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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자료실

삼국지 인물열전<6> 1장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⑤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준 인물 '도겸'

by Ajan Master_Choi 2017. 4. 25.



도겸(陶謙), 자는 공조(恭祖).

공직생활을 오래한 문약(文弱)한 선비형 인물로,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서주자사가 되었다.

그가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겪게 된 조조와의 악연과 유비와의 인연, 그리고 그에 대한 사후 평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 5만이 북해성을 포위하자 북해태수 공융은 유비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와서 관해의 목을 베고 황건적을 패퇴시켰다.

공융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서주자사 도겸의 중신인 미축을 유비에게 소개했고, 미축은 서주가 처한 딱한 사정을 유비에게 들려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영제가 죽고 어린 소제가 즉위하자, 실권자가 된 소제의 외삼촌 하진이 환관(십상시)의 우두머리 건석을 죽이는 변란이 일어났다.

이에 곧 환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 조조는 아비 조숭에게 속히 가솔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조숭이 그 일족 40여명과 금은보화를 실은 수레 100여대를 이끌고 서주를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서주자사 도겸은 친히 나와서 그들을 맞이하고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었다. 떠날 때에도 도위 장개에게 군사 5백 명을 주며 호위케 했다.

 

조숭 일가의 행렬은 어느 산골을 지나던 중에 소나기를 만나 가까운 산사로 대피를 하였다.

그런데 장개가 인솔하는 호위군이 갑자기 도적으로 변해 조숭 일가를 모조리 죽이고 재물을 실은 수레를 탈취하여 달아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를 알게 된 조조는 격노하여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며 대군을 이끌고 하후돈을 앞세워 서주로 쳐들어왔다.

도겸이 앞으로 나가 전후의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조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강력한 돌풍을 동반한 모래바람이 일어 조조가 군사를 물렸으나,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도와달라는 거였다.

 

유비는 도겸의 처지가 딱하다고 생각하여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유비는 공손찬에게서 빌린 군사 2천 명과 자신의 군사 3천 명을 이끌고 관우 장비와 함께 서주로 향했다.

북해태수 공융과 청주자사 전해도 각각 일군을 이끌고 도겸을 도우러 왔다.

 

다시 조조군이 몰려와 진을 치자 용장 장비가 조조의 장수 우금을 거세게 몰아붙여 길을 뚫었고, 유비군은 재빨리 서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도겸은 유비를 만나자 마자 그의 기상과 인품에 반해 ‘저는 이미 늙고 무능해서 서주를 맡아서 지켜낼 자신이 없소. 공은 한실의 종친이니 이 서주를 맡아서 편안케 해주시오.’하며 서주자사의 패인(牌印)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비는 그렇게 되면 제가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 된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런 난세에는 모든 군웅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혈안이 되어있는데 저절로 굴러온(?) 서주자사 자리를 사양하다니….

 

유비는 조조의 군사를 물러나게 하는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 ‘지난번에 일어난 불상사는 호위대장 장개가 저지른 일이고 도겸에게는 아무런 허물이 없으니, 부디 조정의 일을 먼저 생각하시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루시기 바란다.’는 요지의 서신을 조조에게 보냈다.

 

서신을 받은 조조는 ‘유비란 놈이 왜 이렇게 건방지냐.’며 역정을 냈지만, 그때 여포가 비어있는 연주를 급습하여 빼앗고 그 여세를 몰아 복양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조조는 어쩔 수 없이 유비의 화해 권유를 수락하는 답장을 보내고 급히 군사를 거두어 연주로 되돌아갔다.

 

조조가 물러나자 도겸은 또다시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어질지 못한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유비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에 도겸은 이웃에 있는 소패성에 머무르면서 서주를 지켜주기를 청했고, 이것은 유비가 쾌히 수락했다. 유비는 이제 공손찬의 그늘에서 벗어나 두 아우, 3천 군사와 함께 소패성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조와 여포가 불꽃 튀는 혈전을 치루고 있는 동안 서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도겸이 병이 들고 말았다. 도겸은 중신 미축과 진등을 불러 ‘이제 나는 병이 깊어 살아날 가망이 없는데, 조조가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으니 도대체 어떡하면 좋겠소?’ 하며 의견을 물었다.

 

미축이 ‘조조의 대군을 막아낼 사람은 소패의 유비뿐입니다.

다시 한 번 불러보시지요.’ 하고 말했다. 도겸이 연통을 넣자, 유비는 두 아우와 함께 서주성으로 달려왔다. 겨우 숨이 붙어있던 도겸은 유비의 손을 잡고 ‘서주의 백성들을 위해 이 패인을 받아 주시오.’하고 다시 간곡히 청했다.

 

유비는 이번에도 사양했다.

결국 도겸은 미축과 손건 등에게 유비를 잘 섬기도록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서주의 백성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간청을 했고, 유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주의 패인을 받아들였다.

10여 년 동안이나 중원을 떠돌아다니던 유비, 이제 수백 리의 땅과 수십만의 인구를 보유한 서주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미 부인이 되는 미축의 누이와도 만나게 되고….

 

도겸은 애초에 조조와 대적할 만한 실력도 패기도 없었다.

결국 그는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줌으로써 유비가 군웅의 일각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조용히 사라졌다.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거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촉의 유비를 정통으로 세운 삼국지연의는 ‘도겸은 사람됨이 온후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도의심(道義心)이 깊은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또 ‘조숭의 죽음에는 책임이 없고, 어진 인물이기 때문에 유비에게 서주자사의 지위를 물려주려한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위의 조조를 정통으로 세운 정사 삼국지 ‘도겸전’에는 ‘도겸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무도한 사람이며 악정을 거듭한 인물’이다.

‘조숭의 죽음에 책임이 있고, 조조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에 이를 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유비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사서의 평가는 이렇듯 극명하게 갈라진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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