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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삶 이야기

세뇌된 행복공식

by Ajan Master_Choi 2019. 3. 6.

한 여고생이 풀이 죽은 표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들어섰다.

 

공부가 잘 안되니 성적도 떨어지고 그래서 우울하고 죽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 살아갈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애기했다.

 

"공부를 왜 잘하고 싶으니?"

 

하고 물으니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수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가질수 있고, 그래야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그래야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많은 아이들이 수학공식을 외우듯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외줄을 타듯이 자기 나름대로의 이 삶의 공식을 쫒아가고 있고 여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자신의 삶이 곧 불행으로 곤두박질 할 것 이라는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인생에 수학공식이 있는가?

 

우리 어른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 보다 더 좋은 대학 나와야 되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녀야 되고,

남들 보다 더 멋 있어야 되고,

남들 보다 더 돈이 더 많아야 되고,

남들 보다 더 크고 더 넓은 집에서 살아야 되고,

남들보다 더 좋은 차를 굴려야 되고,

남들을 지배 할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되고,

권력의 위세를 부려야 직성이 풀리고,

직성이 풀려야 행복하다는 잘못된 공식과 방정식에 길들여지고,

그것들에 익숙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물에 갇힌 물고기 처럼 잘못 되어진 삶의 노예가 되어져 있다.

 

과연 이런것들이 행복의 조건일까?

만약 이런것들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아마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예기가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만일 지금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뭔가 자신의 삶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고난도, 아무런 시련과 역경도, 아무런 수고로움도, 결핍도, 좌절도, 상처도 없는삶이 자신의 모든 욕망과 욕구가 충족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 혹은 광고 속에서 매번 반복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서 공식처럼 세뇌 되고 있으며 도리어 이것이 우리를 더 불행한 마음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매일매일 신문과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사건과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 한다면 어리석음, 탐욕, 아집과 독선, 성냄, 오만과 교만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에 대한 옳바른 처방은 무엇인가?

 

나는 마이클 폴리가 쓴 "행복할 권리"라는 책을 읽고서 다시한번 행복에 대한 새로운시각, 새로운 페러다임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은 고~!!라고 흔히 들어오던 말을 실감나게 하지만 비관적이지 않게 수긍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클 폴리는 이 책에서 알베르토 까뮈가 묘사한 시시포스를 불러낸다.

 

높은 산 정상에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시시포스는 마침내 징벌의 상징이었던 바위를 자신의 일부처럼 길들이며 사랑하게 된다.

 

그는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는 동안에만 나는 잠깐의 휴식 같은 것이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역설한다.

 

즉 행복은 삶의 다양한 고난과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는 순간의 기쁨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 당연히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현실을 살아내고 견뎌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삶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뇌된듯이 행복공식을 반복하는 아이들, 돈과재물, 명예와 권력, 세상적인 부귀영화 만이 행복의 척도인양 착각속에 갇혀서 순간 순간 하루 하루의 삶이 고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

 

모두 다 행복에 대한 참된인식 다시 말하면 의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 생각의 틀, 고정관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에서 어떤 목적과 목표를 세우느냐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것 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 가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고 지치고 짜증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과 마음 등이 일어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성공 할수도 있고 실패 할수도 있고 가난 할수도 있고 부자 일수도 있고 아플수도 있고 병들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돈과 재물이 없어도 강남의 더 좋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지 못해도 내 집이 없어 셋집을 얻어 살더라도 명품 빽을 들고 다니지 못하더라도 벤츠나 BMW 벤틀리 포르쉐를 끌고 다니지 못하고 98년식 스타렉스를 끌고 다니더라도 난 얼마든지 행복할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절대로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다.

"일체유심조"내 마음안에 깨달음에 있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이 순간적으로 일시적으로 헁복을 느낄수는 있겠지만 연속성과 지속성 영원성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지 못 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가져도 가져도 즐기고 즐겨도 누리고 누려도 자족과 만족이 절대로 없다.

영혼이 항상 허망하고 무상함이 더 커져만 간다.

가질수록 더 애착과 집착이 커집니다.

그런고로 마음속에 자리잡고 일평생 나 를 끌고다니는 그 놈 바로 어리석음과 탐욕, 아집과 독선, 오만과 교만을 내려놓고 내 마음이 맑고 밝고 투명하고 청정하게 비워졌을때 비로소 나 에게 손짓한다.

 

"너 어디갔다 이제왔니"

 

그렇다.

문제는 내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받아 들이느냐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목표설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열정과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이미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응무소주 이생귀심 !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내어라 !

 

사도 바오로는 그의 주옥같은 서신에서 나는 죄와 죽음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 어리석은 철학에서 자유 했노라고 선언 했다.

사도 바오로가 선언한 이 자유는 사도 바오로에게만 주어진 특권 인가?

아니면 우리도 똑같이 누릴수 있는 것인가?

누릴수 없는 것인가 ?

 

나에게도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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