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히 '정의연'이니 '정대협'이니 잘 모른다.
윤미향도 전혀 모른다.
어제 저녁에 나는 권대웅이라는 분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긴 글을 읽었다.
진영을 떠나, 인문운동가로서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보통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말한다.
나도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이긴 게 아니라, 어둠 속에 울고 있는 이들을 끌어안은 것이란다.
배제가 아니라, 포용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일부 세력들은 빛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그러면 자신의 악의가 씻기는 줄 알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부정당 한다고 느끼면, 견디기 어렵다.
정의연 쉼터 소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했던 생각이다.
그녀의 측근들에 의하면,
심성이 맑고, 정성과 헌신으로 언제나 자신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우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급작스럽게 압수 수색하여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을 갖게 하고,
언론들은 대문 밖에서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인 것처럼 보도하며 벌이던 취재 경쟁이 그녀를 죽였다고 한다.
쏟아지는 전화,
초인종 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했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양심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세력들과 언론이 벌이고 있는 주술적 공세이다.
왜 주술이라는 말을 하는가?
일반적으로 주술에 사용되는 주문은 쉽고 짧고 감성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주문이 "집 5채, 현찰로 산 윤미향"이다.
이는 한 국회의원이 말하고,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를 그대로 전하거나 확대 재생산해 반복 된다.
왜 그럴까?
윤미향을 현 정부의 약한 고리로 여기고 공격하는 보수 미디어나 유투버들은
이 주술적 내용을 끝없이 중계하고 증폭하면서 생명을 이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30년 언론 생활을 해왔다는 기자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윤의원의 공과와 무관하게, 여성의 인권과 전쟁 범죄에 대한 고민은 커녕 위안부 존재를 부인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방했던 세력들이 고발과 공격의 주체가 되는 건 염치 없는 일이다. 이용수와 윤미향의 벌어진 상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칼을 들이미는 주술사들의 노하우는 이미 한국 정치와 언론의 고유 모델로 장착된 것 같다."
윤의원과 손 소장, 두 분에게, 오늘 사진을 바친다.
팬지꽃을...
팬지는 프랑스어로 '생각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모습 자체가 사색하고 있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빛은 어둠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 울고 있는 이들을 끌어 안는 것이다.
너무 슬프고 아픈 마음에 꽃을 피워 주는 것이다.
그녀가 그 일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 고통을 자신의 온몸에 묻히고 30년 동안 어둠 속을 뒹굴었다.
함부로 그녀에게 손가락질 하지 마라.
찬바람에 손등 찢어지던 수요일을 너희가 아느냐.
빗물에 발등 부풀어 오르던 수요일을 너희가 보았느냐.
손짓 발짓 냉가슴 앓듯 외치던 그 눈보라의 수요일을 너희는 들었느냐.
세계 최장기 집회 1400회, 그녀가 그 일을 했다.
20살적 할머니의 고통을 20살의 그녀가 배고 30년 동안 앓았다.
그 세월에 흙탕물 뿌리지 마라.
코로나 정국에 침 함부로 뱉지 마라.
너희들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이 비말이다.
전염시키지 마라.
오염시키지 마라.
집 다섯 채라고 해서 살펴보니 이사만 다섯 번이다.
30년 만에 2억2천5백만원 되는 집 한 채 마련한 시민운동가여서 미안하다.
누구처럼 4년 만에 18억 못 벌어서 미안하다.
누구처럼 10년에 30억 못 모아서 미안하다.
쉼터 부친 관리 월급 7천5백만 원이라 해서 살펴보니 6년간 한 달 월급 80만 원이다.
인건비 아끼겠다고 교회 집사 일을 하셨던 이 일에 익숙한 아버지를 써서 정말 미안하다.
하룻밤 맥주값 3천3백만 원이라해서 살펴보니 해당 연도 모금 사업행사비용 모두 합친 금액이다.
호화술판 엠티라 해서 살펴보니 과자 부스러기 몇 봉지였다.
딸 유학비 살펴보니 간첩단 조작으로 억울하게 4년을 옥살이 하고 나온 남편 피해 배상금이었다.
개인통장 개설했다는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는 생전에 할머니에게 공증 받은 상주로 모금을 했다.
2억 8천만원 모금해서 2억 3천만원을 목적에 맞게 사용했고 나머지 5천만원은 정대협에게 돌려줬다.
유용이라니,
착복이라니,
맑은 물 휘저어 진흙탕물 만들지 마라.
사실이 아니라고 혼신을 다해 말하는 동안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고 속으로 흘린 눈물은 목젖에 걸려 있다.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말라.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라.
몰아가고 싶은대로 쓰지 말라.
모르면 쓰지를 마라.
억측, 추측, 생트집, 허위, 의혹, 흠집, 찢고, 찌르고, 또 찌르지 마라.
너희들이 세상에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름다운 저 향기를 악취로 뒤덮지 말라.
빛은 어둠을 밀어 내는 것이 아니다.
떨고 있고, 숨어있고, 갇혀 있던 시간들을 끌어안아 주는 것이다.
너희들이 잊고 있던 나 몰라라 했던 위안부 피해자를 사회의 양지로 가져와 담론을 형성했고 일본에 대항하며 국제사회에 알렸다.
그녀가 그 일을 했다.
스무 살 때부터 누구를 위한 청춘이었는가.
하늘을 우러러 천번 만번 백만번 넘게 외친다.
사실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너희들의 목적을 위해 매도하지 마라.
연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어둠 속에서 그녀가 울며 뒹군다.
자기평가를 하지 않으면,
일생을 타인 평가의 노예로 살게 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 평가를 해야 한다.
어제의 나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생각을 당한다.
하루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일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그런 일들을 마주하여 최선의 선택과 성과를 내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 자기 평가의 문이다.
이런 자기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들을 제거하는 훈련을 한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감동적인 것들을 찾아 훈련시키겠다는 자기 신뢰의 시작을 만든다.
이런 훈련을 하면, 자기 비하와 자기 기만을 몰아 낼 수 있다.
자기 비하에 익숙한 사람을 자기 신뢰를 잃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어떤 이미지를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이미지를 흉내내기에 바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성형하고 왜곡한다.
자연을 둘러보라.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은 언제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그런 자신으로 존재할 때 아름답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런 모습을 의연하게 만족스러워 하기에, 모두들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람만이 예외이다.
인간은 자기 기만을 한다.
자기 기만은 자기 신뢰와 다르다.
자기 기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자신이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이 최선이라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자기 아첨이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착하다고 자기 아첨하는 일이다.
그런 병에 답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꼼꼼하게 다른 이의 글들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다.
자기 기만에 익숙한 자는 타인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 하지 않고, 자신의 편견으로 타인을 바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 신뢰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발견해야 할 무궁무진한 자신을 발굴하기 위해 매일 자신을 믿고 수련하기에, 겸손하다.
왜 겸손한가?
우리는 공부나 훈련을 하지 않으면, 현재 자신이 모르는 것이 뭣인지 모르거나 또는 못하는 일이 없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앞으로 알게 될 지식에 비해 미천하기에 스스로에게 겸허하고 남들에게 정중하며 겸손하다.
자기 비하와 자기 기만에 물든 자는 소심하고 변명을 일삼는다.
그는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 항상 불안하고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와 조롱을 미리 상상하기에 항상 기가 죽어 있다.
자신감이 없다.
아니면 콤플렉스로 이상한 과잉 행동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최선의 삶의 모델은 타인들이 열광하는 그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독립적인 행위를 모험하기 보다는 타인들이 열광하는 그가 하는 행위를 흉내 낼 뿐이다.
나는 다른 이들이 열광하는 그 사람을 열광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내 방식의 삶을 살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삶의 최고의 멘토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바다에 떠다니는 부초처럼 부랑한다.
그들은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꼭두각시이다.
나는 나자신을 신뢰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관성 있게, 또한 성실하게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믿는다.
에머슨는 자신의 책 『자립(self-Reliance)』에서
"당신 자신을 믿으십시오, 인류의 모든 심장은 자기신뢰라는 강철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전율 합니다"
라 말했다.
위대한 인간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에 홀로 선다.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가 그런 사람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자신을 신뢰하여 온전한 자신이 되는 것이 또 다른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이름으로 종교를 만들어 신격 화하여 우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래 부처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내가 또 하나의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가 되는 일이 더 나은 내가 되는 일이라 나는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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