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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Alvin Toffler - 미래의 충격(Future Shock)

by Ajan Master_Choi 2020. 2. 13.

 

“올바른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생산과 연관된 그 밖의 모든 사실을 지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노동과 자본, 에너지, 원자재의 양과 그리고 필요한 창고의 면적까지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은 생산의 한 요소이자 생산요소 그 자체이기도 한데, 워싱턴과 미국 산업 중심지의 권력 주체 중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이들은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겁을 먹을 것이다. 이는 위협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앨빈 토플러(1928년생)는

미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미래학 관련사업은 창안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토플러는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미래의 흐름과 시나리오, 예측을 부지런히 내놓는 가장 저명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저서는 예언적인 색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언제나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토플러는 뉴욕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나는 전형적인 인문학도였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은 질색이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과학과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래서 기술사 강의를 들으면서 관련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동안 토플러는

시와 소설을 쓰기도 하고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컴퓨터가 사회와 조직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분석하는 IBM의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저널리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즉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어느 신문의 워싱턴 특파원과 <포춘>지의 편집차장을 지냈다.

그 뒤 코넬 대학 객원 교수와 러셀 세이지 재단과 초빙 연구원으로 일했고, 또 NSSR(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강의했다.

 

토플러의 첫 번째 충격적인 저서는

1970년에 출간한 『미래의 충격』이었다.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

 

“기업활동의 리스트럭처링이 끊임없이 진행될 것”

 

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전한다.

 

기업은 조직의 계층 구조를 줄이고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특별위원회식 조직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은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이런 점이 적잖은 사람들의 코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수십 년에 걸쳐 빈틈없는 계획 아래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계층구조와 관료조직을 허물어뜨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발단은

토플러가 워싱턴에서 일하던 때의 체험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워싱턴의 정치제도를 가까이서 지켜본 뒤

시대에 뒤떨어진 구제불능의 제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워싱턴에 주재하던 다른 기자들도 똑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이런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는 문제에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토플러의 생각은 1965년에 발표한

미래의 생활양식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미래의 특징으로 가속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을 들었다.

 

토플러가 말하는 미래의 충격은

“문화적 충격 개념과 비슷한 것”이었다.

“한 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간 것처럼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많은 독자들은

토플러의 이 같은 논리 전개에 선뜻 공감하지 못했다.

 

1970년은 미국 주식회사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때는 아직 석유 위기가 닥쳐오지 않았고

거대기업들은 불패의 위업을 쌓은 듯했으며,

경제전문가들은 앞으로 닥칠 수십 년간의 전망을 자신만만하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에

토플러는 불안정과 자기비하를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자가 아닌 토플러는

환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 바탕한 미래의 모습을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토플러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은

다른 미래과학자들과는 판이했다.

 

1970년대 초반의 주류 미래학자들은

레저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다.

 

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여가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수십 년 동안 풍요 속에서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당시의 상황에서는 레저시대의 도래가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뒤에 나타난 상황은

이들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보여 주었다.

 

레저시대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정한 일터에서 과거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다.

토플러는 테크놀러지가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 놓을 뿐, 일 자체를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기계적 동시성은 사람을 구속해 기계에 묶이게 만들었고, 또 사회생활의 모든 국면을 동일한 틀 속에 가둬 버렸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국가에 다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기계적 동시성의 정밀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사람은 구속되기는커녕, 오히려 서서히 해방되고 있다.”

 

토플러는 주류 미래학자들과 여러 면에서 다른 인식을 보였다.

우선 그는 그 시대에 싹트기 시작한

과신 풍조에 휩쓸리지 않았다.

 

모든 사물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가 하는 인식의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 두드러진 차이점은

토플러가 테크놀러지의 잠재된 영향력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내다보는 미래는

테크놀러지와 지식이 움직이는 세계였다.

 

그의 저서에는

이런 점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는 1980년에 펴낸 『제3의 물결』에서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래의 오피스가 던져 주는 이미지는 너무 깔끔하고 매끄러운데다, 해체성이 짙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현실은 항상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급속하게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며, 심지어 전자 오피스로 일부 이행하기까지 한 만큼 그런 추세가 여러 가지 사회적·심리적·경제적 결과의 분출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등장할 워드-퀘이크(word-quake)는 그저 새로운 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기기는 모든 인간 관계와 함께 사무실에서 수행하는 역할까지 새롭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토플러가 그 이후에 출간한 저서는 앞서의 논리를 더욱 보강하는 데 그쳤다.

 

그는 10년마다 책을 펴낸 다음

10년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술적 도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1970년에는 『미래의 충격』이,

1980년에는 『제3의 물결』, 그리고

1990년에는 『권력이동』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근래 토플러가 펴낸 『전쟁과 반전쟁』은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면 그와 함께 새로운 전쟁 양식이 형성되고 또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나타나면 평화 또한 새로운 양상을 갖춰야 한다”

 

고 주장한다.

토플러의 1980년대 논리는

『제3의 물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른 학자들이 테크놀러지의 영향이나

정보량 증대의 충격에만 눈길을 돌리고 있는 동안

토플러는 전체를 포괄하는 파노라마식 점검을 추구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류는 갑작스런 비약에 당면하고 있다. 즉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한 사회적 격변과 창조적 리스트럭처링에 당면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한 채 새로운 형태의 엄청난 문명을 밑바닥에서부터 일궈나가는 일에 뛰어들고 있다. 이것이 제3의 물결의 의미다.” 토플러는 산업화라는 제2의 물결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테크놀러지 시대를 안내했다. 이에 대해 토플러는 이렇게 기술했다. “과거에는 아무리 쓸모가 많았고 또 아무리 소중했다고 하더라도 낡은 사고방식과 낡은 처방, 신조, 이념은 더 이상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체계와 기술, 새로운 지정학적 관계, 새로운 생활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과 상충하면서 급속하게 등장하는 세계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와 유추, 분류 및 개념을 필요로 한다.”

 

“산업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의 발흥”

은 대량생산보다는 대량주문생산을 의미했다.

 

토플러는 『제2의 물결』에서

 

“제조업의 본질은 똑 같은 형태로 규격화된 수많은 제품을 장기간 유통시키는 것이었다”

 

고 기술했다.

이에 반해 『제3의 물결』에서 제조업의 본질은

 

“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주문 생산제품이 단기간 유통되는 것이다.”

 

이 같은 대량 주문생산 개념은

그 뒤 많은 이론가의 주목을 받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그런 생산 방식이 이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내놓은

토플러의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

이루어진 변화의 속도에 비춰볼 때 토플러는,

비약적인 기술 발전의 폭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1980년 토플러는 워드 프로세서를

“텍스트에디터”나

“스마트 타이프라이터”

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미래의 사무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전자 사무실의 궁극적인 매력은 비서가 편지를 타이핑하고 수정하는 몇 가지 단계의 일을 줄일 수 있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 사무실은 그런 편지를 전자 비트의 형태로 데이프나 디스크 속에 정리해 놓을 수 있다. 이렇게 정리된 편지나 문서 중 철자법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전자 사전을 통해 자동적으로 수정할 수 있거나 곧 수정될 것이다. 이런 기계를 서로 연결시키고 또 전화선에 접속하면 비서는 수신자의 프린터나 스크린에 곧바로 전송할 수 있다.”

 

1980년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독자 대다수는

공상 과학 소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후에 공업화한 국가(또는 토플러의 표현을 빌자면 탈산업화한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현실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96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난 15년 또는 20년 사이 미국에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교육적 성과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2,3천만, 아니 4천만의 미국인들이 PC 사용법을 익혔다는 사실이다… 이런 PC를 통해 개인은 서로 비공식적인 배움의 통로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에 힘입어 우리 사회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기능 뱅크가 축적되어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학교라는 형태는 없었다. 이런 프로세스에서 학교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그런 제도는 전혀 없는 셈이다. 우리가 개인간의 배움의 과정을 이해하고 정보를 활발하게 유통시킨다면 교실과 좌석은 전혀 무관한 형태로 그런 과정을 변화시키고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토플러는 기업조직과 국가 또는 지역 내에서

그 같은 변화가 야기시킬 영향을 폭넓게 탐구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장래의 기업이

“다목적 기업조직”의 형태를 띠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인에 따라 재규정되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 물리적 환경의 변화요인: 기업은 자체활동이 환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보다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 여러 사회조직 구성상의 변화 요인: 이제 기업의 활동은 학교나 대학교, 시민 단체 등의 활동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정보 역할상의 변화 요인: “정보가 생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이른바 “정보 매니저”들이 산업 분야 이곳저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임에 따라 기업도 물리적·사회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정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토플러의 지적이다.

▶ 정부 조직상의 변화 요인: 정부 기관이나 조직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계와 정치계의 상호 작용이 과거보다 훨씬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도덕상의 변화 요인: 기업 조직의 윤리와 가치체계는 점차 사회의 윤리 및 가치관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토플러는

“지금까지 정상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갑자기 비윤리적이거나 부정한 행위 또는 스캔들로 재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고 지적한다.

“기업은 날이 갈수록 윤리적 영향의 생성자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미래의 기업 조직이 종래와 같은 상업적 문제 외에도,

생태적·윤리적·정치적·인종적·성적·사회적 문제에도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토플러의 시각은

1990년의 『권력 이동』을 펴내면서 더욱 넓어졌다.

 

그는 이 책에서 지역주의의 확산과

로컬 미디어의 증대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우리 문화의 탈대중화”

라는 옹색한 용어로 표현했다.

 

토플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 바퀴를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1960년대에 그의 관심을 자극했던

제도상의 헛점과 제약은 아직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서방세계의 바닥 밑에 장치된 시한폭탄은

지금도 째깍거리면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제2의 물결 – 즉 대량생산과 매스 미디어, 대량 지향 사회 – 을 겨냥해 만들어진 온갖 사회제도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의료 제도, 가족제도, 교육제도, 운송제도, 갖가지 생태관련 제도 등이 우리의 가치체계와 인식론적 체계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제3의 물결을 탄 문명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 문명과 정면 충돌을 벌이려 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변화의 물결들이 충돌하게 되면 거센 역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충돌했을 때는 내란과 격동, 정치혁명, 강제 이주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21세기에 예상되는 주된 갈등은 문화간의 대립이 아니라 세 개의 슈퍼 문명, 즉 농업화와 산업화, 탈산업화 간의 충돌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