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그는 바로 일제시기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이후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그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몽양 여운형을 아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은 그를 있지 말자는 차원에서 그의 일대기를 간략히 정리했다.
몽양 여운형 그는 188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을사늑약 이후 그는 집에 있던 종들이 문서를 불 질러 노비를 해방시켰고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으며 1914년 중국에 있는 남경 금룽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여 1919년 김규식을 파리강회회의에 보냄으로써 2.8독립선언과 3.1운동의 결정적인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1919년 11월 임정요원으로써 도쿄에가 일본 고위관료층과의 담화를 했을 당시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조선독립을 역설하였다.
1922년 몽양은 조선 독립을 위해 고려공산당 자격으로 모스크바에가 블라디미르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고 손문, 장개석, 모택동과도 만났다.
1933년 몽양은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하여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당시 그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가장먼저 없애서 신문에 가장 먼저 보도했었다.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지도자들이 친일을 일삼을 당시 몽양 여운형은 친일로 변절하지 않은 채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여 1944년 건국동맹을 조직하였고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국내 치안유지에 노력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찬탁 반탁의 물결이 한반도를 휩쓸었을 당시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총탄에 서거하셨다.
몽양 여운형은 호치민, 체게바라와 더불어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위인이다.
그를 재조명 하는 일은 후세대의 몫이다.
잊혀진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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