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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옛날이야기

by Ajan Master_Choi 2017. 1. 20.

 

옛날 옛적에 나무꾼이 살았더랍니다. 

하루는 그가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 지게에 도시락을 달랑 매달아 세워두고 열심히 나무를 했더라지요. 

뚝딱뚝딱 나무를 하다보니 어느덧 배가 출출한것이 밥먹을 때가 된 것이어요. 

이 나무꾼이 도시락을 펼쳐드는데 볼품없는 깡보리 천지지만 군침이 꿀꺽, 세상에 그보다 맛난 음식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거아니겠어요. 

한 숟갈을 푹 떠서 입에 넣으려는 찰나, 저만치 앞쪽에 뭐가 옹송거리고 앉았는 것이 보이더랍니다.

가만히 보니 나무꾼의 커다란 주먹만한 개구리였어요.

개구리가 앉아서 빤히 나무꾼과ㅈ눈을 맞추고 앉아있는게 아니겄어요?

얼마나 지나도록 나무꾼도 개구리를 쳐다보았지요.

그러다 문득, 도시락에 담긴 밥을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들었데요.

 

"저것이 아무리 미물이래도 밥 한 술 적선하면 그것도 다 내 공덕이 되지 않으랴."

 

하는 생각으로 나무꾼이 말했답니다.

 

"밥 묵을래?."

"밥 묵자."

 

나무꾼은 깜짝 놀랐어요.

웬놈의 개구리가 말을 다 하네요.

그래 얼떨결에 밥을 한 숟가락 내미니 낼름 받아먹는 거에요.

 

"이거봐라?"

 

나무꾼이 또 한 숟가락을 내미니 또 낼름.

 

"싱겁냐? "

"싱겁다."

"아나, 요 반찬무라."

 

나무꾼이 반찬을 집어주자 고것도 낼름.

 

"짜냐?"

"짜다."

"그러믄 반찬을 먹었응게 밥을 먹어야지."

 

또 밥을 한 숟가락 멕이고

 

"싱겁냐?"

"싱겁다."

"그라믄 반찬무라... 짜냐?"

"짜다."

"여기 밥."

 

아 그러다보니 어느새 밥통이 훌쩍 비어버린 거에요.

게다가 서산 저편으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그제서야 나무꾼은 정신이 화들짝 들었어요.

 

"시방 내가 뭐하는 거여, 이게 무신 미친 짓이래."

 

뭐에 홀렸지 싶어지자 나무꾼은 다리가 후들거려 대강 나뭇짐을 얽어매고 허적허적 산을 내려갔어요.

 

그런데 이를 어째요.

개구리가 폴짝거리며 따라오네요.

나무꾼이 갑자기 겁이 덜컥 나는 거에요.

 

"저거이 어쩌자고 나를 따라온댜, 암만 그라도 산을 다 내려가도록 끝까정 따라오든 않겄지."

 

그러나

산을 다 내려가 어느 삼거리 마을 초입에 다 다랐는데도

개구리는 여전히 따라오는게 아니겄어요?

이젠 나무꾼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요.

 

"저거이 집까지 쫓아오면 참말로 워쪄"

 

하면서 여전히 걸음을 옮기는데

저만치 삼거리 모퉁이에 초상집이 보이는 거에요.

 

"옳거니, 저 안으로 들어가면 경황없는 와중이라 나를 잃어버리고 못쫓아올겨."

 

나무꾼은 얼른 초상집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자리를 찾는 척 하다가

슬쩍 뒷문으로 해서 용케 빠져나왔어요.

아닌게 아니라 개구리는 사람 많은데라

나무꾼을 잃어버렸는지 더 이상 쫓아오지를 못했지요.

세월이 흘렀어요.

나무꾼은 그 산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요.

한 이삼년 지나니까 쪼께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어이구 아직도 생각만 하면 등골에 식은땀이 나는 걸요.

칠팔 년 지나도 무섭긴 매한가지.

그러다 한 십년 지나니까,

이젠 궁금한 가운데 무섭다는 마음보다 괜찮겄지 하는 마음이 앞서드라지요.

 

"세월이 이만큼이니 지났는디, 어디 세월 앞에 장사 있간디?"

 

그때 기억을 되짚어 가다보니

예전에 개구리를 떼놓았던 삼거리 마을 쯤 됨직한 곳에 이르렀는데

아 글쎄, 지형은 비슷한데 옛날의 그 마을은 어디로 종적을 감춰버렸는지.

 

"이거이 어찌된 일이랴, 분명히 여그가 맞는디.."

 

어림짐작하며 사방을 둘러보던 나무꾼은

옛날 초상이 났던 집 근처에 허름한 초가집을 하나 발견했어요.

지붕은 몇 년이나 갈지 않았는지 짚단이 썩어나게 생겼고

대문에도 먼지가 수부룩.

그래도 삐걱 대문이라고 생긴 것을 열어보니

반갑게도 마루에 웬 할머니가 하나 앉아있는 거에요.

 

"할머니, 말씀 쪼까 여쭤볼랑게요."

"한 십 년전 여그서 초상이 났던 집이 하나 있었든가 싶은디 고게 무신 연기도 아니고 어디로 사라져버렸 당가요."

"분명 그 마을이 맞는 것 같은디요."


할머니가


"맞다."

"여그가 삼거리 마을이다."

"그라믄 그 집 소식을 혹 아신당가요,"

"그 초상날 혹시 웬 개구락지 하나 들어왔단 말쌈 못들으셨능가요."

"왜, 그노무 개구락지가 초상 치르던 상주에다가 그집 식구까지 홀랑 물어죽여서 줄초상이 났지."

"어이구 그 뿐인가,"

"동네가 다 그 개구락지한테 잡아먹혔응게로 워찌 그걸 모르겄어."

 

나무꾼이 모골이 송연해지는 거에요.

 

"허이구, 내가 그것을 델꼬 갔으면 참말로 큰일이 날뻔 했당게."

 

그래도 아직 궁금한 게 있었지요.

 

"할머니, 그 개구락지는 어떻게 됐으까요잉."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와락 돌아앉으며

두 손을 할퀼 듯이 치켜들고

앙칼지게 내뱉는 거에요.

 

"그거이 나다 이놈아."

 

그러고서 불문곡직 나무꾼을 물어뜯으려 하니 나무꾼이 혼비백산.

 

"워째 그라요,"

"내가 도대체 뭘 죽을 죄를 졌다고 그라요."

"나는 싸들고 간 도시락 나눠먹은 죄밖에 없는디 공치사는 관두고라도 워째 이럴 수가 있당가요."


했더니 할머니가

 

"이놈아 그게 바로 니 죄니라."

"한 번 친구 해주고 도망할 거 말은 왜 붙여주었느냐."

"한 번 주고 말 거 밥은 왜 떠멕여주었느냐."

"그저 불쌍한 맴에 한 번 노나줄 양이었으면 한 덩이 뚝 떼어서 던져주고 말 일이제,"

"싱겁냐? 짜냐? 간까지 맞춰 가매 워째 그리 다정하게 굴었드란 말이냐,"

"그 뿐이냐 일단 버리고 갔으면 잊어뿔고 잘 살든가 할일이제 워째 돌아보긴 돌아본당가."

"씰데 없이 헤프게 마음 뿌려 그 마음 받은 사람 가슴 속 시꺼멓게 썩게 한 거이,"

" 그게 바로 니 죄란 말이다 이놈아!"

 

그러고는 그만 할머니,

아니 그 개구리는 나무꾼을

홀랑 잡아먹었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어찌나 마음 한 구석에 찡하게 남든지..

공연히 마음 줄 것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는 새 엄한 남의 가슴에 불 지펴 놓고 일없이 헛심 쓰게 만든 적이나 없었는지,

어느 가슴 한 구석에서 응어리진 원망이 자라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겁이 덜컥 나드라니까요.

그러니까요.

한 번이나 데리고 놀 양이면 정이나 주지 말지 공연히 넘의 생가슴 찢어지게 만들 일 있겠어요?

마음이란게 그만치 중하고 독한 거니까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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