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작가,
정치평론가,
보해양조 사외이사,
前 정치인.
JTBC 공무원
경상북도 월성군(현 경주시) 출생.
16, 17대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정계에서 물러나 현재는 본업이었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을 '지식소매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서애 류성룡의 13대 직계손이다.
아버지 유태우와 어머니 서동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역사 교사였으며, 어머니는 요즘말로 슈퍼마켓 같은 구멍가게를 했다고 한다.
아주 가난하진 않고 굶을 정도는 아닌 그야말로 소시민 집안이었다.
그래서 본인을 쁘띠 부르주아 리버럴(자유주의적 소시민계급) 태생이라고 말한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자식들에게 각종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게 하였고 식사 시간에는 자주 역사 이야기를 들려 주거나 한 주제를 두고 자식들과 진지하게 토론했다고 한다.
학력으로는 수성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고교 시절부터 성적이 아주 우수해서 이미 갈 대학(서울대학교)은 정해졌고, 과만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에는 재능이 없어서, 수학책 세권을 통째로 암기했다고 술회했다.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는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해 영어를 배워 서양으로 가서 서양 철학을 배우고 다시 귀국해 동양 철학을 배워 동서양을 잇는 철학가가 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유시민은 부유하지 못한 집안을 일으켜 보고자 법학과를 가서 판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진학한다.
참고로 당시의 서울대는 신입생 선발시 과별 모집이 아니라 계열별 광역모집제였고 2학년 올라갈 무렵에 학과를 정하도록 돼있었다.
사회계열 입학생들은 2학년 올라갈 때 법학과, 사회대 학과들, 경영학과 중에서 한 학과로 전공진입을 하는 구조였다.
정치 활동 시작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의 의원실 자원봉사자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때는 공식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 급여를 나눠서 썼다고 한다.
이후로는 작가 등의 길을 걷다가 2002년 절필을 선언하고 전업 정치인으로 전향하고 정계에 진출하면서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고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고양 덕양 갑에 출마해서 당선되어 정계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했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정치적 성향은 진보로 분류되고 있으며 주된 지지층은 20~40대였다.
그래서 정통 운동권 치고도 야당 당적을 굉장히 많이 옮긴 편에 속한다.
16대 보궐로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했을 때부터 전설적인 빽바지 사건으로 어그로를 잔뜩 끈 덕에 정치생활 내내 싸가지 없는 좌파의 상징이었다.
썰전에서 툭하면 전원책이 디스하는 게 이 빽바지 사건.
참여정부 시절 친일 재산 환수 같은 친일청산을 내세우다가 이에 맹렬히 반대하는 보수 세력에 의해 열린우리당의 몇 몇 인물들의 친족들의 친일 전력이 나오면서 열린우리당이 크게 당혹할 때 유시민 역시 피해자였다.
유시민의 부친과 백부가 친일파였던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유시민은 이에 대해 반박하면서 '나, 아버지 그리고 국가정체성'이란 글을 올려 친일파 논란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후 선거에서는 줄줄이 낙선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대구 수성 을에 출마하여 친이진영의 주호영 의원과 맞붙었고, 이어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서 김문수에게 석패했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12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하던 시절에 정장이 아닌 캐주얼 차림과 흰색 하의(일명 빽바지)를 입고 등장하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야권의 지긋지긋한 갈등 중 하나인 난닝구 VS 빽바지 갈등 중에서 빽바지의 상징이 되었다.
의회에서 복장 불량을 시비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항의를 했다고 한다.
또한 프로 야구 경기나 학교 운동회 등 국가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 곳에서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적이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통진당 시절에는 당권파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자 유시민은 우리 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여 했던 발언인 것.
참여정부에서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25일까지 1년 3개월 가량 재임했던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이력이 가장 상징적이다.
현직 정치인이나 은퇴한 정치인을 칭할 때는 그 전에 맡았던 가장 높은 직책을 불러주는 것이 관례라는 점에서 현재도 유시민 前 장관이라고 꽤 부르는 편이다.
이 당시 정책을 많이 펼쳤으나 그만큼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당시 주요 정책으로는 의료급여제도와 말이 많았던 국민연금 등이 있었다.
장관 재임 시절 기초노령연금을 신설할 것을 제안해서, 당시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도록 강력히 추진했다.
보통 고령자들은 유 작가를 버릇없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 작가 덕에 좀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된 것이 아이러니.
또한 국민연금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국회에서 직접 발로 뛸 정도로 열정적으로 추진했으나 당시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대로 보험료율을 15.9%로 인상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점진적으로 인하시키는 것으로 타협했다.
특히나 유시민은 장관 임명과정 자체도 매우 드라마틱했다.
유시민을 입각시키기로 결정하기 직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최고위원은 당시 정계의 화두 중 하나였던 상시 청문회법을 확대하여 국무총리가 아닌 국무위원의 임명에도 인사청문회를 의무화하는 강력한 법안을 발의시켰고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반대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통과시켜서 개정된 인사청문회법의 하필이면 첫 적용대상으로 빽바지 사건 등으로 찍힐 대로 찍힌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것이다.
그래서 인사청문회라는 난관을 뚫어야 하는 유시민이 맞은 화두는 한나라당 내부의 거센 유시민 안티는 물론 당시 주요 정책 화두였던 의료급여제도와 말이 많았던 국민연금 등이 있었다.
이를 위해 유시민은 직접 한나라당 지도부를 방문하여 박근혜 최고위원을 비롯한 여러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면서 무려 6주에 걸친 청문회와 적십자비 한 번 안 내서 절대 부적격 장관 취급당했다는 해프닝을 남기고 결국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위원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YTN 돌발영상 레전드로 남아있기도 하다.
장관 재임 시에 연금제도를 중점적으로 손보았는데 이는 그가 기존의 연금제도가 부도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도입되던 1988년대와 그 전후의 노년 세대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어서 노인세대에 대한 책임을 가정에게 떠넘겼으며 또한 보험요률이 3%, 인상한 뒤에도 9% 크게 높지 않은데 비해 소득대체율은 60%로 높은 편이라 그 부담을 후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기초노령연금 관련 논의를 정부 내에서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유시민이고 이후로 논의를 거쳐 강기정 의원이 대표 발의하였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에 통과가 되었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60% 이상의 노인들이 지급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든 유시민은 노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는 반면 전원이 퇴장하면서까지 반대한 새누리당은 노인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데서 아이러니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재임 중에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기존안보다 30% 낮추었고 이에 대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다만 유시민은 인구 구조가 노년 세대보다 청년 세대가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자면 미래세대에 주어지는 부담이 너무 과중하다는 점과 만약 소득대체율을 더 높이고 싶다면 세금을 더 높이는 것이 불가피 한데 국민정서상 세금을 더 부과하면서 연금 지급액을 높이는 것은 너무 저항이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썰전에 같이 출연 중인 전원책 변호사의 평가로는 "장관으로서 일을 매우 열심히, 잘한 사람"이라는 평을 했는데,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고 실제로 좌우를 막론하고 유시민 장관시절 업무 추진 및 실천 능력에 대해선 평가가 높은 편이다.
유시민의 업무 수행 내용이나 장관 퇴임 후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 유추해 보면 '복지 확장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국민 여론을 거슬러가면서 세수나 예산은 확장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건복지부 장관 업무를 수행한 듯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국민연금 문제가 생겨났을 때도 처음에는 유시민도 세율을 높여서 소득대체율을 60% 정도로 유지하려고 하였으나 한나라당의 격렬한 저항과 세금 인상에 따른 국민 여론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혹은 뚫지 않고 세율을 덜 높이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크게 낮추었다.
이 외에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공립 유치원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다른 국무의원들에게 건의했었고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재차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국민들이 유아 보육에 추가로 세금을 납부하는 데 합의하지 못한다면 애써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는 것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즉 기성정당 들이 주장하는 보육료 인하와 국공립 확장, 그리고 보육교사 처우 개선 문제는 병립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만약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고 보육교사를 공무원으로 전환한다면 마땅히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이 예산을 부유층에서만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득에 상관 없이 전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만약 세금을 높이지 못하고 국공립유치원만 늘리고 보육 공무원을 늘린다면 너무 재정 압박이 심해진다.
국민여론이 세금인상에 호의적인지 굉장히 회의적임으로 기존의 국공립유치원은 저소득층과 장애아동, 편부모가족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시설로 재편하고 일반 가정에게는 유동적으로 예산조정이 가능한 육아 바우처를 지급해 민간 보육원 이용요금을 보조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개혁국민정당 - 열린우리당 - 대통합민주신당 - 무소속 - 국민참여당 - 통합진보당 - 무소속 - 정의당
정당은 그에게 있어서 동고동락을 했던 존재였고 2000년대 요동쳤던 진보계열 정당 변천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철새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인제는 정치 성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여러 정당을 상황에 따라 옮겨 다닌 반면, 유시민은 자신의 정치관에 따라 정치 활동을 한 것뿐이라는 옹호도 있다.
그러나 논란 문서에서 보다시피 유시민 또한 당적에 따라서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바꾼 적이 있다.
이인제는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19대 국회까지 (2016년 임기 종료) 원내에 남아 있었지만 유시민은 참여정부 이후 어떠한 선거에서도 당선된 적이 없다.
이인제는 정치인생 28년간 13회지만(2.1년에 한 번꼴) 유시민은 11년 동안 7회(1.6년당 한 번꼴)다.
단순히 변경한 빈도만 보면 유시민이 더 하다.
다만 피닉제로서 인터넷에서 희화화되기 시작한 건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 최저득표로 당선되면서였는데 동 시기 기준으로 당적변경 이력은 이인제가 유시민보다 훨씬 위였다.
앞서 언급했던 정계 진출의 시발점이었던 신당인 개혁국민정당으로 활동하다가 본인의 주도로 열린우리당과 합당하게 되었다.
열린우리당 시절은 그의 정치활동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다.
여당의 주요 멤버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큰 명성을 떨쳤던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게 되었다.
격랑의 소용돌이였던 당시 진보정당 변천속에서 탈당쇼가 일어나며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합당 반대의 목소리가 났지만, 유시민은 찬성하며 새로운 당을 키워나갈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경선 끝에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을 원조하며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단일화는 입씨름으로 끝나며 실패로 돌아갔고,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은 이명박에 패해 맥없이 낙선하고 말았다.
대선 이후 콩가루 그 자체였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오래 유지될 리 없었고 결국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과 이해찬 등의 거물 정치인들이 줄탈당하기까지 이르렀다.
탈당 후 한동안 무소속 신분으로 지내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로 출마하기도 했다.
대구남자 유시민 당시 정치 지형으로서는 상당한 무리수.
철새 논란도 있긴 했지만 그의 출신지가 경상북도인지라 연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진보 진영의 유명한 정치인이 대구광역시에 나선지라 대부분은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나라당의 주호영 후보와 경쟁했으나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낙선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름 값의 영향은 있었는지 당초 예상보다 높은 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수성구는 부자 동네인 관계로 대구에서 지역색이 희석된 축에 속하지만, 수성구 을 지역에서 민주 진보 진영 인사가 30%를 넘긴 경우는 수성구 을 선거구가 생긴 이래로 유시민 하나뿐이다.
보통은 20%도 넘기 힘들다.
게다가 이때는 반노 정서가 하늘을 찔렀던 18대 총선이었다!
이에 민주 & 진보 쪽 인사는 크게 고무되었고 이후 김부겸이 당선을 노릴 수 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유시민의 행보가 김부겸에 딱히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실제로 유시민이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대구광역시에 뼈를 묻을 것 같이 행동하다가 바로 2010년 6.2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대구 사람들은 유시민이 먹튀를 한 걸로 받아들였다.
이는 나중에 김부겸이 수성구 갑에 첫 출사표를 던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표를 망설이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때 당시에도 이한구가 지역구에서 깽판 쳤던 전력으로 인해 수성갑에서 이한구에 대한 민심이 흉흉했었기에 이걸 잘 캐치한 김부겸이 출사표를 던졌을 때 반겼던 사람도 많으나 막상 표를 찍을 때는 '인물은 좋은데 당이 별로라서...'라는 의견과 함께 '유시민처럼 한 번 떨어지면 그냥 도망가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부겸은 유시민과 달리 도망가지 않았고 끝까지 대구광역시 출마를 고수했기에 수성구민들이 김부겸에게 화답을 보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유시민이 이때 1회성 출마에 그치지 않고 김부겸처럼 대구시장 등을 비롯해 대구의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면 김부겸과 같이 운이 따라줬다면 김부겸보다 더 일찍 대구에 입성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만약 그러한 성공을 거두었다면 김부겸 의원처럼 민주 & 진보 진영의 유력한 대권 다크호스로 주목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 후에는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이 모여 국민참여당을 창당했고, 유시민도 뒤따라 입당하였다.
그곳에서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본선 맞대결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
경선에서는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냈으나 본선에서는 경기도지사 재선 도전을 한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밀려 2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경기도 내에 큰 지지 기반이 없었음에도 선전했다는 평이지만, 당시 표차가 4%에 불과했다는 점과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후보와의 단일화 실패로 무효표가 김문수 당선자와의 격차보다 더 많이 나왔다는 점 때문에 지지자들의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애초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한 지역씩 주고 받는 연대 방식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한 자리가 아쉬운 민주당과 경선을 통해 단일화 하는 방식을 고수해서 정치적 권모술수를 적극 활용하는 마키아벨리스트라는 비난도 받았다.
2011년 국민참여당 대표에 오른 그는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의석을 확보한다면 잇다른 패배를 만회하고도 남을 의미깊은 선거였다.
김해시는 국민참여당의 모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도 하고 PK 중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제법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실책은 야권에게는 큰 호재가 되기도 했다.
말도많고 탈도 많던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거치며 이봉수를 후보로 세우며 원내 진출을 꿈꾸었으나 김태호 후보에게 밀리며 좌절되었다.
당선되었더라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는 데 교두보가 되었을 선거였기에 그의 좌절감은 더 컸고, 야당 측 대권 주자 1위를 굳건히 지키던 그였으나 그것마저도 손학규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손학규도 훗날 안습해지긴 하지만 잇따른 타격을 입은 국민참여당은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채 민주당에 흡수될 위기에 처했으나, 유시민은 진보신당과 대통합을 하는 방향으로 활로를 돌렸다.
참여당은 당원 투표로 통합을 결정짓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우여곡절의 협의 끝에 대통합 진보 정당인 통합진보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통합은 그의 정계 은퇴의 시발점이 됐다.
결성 직후 당분간 통합진보당의 공동 대표로 활동했으며, 당시 경기동부연합에 속한 인물군에 대해서 친북 성향 논란이 보수 언론에 노출되자 유시민은 매카시즘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통합 정당의 한계였는지 통진당 내부에서는 계파 갈등이 만연하였고 유시민은 이를 비판하며 직무를 거부와 복귀를 반복했다.
결국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터지게 되고, 유시민은 '총체적 부정선거'임을 인정하고 비례대표 전원 사퇴를 주장하였으나 당시의 당권파였던 NLPDR계가 반발하며 계파 갈등은 폭발하게 된다.
결국 비당권파 당원들의 대규모 탈당이 시작되었고 유시민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국참계도 부정경선에 주체였으며 일방적 피해자로서 코스프레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에서 참여계 인사들이 대거 구속되었다.
탈당한 인물들(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은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결성했다.
유시민도 초창기 주요 멤버로서 큰 활약을 펼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계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파란만장한 그의 정치 인생을 일단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재능을 아쉬워하는 진보 진영 지지자들이 가끔 정계 복귀할 생각은 없느냐며 묻는 모양이지만, 그때마다 '정계를 떠난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며 단호히 선을 긋고 있다.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이 같은 질문을 건넸을 땐 '다음 생에 하겠다'고 하기도.
하지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처럼 정치인의 정계 은퇴 번복이 드문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정계에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전무한 건 아니다.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ㅡ 2016년 3월 17일 JTBC 썰전 1부 도중. 전원책 변호사가 유시민 작가에게 친노냐고 묻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그 저기 쓴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오늘 제가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ㅡ 노무현 前 대통령의 퇴임 직후 봉하마을 연설 中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거나 포기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그 분이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참여정부의 자산을 상속받겠다는데 대해서 우리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누구도 참여정부의 부채를 승계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 부채는 우리 국민참여당이 인수해서 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남긴 좋은 자산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정당과 대한민국에 넘기고,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빚지고 가신것만 인수해서 끝까지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시다!
그 분이 불가능한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합시다!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입시다!"
ㅡ 국민참여당 당 대표직 수락연설 中 (2011.3.19, 국민참여당 전국 당원 대회)
정치인 유시민을 논할 때는 친노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유시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친노계의 적통이나 다름 없는 정치인이면서도 일반적인 친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경력과 과정을 거쳤다.
이유는 유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학연, 지연, 혈연, 당적, 경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독일 유학을 했던 유시민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고 경북 월성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유시민과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활동을 부산 지역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노무현 당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 당원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나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노 후보를 바깥에서 도왔다.
인권 변호사 & 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자였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 운동을 했던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이, 뛰어난 능력과 신념을 가졌는데도 고졸 출신이라며 노무현을 깔보는 거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반발 심리로 '나도 당신들처럼 명문대 나왔고 학생 운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무현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됐다고도 한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예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전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연설.
이렇듯 뭘로 보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후에 유시민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노무현 개인에게 흠뻑 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가 게이는 아닌데 노무현이란 사람이 그냥 좋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노무현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유시민 본인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이고 심재철이나 김문수 등 여권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젊었을 적 친분을 가지고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걸 보면 정치계에선 노무현이 제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후 유시민은 민주당으로 가기를 거부한 친노 인사들과 힘을 모아 국민참여당을 창설했고, 당의 성향을 민주당계 정당보다 더 진보적인 쪽으로 잡았다.
고로 민주당에 소속된 친노 인사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됐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이 정치적으로 상승세를 타질 못하자 참여정부 시절엔 불편한 관계였지만 '민주당을 긴장시킬 제3당이 필요하다'는 것엔 서로 동의하던 진보 진영과 손을 잡아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는데 그쳤고 총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게 된다.
그러자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함께 탈당했던 노회찬, 심상정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 - 정의당을 창당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그냥 정의당 평당원으로 지내고 있는데, 민주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진보 정당 쪽에서 정치한 경력이 더 많음에도 민주당의 친노계 의원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시민이라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 이유로는
비록 정당은 달라도 다른 친노계 민주당 의원들과도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 사적으로도 참여정부 시절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잘 유지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가 열릴 때에면 자주 민주당 소속 친노계 정치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입담을 과시하곤 한다.
이 때문에 유시민을 민주당계로 아는 사람도 제법 적지 않고, 실제로도 민주당계와 제3지대를 아우르는 광역계 친노계열로 구분된다.
유시민이 있던 진보 정당들의 강령도 노무현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그로 인해 진보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거리를 좁힌 인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사이에 끼친 영향은 크며, 친노 성향의 의원들이 이 둘 사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행동도 자주하여 유시민도 그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2017년 1월 5일 방영된 썰전 200회에 축하인사를 보내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시민 작가를 향해
“유시민 작가는 ‘정치 안 한다’ 너무 이렇게만 말씀하시지 마시라”며
“언젠가는 운명처럼 정치가 다시 유시민 작가님을 부를 때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다”
고 말하며 내심 그의 정계 복귀를 권유하는 듯한 느낌의 발언을 남긴 바가 있다.
여담으로 유시민은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이유는 한겨레에서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인 욱한 감정으로 그런 것이고 아내의 이름으로 계속 구독 중이라 한다.
참고로 유시민에게 어머니가 있는데 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아들아 불러 잘 대해주셨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어머니라고 불러 잘 따랐다고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아들아 라고 불러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작가로 돌아온 유시민
원외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나 현직 정치인 시절처럼 고초가 꽤나 많았고 결국
2013년 2월 19일에 정의당의 평당원으로 남을 것임을 천명함으로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작가로 복귀하게 되었다.
2013년엔 당시 딴지라디오 아까부터 팟캐스트 시대에서 유시민 백수님이라고 하면서 소개를 해 줬고 이때 유시민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의 홍보 광고가 꾸준히 방영됐는데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나름 유명해졌다.
그런데 이 책 광고에 관한 비화가 있는데,
원래는 1개월만 방영하기로 계약하였는데 계약이 끝난 줄 모르고 계약기간을 초과해서 계속 어뜨케.. 살 끄신가..가 계속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때 같은 딴지라디오의 '딴지 이너뷰'에 출연해서 물뚝심송이 인터뷰를 했는데 제목이 정신승리의 달인 백수 유시민이라고 당시의 근황을 확인 사살 당했다.
이 방송을 통해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의 피해자인 유수진 前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이 소개되기도 했고, 그 사실을 아버지가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해당 사건이 벌어져서 고초를 겪은 이후 딸 유수진 씨가 남동생에게 부모님에겐 말하지 말자고 했고 유시민의 아들이 그걸 지켜서 자신은 집에서 몰랐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팟캐스트 <노회찬, 유시민의 저공비행>을 진행했으나 그 이름값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재미에 결국 망했다가 이름따라 팟캐스트에서 저공비행(...) 2014년부터 진중권 교수까지 참여한 <노유진의 정치카페> 고정멤버로 출연 중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는 '유시민의 타임라인'이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한 주간 있었던 굵직한 시사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향후 상황이 어찌될 지 예측을 내놓는 시간인데, 유시민 작가의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은근히 많아 댓글란에 '돗자리 깔았다'는 댓글이 달린다.
예측이 계속해서 적중하자, 사회자 진중권 교수도 "이번에도 돗자리 까는 겁니까?"하며 능청을 떨며 언급할 정도.
유시민의 논리적 사고와 추론, 그를 뒷받침하는 정보력과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고려할 때, 예측이 틀리는 게 이상하다.
특히 많은 정당에 몸담았던 경험 때문에 다른 진행자들에 비해 그쪽에 대해 빠삭한 편이며 재선의원 및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며 정부,국회,청와대를 드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내각 시스템이나 청와대 시스템에 대해서도 두 진행자들에 비해 아는 게 더 많다.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2015년 국회법 문제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한 일을 방송 소재로 다룬 적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대륜중학교 동창으로 유승민이 1년 선배이다.
이때 유승민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간혹 자신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관한 하소연(?)이 재미있었다.
"나는 버들 유씨고, 그 사람은 유비 할 때 유씨예요."
실제로 유시민의 이름 한자는 柳(버들 류)時敏이고, 유승민의 이름 한자는 劉(묘금도 류)承旼이다.
한편, 진보를 대변하는 유시민과 보수를 대변하는 유승민 의원이 100분 토론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형편없이 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주호영에게 패해 낙선한 이후, 2009년에는 경북대학교에서 "생활과 경제"라는 강의명으로 경제학 교양 강의를 맡은 적이 있었다. 정보전산원 1층 강당(취업 시즌 때마다 취업설명회가 열리는 그 곳)에서 강의했는데, 400명 분량의 답안지를 채점하느라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한참 국정 국사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던 무렵인 2015년 11월에는 모교인 심인고등학교를 방문해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에 대한 강연을 했다.
심인고에 슈퍼스타가 떴다!
2016년 1월부터 JTBC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이철희의 후임자로 진보 측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보수 진영을 대변할 패널로는 전원책 변호사다.
첫 방송인 2016년 1월 21일 방영분의 시청률은 4.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으며, 정말이지 적절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두 패널의 조합으로 인기를 끌고 날마다 시청률이 늘어가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때에는 시청률이 10%를 달성하기까지 했다.
정치를 하던 시절 출연했던 생방송 토론과 다르게, 썰전은 녹화방송이라 제작진이 편집을 잘 해 줘서 좋다고 한다.
스스로 "썰전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죠." 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표현의 기술》 북 콘서트에서는 전원책 변호사가 귀엽다고 언급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심화되면서 썰전에서 거국중립내각이 조성되고 대통령이 의전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이양한다는 조건하에 자신을 총리로 선임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차기 국무총리를 추대하고 실질적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공언하자 유시민을 국무총리로 선임하자는 의견이 온라인 일각을 중심으로 나왔다.
물론 방송용 멘트고, 유시민 본인도 별 의미있게 말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한 것이라고 했다 몰.지.각.한.일.부.시.민 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10월 7일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환경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와 인터뷰하였다.
탄핵 가결이니만큼 유시민에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썰전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았던 광대승천 수준의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2017년 1월 3일 뉴스룸 토론에 출연하였다.
이 토론에 대해서 평한 딴지일보 글에서 유시민은 이제 좀 있으면 구름을 타고 다닐 법한 해탈의 지위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같이 썰전에 출연하는 전원책의 토론태도가 크게 논란이 된 토론이었는데 이를 정리 시도했고 실제로 진실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었다.
사실은 만성 변비로 곶통받아 정계은퇴했다고 한다
광주·전남 향토기업인 보해양조㈜의 사외이사를 맡는다고 한다.
3월 24일 목포 보해양조 본사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될 경우 유시민 작가는 오는 2020년까지 보해양조 사외이사로 활동하게 된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는
"이전부터 보해양조에서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민간기업에 관련된 일은 새로운 일이라 호기심도 있어 수락했다"
고 사외이사 수락 배경을 밝혔다.
이는 큰 화제가 되어서 기사가 나오자마자 보해양조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가 3월 9일쯤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24일 주주총회 때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직 안하려고 도망친다'(...)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참여계 탈당러쉬와 맞물려서 나오는 소문을 보면 유시민이 보해양조 사외이사를 맡은 것은 공직 안하려고 도망친 게 맞다 카더라.
뭐 사진같은거 이런거 갈무리 해가지고 짤 만들고 이래 가지고 명왕이 뭐, 산채로 잡아오라 했다는둥 그런 얘기 나오고 있어가지고요......
(중략)
저는 제 개인적인 거는... 저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어요.
- 김어준의 파파이스 144화 中
본래 유시민의 정계 복귀는 정치계의 오랜 떡밥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문재인이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등장하자 친노-친문 세력 및 지지자들과 각별한 관계인 유시민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2015년 말부터 문재인의 주도로 민주당이 각계각층의 명망있는 인사들을 대규모로 영입하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의 영입 및 정계 복귀의 여부를 두고 관심이 적을 리가 없다.
한 예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거국중립내각 및 책임총리제를 놓고 논란이 커졌는데 이 때 썰전에서 유시민이 농담을 조금 섞어서 '저는 총리를 하라고 하면 할 것 같다'라고 말하자 바로 책임총리 후보의 하마평으로 유시민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 그 예이다.
사건의 발단은 정작 본인이 제공
그래서 문재인 및 유시민 지지자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유시민을 두고 '썰전에서 짤리게 하자', '책 안팔려서 돈 못벌게 하자', '산 채로 잡아와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문재인에게 데려가야 한다' 등과 같은 농담 글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보해양조의 드립도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말.
유시민은 정의당 당원이란 지적이 나오면 '정의당과 연정하는 셈 치자'라는 말도 나온다.
그 외에도 문재인 대선 캠프 및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차기 내각 인선과 같은 인사 관련 기사가 나오면 높은 확률로 유시민의 이름을 언급한다.
특히 위의 총리 드립 때문에 국무총리 직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물론 유시민의 복귀 여부는 어디까지나 유시민 본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런 드립들은 이를 알면서도 일부러 하는 장난들이다.
대부분은 그냥 유시민이 지금처럼 편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평가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장난을 더욱 재미있어 하는 것.
물론 진짜 정계 복귀를 바라며 드립을 치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유시민이 정치를 안 하는 이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고 때문이라며 이런 드립 자체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서거 이후에도 정계에서 살아남으려 했으나 연거푸 낙선했으니 이제는 그 충고대로 따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5월 2일 tvN에서 유희열과 함께 나영석이 연출하는 윤식당의 후속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떴다.
어째 점점 방송을 더 많이 나가는 걸 보니 누군가를 피해 어디론가 도주하려는 듯 싶다 점점 연예인이 되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본인도 썰전에서 '난 연예인이라 포퓰리즘 해도 돼'라며 드립을 치기도 했으니 뭐 그리고 문재인-유시민 지지자들 사이에선 '또 어딜 도망가십니까', '마지막 휴가는 즐기게 하자'(...) 등등의 드립이 나왔다.
정작 본인은 예고편에서 굉장히 해맑은 모습으로 프로그램 컨셉이 마음에 들어 어쩔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5월 4일 썰전에서 전원책이 대놓고 "총리 이야기 왔느냐"고 물었지만, 눈 동그랗게 뜨고 흥미진진해하는 김구라의 시선을 받으면서 유시민은 "(총리는 호남이라는데) 난 영남이잖아요"라며 농으로 받아넘겼다.
해당 방송에서 유작가가 밝히기론, 문재인 후보가 총리감을 내정해두긴 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5월 5일 김어준의 파파이스144에 출연했다.
유시민 파트 풀영상 김어준이 위의 총리 드립을 말하자 당연히 방청석은 환호의 도가니.
유시민 본인도 '산 채로 잡아와라' 등의 드립을 알고 있단다.
(총리는 비영남 쪽으로 한다고 했으니 자신은 해당이 안된다는 유시민에게)'그럼 두번째 총리를 해야지', '속으론 문재인에게 가고 싶은 거 아니냐'라고 계속 깐족거리는 김어준과 어떻게든 변명(?)하는 유시민의 대화가 일품이다.
일단은 공직에 나갈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자신은 장외에서 (자칭)'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 지원하는 형태를 더 원한다고.
이는 당일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듯, 노무현 대통령 당시 (보수언론/지식인이야 당연히 비판적이고) 소위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진보 특유의 기계적 중립주의인척 위장한 반노의 위치로 보수진영에 합세해 참여정부를 맹렬히 비판하고 그 결과 참여정부를 좌우 양쪽으로부터 고립시킨 진보 언론/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의거한 입장이다.
꿀먹은 벙어리가 된 한겨레 김보협 기자는 덤 즉 공정성, 중립 운운하며 비판만 할게 아니라 어느정도 감싸주고 편을 들어주는 장외 지식인을 스스로 자처하겠다는 뜻.
또한 끝무렵에 지금까지 유시민이 왜 정의당에 당적을 두는지, 인터넷에 유시민에게 정의당 탈당하라는 목소리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이 나온다.
대략적인 요지는 "정의당은 모든걸 다 할려다 보니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컨디션 기복이 심하다." 정도로 해석된다고 본다.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JTBC 2017 우리의 선택 특집 뉴스룸에 출연했다.
조기숙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으로서의 재량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시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문재인 정부 초기의 행보는 유시민 작가가 썰전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제안했던 부분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두사람 사이에 연락이 오고갔고 그 과정에서 유시민 작가의 현 포지션에 대한 교감이 이미 있었던 모양. 내각 갈 일 없다는 이야기다
5월 13일 지지자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강조하였으며 문재인과 연락을 너무 자주하면 비선이 될 수 있어서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위에서 나온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 외부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아니면 기본으로 10만 부는 팔 수 있는 베스트 셀러 작가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고 독일 유학을 통해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던 인물이라 경제 관련 저서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꽤 유명하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집필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집필했고, 201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의 NLL대화록 관련하여 중립적인 시선에서 기술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 있다.
2014년에는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서술한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출판했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에 대한 책이라고.
글쓰기 특강의 경우에는 다음 크라우드 펀딩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해 먼저 진행했다.
자녀의 대입 논술도 스스로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가르쳐서야 되냐고 투덜댔지만, 자녀인 유수진 씨는 아버지를 이어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아침으로 가는 길>, 학민사, 1986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1988
공저,<기억하는 자의 광주>, 돌베개,1990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1992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푸른나무,1994
<97년 게임의 법칙>, 돌베개, 1997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개마고원, 2000
강준만, 유시민 공저 <지역 감정 예찬론>, 개마고원, 2000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돌베개, 2002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개마고원, 2002
<대한민국 개조론>, 돌베개, 2007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
<청춘의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09
<운명이다>, 돌베개, 2010[39]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2011[40]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길, 2013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돌베개, 2013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2014년 7월 10일
공저, <기억의 방법>, 도모북스, 2014.12.03
공저, <생각해봤어?>, 웅진 지식하우스, 2015.03.26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 길, 2015.04.10
<유시민의 논술 특강>, 생각의 길, 2015.06.12
공저,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쉼, 2016.04.01
<표현의 기술>, 생각의 길, 2016년 6월 8일
<유시민의 공감필법>, 창비, 2016년 7월 15일
고양시에 거주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잠시 대구로 내려 갔었으나, 다시 고양시로 돌아왔다.
현재 고양시 성사동(원당)에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 화정1동에 거주한다고 한다.
아마 화정1동과 성사동이 상당히 인접해 있어 잘못 알려져 있었던 듯 하다.
여담으로 같은 당 소속인 심상정은 고양시 신원동(삼송)에 거주한다고 한다.
친노의 대명사인 만큼 장관 업무수행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장관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임명과정에서 논란이 많아서 다른 부서에서 그를 무시할까 봐 유시민이 업무차 청와대를 들르면 별 일이 없는데도 단 둘이서 차를 마시고는 했다고.
그럼 유시민 장관이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카더라!라는 소문이 쫙 퍼져서 재경부 등 돈에 민감한 부서들이 둘이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예의주시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고 한다.
실제로는 별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 남는 시간에 단 둘이서 차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민주 & 진보 진영에 속한 논객들 중에서 거의 끝판왕 급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언변이 뛰어나다.
진중권, 노회찬, 김용옥 : 시무룩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그의 달변에 대해 "말을 길게 하는데도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비문이 없다. 듣다보면 (태클걸 여지가 없어서)재수없다"(...)고 평했다. 그만큼 토론에서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말한다는 것.
달변가라고 평가받는 이들도 문장이 길어지고 많아지면 비문이 많아지게 마련인데, 유시민은 그런 부분에서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논리적 정합성 넘치는 언변을 느끼고 싶다면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1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튜브에 유시민 토론 영상을 검색해보라.
그러나 한창 정치를 하던 시절 말을 날선 스타일로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유시민 특유의 강경한 발언을 두고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더민주 소속 김영춘 의원이 옛날에 "저토록 옳은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할까"라면서 대놓고 디스했던 적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정부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한나라당 및 친이계 인물 중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들과도 토론을 벌였는데, 그 상대가 김문수, 나경원과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이끌면서 김문수, 나경원은 완전히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이동관의 경우 그나마 어느 정도 토론답게 이끌어 갔으나, 그 또한 유시민에게 패배했다.
특히 그 이후에도 유시민이 한 번 나경원을 조롱하는 투로 나경원 의원 사용 설명서란 강의까지 하면서 그 주어는 없다를 인용했다.
유시민이 반대파와 토론 이후 제대로 된 인물을 만났다고 언급한 경우는 몇 없는데, 박형준[51]과 유승민이 그 중 언급돼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유승민은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서도 경제학 박사답게 오목조목 논리적으로 공세를 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해서 여러모로 많은 화제가 되었다.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 당시, 전여옥과 치열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적 미숙아라고 하자 전여옥이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큰 다음 다시 나와야 한다며 맞받아치며 인큐베이터 발언을 해서 주목받기도 했다. 토론 자체는 서로 막상막하로 치열했다.
現 경기도지사인 남경필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사석에서는 의외로 상당히 친한 사이인지라, 남경필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취미는 낚시라고 한다.
물고기가 낚일 때까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아 그게 좋다고 한다.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부록편이라 할 수 있는 '정치카페 테라스'에 출연했을 때 친구인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낚시를 다니기도 했지만 낚시는 안 하고 술만 마셔서 애먹이는 바람에 지금은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고, 파주에 있는 계곡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 갔을 땐 너무 낚시가 잘 돼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을 초대했지만 정작 그날은 낚시가 전혀 안 되는 바람에 미치는 줄 알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낚시터를 고를 때 물고기가 잘 낚이는 곳이냐를 많이 따지지만, 맛집이 있는가도 그만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카페 테라스에서 자신이 다녀본 맛집들도 함께 소개했으며 그중에서 진도군에서 먹은 간재미 회무침을 최고로 꼽았다.
알쓸신잡 예고편에서는 마찬가지로 낚시를 즐기는 황교익과 30분간 주구장창 대물 낚은걸 부러워하는 황교익을 상대로 자랑을 빙자한 낚시토크를 해서(...) 주변사람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도 했다.
몇번이나 화제를 바꾸려 시도했으나 실패한 안습의 김영하
팬클럽 시민광장에서는 '첨맘'님이라고 불린다.
팬카페 시절 만들었던 유시민 본인의 아이디로 호칭하는 것.
'처음마음初心'을 빠르게 발음한 '첨맘'이 당시 닉네임.
참고로, 국민참여당에서는 오프라인 토론회 때 당원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하는 것이 디폴트였다.
이는 개혁국민정당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추정된다.
NLPDR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의 영향력이 강하던 80년대 운동권 출신답지 않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인 노선을 견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 5월에 발간한 '1997 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영남과 군부의 맹목적 비토를 당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을 확률보다 낮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조순 씨같이 이미지가 좋은 제3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고 신한국당 측이 헛발질을 하지 않는 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없다"
헛발질해서 당선된건가보다고 주장했던 것인데 그 해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는 김종필과 DJP연합의 효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도 레드 콤플렉스를 완화하면서 줄곳 선두를 유지하다 대세론까지 나왔고 이회창 후보의 병풍으로 싱겁게 끝나나했다가, 막판 영남권 표 결집과 북풍과 색깔론이 나오며 40.3%의 득표율을 얻어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말년에도 측근 권노갑 등 측근비리와 전정권 김현철의 선례가 있음에도 대통령 아들 3형제 홍삼 트리오 비리에 연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김대중은 더 이상 이 나라 대통령도 아니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정계에 입문하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김대중 부채 승계론을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출간한 저서인 《청춘의 독서》와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고, 2009년 8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나의 첫 대통령, 사랑했습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기기도 했다.
2010년엔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여
"시사 평론할 때 몇 차례 비판했던 것 늘 마음에 걸렸다. 사과 말씀 드리고 싶었다"면서
"정부에 있어보니 김대중 대통령님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뚫고 거기까지 이루셨는지 알 것 같았다"
고 고개를 숙였다.
유시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리버럴 지식인이지만,
그런 포지션에 있던 지식인들 중에는 유일하게 국회의원(2선)과 장관, 당대표(2회)를 지낸 전직 정치인이다.
이러한 경력은 여타 진보 & 리버럴 진영 참석자들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요소이며, 토론회 등을 보면 그가 이러한 경력들을 활용하여 주제의 맥을 짚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2016년 1월 25일 JTBC의 비정상회담에 패널로 출연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계 은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국민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3번 확인(낙선)했고 다시 정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작가로 사는 게 더 좋다고.
이 와중에 기욤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던진 자기 포장에 세 차례 실패한 거 아니냐는 돌직구에 떡실신당한 건 덤.
또 출연자들에게 언젠가부터 너무 한국에 좋은 말만 한다며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하라고 직구를 날리기도.
한편 독일 유학파로서 다니엘과 독일어 프리 토킹을 했는데, 다니엘이 진중권 교수보다 발음이 좋다고 평가할 정도로 녹슬지 않은 독일어 실력을 보여줬다.
일베저장소 벌레들이 환장한다는(?) 노무현의 야 기분좋다가 등장한 귀향 연설에도 등장한다.
나무위키 문서에 걸린 썸네일에서는 노무현을 제치고 단독등장했다 이때 유시민을 아끼는 노무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키가 168cm 정도였던 노무현보다 조금 큰 것을 보면 키는 170cm 초반인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월 21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쯔위 사태의 시발점 격인 황안이라는 대만가수를 두고 "이 친구는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북에 있었더라면 보위부 할 친구야"라면서 비판했었다.
썰전 201회에서도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라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사드 배치 논란에대해서는 한국이 중국 경제 의존도 높고 한중관계가 험악해진다고 반대 입장을 주장했다.
2016년 1월 28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검찰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계좌를 추적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들이 집권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MB는 화를 내면 안 된다"
며 날선 반응을 드러냈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줄 논평을 내놓을 때에도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이명박정부 시절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이 자살한 이유는 차명계좌 발견 때문이 아닌가' 라고 발언했는데, 평소에는 언성을 높이지 않던 유시민이 그 말을 듣고는 언성을 크게 높이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조현오 파면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선거철에 의정부시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의정부시 시민들 앞에서 '구리 시민 여러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워낙 이동이 잦아서 그런지 혼동되었다고.
우파 성향인 극단주의적 인디 만화가 최지룡 작품에 그를 풍자한 듯한 인물이 나온 적이 있다.
축생도 외전에 국민연금을 풍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민 연금을 내라고 독촉하는 정부 관료로...
통진당 사태 당시 통진당 당권파 중 일부는 자파 조직원들에게 유시민은 CIA의 사주를 받아서 통진당을 파괴시키려 했다(...)라고 교육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유시민은 극우 인사들에겐 종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극우에게는 종북이라고 비판받고 극좌에게는 미국의 졸개로 비판 받으니 둘 다 거짓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병역은 제7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를 마쳤다.
병장 만기제대했으며, 심지어 GOP에서 철책 근무까지 했다고.
이 점을 이용해서 경기도지사 유세 때 미필자 고위층들을 신랄히 깠다.
원래 친노 인사였으나, 노무현정부 이후 이명박정부 시절 정의당 결성 전에 만나게 된 심상정, 노회찬과 상당히 친해졌고, 정계에서 은퇴한 지금도 친분 및 정의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심상정을 찾아가서 심상정에게 이명박의 실책을 비난한 다음, MB정부의 심판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심상정은 이를 수락하는 동시에 유시민과 의기투합했다.
한 때는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찾아오기도 하는 성의까지 보였으나, 그 이후로 심상정은 이명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현재 심상정이 독점하다시피 절대 우세를 점하는 고양갑 지역은 한 때 유시민이 2선으로 연임하고 있는 지역구였다.(...)왕위를 계승한건가? 참고로 심상정, 유시민 둘다 정의당 소속이다.
썰전에 나오면서 자연인 유시민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 제일 많이 나오는 모습은 대중문화 전반에 웬만한 젊은층 이상으로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은 모습이다.
인기 있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트와이스, 여자친구등 걸그룹과 그들의 히트곡까지 줄줄 꿰고 있어서 이 분은 도대체 모르는게 뭐지 싶을 정도다.
재밌게도 방송이 직업인 김구라보다도 잘 알아서, 되려 그것도 모르냐며 유시민이 김구라를 타박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재산은 2005년 기준으로 9천 200만원, 2012년 기준으로 4억 2,100만원이다.
2011년 11월 100분 토론에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토론이 레전드 토론으로 회자되는 듯 하다.
유튜브 영상 썰전에서도 원희룡을 언급한 적이 있었고, 보수 정치인 중에 원희룡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듯 하다.
2017년 3월 2일 보해양조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보해양조 측에서 부탁을 했는데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호기심이 생겼다고.
썰전에서 역선택에 대해 언급하면서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이 OB 대신 롯데를 선택했다가 역으로 털린 것을 언급했는데, 이를 보면 아무래도 야구 팬인듯.
박근혜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그날밤에 열린 JTBC 특집토론에서 상대방패널이 이 사태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문제해결을 위해 조기대선과 함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자 그에 반발하여 '현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헌법을 어긴 대통령의 문제'라고 흥분해 맞받아치며 '헌법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주먹쥐고 나와서 억울해 했을거다'라고 일갈했다.
영상 애당초 개헌이란 문제가 2개월만에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 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예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미움을 사는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를 다 합쳐봐야 18조 5천억 원밖에 안 됐어요.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했다고요.
그러면서도 보육비 지원도 늘리고, 기초 연금도 도입하고, '장기 요양 보험제'도 도입하고, 건강 보험도 혜택을 많이 늘렸어요.
그러면서도 18조 5천억 원밖에 재정 적자가 안 났어요.
그게 정부가 적자를 좀 보는 건 괜찮거든요.
왜냐하면 전체 GDP중에서 1~2%의 적자를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1억 연봉 버는 사람이 백만 원 정도 빚진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GDP에 1천조 정도 넘었으니까 그 당시엔 한 십조 정도 빚지는 것은 5년 정도 큰 문제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5년간 국가 부채 중에 어떤 것은 돈을 빌려서 산 것도 있기 때문에, 금융성 채무는 또 달라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거'요.
우리가 IMF때 은행들 살리려고 정부 자금을 투입해서 주식을 취득하고 정상화시킨 다음에 되팔아가지고 많이 회수했잖아요.
그런 금융성 채무는 괜찮아요.
화폐 가치를 안정화시키려고 외국환 평형 채권 기금을 발행해서 거기에서 빚을 얻어서 거기서 달러를 매입해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나중에 달러 팔면 돈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다고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이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60조였어요 연평균 32~33조 원.
근데 박근혜정부 들어서 565조 원이에요, 그것도 3년간이요.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 5년 동안 25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남기게 돼요.
문제가 엄청 심각하거든요.
다음 정권 교체를 해서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면 쓸 돈이 없어요. 펑펑 다 써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다) 어따 퍼줬냐? 국민들에게 퍼준 게 아니고 재벌들한테 퍼준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감세(= 부자 감세 정책) 그걸 원위치를 안 시켰기 때문에(= 부자 증세 정책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한 번 고쳐놓으면 항구적으로 감세가 되잖아요.
그게 누적되면서 그 효과가 계속 쌓여서 연간 50조 이상의 적자 재정을 보고 있잖아요.
아주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성장률은 2%밖에 안 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잖아요.
근데 지금 2%예요.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4.11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을 많이 썼기 때문에 돈이 모자르는 거니까 나중에 생으로 갚아야하는 돈이에요.
그게 참여정부 5년 동안 적자성 채무가 18조 5억 원 정도였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9조 원대 정도로 추산됩니다.
4대강 사업 8조 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놨으니까 포함이 안 된 거구요.
그거까지 합치면 10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졌어요.
근데 박근혜정부는 이 추세로 가면 MB 정부를 초월하는 적자성 채무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이 돼요.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이 문제가 제기 되어서 정부가 단년도 예산안을 내는 거 말고도 5년 짜리 옛날 중기 기획, 지금은 국가 재정 운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마다 향후 5년치를 예상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이걸 냈어요.
이걸 보면 U커브인데요 '첫해는 적자성 채무가 많아서 재무가 불건전하고 해마다 노력해서 줄여가서 임기 말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 이게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거와 똑같은 그림이에요.
이명박 정부 말대로 됐으면 2013년에는 균형 재정이 됐어야죠.
근데 2014년~2015년 오면서 적자성 채무가 커지기만 해서 이제 단년도에 30조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단 말이에요.
그럼 2018년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는 말인데 '그럼 2018년 되면 올라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고 마찬가지로 20~30조 원 상태의 적자 상태로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이거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쓰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써야지 5년짜리 국가 재정 운영을 엉터리로 작성해서 낸다. (중략)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유럽 연합이 경제 통합을 할 때, 통화 통합을 할 때의 기준이 국가 채무가 GDP 기준의 6%가 기준이었어요.
해마다 지는 거. 해마다 GDP 3%에 기준으로 잡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1억을 연봉을 버는 사람이 한 6천만 원 부채를 안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요.
해마다 6%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그 정도 빚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가는 부도가 안 나니까 괜찮다' 뭐, 이런 건데 제가 사실 채무 걱정을 하는 것은 '제대로 쓰면서 채무를 지는 거냐'는 문제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가 채무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문제 의식이 또 하나 있어요.
지금 내년도 예산안이 통합 재정 기준 기금까지 합쳐서 376조 원인데 복지 분야가 3%를 넘었다고 정부에서 엄청 이야기 하잖아요.
내년도 보건복지의 고용의 예산액이 통합 기준으로 기금 포함해서 155조 원이에요.
근데 이게 금년도보다 얼마 늘어났냐하면 9조 천억 원 정도 늘어난 거예요.
이 9조 천억 원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서 지출액이 많아지는 거 하나하고, 기초 연금 도입해서 금년도에 7월 달부터 줬기 때문에 1년 내내 주는 것에 3조 원 주는 것이 거의 다예요.
나머지는 늘어난 게 아주 미미합니다.
보육이라든가, 학교 무상교육이라든가, 실업자 지원이라든가 여기선 미미한 증가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2014년 예산안에서 각 부처별로 조금씩 조금씩 늘린 거예요.
특별히 늘었거나 줄은 게 없고 SOC 건설 예산안은 7천억 늘었고요, 일반 지방 행정은 2조 원 늘었고요. 다 비슷비슷 늘어난 거예요.
그럼 재정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는 거냐? 이건 또 아니라는 거예요.
김무성 대표가 '부자 감세라는 건 야당의 선동'이라 이야기하는데 (중략)
법인세, 소득세,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 감세시켜준 게 이명박 정부 때 감세해준 게 지금까지 누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수(국민에게서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가, 지금 내년도에 법인세가 0.1%밖에 안 늘어나는 걸로 잡히는데 그러니까 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세무 행정의 기본 원리는 '능력에 따라 납세'인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세금을 안 걷고 한쪽으로 담배며 상업용 자동차며 무슨 주민세며 이런 걸 인상해서 돈을 걷는다는 이런 발상 자체 제가 볼 때에는 빚을 30조 원 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건전 예산이다.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4.09.22
2005년도인가 국회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했는데요.
국회 시정연설 중에 보건 의료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가 1조 원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걸 근거로 해서 '의료 산업 선진화 위원회'라는 걸 국정 과정 위원회로 만들어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하고, 대통령 보고에도 몇 차례 하고 그랬어요.
그게 민간 합동 위원회인데 정보쪽 간사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고, 그리고 민간에도 간사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 번 회의를 했는데 제가 장관 되자마자 1조 원이라는 데이터가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봤죠.
그때는 기획재정부가 아니고 재경부(재정경제부)에서 나온 데이터래요.
그래서 제가 재경부 국장에게 물어봤죠.
회의 중에 제가 '이거 재경부에서 데이터를 냈다고 그랬는데 출처를 밝혀보시오'라고.
연구보고서에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만든 보고서냐 제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 회의 때 보고 드리겠다고 해서 한 달 후 다음 회의 때 또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더니 민간 병원의 연구보고서에 있는 거래요.
그래서 '민간 병원 어디서?' 물어봤더니 미즈메디 병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래요.
그러면 미즈메디의 연구보고서라면 틀림없이 정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이면 우리 외환 관련 자료를 못 가지고 있지 않냐, 틀림없이 한국은행 자료나 참고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 연구보고서에는 이 1조 원이라는 산출 내역이 어떻게 되어있고 산출 내역이 되는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온 걸로 밝혀졌더냐 물어봤더니 그거까진 미처 확인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열을 냈죠.
아니 이런 불분명한 데이터를 대통령 시정 연설에 넣고 이렇게 회의 자리에 맨날 넣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그 당시 산자부(산업자원부) 장관하던 정태익, 정세균 장관이 (저랑) 같이 화를 벌컥내면서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해놓으면 정부 공문서 전체가 불신 받지 않냐,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제가 직접 조사했죠.
한국은행과 협조해서 그 유학생이나 상사주재원 교민 말고, 치료를 목적으로 출국한 사람 환전 기록을 데이터로 조사해서 해 봤더니 적자 폭이 56억 원이라고.
1년 동안이요.
그래서 56억 원이면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컨소시엄을 민간 합동으로 만들고 그래서 바로 흑자로 전환시켰죠.
대통령이 나중에 보고를 받고 징계하라고 했어요, 책임자를.
근데 재경부에서 징계 안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관료들이 다 짜고하는 거예요.
노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 좋은 분이잖아요.
정치적으로 싫어하더라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런 (머리 좋은) 대통령도 데이터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정 연설 와서도 읽는 거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에, 이건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예요.
일국의 대통령의 담화문에 이런 게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만 이렇게 했어요 (중략)
밥 먹고 취재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나 학자들 있잖아.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1.18
묘한 기사들이 나왔더라고요.
'보험업계 걱정 지금 손보자'라든가. 생보사(생명보험 회사)에서 그동안에 여러가지 미끼 상품으로 종신 연금을 많이 팔았거든요.
근데 소득대체율(소득이 없을 때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금전의 비율)은 40%~50%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도 올려야 되고 안 올릴 순 없어요.
보험료를 올리게 되면 민간 가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공적 연금 노후 소득 보장율이 높아지니까 사적 연금이 줄어들 거라고 수요가.
이것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엄청 로비를 하는 건 불보듯 뻔한 거고 (중략)
국민연금의 문제점의 하나가 가입하면 무조건 이익을 봐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봐요.
나중에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도 국민연금은 다른 민간 보험 상품보다 수익율이 높아요.
왜?
단순한 이유예요.
우선 이윤을 안 남겨요.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없고, 경영진이 수십억 연봉 가져가는 것도 없고, 관리비도 국가에서 다 대요.
국민연금 기금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 기여금, 이거는 고대로 기금 운영을 해서 돌려주기 때문에 민간 보험과 견줄 수 없어요.
그럼 나중에 부가식으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해서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이 국민연금의 수익율은 고소득 계층에게 있어서도 민간 보험보다 무조건 유리하고 중간 소득 이하 계층들은 수익율이 더 높고, 거기다가 비용 근로자는 회사에서 반을 내줘, 무조건 이익인 거예요.
그러니까 중산층 강남3구 중산층 주부들이, 임의 가입자들이 많다니까 이게 최고의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꼭 가입할 필요가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40만 원, 50만 원 막 내서 가입하는 거야.
그래서 이게 없는 사람만 몰라서, '나는 국민연금 싫어', '나는 손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
이 점이 좀 안타깝고요,
두 번째는 합의 기구 구성 문제인데, 저는 이거 야당이 50%를 굳이 명시 안 한다고 해도 된다고 봐요,
그냥 '일원 정도로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포함하여 배제하지 않는 걸로 포함하여', 뭐 여부 못박기 싫으면, '50% 소득대체율 인상을 할지 여부를 포함하여' 그렇게 (법안 문구를) 합의를 보면 청와대에서 뭔 말 못 해요.
50%로 못박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국회와 민간이 다참여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여러 활동을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하면 될 거 아니야.
이거는 서로 간의 정치 공방을 주고 받고,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건 그냥 돈 계산하고 따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이런 거는 국회에서 구성을 해서 몇십 년을 하는 거야. 계속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변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함구적으로 국회의장 산하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놓고 국회 정당이 참여하고, 민간 전문가도, 가입자 단체, 이익자 단체, 관련자 단체 다 참가해서 논의를 정권이 바뀌건 국회가 선거를 새로하든 상관 없이 상시적으로, 인적 구성은 바뀌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돼요 근데 뭘 대통령이 뭐 공무원 연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이야기하지 마라.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5.05.11
어떤 국민 경제를 파멸에 빠뜨리는 가장 빠른 길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란 말이 있어요.
이게 케인즈가 한 말인데요.
한 국민 경제를 타락시키고 싶으면 화폐를 타락시키면 되요.
그러면 모든 거래 관계가 다 불신에 휩싸이고 저절로 경제가 밑으로 꼬라박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는 제일 빠른 길을 저는 언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이 국론 분열이라는 용어 있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부터 아주 지겹도록 들었고요,
제가 20대 때는 저나 노 대표님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을 가리켜서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 언론, 또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좌경 불순 세력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지금 "국민이 분열되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도 모아져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가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찾기 위해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국론 분열은 문제다, 국민을 통합해야한다, 이런 것이 적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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