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많이 쓰는 말 중에 ‘원칙주의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를 정의한다면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지키고 그 원칙을 따라 사는 사람’ 정도가 됩니다.
원칙이라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어로는 ‘principle’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영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개인의 도덕, 신념과 관련된)원칙으로
두번째 정의로는 (법, 규정,이론 등의 기본이 되는) 원칙 ‘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칙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로 봤을 땐 우리가 이 원칙을 지키며 살아야 바른 사회가 된다는 사실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문자의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모두 원칙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에서 ‘원칙주의자’라는 말이 오가는 것을 볼 때, 보통의 경우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로 인해이 원칙주의자라는 단어가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재한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점점 기본과 원칙을 지키기 보다는 편리성과 실용성을 따라가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살다 보면 어느 정도 융통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원리 원칙에 맞추어 살다 보면 굉장히 불편할 때가 많고 여러 사람이 피곤해 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맞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샌가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진정한 원칙의 의미를 뒤로 한 채 편리성만을 따라서만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든 국민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고 배웁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땐 처음엔 심한 괴리감을 느끼지만 어느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에 서서히 적응합니다.
‘세상사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다’라고 쉽게 둘러대어 충고하듯이 말해주기엔 우리 어른들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보입니다.
평등, 정의, 인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결여된 우리의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계층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올라가기 힘들고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 큰 부를 누리면서 그 격차가 점점 커져만 갑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그 원칙대로라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 또한 평등해야 하는데 누구는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하고 누구는 여자라서 안 된다고 하고 누구는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고 합니다.
업무적인 효율성과 편리성이 법이 기본적으로 정하는 원칙인 평등권에 선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현상을 없애보려는 정의의 목소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비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귀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푸대접 받아도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불의를 저지르고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별 죄의식도 없이 심지어는 은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보호를 받으면서까지 편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면, 일용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과 하층민들은 중산층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삶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원칙을 따르는 ‘원칙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이 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약속한 법과 규범을 지키고 사람을 존중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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