 전반에 걸친 문제로 그동안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진행되어 왔던 문제다.
2010년 9월에는 고등부 전국축구리그(챌린지) 전남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광양제철고가 1-0으로 앞서 가던 중 경기종료 9분을 남기고 5골을 '폭풍실점'하며 1-5로 대패한 경기였다.
경기도중 심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에 늦게 입장해 경기를 7분이나 일부러 지연 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 다른 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던 타 팀의 경기결과를 문자로 전달받고 상대팀의 결선진출을 위해 무더기 실점을 한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경기 직후 골득실에 밀려 탈락한 광주 금호고 선수와 광양제철고 선수 간에 주고받은 다음과 같은 문자메세지 내용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더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일은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끼리 나눈 카톡 대화 내용에서
"짜고 했냐? 벌써 입소문 났네? ㅋㅋ"
등의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승부조작은 감출일도 아니었고 또한 그저 웃고 지날 일이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축구계의 승부조작은 감독과 감독사이의 관계, 즉 그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천안A고와 서울B고의 감독 또한 서울지역의 같은 대학교 동문 간이었다.
그게 불가능한 경우엔 심판을 통해 조작을 하기까지 한다.
2010년 구속된 모 대학 축구부 감독은 심판10명과 심지어 축구협회 경기위원에게 무려 17차례에 걸쳐 2,300만원의 금품을 건네며 9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3개 대회를 우승하기까지 한 기록이 있으니 말이다.
승부 조작은 비단 고등학교와 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11월 전북익산 A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의 승부조작과 폭력, 금품수수 의혹 등이 보도되어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익산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학부모들이
"우리 축구부 아이들을 지켜 달라!"
는 현수막을 내걸며 교육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불거진 것이다
지난 9월말 열린 도내 주말리그 경기에서
"살살해라, 공을 돌려라"
등등의 지시를 하며 월등한 전력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팀은 0-4로 완패하는 등의 승부조작을 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승부조작은 아마추어 학원스포츠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프로축구 K리그의 승부조작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K3리그(챌린저스리그)와 N리그(내셔널리그)의 승부조작 사건에 이어 2010 최성국. 김동현등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구속되고 영구 제명되는 등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승부조작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야기를 잠시 바꾸어 보겠다.
중.고 축구경기를 관전하노라면 의아한 경우가 많다.
단순한 연습경기임에도 스탠드엔 학부모들이 빼곡하게 모여 응원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위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어차피 실력이 엇비슷하다면 감독 눈에 든 바로 그 얼굴도장이 아이를 주전선수로 이끌어주기 때문에서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회식이나 촌지까지 이어지게 되고 치맛바람과 바지바람으로 변해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청소년 축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축구계는 아주 좁다.
어지간한 초. 중. 고. 대학팀 감독끼리는 한 치 건너 두 치로 안면을 트고 지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실력외의 요소가 선수선발이나 진학에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2011년 6월 서울 유명 고등학교 교사가 체육특기생 대학입학을 미끼로 돈을 받아 형사 입건된 경우에서 보듯이 이런 일이 각 급 학교와 팀에 비일비재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또 고등학교와 대학, 프로로 연속해서 올라가야하는 현실로 볼 때 선수수급 과정상 당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인 셈이다.
웃기지도 않는 것은 심지어 기량이 좋은 선수를 보내며 한 둘을 함께 보내는 속칭 '끼워팔기'도 흔하게 있는 일이다.
감독의 정치력은 선수 수급 능력에만 그치지 않고 자연스레 승부조작으로 이어지게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축구특기생으로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전국대회 8강 이상의 성적이 필요하기에 '대회실적 나눠먹기'식 현상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결국 초. 중. 고 시절 승부조작 경험 한 번 없이 프로선수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축구계의 현실이다.
이처럼 축구선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기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종의 정치력과 경제적이 필요한 셈인데 이는 말이 그렇지 결국은 비리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초등학교부터 합숙을 통해 공부와 멀어지며 상급학교 진학만을 위한 생각으로 꽉 찬 축구선수들에겐 승리를 위한 논리와 진학을 위한 비리가 그다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일정 이상의 법정수업과정에서 체득한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를 이유로 그들에게 그 책임과 공정한 세상에 대한 이치를 묻기는 쉽지 않다.
결국 승부조작의 문제는 몇몇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도덕성. 책임과 윤리의식 부재 차원을 넘어 축구계전반에 걸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문재인 정부가 기고 있는 '공정사회,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 위에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이다.
시간에 쫓기던 출근길 어느 날, 길고 긴 차량행렬 사이로 갑자기 끼어든 차량 때문에 파란 신호불이 빨간 불로 바뀌는 것을 겪어본 일이 있는가?
3,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엘리베이터 속에서 인원 초과 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양심불량인 사람 대신 거기서 쫓기듯 내려 본 경험이 있는가?
본인의 행동으로 인해 남이 받을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남이 받을 피해를 의식해 주저 없이 자기의 이익마저 포기하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많다.
정의란 바로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이자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함, 올바름의 다른 표현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 속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비전에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제시되어 있음을 아는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어긋난 추를 되돌리는데 주력하는 지금, 대전 현충원의 현판글씨를 교체하고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는 등의 온 국민적 노력과 달리 1등만을 위해 달려가며 과정의 공정과 정의를 무시하는 학원 스포츠계의 '승부조작' 논란에서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 자유로워져야한다.
4,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입주민에게 폭행당했다고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어느 60대 경비원의 아픈 사연으로 오늘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만큼이나 뜨겁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도 차는 또다시 끼어들 것이고 엘레베이터 또한 만원으로 또다른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5, 정의란 무엇인가?
대한축구협회 2020 전국고등학교 축구리그는 19권역 194개팀(학원팀111개,클럽팀83개)이 참가한다.
6월 13일 이후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보면서 각 시.도별 리그를 가동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7월에도 가동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
승부조작 문제로 만신창이가 된 팀과 선수들에겐 차라리 잘 된 셈이다.
모든 병엔 정확한 진단과 치료 그리고 회복의 과정이 순차적으로 필요하다.
단순한 상담과 통원치료가 필요한 병도 있다.
하지만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는 등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병도 또한 있을 것이다.
해당교육청과 학교장이하 관계자들. 동문들과 학부모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코 1등이 아니다
아이들과 더불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 왜 그 것이 1등보다 더 중요한지를 아이들 머리가 아닌 마음속에 떳떳하게 심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정의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거울인 셈이다.
아울러 우리 모두는 얼마나 공정 속에서 내 스스로 공정할 수 있었는가라는 큰 과제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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