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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전쟁 이후의 한국사

by Ajan Master_Choi 2018. 10. 20.

가끔 역사를 공부하려면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여기서 배움이 깊고 식견이 넓은 분들은 다양한 답을 하시겠지만 나는 매우 단순한 놈이다.

그래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분들하테는 좀 신중해지지만 내 또래 특히 왕년에 대학 때 세미나니 뭐니 했던 사람들한테는 매우 단순하게

 

“걍 니가 재미있어 보이는 거 읽어.”

 

이게 답이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바쁜 인생에 이것부터 읽고 그게 이해되면 저것을 읽고 그 뒤엔 요걸 읽어야 지평이 넓어지고 조것을 읽어야 이치가 통하는 역사서 커리큘럼이 어디 있는가?

 

어줍잖은 소견으로 말하자면 무슨 통사를 읽어야 하는 강박에서는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물론 정통으로 공부하는 경우야 다르겠지만 일반 직장인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통독해야 하는 이유는 비기독교도인이 신구약 성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하고 비슷할 것이다.

 

그냥 땡기는 부분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땡기는 부분을 읽다 보면 반드시 부분 아닌 몸통이 그리워지게 된다.

그때 찾아 읽으면 된다.

그리워지지 않으면???

그때는 다시 다른 부분을 읽으면 된다.

재미있는 대목이 얼마나 많은데..... 없다고???

그럼 왜 역사에 관심있는 체하나?

다른 영역이 무한대인데^^

 

뭐 나도 그렇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전쟁이후의한국사'다.

옛날 학창 시절에 툭하면 시험 볼 때 일이다.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시험 볼 때 제일 멍청한 놈들이 누군지 아나. 시험 하나 보고 쉬는 시간에 으아 맞다 틀렸다 하는 놈들이다. 왜냐고? 의미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멍청한 놈들이 누군지 아나? 시험 끝난 다음에 와 끝났다 노는 놈들이다. 똑똑한 놈들은 그때 맞다 틀렸다 하는 거다. 여러분한테 예습 복습하라 하지? 내 확실히 얘기해 줄게. 복습만 하면 예습 필요 없다.”

 

여기서 시험에 전쟁을 대입해 본다.

 

전쟁 중에 전투에서 이겼니 졌니 하는 것만큼 멍청한 건 없다. 또 다른 전투가 닥쳐오는데

 

“으아 그때 참호를 더 파는 건데.”

 

해 봐야 소용이 반푼어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멍청한 놈들은 전쟁이 끝난 뒤

 

“와 전쟁 끝났다.”

 

고 전쟁을 복기하지 않는 자들이다.

시험 생각하기도 싫다고 술 퍼마시고 자빠지는 건 좋은데 왜 시험에 실패했는지를 복기하지 않으면 인간은 똑같이 실수하게 마련이다.

인간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면 원시시대에 이미 인류는 에덴 동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한 번 되돌려 보시라.

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들 배웠을 것이다.

무슨 대첩도 외웠고 최후까지 항전한 어느 성의 이름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공부한 적이 있는가?

 

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공부했겠지만, 우리 한반도 국가의 원형을 이뤘다라 할 신라의 통일 전쟁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고려의 통일의 결정적 계기인 일리천 전투 (무려 15만 정도의 병력이 격돌한) 뒤에는 어떤지, 거란이나 여진과의 전투 후 남은 건 뭔지, 양란 이후에 왜 경북 지역에 종갓집이 급증하는 것인지 등등 전쟁 후를 ‘복습’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복습의 기초 학습서 같은 책이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승패가 판가름나는 전쟁의 절정이 아니라, 갈등이 봉합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지는 종전 이후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행위인 전쟁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격렬한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잠잠해진 시간들을 살펴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책 서문)

 

작자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이 책은 심오하지 않다.

전쟁의 사회과학적 원인과 심층적 결과 분석이 아니다.

전쟁 이후에 일어났던 당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고 가끔은 황망하고 종종 슬픈 일들의 나열이다.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 하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학자 시라토리 구라키가 주목한 것은 고구려였다.

고구려가 요동 반도를 중심으로 수와 당의 침략을 꽤 성공적으로 물리쳤던 것을 기억하여 ‘한반도는 요동을 장악한 뒤에야 독립이 가능하며’, 요동을 점령하려면 요하 상류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의견을 이어받은 이나바 이와키치는 총독부를 평양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만주와 조선은 하나였고, 고구려의 평양성이 그랬듯 그 심장부를 평양에 두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심지어 시라토리 구라키는 만주와 조선을 아우르는 의미로 조선총독부가 아닌 고려총독부를 주장했다고 한다.

 

쓴웃음이 나는 것은 요즘도 가끔 등장하는 바 “고려의 국경선은 요하였다.”라든가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민족사학자들의 논리가 바로 저 시라토리나 이나바의 언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좁아터진 한반도가 아니라 광활한 만주가 우리 선조의 무대”

 

였다고 자긍심에 젖는 건 좋은데 바로 그 기조를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일제의 만선사관 즉, 만주와 조선은 하나라는 인식이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좀 심하게 말하면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을 부르짖는 는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들도 어깨 걸고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된장.

이 책은 서른 개가 넘는 챕터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여러 사건들과 면모의 뒤를 훑음은 기꺼우나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다.

신문 연재물을 근간으로 한 것이기에 지면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조금 더 듣고 싶고 약간 더 파고들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런 사람들의 몫이다. 일단 우리 역사를 할퀴고 지나간 ‘시험’인 전쟁, 그 후와 맞닥뜨리기엔 상당히 괜찮은 책인 듯하다.

 

그런데 솔직히 출판사에는 불만이 많다.

이를테면 이 책의 표지에는

 

“러일전쟁이 끝나자 조선은 끽연가들의 연기로 뒤덮었다.”

 

고 쓰여 있다.

그런데 도무지 책 속의 내용상 러일전쟁과 끽연은 연결되지 않는다.

왜 이런 카피를 표지에 박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 맨 위 카피는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

 

빙고.

이 책의 주제다.

하나가 아쉬우면 하나가 보람찬 것, 그게 인생이고 역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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