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3기니

by Ajan Master_Choi 2021. 7. 23.

3기니는 3파운드 3실링입니다.

는 목적의식이 없다면 모두가 회피할 만한 책이다.
우선 이나 을 읽고 진땀을 뺀 독자라면 이미 의 분위기를 눈치 챘을 것이고,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그이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에서 만만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버지니아는 20세기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페미니스트의 원조할머니 뻘로 추앙받고 있지만 작가의 작품보다 작가의 자살 서사가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목마와 숙녀’라는 시 속의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로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그녀는 외투 주머니에 돌을 가득 집어 넣고 스스로 우즈 강으로 걸어들어가 자살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삶의 고단함에서 찾을 수 있고,,,

나는 를 솔출판사의 2019년판으로 읽다 말았다.
이 책은 기획 29주년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해서 표지에도 더 신경을 썼고 아마 번역에도 더 신경을 썼으리라.
번역자가 ‘직역에 가까운 의역’이라는 원칙하에 번역하였다고 하는데 그게 더 일반 독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선 책은 깔끔하고 작은데 행갈이가 되지 않는 본문은 시각적으로 압박감을, 읽는 내내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1장을 읽기 시작하면 2장이 시작되기 전까지 작가의 ‘의식’이 강물처럼 죽 흐르기 때문에 중간에 멈췄다 다시 읽는다 해도 내용이 이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어 읽기를 멈출 수도 없다.
한마디로 끊어읽기가 안 된다.
완독이 어렵더라도 실망할 건 없다.
내용 파악은 다른 경로로 가능하니까.
에 대한 여러 요약본과 해설이 이미 충분하기에 주요 골자를 파악하고 싶다면 간단하게 그런 것들을 훑어보면 된다. 물론 반칙이겠지만...

2장 중반까지 읽다가 포기한 상태지만 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1930년대에 유효한 주장이었고 2021년인 현재는 다 실현된 주장이라는 것도 안다.
여성 교육의 문제, 여성 전문직의 문제, 그리고 여성과 돈(급여)의 문제.
그런데도 읽고 싶었다.
버지니아만의 전달해 줄 수 있는 뉘앙스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의 숨결을 직접 느끼고 싶었던 게다.
동시에 당사자가 너무나 바랐을 세상이 오늘날 거의 실현되어 있음을...
100년 전의 외침이 실현되었음을 알고 안도할 뿐이다.

는 이미 태혜숙씨와 이미애씨가 번역한 다른 출판사 판본이 나와 있다.
만약 다시 읽어야 한다면 다른 판본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ㅡ참고로 해설을 정리한 작품의 배경과 형식은 다음과 같다.

『3기니』가 착상되어 출간되기전까지의 7~8년의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유럽이 전쟁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와 겹친다.
울프는 점차 전운이 짙어가는 1930년대 유럽의 긴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작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특히 “여성의 시각이란 대체 무엇인지What is really woman's angle?”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1936년에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울프가 그러한 근본적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3기니』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쟁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아이들의 ‘시신과 폐허가 된 집’의 사진들이 중요한 순간마다 언급되면서 『3기니』의 일종의 ‘바탕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렇듯 『3기니』는 전쟁과 파시즘, 제국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하며 그것은 여성과 젠더, 가부장제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파헤치는 울프의 반전 논쟁 책자이자 일종의 ‘시위’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를 묻는 편지에 3년도 넘는 오랜 세월 답을 못하고 내버려두었다는 여성 화자의 푸념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3기니』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있다.
화자는 전쟁 방지라는 거대한 주제를 논한다는 것은 며칠 내의 답장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책이 길어졌지,,,
전쟁이라는 것이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가정과 공공 영역 전반에 녹아 있는 파시즘적 가부장 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패를 전제하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난제라는 사실 또한 독자는 미리 듣게 된다.

항상 새로운 소설 기법과 형식을 실험해 온 울프는 이 ‘에세이’를 쓸 때에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공산당 선언’으로도 일컬어지는 『3기니』는 확실히 이전의 어느 작품들에서보다 격앙된 저자의 모습이 더 드러나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이고 외쳐대는 선전과도 확실히 거리가 멀다.
울프는 여성 작가의 분노와 절규는 광인으로 오인될 소지를 내포한 현명치 못한 전략이라는 것을 꿰고 있었던 사람이다.
『3기니』는 서간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서신이 오가는 형식이 아닌 화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호소하는 세 통의 편지에 대해 화자가 긴 답장을 보내는 식으로 전개되는 글이다.
정확히 말하면 액자식 구성으로 하나의 답장이 다른 두 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까지 담고 있다.
이러니까 머리가 꼬이지,,,
화자는 감정이 격해진다 싶으면 잠시 멈춰 수신인의 반응을 상상한다.
울프 스스로가 복잡한 이슈의 논쟁에 수반되는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프라이빗한 편지라는 형식은 화자의 속내를 좀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드러내게 하는 수단으로 적합하게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