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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by Ajan Master_Choi 2004. 6. 20.

시장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하늘이 울락말락 꾸물거리더니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겠지 했지만, 비는 두어 시간 동안 계속 내렸고,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에게는 고등학생 딸이 한 명 있었는데, 미술학원에 가면서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고 우산을 들고 딸의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학원에 도착한 아주머니는 학원 문 앞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주춤거리고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나오는 통에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심지어 앞치마까지 둘러매고 왔기 때문입니다.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혹시나 엄마의 초라한 행색에 창피해 하진 않을까 생각한 아주머니는 건물 주변의 학생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딸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빗줄기는 굵었고, 한참을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혹시나 해서 학원이 있는 3층을 올려다봤습니다.
학원이 끝난 듯 보였습니다.
마침 빗소리에 궁금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온 걸 직감했는지 딸아이가 창가를 내려다보았고,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딸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딸은 못 본 척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살짝 고개를 내밀고, 다시 숨기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역시나 엄마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주머니는 딸을 못 본 것처럼 하고 가게로 갔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미술학원으로부터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이 날라왔습니다.
자신을 피하던 딸의 모습이 생각나 전시회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나절을 고민하던 아주머니는 늦은 저녁에야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끝났으면 어쩌나 걱정을 한가득 안고 달려온 아주머니는 다행히도 열려있는 학원 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또다시 학원 문 앞에서 망설였지만, 결심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걸려있는 그림 하나 하나를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그림 앞에 멈춰선 아주머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그림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비, 우산,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작업복, 그리고 낡은 신발.
그림 속에는 한 달 전 어머니가 학원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초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 아주머니를 피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화폭에 어머니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새 엄마 곁으로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 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모녀는 그 그림을 오래도록 함께 바라봤습니다.

딸은 가장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머니는 가장 행복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