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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by Ajan Master_Choi 2018. 10. 30.

이스라엘 ㅡ팔레스타인 분쟁에는 징후적인 매듭이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에는 종교가 유대교, 무슬림,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단군의 후손이듯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이라크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동을 해서 정착한 땅이 가나안이다.

 

요르단으로 넘어온 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야곱을 낳았다.

그 당시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부족하자 굶주렸던 사람들은 다시 좋은 땅을 찾아 이집트로 이동을 한 후 이집트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이 유대인을 탄압을 하자 그들의 후손인 모세는 사람들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다.

 

이것을 출애굽기(이집트탈출기)라 한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는 가나안 땅에 다시 정착하여 잘 살고 있을 무렵 로마제국이 침략을 했는데 로마의 다신교와 유대인의 일신교가 종교적 갈등을 빚게 되고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황제까지 섬기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을 하지만 로마는 더욱 강력한 핍박을 가하고 결국 유대인을 추방을 한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서 2000년을 떠도는데 이를 '디아스포라' 라고 한다.

 

그 후 2000여년을 떠돌며 살던 유대인들은 온갖 핍박과 굴욕에도 유대교 신앙을 지켜왔고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학구열로 전 세계 곳곳에서 리더로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차 대전이 벌어질 무렵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던 분위기가 일어났는데 높은 경제력과 정치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당시 세계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의 힘을 빌리려는 전략을 세우고 1차 대전 중인 영국을 지원한다.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바로 '시온주의'다.

 

시온주의는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한 곳으로 불러모으며 유대인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시온주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언이 있었는데 바로 <밸포어선언>이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은 1차세계대전 중 위임통치중이였는데 외교장관 밸포어가 유대인 국가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지하면서 비롯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이중성을 보였는데 1차 세계대전에 이기려면 아랍국가들에게 잘 보일 필요성이 있어서 이스라엘 독립지지선언 불과 1년 전 같은 땅을 아랍인들에게 독립국가건설을 약속한것이다.

 

이렇게 양쪽으로 약속을 한 것이 아랍인들의 갈등의 씨앗이 된다.

 

이 후 2차세계대전 (1939~1945)이 끝난 후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독립을 선언한다.

 

1947년 이스라엘 초대총리 벤구리온은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따라 이스라엘에 원래 살던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이들은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변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슬람의 형제로 가만히 볼 수 없어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국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을 한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그 다음 날 공격을 하는데 이것이 1차 중동전쟁이다.

 

1947년도 처음 얘기했을 때는 분쟁지역이다보니 예루살렘은 UN에서 관리를 하겠다고 했으나 제 1차 중동전쟁이 나고 난 다음에 요르단이 예루살렘의 동쪽 일부를 차지를 한다.

 

하지만 20년 후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이 있은 후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를 했지만 유엔은 동 예루살렘을 불법점령으로 규정을 하면서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사관도 예루살렘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고 국제사회에서는 예루살렘이 수도가 아닌 것이다.

 

1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4차례에 걸쳐 또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 중동전쟁

1948 ~ 1973년까지 25년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과의 치열한 전쟁.

 

그 결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2002년부터 원래살던 팔레스타인 이들은 자치지구로 따로 분리를 해서 가두며 분리 장벽을 건설한다.

이스라엘 안에 두개의 자치지구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구분하여 팔레스타인들을 가둔다.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서안지구안에 위치를 해서 서안지구는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데 가자지구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반이스라엘 저항 단체이자 정당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을 하면서 테러 등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2007년 이후 봉쇄정책은 더 강화가 된다.

이곳은 들어갈 수도 나올수도 없는 땅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한 가자지구는 서울의 절반 크기로 인구는 170만명으로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집트로 수백개의 땅굴을 내고 식료품과 연료를 들여오는 열악한 삶을 이어왔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마스의 테러를 막기 위해 가자지구를 봉쇄를 하고 하마스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봉쇄에 맞서 땅굴을 파 자원을 공급한다.

문제는 팔레스타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팔레스타인도 이산가족이 생긴다.

이 난국에 대해 알랭바디우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시오니스트 국가의 건국은 완전히 복잡하게 뒤섞인 현실이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보다 큰사건의 일부에 속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발상, 그러니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혁명이 떠오르는 대사건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반 사건이었으며, 역시 보다 큰 반사건의 일부이기도 했다.

 

식민주의, 그리고 다른 민족이 사는 새로운 땅에 대한 유럽인들의 잔혹한 정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혁명과 반동, 해방과압제가 뒤섞인 놀라운 결과물이다.

시오니스트 국가는 과거어 정의와 새로운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나라는 가장 덜 인종주의적이고, 보편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

 

바디우의 통찰에는 진실이 담겨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처럼 직접적인 방식으로 매듭을 푼다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의 두 측면을 분리한다는게 가능할까?

 

즉, 그 식민주적인 그림자를 떨쳐 버리고서 시오니스트 국가의 혁명적인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완수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미국정치가 1920년대 금주법에 대한 질문에 내놓았다는 답변과 같다.

 

와인에 대한 금주법을 지지합니까? 반대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자 정치인은 답했다.

 

" 만일 당신이 말하는 와인이란게 남편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아내를 때리고 자녀를 방치하게 했던, 수많은 가족을 망친 끔찍한 음료를 의미한다면, 나는 금주법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와인이 매끼 식사에 더없는 즐거움을 안겨 주는 뛰어난 풍미의 음료라면, 나는 금주법에 반대하겠습니다. "

 

우리에게는 그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좋은 이스라엘과 나쁜 이스라엘을 나누는 구분선을 그을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놓여있는 상황 그자체에 변화를 주는 실제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인들인들에게 이런 종류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파이트클럽}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했던 것처럼, 먼저 자기 스스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일이다.

 

아랍인들은 모든 일을 유대인들의 탓으로 돌리는 일을

그만 둬야 한다는 예기다.

마치 팔레스타인에서 시오니스트의 세력 확장이 아랍의 모든 불행의 기원이며, 또 불행을 상징하는 대리물인 양, 그래서 마치 아랍세계가 자기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꺾고 승리를 거둬야 하는양 굴지 말아야 한다.

일부 팔레스타인들은 영토가 이스라엘 점령에서 해방되면 아랍세계의 민주화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거라 주장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상황은 반대이다.

 

그런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시리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걸쳐 포진한, 이스라엘어 점령을 구실삼아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부패한 종교, 군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부터 시작해 한다.

 

역설적인 것은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바로 그이유 때문에 계속 패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교에 지하드는 근본적으로 외부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내면을 정화하려는 노력, 즉 자진의 도덕적 실책이나 나약함을 상대로 하는 싸움을 뜻한다.

그러니 무슬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지하드가 아니라 그진정한 의미가 담긴 지하드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어떤면에서 9.1사태는 매우 시의 적절하게 반발해 미국의 공격적인 군사팽창주의 합리화하는 구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희생자가 되었으니, 우리도 방어를 하고 반격을 펼칠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우리 현실은 뭔가...

스스로 자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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