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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by Ajan Master_Choi 2023. 3. 3.

 

* 이 책은 한글판 기준으로 2015년 출간된 책입니다. 최근의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숫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어떤 변수보다도 강하다.

통계는 국가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숫자를 사용하는 과학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는 무수한 해석에 의지할 뿐만 아니라, 통계 자체에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치가 개입되게 된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의 성과 평가는 의사들에게 비뚤어진 동기를 유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점점 어려운 수술을 회피하며, 실패할 확률이 높은 환자를 회피하게 된다.

영국은 대기 시간을 평가받는 국립 병원에서 후속 치료를 피하는 꼼수를 부리게 된다.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공립학교에 대해 연방기금을 지원 하는 아동낙오방지법이 입법되면서, 학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동들을 처벌하고, 교육을 시험준비에만 맞추게 되는데, 표준화된 시험은 깊고 창조적인 사고능력을 외면하고, 신속한 대답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된다.

공동생활에서 숫자는 설득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

행정에서 재량을 발휘할 경우 법률적, 정치적 이유로 의심을 사게 되기 때문에, 행정 기관은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숫자로 단순화시킨다.

특히 미국과 같이 이익 단체들이 경쟁하는 나라에서는 겉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숫자와 기술이 높게 평가된다.

미국은 대공황과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정치적 논란없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비용편익분석을 도입하였다.

그러면서 숫자를 처리하는 기관들은 전문성과 명성에 힘입어 더욱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강력한 이익집단 및 기업과 유착관계가 형성되었다.

1990년대 회계 감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숫자가 점점 더 중요해졌고 데이터를 생산하는 개인과 조직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사 보고서들은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하며 내부적 사용을 염두에 둔 투명하지 못한 자료들이다.

이로 인해 투명성과 신뢰성은 전문가의 확인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이러한 회계 감사의 범람은 숫자들이 논박 불가능한 팩트를 제공해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진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계산을 수행하는 것은 설명을 회피하려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역설적으로 숫자가 지배하는 사회는 폐쇄적인 사회로 변해간다.

숫자를 사용하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신뢰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하며 시민들과 선출된 대표와 기타의 주인들은 전문가들의 인질이나 다름없게 된다.

또한 시민들은 각종 목적에 따라 데이터들이 얼마나 쉽게 가공되는지를 잘 알면서도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문 분야에서도 매년 수많은 조작된 사례들이 난무한다.

2010년, 하버드대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가 저술한 논문은 국립경제연구국의 협조를 받고 IMF 와 같은 기관들과 수많은 언론에서 업적을 칭송받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정부 및 보수파들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13년 어린 대학생에 의해서 수많은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카르멘과 케네스는 실수를 사과했지만 결론은 수정하지 않고 방치했다.

유럽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디데릭 스타펠은 2012년 오랜 기간을 조작된 데이터를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조작된 숫자를 바탕으로 많은 교육 프로그램과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이다.

통계가 무엇이든 증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면,

그것은 통계가 무엇이든 증명하기 위해 오용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에 참가하기 위해, 개인과 단체는 숫자를 창출해야 한다.

숫자로 뒷받침하지 못한 주장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숫자는 정확하다는 통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적 투쟁에 근거를 얻기 위해서 숫자는 가공되고 반복된다.

베트남 전쟁 중 펜타곤은 고성능 컴퓨터를 활용해 미국이 승리하고 있다는 각종 통계를 언론에 제공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달랐다. 펜타곤은 보수적인 미국 언론을 위해 허위 통계를 산출했고,

대중매체는 이 숫자들을 대거 인용했다.

반환경론자들은 온갖 종류의 연구와 통계 모델을 내놓는다.

이처럼 양산된 통계적 거짓말은 반대파를 납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편에게 숫자라는 무기를 안겨주기 위해 기획된다.

특히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맥락에서 조작을 확대한다.

왜냐하면 숫자는 시선을 끌어모으고, 논란을 유도하며,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되고, 기자들은 의견과 뉘앙스를 분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숫자를 접하면 더욱 안심하게 된다.

중립적인 관점을 갖도록 훈련된 언론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발표해 확대시키고 가공된 팩트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특정한 숫자가 뉴스에 등장하면 숫자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숫자 세탁을 거치게 된다.

출처는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각종 언론에서 반복되면서 정확하고 권위있는 팩트로 취급받는다.

사람들은 이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서나 등장하므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언론과 숫자의 밀접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주식시장 지수의 뉴스 보도이다.

다우존스 지수, S&P500 지수, 나스닥 지수는 20세기에 들어서 전 세계적인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주식 지수는 그저 상장 회사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를 담고 있을 뿐이며, 이는 전 세계 민간 시장의 작은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지수가 투자자들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활용되면서

중소기업이나 지역 경제에 투자될 돈도 대기업으로 몰리게 된다.

이러산 수치는 경제 발전의 척도로 작용되기 보다는 중소기업을 희생시켜 거대 자본을 강화한다.

이러한 지수 가운데 어느 것도 시장의 역동성이나 경제의 건전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회사의 실제 가치를 가늠하지도 못한다.

그저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는 가격을 알려줄 뿐이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지수가 오르면 현실의 부 또한 증가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양산한다.

통계나 복잡한 공식과 다르게 가격은 숫자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가격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세상을 가격표의 시각에서 파악하며, 가격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

가격은 가치를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로 자리 잡았다.

국내총생산 지수 GDP는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측정된 상품과 서비스의 합계일 뿐이다.

GDP는 가정주부의 경제활동등 시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경제활동을 담지 않으며,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모되는 천연자원의 가치를 경시하고,

환경오염 및 환경훼손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며,

사회적 화합이나 환경 같은 가치를 무시하는 근시안적인 지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 기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수치에 목을 맨다.

세계 경제가 금융화하면서 가격은 가치를 완벽히 대변하는 지표로 탈바꿈했지만,

2008년 9월 완벽한 가격의 세상이 무너졌다.

그러나 가격에 예속된 우리 사회는 이런 금융 위기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숫자의 위력이 시장을 강화시키고 있고, 숫자가 승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숫자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동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가고 있다.

숫자는 지식의 확대와 사회의 발전, 정책 결정과 의사 결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측정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요소이며, 우리는 이러한 측정을 바탕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측정 거부는 어리광 같은 짓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숫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숫자는 분쟁을 감추지만 해결하지는 못한다. 숫자는 정치와 억압을 감춘다.

숫자는 지식의 발전과 거버넌스의 개선을 위한 중대한 도구지만,

이와 동시에 숫자는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강력한 도구이다.


* 거버넌스 :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행위 또는 기구. 즉, 민관협치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숫자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는 이중의 문제점이 있다.

부실한 조사로 인한 허술한 숫자와 가공되고 조작된 데이터.

이는는 엄격한 관찰과 규제틀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조작되지 않은 숫자의 경우에도,

숫자는 측정 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현실은 쓸모없는 것으로 외면한다.

숫자는 진리의 상징이며, 지식을 늘리는 수단이다.

그러나 수학적 추론은 지식을 안내할 수는 있으나 고차원의 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숫자에 모든 것을 위임하면 홀가분할 수는 있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숫자는 인간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복잡한 사회 현상을 단순화하고 우리를 오도하는 이중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성실한 어머니가 부모의 역할을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거버넌스 체계를 경제통계학적 모델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시장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소통을 몰아내고 사회화의 싹을 잘라내고 있다.

측정하기 쉬운 정형적인 시장 경제의 확산에서 우리는 공동체와 생태계 전반 뿐 아니라

무한한 지식의 세상을 잃고 있다.

삶의 방식에 수치 모델을 적용하는 것밖에 모르는 효용 극대화 인간이 되고 있다.

민영화와 상업화와 하향식 규제가 인간이 공공 자원을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집합적인 상향식 거버넌스는 유연하고 안정되고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복잡하게 얽힌 사회에서 살아간다.

해답은 시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유, 민주 정치를 향유하는 자유에서 나온다.

숫자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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