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 때마다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놈을 탓하지 말거라. 네 선택이 잘못된 걸로 돌리렴. 그래야 너의 맘이 조금은 편해질 거니까... “
세상은 나를 가두는 벽으로만 느껴져 일상을 꾸려가는 최소한의 말만 하면서 버텨가고 있었기에 마음의 문은 서서히 닫혀 가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말없이 늘 옆자리를 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근근이 그 틈으로 난 숨을 쉬며 살았습니다.
바람조차 떠도는 빌딩 숲을 지나 새벽녘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 옆을 묵묵히 지키던 가방 마저도 나와 같이 있기가 힘들었는지 자꾸만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방은 내가 가지고 있을 테니 좀 더 자 두렴 “
아파트 경비일로 출근하는 시아버지와 나는 별똥별 따라 어둠이 걸어나간 새벽을 같이 열어가고 있었고 나는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린 채 가죽만 숨 쉬고 있던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앞에 지병으로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내 곁에는 남편 대신 시아버지가 병간호 하면서 말이죠.
새벽녘 달과 별이 소곤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땐 내 머리맡에는 한 칸 한 칸 접어 쌓아 올린 휴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시아버지가 가래를 뱉을 때마다 휴지 찢느라 고생하는 며느리가 안타까웠는지 밤새 한 칸 한 칸 찢어 놓으신 거야 “
난 탑처럼 쌓인 휴지를 보며
아침과 같이 걸어 나가신 아버님의 발자국을 따라
내 눈물도 같이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무얼 하든 건강이 먼저야. 몸이 웃어야 인생이 웃는 거니까“
라며 늘 힘들어도 웃으라며 격려해 주시는 아버님 도와주는 손이 말 하는 입보다 아름답다는 걸 말없이 내게 가르쳐주고 계셨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나는 남편에게 통장과 도장을 주며 병원비를 찾아올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넘어가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남편이 피시방에 처박혀 그 돈으로 인터넷 도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야만 했을 땐 첫눈에 감전되는 사랑으로 결혼한 나의 선택에 되돌려 받지 못한 믿음과 눈물조차 숨어버린 삶을 뒤로하고 난 옥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건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젠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야 “
“ 나가서 돈 좀 벌어온다고 남자를 우습게 아는 거야 뭐야 이혼하면 될 거 아냐.. “
라는 남편의 마지막 음성을 전홧줄에 매달아 놓고선.....빈둥거리며 사는 남편이란 사람과 결혼이란 숙제를 해 나가는 그조차도 나에겐 너무 큰 세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제야 난 내가 날 수 없는 날개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난간 위에 몸을 걸친 채 다시 못 볼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마지막이 될 눈물과 해후하고 있을 때 허공을 가로지르는 익숙한 음성이 메아리쳐 왔습니다.
“안된다 애미야...”
녹슨 목숨조차 어쩌지 못한 채 사랑니처럼 아파 울며 나는 나를 용서하고 세상을 용서해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흘러넘치는 거리마다 걸어 다니는 웃음들을 바라보며 난 결코 습합 되지 못한 아픔들을 내보이며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무슨 돈으로 병원비를... “
“ 퇴원했으면 됐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통 뭘 드시지도 못하셨다 그러시던데 어디 아프시면 아범한테 말해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라 할까요 “
“아서라 노느라 정신없는 놈이 지애비 아픈걸 어찌아누 내 걱정은 말거라”
하루라는 시간에 내일이라는 시간이 보태어지던 날
시장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선 나는
아침에 올려놓고 간 새까맣게 탄 동태찌개 냄비를 끌어안고
“아버님 맛있게 드셨다더니 “
“미안하구나! 일어날 기력이 없어.....저 아까운걸,, 쯧.... 쯧 "
배 안 고프니
내 걱정은 마라며
“어미야 오늘이 네 생일 아니냐 몸이 성했으면 시장 나가서 추운데 겨울 목도리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
가로누운 슬픔을 내보이며
오만 원이라며 건네준 흰 봉투를 들고
방에 들어온 저는 고마움보다 앞선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애미야! 소고기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기보다 죽을 먹어도 서로 위로해주는 게 부부란다 “
당뇨 합병증까지 와 시력을 잃은 아버님이 삐뚤빼뚤 하게 적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짓다 저는 더 크게 소리 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쥐고서.....구름이 놀다 간 하늘에서 내리는 가을비에 녹슨 마음을 씻어내고 나는 오늘 퇴근하는 길에 살아 생전 드려야 할 빨간 카네이션 대신 하얀 카네이션을 샀습니다.
한 계절이 가기도 전에 병원조차 가보시지 못하고 떠나보낸 죄스러움에 밤새 가슴을 쥐며 울었던 시간을 되돌려 보면서요.
꽃을 받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님.
이제 영정사진 속에서만 뵐 수 있다는 사실에 아파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나러 떠나시면서 남기고 간 유품을 이제서야 정리하다 서랍에 통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비 일을 하며 틈틈이 아파트에서 나온 재활용품을 팔아 모은 돈을 매달 적금 부듯 부어오시다 7월 12일에 한꺼번에 인출이 되어있었습니다.
7월 12일.....
그날은 제가 퇴원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제 병원비가 아버님이 수술하려고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이었다는 걸...그래서 괜찮다고 머뭇거리며 수술조차 미루시던 몸짓을....이제야 알게 된 저는 숫돌에 몸을 가는 고통으로 울음을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뿌옇게 흐려진 두 눈으로
“너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
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사랑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떠나보낸 뒤여야만 했는지를 원망해보면서 말이죠.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기에 남편의 집이 아내인 걸 알게 된 걸까.
남편은 한 달에 한번 현관 우유 통에다 일한 월급과 장미꽃 한 송이를 두고 갑니다.
그때마다 저는 장미를 들고 아버님 산소를 찾고 있었고
“감사합니다. 아버님 이 꽃은 아버님이 가지고 계세요 “
라며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버님.....제 생일인 어제 남편은 13번째 장미꽃을 내게 주며 이제 사람답게 살겠다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기억하는 건 사라지지 않는가 봅니다.
살아생전 노래하는 별처럼 제게 늘 말씀해 주시던
“행복을 주면 행복이 온단다”
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내게 가져다준 수많은 미소와 그 조화로움으로 안개 낀 제 인생길에 핀 희망의 햇살이었던 당신께서 서쪽으로 기우는 붉은 석양으로 쪽빛 하늘에 그려놓은 사랑 이야기가 지금 이순간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립다고 전해 드릴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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