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유럽을 놀라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영리한 한스'라고 불린 이 말은
산수 문제도 풀고,
시계를 보고,
달력의 날짜를 판독하고,
단어와 문장까지 표현할 줄 아는 천재말이었습니다.
4 곱하기 3을 물으면 앞발을 12번 굴렀고,
요일을 물으면 특수 글자판의 정답을 두드렸고,
16의 제곱근을 물으면 앞발을 4번 굴러서 답을 맞췄습니다.
심지어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제도 풀었습니다.
한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1904년 뉴욕 타임스는 '베를린에서 온 경이적인 말, 말(言)을 제외하면 못하는 게 없다'
라며 내용을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한스의 주인은 은퇴한 수학교사 빌헬름 폰 오스텐이었습니다.
오스텐은 한스에게 숫자를 보여주고 그 숫자만큼 발을 두드리게 하고,
계산 결과만큼 발을 두드리게 하고,
칠판에 알파벳을 보여주고 그에 해당하는 만큼 발굽을 두드리게 했습니다.
오스텐은 한스를 데리고 순회 공연을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심리학자 오스카 풍스트가 한스를 조사하면서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풍스트는 질문자가 문제의 답을 알고, 질문자가 보이는 곳에 있을 때만 한스가 능력을 발휘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질문자가 커튼 뒤에서 문제를 내면 한스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은 한스가 답을 안 것이 아니라 질문자를 읽은 것입니다.
한스가 정답에 가까워지는 순간 질문자의 자세, 호흡, 표정이 바뀌었고 그것을 본 한스가 동작을 멈춘 것입니다.
주인은 한스가 지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한스는 지능이 아니라 감수성이 뛰어난 것이었던 것이죠.
한스의 뛰어난 감수성을 지능을 착각한 주인 오스텐은 사기군으로 낙인 찍혔고, 자신의 착각을 반성하는 대신 한스를 원망하고 비난했습니다.
'저놈의 말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짐말이나 돼서 평생 혹사당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요 ㅠㅠ
한스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군용마로 차출돼 전쟁에서 숨졌습니다.
제가 흥미로운 것은 이 한스 이야기에서 얻는 깨달음입니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에 따라 한스 이야기의 교훈이 달라집니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 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자신의 책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한스의 비밀이 폭로되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봅니다.
'영리한 한스 효과라고 알려진 이 효과의 인식은 동물 실험을 크게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풍스트는 맹검법의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정밀 조사를 통과할 수 있는 인지 연구의 길을 닦았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의 의사소통이 발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데에는 풍스트의 공이 컸다'
AI라는 이름은 기만적이며, 이 기술은 절대 인공적이지도, 똑똑하지도 않다고 설파한 책 'AI 지도책'을 저술한 대학 교수이자 MS 연구원인 케이트 크로퍼드는 그 서문에서 한스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영리한 한스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환상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환상은 시스템이 인간 정신과 비슷하므로 훈련으로 지능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환상은 지능이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힘과 무관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생각이다. 영리한 한스 이야기에서 보듯 우리는 지능을 너무 편협하게 인식한다. 한스는 이미 다른 종과의 소통, 공연, 높은 인내심같은 놀라운 위업을 선보였지만 이것은 지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마음이 컴퓨터와 같고 컴퓨터가 마음과 같다는 이 믿음은 AI는 물질세계와의 관계가 모조리 단절된 비실체적 지능이라는 지엽적 개념으로 쪼그라든다.'
영국 브리스틀대학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한 환경 전문 남종영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과 비슷한 형식의 언어나 논리적 사고, 추상화 능력 등을 암암리에 전제하지만, 동물은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인간보다 영리하다. 동물은 디테일을 잡아내는 데 뛰어나다. 영리한 한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한스가 정답을 맞힌 이유는 디테일을 보는 진화적 능력 외에 인간과의 유대감이 큰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영리한 한스는 근대적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를테면, 인간과 1만 년 이상 소통하면서 화내고 위로하며 호흡을 맞춰온 개는 또 다른 영리한 한스다. 근대과학은 이성과 합리, 경제적 법칙 등으로 행동을 설명하지만, 인간과 개의 깊고 내밀한 관계에 대해선 수박 겉 핥기식일 뿐이다.'
이 전문가들은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합니다.
저는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지 모릅니다.
그저 내가 아는 상식들은 터무니없는 편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은 어디까지 사실에 부합할지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난 죽을 때까지도 편견과 선입견의 안개를 헤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의심하는 나는 소크라테스에게 칭찬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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