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의 파업,
전장연의 지하철 점거,
학습지 선생님들의 국회 앞 농성,
하청 및 청소 노동자들의 길거리 절규,
대리운전자들의 숨죽인 울음은
주권 없는 주권자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주권의 예외에 해당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운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조항은 주권자들의 위임을 받은 권력자에 의해 사문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근대국가의 주권을 “지상의 신”이 탄생한 것으로 보았다.
민주주의의 결함은 주권의 단일성에 있다며 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를 탄핵하고 있다.
핵전쟁은 이러한 주권 독점의 끝판을 보여준다.
어떻게 손끝 하나에 모든 주권을 모을 수 있는가.
주권 단일의 신화는 20세기에 인류에게 처절한 고통을 안겼다.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일본의 천황제가 대표적이다.
남북한의 권력체제 또한 분단의 이익을 공유한 공범에 해당한다.
단일화된 주권의 장에서 벗어나는 자는 탄압을 받았다.
살인과 신체적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혼의 불순함을 확신범으로 삼는 ‘국가보안법’처럼 법체계를 도구로 활용한다.
민주적 제도를 훔쳐 주권을 독점한 자들은 자본의 힘으로 시민을 경제적 이해관계의 분열로 몰아넣는다.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의 노동력은 필요해도 그들의 문화는 필요없다.
또한 외국인과 결혼하면 상대의 언어를 서로 배우는 것이 참된 환대다.
그러나 한쪽의 언어는 다수의 문화권에서 부정된다.
결혼은 폭력이 된다.
주권에서 제외된 이들이, 인도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가 말하는 서발턴(Subaltern)이다.
하층민, 하층계급을 말한다.
그는 영국의 지배에 저항한 인도 농민들의 봉기를 연구하여 그들의 처지를 역사적으로 복원했다.
서발턴 연구자들은 서발턴 개념을 세계 곳곳의 주변에서 표류하고 배제된 주체 잃은 인민들로 확장했다.
현재는 다방면에서 그들의 주권 회복을 위한 ‘재현’의 가능성 논쟁으로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사실 식민강권통치 아래에서는 모든 백성이 제국의 서발턴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식민모국의 대접을 받는 자와 이에 저항하는 서발턴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군사정권시대에는 갖은 학대를 당한 노동자와 독재에 항거한 시민들이 서발턴이다.
지금 또한 국가와 자본의 결탁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힘없는 노동자와 농민·비정규직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과 어린이, 방치된 노숙인, 다수의 횡포에 처한 소수자,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서발턴은 현대의 불가촉천민이다.
세상은 더욱 심화된 계급사회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돈을 쥔 자다.
돈은 권력을 비롯한 모든 욕망을 살 수 있다.
실제 그들은 돈을 신으로 모신다.
관료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는 오늘날 권력을 독점한 정치가들이다.
이들 또한 신종 브라만의 신하다.
돈줄은 정치의 생명이다.
돈으로 획득한 표를 통해 권력의 독점적 재생산에 몰입한다.
지역구민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는 충실한 하인이다.
평민인 바이샤는 투표하는 하루만 왕이지 나머지 인생은 거꾸로 권력에 지배된 시민들이다.
그들 또한 독점적 주권에 예속되어 있어 언제든 경계의 밖으로 밀려날 서발턴 예비군이다.
서발턴에 다름없는 노예인 수드라는 자신의 생산물로부터조차 소외된 노동자 계급이다.
대학의 시간강사들이야말로 그들이다.
교육에 함께 참여하면서도, 사무직도 노동자도 아닌 회색지대의 투명인간이다.
정치적 발언권 없는 교사들 또한 양심에 반하는 정부 명령에 불복종하는 순간, 국가는 그들을 불손하고 불온한 서발턴으로 내몬다.
그들 주권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인도영화 <강구바이 카티아와디>에서 사창가가 무대인 마피아의 여왕인 주인공은
“남성들이 이쪽으로 오는데 왜 사회는 여성들만 단죄하는가”
라며 항거한다.
욕망으로 너절해진 사회구조를 여지없이 폭로하며 서발턴을 대변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다중>에서
“주권에 도전하는 투쟁들 속에서 삶 자체가 부정될 때, 주권이 삶과 죽음에 행사하는 권력은 무용하게 된다”
고 한다.
자본과 권력, 강자와 다수의 제국은 독점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여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연대함으로써 물방울이 바위를 깨듯 균열을 내야 한다.
그것이 주권을 빼앗긴 예외자 없이 ‘헌법’의 사명인 민주공화국을 구현해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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