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적지 않은 오해나 모함을 받게 됩니다.
빤한 거짓말로 누군가를 모함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 진실이 밝혀질 게 분명한데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의 오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새로운 오해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이 진실이 된다
그런데 정말 절망적인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오해가 풀린 다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편견의 색안경을 낀 채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실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그동안의 설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마치 한번 깨진 그릇은 붙여놓아도 금이 간 채로 남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해를 받더라도 더 이상 아무 해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의감에서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자신에게 도전을 한 경우, 그 순간부터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아도 그것 때문에 그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행동하거나 그 사람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손을 드는 쪽은 언제나 이해관계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호의적인 사람입니다.
진실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같은 사람을 두고 저마다 다른 판단을 할까요?
그저 가치관이나 기호의 차이 때문일까요?
이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가설검증 바이러스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서 판단하면 그것이 옳다고 미리 생각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가설들을 검증해줄 수 있는 정보만을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나머지 정보는 무시하거나 받아들이더라도 쉽게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듭해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인양되지 못한 채 거대한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실종된 진실’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봅니다.
그 거대한 바다란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 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제한된(혹은 수많은) 정보를 갖고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편견을 갖고 또 그것을 고집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행동 이면까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누군가의 인격을 정의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신의 영역에 속한 일이니까요.
독감바이러스 예방주사를 맞듯 가설검증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백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행하기 어려운 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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