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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파우스트

by Ajan Master_Choi 2023. 1. 31.

파우스트는 괴테가 60년 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1막과 2막으로 구성된 희곡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스토리는 1막에 해당한다.

글의 주인공은 파우스트(인간)와 메피스토펠레스(악마)이다.
파우스트는 학자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세상의 방대한 진리에 비하면 부족하다며 참 진리를 깨닫길 바란다.
이를 본 메피스토펠레스는 신과 내기를 하게 되는데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타락시킬 수 있다고 했고 신은 일시적으로 흔들리겠지만 궁극적으론 바른 길로 갈 것이라 확신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어야 한다.

첫째, 이 이야기는 성경의 욥기를 기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욥기서에는 욥을 타락시킬 수 있다며 신께 욥에게 시험할 것을 허락 받는 장면이 나온다.

두번째, 성경은 마귀가 신께 허락을 구하지만 파우스트는 악마가 신과 내기를 한다.
허락과 내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 성경은 시간의 주권을 신께 두는 반면 파우스트에선 신 역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존재로 제한한다.

이는 결국 신이란 존재를 인간 수준으로 끓어내리는 탈 기독교적 의미가 있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신에 의해서만 구원되어지는 신본적 구원론에 도전하는 의미가 된다.

이에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계약을 제시한다.

1)악마는 파우스트에게 쾌락을 준다.
2)극락의 순간에 머무르고 싶으면 멈추어라를 외쳐야 하고 그러면 파우스트의 영혼은 악마에게 귀속이 된다.

악마와 파우스트는 동상이몽을 꾸는데,
악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쾌락을 주면 파우스트는 멈춤을 지시할 것으로 생각했고
파우스트는 반드시 참 진리를 깨닫고야 말 것이라 확신했다.

우선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준다.
마녀의 영약을 통해 늙은 파우스트는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에게 당신이 세상 모든 지식보다 더 소중하고 즐겁게 한다는 고백을 한다.

궁극적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 팔기를 원했던 파우스트가 이제는 지식보다 한 여자가 마음에 더 소중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가치관과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 지를 증명해 보인다.

실제로 욥도 고난 중에 신을 원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같은 맥락으로 본 것이며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의도로 파악이 된다.
결국 인간은 육체를 부인하는 믿음보다는 육체에 급급하는 것이 본성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쾌락은 결코 길지 않았고 심지어 비극적이기도 한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오빠를 살해했고 그레트헨 역시 어머니와 아이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그레트헨이 거부하고 죄값을 치르기를 원한다.

여기서 그레트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레트헨은 어머니와 자식을 죽인 죄를 짓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생명을 신에게 바침으로써 죄 용서 받기를 소원했다.
그래서 파우스트가 탈옥을 권유했지만 거절하고 사형을 당한다.

그레트헨은 아담의 원죄 이후
죄인으로 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전형이며
원죄는 오직 신에게 귀의를 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신본적 사상이다.
철저히 인본을 배제하고 구원은 고유한 신의 영역이며 인간은 오직 신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를 두고 악마는 탈옥하지 않은 그레트헨이 구원 받지 못한 것으로 말했지만 신은 그레트헨이 구원 받았음을 천명한다.
만약 그레트헨이 신을 믿지 않고 탈옥이라는 인본적 방법을 썼다면 구원을 없었다는 의미다.

성경의 욥기도 유사한 점을 말한다.
욥은 신에게 세 친구보다 더 의로움을 인정 받는다.
여기서 욥이 의로움을 인정 받는 이유는 욥의 세 친구처럼 죄의 유무를 따진 것이 아니라  비록 원망을 하면서도 끝까지 신을 믿었던 믿음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제 1막이다.
그리고 제 2막이 시작된다.

파우스트는 악마를 따라 한 궁전에 들어갔고
그곳에선 신하들이 황제에게 국가 재정 위기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국가 재정 위기를 탈출할 묘책을 내놓고 재정 위기를 해결한다.

나아가 황제는 파우스트에게 고대의 미녀 헬레나를 만나게 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파우스트는 시간을 거슬러 헬레나를 황제에게 보여 준다.
파우스트는 황제에게 더 큰 신임을 얻게 되지만 파우스트는 헬레나의 미모에 빠져 결혼하게 되고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사고로 죽게 되고 헬레나까지 하늘로 사라진 다음 파우스트는 다시금 실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성경 욥기서에 욥의 아들들이 한 날에 다 죽게 되고 아내마저 욥을 욕하는 장면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욥은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을 그레트헨처럼 자신의 죄로 여기며 자신을 탓하며 신께 귀의한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죽은 아이와 아내가 사라진 상황에서 신을 믿는 대신 인간이 열심히 일하고 선하게 삶으로써 스스로 구원을 얻는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악마에게 마을을 하나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이 점은 파우스트의 고백으로도 잘 나타나 있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어린 아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이곳에서
       위곳에서 위험에 둘러싸여 알찬 삶을 보내리라.

파우스트가 꿈꾼 이상향은 신에 의해 만들어 진 천국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가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파우스트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었던 궁극적 지식은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한 자력 구원이었음을 괴테는 말한다.

파우스트가 탈 기독교의 색채를 드러내는 것은 다음의 행동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파우스트는 마을이 완성되자 마자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주문 즉 '멈추어라, 순간아. 너 정말 아름답구나.'를 외쳤다.
이것이 파우스트의 마지막 말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파우스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주문이 파우스트에겐 참 지식이었다.

파우스트는 육체적 쾌락을 좇아도 봤고 가정을 이루어도 봤으며 정치적 성공도 거머 쥐어 봤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파우스트에겐 완전한 지식이 되질 못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삶으로써 만들어지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을 파우스트는 참 진리로 여기고 스스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참 진리를 깨닫고 죽은 파우스트와 탈옥을 거부하고 신을 믿었던 그레트헨이 천국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본에 의한 메시아 구원만이 유일한 구원이 아니라 성실하고 선한 삶을 통한 인간의 자력 구원도 구원이 될 수 있다는 탈 기독교적 정신을 피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석가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일맥상통한 말이 될 수 있고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의 세계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과도 연결되는 사상일 수밖에 없다.
파우스트는 선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성실함과 선함을 견지한다면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인간 만만세를 외친 것이라 볼 수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무려 60년에 걸쳐 기록했을 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이었지만
자신이 죽기 전까진 파우스트를 공개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이는 당시의 기독교 중심의 사회였던 유럽의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괴테가 반 기독교적 사상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파우스트가 간 천국에 그레트헨도 있다는 것은 기독교적 구원 역시 부정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러나 기독교만 유일한 구원의 통로는 아님을 괴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파우스트는 구원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인간의 의지와 삶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구원 방식의 다양화를 꿈꾸었다.
파우스트는 굳어진 내 가치관에 대한 경종이며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며 새로운 방법을 편견없이 모색하라는 괴테의 고민이 담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