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떨어진 나무에 바람이 불고
부러진 가지에 연이 걸렸네
겨울나무 꼭대기에 매가 앉아서
임자 없는 까치집만 지키고 있네
우~~~우~~~우~~~
홀로 멀리 서 있는 겨울나무야
벌판에서 불어 온 저 흙바람에
잎새마저 앗기운 겨울나무는
세월 가고 세월 오는 그 사이에서
굽어가는 비탈길만 지키고 있네
우~~~우~~~우~~~ 홀로 멀리 서 있는 겨울나무야
그가 음악계에 데뷔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박은옥 역시 같은 해 회상으로 데뷔해 부창부수하고 있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음악생활 20년을 돌아보는 기념비적 앨범이자 부부 통산 일곱 번째 앨범를 발표했다.
7집은 1978년 데뷔 이래 두 사람이 일궈온 시정과 1980년대 중반의 반골, 1990년대 신명의 선동이 정태춘 특유의 부정적 서정성과 합치되면서 대중들을 건너가게 한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는 그동안 많은 앨범을 발표했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결혼하기 몇 달 전인 1980년 1월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를 발표했고, 이후 세 번째 앨범 '우네'의 수록곡은 다분히 관념적인 색채가 강한 가사와 국악에의 깊은 관심이 배어 있다.
거문고와 가야금 등 국악기와 서양 음악의 혼합을 시도했다.
'우네'의 실험정신은 그의 국악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했다.
2, 3집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통렬한 실패는 1984년 4년에 팔백만원이라는 불리한 계약으로 4집 '떠나가는 배'와 5집 '북한강에서'를 발표, 다시 한 번 데뷔 당시의 시정과 내면적 자기 성찰의 음악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대중적인 소위 히트앨범을 만들었다.
정태춘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떠나가는 배'는 관조적 톤의 가사가 바이올린 선율과 맞물리면서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북한강에서' 역시 기타의 아련함과 희망에 대한 미시적 함의가 내재된 가사로 사랑받았다.
'북한강에서'의 각 절 마지막 부분들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안개가 천천히 걷힐거요' 에서 보여지 듯 ‘안개가 피어나고 흘러가서 시간의 흐름은 순차적으로 안개가 걷히게’ 된다는 막연한 기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음악적 지류는 간결함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정태춘하면 으레 촛불,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를 꼽는 이들이 많다.
박은옥과 함께 한 '사랑하는 이에게'도 빼놓을 수 없지만 말이다.
이와 함께 1985년 1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정태춘, 박은옥 얘기 노래마당’ 콘서트로 자신의 ‘비주류 정서’를 대중들에게 음반이 아닌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확인한다.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전국의 소극장 무대를 돌며 직접적인 대중과의 만남은 1987년 '정태춘 박은옥 발췌곡집1'로 완성되고 1988년 '정태춘, 박은옥 戊辰 새 노래'의 틀을 형성했다.
이 앨범에는 이전 앨범에서 들을 수 없었던 '아가야 가자', 그의 노래는', '얘기 2' 등 사회성 강한 음악을 수록하고 있다.
이 곡들은 예전에 완성했지만 심의 때문에 발표되지 못한 곡이다.
이 음반을 기점으로 정태춘은 1980년대 ‘노래하는 투사’로서의 거점을 확보한다.
1989년 4월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공연되었던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는 대중가수에서 민중 음악가로서의 재탄생을 의미했다.
내면에서 외부로의 격한 사설조의 음악으로 정태춘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을 폭포수로 쏟아 붓는다.
국악과 양악으로 누워있는 현실을 일으켜 세우고자 그는 노래했다.
'처연한 고향을 생각하며', '박제된 전통을 질타하는 <인사동> 등
그의 장대한 노래는 듣는 이를 소름끼치게 하면서 민중음악가로서 거보를 내딛었다.
1989년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공연프로그램 맨 뒷장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왜 곡된 상업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작되어지는 인간소외와 타락한 서구지향의 아류적 노래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건강한 삶의 논리에 의해 생산되어지는 주제 민족의 참된 우리 노래를 찾아서.........꿇린 무릎을 세우고 다시 서는 형제여 여기는 우리 아버지의 땅”
이 말은 정태춘 음악의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예시가 되었다.
곧바로 이 땅의 대중음악인의 족쇄와도 같은 가요사전심의를 거부하면서 불법음반(1990년 당시) '아, 대한민국'을 발표했다.
음반 사전 검열은
“1933년 조선총독부 경무부가 음악을 통해 조선인들의 정서를 통제할 목적”
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거부하며 출시한 '아, 대한민국'에는 머릿곡 '아, 대한민국'을 비롯해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가사가 너무 길어 보면을 보며 노래해야 할 정도로 장광설로 채워진 '아, 대한민국'은 당시 사회성을 리얼하게, 약간은 비아냥조로 노래했다.
이 음반을 한겨레신문 김규원 기자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위선과 치부를 신랄한 직설로 남김없이 폭로한 역작”
이라 평가했다.
이 불법음반 '아, 대한민국'은 1996년 6월 7일 가요사전심의가 폐지됨에 따라 1996년 이후 합법음반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여기에서 가요사전심의에 맞서 외롭게 싸워온 정태춘을 음악평론가 강헌은
“우리 대중음악의 마지막 독립군”
이라 말한다.
정태춘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가요의 검열제 철폐운동'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다.
그의 고군분투는 1996년 6월에 이르러 열매를 맺었다.
1993년에 제작된 6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1996년 6월에 이르러서야 5집 '아, 대한민국'과 더불어 합법음반으로 제도권으로 진입했다.
6집에서는 5집에 비해 다소 격한 감정이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향(나 살던 고향)', '농촌(저 들에 불을 놓아)', '교육(비둘기의 꿈)' 등 눈앞의 현실을 음악적 형상으로 수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6집의 타이틀곡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라고 노래한다.
1980년대 격렬한 민중의 함성에서 1990년대 고독한 군중으로 이동한 시선이 포근하게 감싸오는 음악이다.
7집은 6집의 포근함이 좀 더 대중적이면서 따뜻하게 다가오는 음악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5집의 투사적 이미지, 6집의 주변부에 대한 성찰이 조화를 이루며 세기말을 관통하는 앨범이 이번 7집 '정동진/건너간다'이다.
대중성에 천착해 만들었다고는 하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절절한 시정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다만 제목상으로 1980년대를 거슬러 오르게 하는 곡은 '5, 18' 한 곡 뿐이지만 '민통선의 흰나비'에서 느껴지는 의미는 저항가수의 틀을 완전히 불식시키기 힘들다.
곧 칠레의 빅토르 하라를 비롯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비쇼츠키, 독일의 볼프 비어만, 아르헨티나의 메르쎄데스 소사 등
미국이 아닌 여타 국가의 저항가수 반열에 정태춘은 이미 올라있다.
하지만 정태춘 박은옥 부부는 저항이라는 이미지의 고착화를 탈피하기 위해 대중성이라는 화두로 이번 앨범을 발매했다.
이 대중성은 타이틀곡 '정동진'에 잘 나타났다.
지금의 정동진은 TV라는 매체가 낳은 상징적 장소로 인식되는 곳이다.
김영남 시인은 그 상징을 이렇게 읊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정동진역’ 가운데
그런가 하면 정호승 시인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라고 <정동진>을 노래한다.
정태춘이 작사, 작곡하고 박은옥의 애잔한 목소리로 흐르는 '정동진(1)'은 교차됨의 정서가 묻어나는 슬픈 정거장이다.
최성규의 스틸과 어쿠스틱 기타와 알토 색소폰의 중후함, 여기에 파도소리의 효과는 공복의 스산함이 스친다.
정태춘의 노래로 흐르는 '민통선의 흰나비'는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라는 가사에서 통일에의 열망이 감지된다.
또한 정태춘 가사에 많이 나오는 ‘서편 하늘 노을’은 비극적 서사가 그의 음악 가운데 백미인 '서해에서'의 ‘서해 먼 바다 노을’과 대척점을 형성한다.
'들국화'는 20년만에 처음으로 정태춘 자신의 작품이 아닌 작곡가 윤민석의 곡이다.
이곡은 박은옥의 목소리로 소담하게 담겨있다.
기타와 색소폰이 재즈적인 요소를 함유한 '가을은 어디'는 1990년 11월에 한 지방 MBC-TV의 환경 관련 특집 프로그램 주제곡을 의뢰받아 쓴 곡으로 환경에 대한 정태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소리없이 흰 눈은 내리고'는 '들국화와 마찬가지로 윤민석의 작품이다.
눈을 쓸어내리는 듯 한 스네어 드럼이 겨울의 서정을 말해주며 박은옥의 음성이 담백하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이번 앨범의 모든 사유가 응축된 '건너간다'는 간단한 악기 배열로 심플하지만 그 내용은 철학적이다.
정태춘의 기타와 허윤정의 첼로 현 위로 읊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흡사 레오나드 코헨의 음성과 오버랩된다.
그런가하면 6집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한 세기를 꿰뚫고 ‘건너간다’는 이곡은 불안한 20세기의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그러면서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의 “아, 어두운 한강을 건너”가 7집 '건너간다'의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로 좀 더 쇠락한 기운을 나타낸다.
6집에서 지하철을 통해 한강을 건너다가 이번 7집에서는 버스를 타고 건넌다.
허탈한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침잠의 음색이 연민을 불러오고 불안한 세기말의 대중에게 투사가 아닌 함께 아픔을 겪는 동반자로서 현실을 위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태춘의 걸쭉한 절창을 못내 그리워하게 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우를 통탄하는 곡은 '5,18'이다.
이곡은 6분 27초라는 다소 긴 곡으로 한 소절씩 부르는 정태춘의 비장미가 뚝뚝 떨어진다.
이곡 역시 5집 수록곡 '일어나라 열사여'의 역동적 이미지보다 슬픔에의 주된 정조가 흐른다.
5집에서 국악기의 흐느낌이 가열한 선동의 진군 나팔소리였다면, 7집에서의 '5,18'은 총을 쏘는 듯한 강렬한 기타가 역사적 시간 속에 묻혀있는 영혼들을 진혼하고 있다.
'정동진(2)'는 기타의 스트링이 단아하고 마지막 곡 '수진리의 강'으로 '정동진/건너간다'의 모든 강을 건넌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음악생활 20주년을 결산하는 기념 앨범이면서 자신이 제작한 통산 일곱 번째 앨범 '정동진/건너간다'.
이 앨범은 자신의 고뇌를 시적으로 노래했고 격동의 1980년대 중심부에 서서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투사에서, 다시 세기말을 고찰하는 아티스트의 진한 예술혼이 탑재되어 있다.
이는 음악이라는 조그마한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시대를 통찰하려는 예술가 정태춘 박은옥의 결코 녹록치 않은 정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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