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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왕망 - 명분과 속임수 사이

by Ajan Master_Choi 2018. 9. 2.

 

"법가식 개혁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지 민의 행복이 아니다. 부국강병을 통한 정복전의 승리로 더 많은 영토와 자원을 획득해 지배층의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가식 개혁에 성공한 국가는 계속 팽창 정책을 추구하다가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처참하게 멸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 p.80

 

"권력 장악은 술수로 가능하지만 권력 유지는 업적 달성으로 가능한 것인데, 왕망은 오직 술수에만 매달렸다. 술수에 뛰어났고 공작 정치에 능가했지만 기본적으로 왕망은 운명론자였다."

- p.179

 

"각종 선거 때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공약을 내건다. 이는 부지런히 일하고 부지런히 일을 벌이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어리석다면? 더욱이 집권한 당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자들의 소굴이라면? 막상 현명한 자는 후보가 되기도, 당선되기도 어렵다."

- p.212

 

 

중국사에서는 ‘서생망국’ 이라는 말이 있다.

글만 읽은 서생들에게 국가권력을 주었다가 이상론만 앞세우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명나라의 건문제와 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 그 괴리속에서 올바른 현실인식을 잃어 버린체 부유했던 한 인간, 그가 바로 왕망이다.

 

이 책은 서생으로서 유일하게 황위 찬탈에 성공한 가짜 군자 왕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왕망의 이야기 보다는 그의 찬탈이 가능하게 된 사상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당시와 별다를 바 없는 한국의 정치 상황들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본말이 전도되어 있는 듯 하지만 의외로 읽는 재미가 있다.

 

본래 전근대사회의 왕조 교체란 모두 무력을 장악한 장군 출신이 폭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왕망은 오직 명망과 권모술수만으로 제위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로 당대 독서인과 관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선양으로 새로이 왕조를 세운 인물이다.

 

왕망은 중국 전한 때의 정치가이자 신나라 개국황제였던 왕망을 다룬 책으로 많은 이의 지지를 얻었던 왕망이 끝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통해 성군 이데올로기를 배양한 유교 정치이념의 탄생과 성장과 한계를 살펴본다.

 

속된 유학자들과 얼치기 법가들에 대한 저자의 공격이 아주 신선하고, 이를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 비판에 ‘접목’ 시킨 부분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최규하로부터 대통령 자리를 ‘선양’ 받은 전두환을 예로 들기도 했다.

 

왕망시기에 일어난 변란을 도표로 정리한 것도 돋보이는데, 이렇게 많은 반란이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왕망의 신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 웠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왕망은 중국 전한(前漢)때의 유학자, 경제가, 정치가로 무력없이 평화로운 선양(禪讓 유교의 이상적 정권교체 방식으로 천자가 제위를 자식이 아닌 유덕자(有德者)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전한 왕조를 폐하고 신(新)나라를 세운 개국황제(BC.45-AD.23년)다.

 

왕망은 전한 말 기층 농민이 몰락하고 대토지 소유자의 횡포가 심해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이 거세지는 중에 당대 독서인과 관료의 전폭적 지지로 새 왕조를 세웠다.

 

그는 관직과 직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했으며 자신의 마차, 말, 의복을 빈객들에게 내주고 집안에 여분을 재물을 쌓지 않았으며 형편이 어려운 명사들을 빈객으로 거두며 조정의 고관과 친교를 맺었다.

 

이렇듯 명망을 쌓은 그는 참위설(讖緯說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미래를 예언하는 것)의 명분과 속임수를 적절히 활용해 황제에 오르지만 국정 운영 능력이 미흡하여 난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전국적인 반란으로 몰락한다.

 

왕망에 대해서는 평가가 완전히 엇갈리는데, 권력에 눈먼 무능한 찬탈자라는 평가와 함께 한나라 말기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고 했으나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도 있다.

 

사실 그의 정책은 냉철하게 말해서 이상주의는 커녕,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민심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토지개혁과 화폐개혁, 노비 해방을 단행했지만 단지 의욕만 앞세웠을 뿐 방법은 졸속이었고 땜질적 이었다.

 

이로 인해 이익을 본 자는 백성이 아니라 정권과 결탁한 소수의 신기득권 세력들이었고 오히려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식 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수단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좋지 못하다면 그건 아니한만 못하다.

 

왕망은 겉으로는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독선적이고 오만했으며 자기의 생각과 다른 간언을 하는 자는 엄한 벌을 주었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지지도가 나날이 떨어지자 더욱 아집에 사로잡혀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자신을 신격화하며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무리한 전쟁도 벌였다.

 

스스로 자신을 무오류의 존재라고 여기기에

"나는 옳으니 남이 틀린 것"

이라는 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며 주변의 입과 귀을 막았다.

왕망의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의 몰락은 단순히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쳤기 때문이 아니라 왕망 자신의 부조리함과 모순, 현실과 괴리된 오만과 독선 그 자체에 있었다.

 

아이필드에서 나온 신작도서 “왕망 - 명분과 속임수 사이”는 왕망이라는 2천년 전의 실패한 중국 정치가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의 자화상을 보게해주는 책이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부터 진 시황의 천하통일, 한나라의 건국, 그리고 왕망의 찬탈과 실패까지 그들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어떠했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왕망에 대해

"성군 이데올로기에 매달렸던 가식적인 정치인"

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런 왕망같은 인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판에 넘쳐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토양은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정치적 팬덤과 국민들이 여전히 구시대적인 "성군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전제왕정 시대의 군주와 다를 바 없는데 관습화된 정치의식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백마탄 성군"만 나타나면 국민들의 팍팍한 삶도 하루 아침에 해결해 주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왕망의 실패를 성군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도력의 한계와 문제를 드러내는 좋은 예라 말한다.

 

대한민국도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할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민주공화정 이지만 정말 유능하고 청렴한 인물이나 집단이 집권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통령 선거때 마다 우리국민들은 '백마를 타고 온 초인'에 열광한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기성정당에 절망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뿌리 깊은 유교적 성군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꽤나 냉철한 지적이다.

원래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란 국민의 대표일 뿐 무소불위의 권력이 허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정치가들은 어떤 정책을 추진 할 때 대화와 설득을 거쳐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국민은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정치가들은 일단 선거에만 이기고 나면 다음 선거까지는 전제군주처럼 행동하고 대화는 없이 독선적으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인다.

 

권력에 빌붙은 기레기 저널리즘의 나팔수들과 정의가 아닌 권력의 우상에 기댄 견찰등 사정?(배설) 기관은 그런 권력의 논리에 충실한 주구가 되기도 한다

 

걸리적 거리는 세력은 국가 권력을 앞세워 탄압한다.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행태를 입으로만 비난할 뿐 묵인하기도 하고 이념에 따라 무조건적 찬반의 입장에서만 보기도 한다.

 

수천년간 이어져온 지배와 정치의 문화가 워낙 뿌리 깊다보니 무의식 중에 익숙한 것이다.

경제적 성장은 보고 베낌으로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정작 인간 본연의 성장과 정치문화의 발전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가 민주주의를 정착하는데 수백년의 시간이 걸렸듯, 우리나 중국, 일본 등도 같은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정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줄이는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어쩌면 민감한 의식의 부분들이다.

 

이책의 결론부에서 저자 개인의 정치 철학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한쪽으로 편향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해박한 지식에 기반한 본문과 토막 상식 등은 충분히 흥미롭고 읽어보고 생각해 볼 만 하다.

 

저자는 권력의 정통성은 본질적으로 도덕성보다는 권력집단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권력은 그 사회 구성원의 안녕과 복지달성이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며 이에 실패하면 아무리 도덕적으로 뛰어나 보이는 정권이라도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말한다.

 

정치가의 가식적으로 쌓은 명망, 조작된 이미지와 정치공학에 속지 않도록 경계해야겠지만 가식적 도덕성 보다는 진정한 위민정신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부분이 많고 어떤 부분들은 동의하기 힘들고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정치를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 입장에서 접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막연한 당위성과 정치의 추상적 담론보다 구체적 실천, 실제적 효용의 가치를 이해하려 한다면 한번은 읽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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