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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우리의 발미

by Ajan Master_Choi 2017. 8. 7.



1789년 7월 14일 성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요새를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봉화가 솟았다.

프랑스 혁명은 세계사적인, 인류사적인 대사건이었지만 그 혁명의 과정은 혼란의 연속이었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혁명의 열기를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파리로 붙들려 왔던 루이 16세는 1792년 4월, 프랑스 입법회의의 강요에 따라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를 해.

루이 16세는 선전포고를 하면서도 오스트리아가 이겨 주기를 바랐겠지.

그래야 자신의 왕권을 회복할 수 있지 않았겠니.

 

왕의 바람이야 어떻든 프랑스 전역은 전쟁 분위기로 긴장했고 “조국을 구하라”는 혁명 정부의 모병관들이 전국으로 파송됐어.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어.

우선 군대부터가 속 빈 강정이었다.

기존 프랑스 군 장교 만 명 중에 6천 명이 외국으로 탈출하여 이쪽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었던 데다가 일반 병사들은 혁명의 분위기를 타고 군대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질서 따위는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지 오래였어.

 

한편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군대는 기세좋게 프랑스 국경을 돌파한다.

프랑스 혁명은 삽시간에 위기에 빠졌어.

파리 턱앞까지 프로이센군이 들이닥치자 프랑스 의회 내에서는 피난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어.

하지만 정치가 당통은 유명한 말로 이를 물리친다.

 

“대담함! 더욱 대담함! 오직 대담함만이 공화국을 구할 것이다.”

 

엉성하고 급박하게 만들어진 군대가 연이어 전선으로 출발했어.

프랑스 정부는 심혈을 기울여 이 군대에게 하나의 무기(?)를 지급해.

그건 한 노래의 악보였어.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지난 파리 테러 때 축구장에 운집해 있던 프랑스인들이 목 놓아 불렀던 그 노래.

 

“일어서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은 왔도다. 우리의 압제자가 휘두르는 피에 물든 깃발이 일어섰다. 들리는가. 저 흉악한 적들의 외침이......”

 

승승장구하던 프로이센군이 '발미'라는 작은 소읍에서 이 급조된 프랑스군과 마주쳤다.

격렬한 포격전이 오가는 와중에 프로이센군은 돌격을 개시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군복 하나 제대로 통일되지 못한 오합지졸의 프랑스 군대가 일찍이 수천 명이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열병하여 유럽 각국 대사들을 경악시켰던 정예 프로이센군의 상대가 될 수는 없어 보였어.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줏간 주인, 시계공, 농부, 세탁부, 구두 수선공들로 이루어진 프랑스 군대가 프로이센 군의 맹공을 꿋꿋이 버텨낸 거야.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던 켈레르만은 ‘돌격’ 명령 대신 벼락같은 외침으로 프랑스 군을 격동시킨다.

 

“Vive la nation!"

 

프랑스 만세, 국민 만세......

 

지금까지 귀족의 목을 창 끝에 꽂으며 그 물건을 훔치는 재미로 혁명에 가담하던 부랑자들,

하늘같던 왕에게 “돼지야”라고 조롱하는 맛에 통쾌해 어쩔 줄 모르던 농부들,

몇 년 전만 해도 숨도 못쉬던 귀족들이 없어진 것만으로 좋았던 파리의 빈민굴 사람들은 그 구호에 스스로의 존재와 위치를 깨닫게 돼.

비록 혼란스럽고 어설프고 때론 피비린내도 무지하게 풍기긴 했으나 자신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한 거야.

그 순간 그들은 급료를 받고 싸우는 세계 최정예군대의 넋을 빼놓는 강력한 군대가 된다.

군복도 통일되지 않고 무기도 변변찮았던 프랑스의 잡동사니 군대는 위풍당당 프로이센군의 콧대를 꺾어 버리고 만단다.

 

이때 프로이센군 진영에는 천재 하나가 종군하고 있었어.

바로 괴테였다.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진 덕에 포탄이 떨어져 박히기만 하지 폭발하지 않아”

 

몇 번씩이나 죽다 살아난 그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어.

 

“아침에 우리는 프랑스 놈들에게 침을 뱉고 먹어치우자는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만큼 용감한 이들은 없어.

자신의 존재 하나 하나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자각한 이들만큼 거침없는 흐름은 없지.

괴테는 그날 그 모습을 본 거야.

혁명을 혐오하던 그는 이렇게 그의 발미 체험을 토로한다.

 

“오늘 이곳으로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나니, 우리는 바로 그 탄생의 현장에 서 있다.”

 

길가에서 술주정하고 시장에서 흥정하고 적당히 사기도 치고 살던 사람들, 농사 밖에 모르고 포도주 짜는 일밖에 모르던 이들이 스스로 공화국의 국민임을 자각하고 떨쳐 일어났을 때의 에너지가 새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괴테는 그 천재적 직관으로 알았던 거야.

그리고 괴테의 직관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인류의 경험이자 상식이 된단다.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줄 알고, 저항해야 할 때 저항했던 이들은 프랑스 국민들처럼 ‘발미의 체험’으로 새 역사의 장을 열어젖혔지만 분연히 일어서야 할 때 엉거주춤을 추고, 맞서야 할 때 등을 돌렸던 이들은 ‘혼미(昏迷)의 체험’ 속에서 역사의 어둠 속을 헤매는 운명을 맞게 됐지.

 

어느 찬송가 구절을 빌리면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는 있었고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의 질문을 받게 되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온다.

 

이때 말이 안되는 상황 앞에서 말하기를 포기하고,

있을 수 없는 일 곁에서 내 일이 아니라며 먼 산만 바라보는 이들은 결국 어둠을 택하고,

거짓의 편이 되며,

결국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비참함에 빠뜨리게 된단다.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에게 ‘발미’가 닥쳐 왔다고 생각해.

아무리 고쳐 생각하고 재우쳐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도 나는 현재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은 이실직고하고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무던한 국민이라 해도 어떻게 그녀의 말을 곧이들을 수 있겠으며, 그 지저분했던 권력을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을까.

 

그녀가 임명한 정무수석 비서관조차 열 한 달 동안이나 단 둘이 만난 적은 없고,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를 받은 인물은 대학부터 문화, 체육 외 각계를 쑥밭으로 만들고 대통령 비서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돈을 긁어모았다면 과연 이 나라를 민주 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겠니.

그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상의 명제를 참이라 하겠니.

 

이런 지경에 처하고도 아직도 그녀를 추종하는 박빠라고 불리우는 세력들과 그 잔당들이 태극기를 들고 이곳 저곳을 설치고 다닌다.

 

우리나라와 국민이 이 어이없는 현실을 용인한다면,

그래서 ‘발미의 체험’을 우리 것으로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후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의 통치자가 연산군 같은 폭군이든,

진시황제의 아들이자 천하의 바보였던 호해 같은 멍청이든,

하다못해 살인마이든,

그들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머리에 이고 사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 거야.

 

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발미’를 위해서,

파렴치하게도 나라를 망치는데 광분하는 수구세력들과 투쟁할거다.

프로이센 군 앞의 오합지졸 프랑스 군처럼 역사를 만들어 내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 같은 거창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명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체면이 있고 나라에게도 국격이 있어.

 

적어도 대한민국은 태극기를 훼손하며 욕설과 포악한 짓을 해대는 저렴한 수구세력들을 용인하는 이런 나라가 아니었고,

아니어야 하며,

아니게 될 거야.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