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급과 헤비급에 이어 세 번째로 탄생한 라이트급은 프로복싱 초창기만하더라도 글자 그대로 제일 가벼운 체급이었다. 다른 체급과 마찬가지로 이 체급도 이미 1870년대말부터 여러 선수들이 세계챔피언을 자임했지만 경기룰이나 한계체중, 글러브문제 등으로 공인받지 못했고 국제적으로는 1887년 11월 16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리비어비치에서 퀸즈베리 룰에 따라 거행된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라이트급 챔피언 <잭 맥콜리프>와 영국 라이트급 챔피언 젬 카니 간의 시합을 최초의 세계타이틀전으로 공인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라이벌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들의 시합은 3시간 가까이 백중세의 양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무려 70R에 이르러 맥콜리프가 먼저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졌고 74R에서 카니의 집중공격을 받고 맥콜리프가 재차 쓰러지자 그의 일행이 갑자기 링에 난입하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만일의 불상사를 우려한 레퍼리가 성급하게 무승부를 선언하고 재빨리 링을 빠져나가는 해프닝이 일어나 소위 컨트로버셜 디시전의 시초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체급은 잠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지만 약 1년 후 맥콜리프가 동국의 빌리 데이시를 상대로 11RKO승을 거두고 결국 이 체급의 초대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단신에 다부진 체격과 함께 파워넘치는 힘의 복싱을 구사해 링위의 나폴레옹으로도 불리웠던 맥콜리프는 양손을 뻗어치는데 능한데다가 꽤나 빠른 발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두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뒤 체중고 때문에 더 이상 방어전을 갖지 못함에 따라 4년만에 왕좌는 공석이 되었고 은퇴할 때까지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맥콜리프는 지금까지 무패로 은퇴한 9명의 세계챔피언 중 한명으로 기록돼 있다. 공백이 생긴 왕좌는 3년이 넘게 비어 있다가 1896년 6월 1일 미국의 <조지 키드 라빈>이 영국의 딕 버지로부터 17RTKO승을 거두고 이 체급의 2대 챔피언에 올랐다.
초창기 명인 중의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라빈은 근육질의 체구를 가졌는데 라이트급 이상의 펀치력과 함께 스피드마저 겸비하고 있어서 챔피언에 오를 때까지 단 한차례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후일 웰터급에서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강호 에디 코놀리와 조 월코트를 잇달아 잡아내고 4차방어에 성공한 라빈은 돌연 웰터급 세계챔피언 빌리 스미스에게 도전했다가 14RTKO로 패해 생애 첫 패배를 경험하면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덟 번째 방어전에서 스위스의 <프랭키 언>에게 20R판정패로 리벤지를 당해 타이틀을 상실한 뒤 알콜릭에 빠져 승패를 반복하는 평범한 복서로 전락했다.
일찍부터 페더급의 수많은 강자들과 글러브를 섞어 왔던 언은 스위스 유일의 세계챔피언으로서 당시의 수준에서는 정상급의 기량과 펀치력을 보유한 뛰어난 복서였지만 보기보다 심약한 탓에 절치부심하며 재도전에 나선 미국의 <조 간스>에게 불과 100초만에 넉아웃당해 세 번째 방어전에서 챔피언벨트를 잃었다.
‘올드 마스터’로 불리울 정도로 영리하고 유능한 복서였던 간스는 챔피언에 오를 당시 이미 100전이 넘는 엄청난 캐리어를 갖고 있었는데 체급의 정확한 기준이 없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라이트급 한계체중을 꾸준히 유지했던 것이 비결이었다.
상체와 하체의 균형이 고루 발달했던 그는 흑인복서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유연성으로 공수 양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파워가 실린 정확한 레프트훅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고, 상대의 접근시 위빙이나 더킹에도 능해 그를 때리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6년여간 무려 15차례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면서 그 가운데 10차례는 KO승을 거둘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력을 보여주며 20세기 초 이 체급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9차방어에 성공한 뒤 당시 웰터급의 괴물로 불리웠던 조 월코트와도 일합을 겨루어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공방전을 벌인 끝에 20R무승부를 기록해 웰터급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지만 끝까지 이 체급을 벗어나지 않았다.
말년에 접어든 간스를 수차례 캔버스에 쓰러뜨리며 17RKO승을 거두고 새 챔피언에 등극한 덴마크 출신의 <배틀링 넬슨>은 기술적으로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으나 뛰어난 내구력과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한 거칠고 난폭한 공격력으로 한몫했다.
간스와의 리매치를 포함해 세차례의 방어전에서 모두 KO승을 거둔 뒤 4차방어전에서 한수 위의 놀라운 체력을 타고난 미국의 <애드 월가스트>와 무려 40R나 싸운 끝에 월가스트의 라이트펀치를 턱에 맞고 레퍼리스톱을 당했다.
싸움꾼기질이 다분했던 월가스트는 상대와 때리고 맞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펀치력 덕분에 비교적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다섯명의 도전자를 모조리 KO로 누인 뒤 동국의 <윌리 리치>와 맞붙었으나 10R 이후 수세에 몰리면서 로우블로우 남발로 16R에서 실격 처리돼 무관이 되었다.
전직 운전기사 출신인 리치는 빠른 핸드스피드를 활용한 영리한 복싱을 구사했지만 펀치력이 떨어지는데다가 플레이 자체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여 3차방어전에서 이미 유럽을 제패하고 있던 영국의 호프 <프레디 웰쉬>에게 20R판정패를 당하며 영광을 물려주었다.
어려서 필라델피아로 건너와 수업했던 웰쉬는 주먹의 강도는 약했지만 철저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디펜스 복싱에 일가견을 갖고 있어 동국의 달인 짐 드리스콜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페인팅과 쉬프팅을 통한 카운터블로우에도 능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상대에게 특히 강했다.
첫 방어전에서 전임 월가스트를 물리치며 기세를 올렸지만 미국의 <베니 레너드>를 맞아 9R에서 세 번의 다운을 허용하며 역부족을 드러내 역시 3차방어에 실패했다.
1920년대 이 체급의 절대강자로 등장한 레너드는 외모에서 느낄 수 있듯이 영리하고 변화무쌍한 전투력으로 일세를 풍미했는데 50년 후 출현하는 로베르토 두란과 아직도 이 체급의 최강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복싱 마스터였다.
두 손과 두 발이 동시에 나가는 구태의연한 복싱조류에서 벗어나 현대복서에 버금가는 빠른 푸트웍과 핸드스피드를 이용해 멋진 리드펀치와 컴비네이션을 구사했던 그는 힘만 믿고 돌진하는 당대의 도전자들을 하나같이 농락하며 복싱에서 테크닉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등장시켰던 명인 중의 명인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후대의 테크니션인 슈거 레이 로빈슨이나 윌리 펩도 분명 레너드의 감각적인 복싱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데 대해 대체로 이견이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입대로 공백기를 갖었던 레너드는 전역과 동시에 거침없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여전히 이 체급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후일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로키 캔사스를 누르고 5차방어에 성공한 뒤 당시 웰터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잭 브리튼에게 도전해 우세한 경기속에 13R에서 보디샷으로 다운을 빼앗아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레퍼리의 카운트도중 상대를 가격했다는 이유로 석연챦은 실격패를 당해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다시 라이트급으로 돌아와 류 텐들러를 상대로 두차례 방어전에서 승리한 레너드는 1925년 어머니의 병환으로 7년간 지켜왔던 타이틀을 반납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해 아쉬움을 주었다.
은퇴 후에는 레퍼리로서 1947년 4월 18일 경기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결국 링 위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공석이 된 왕좌는 미국의 <지미 구드리치>가 차지했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칠레출신의 스타니슬라우스 로아이사로부터 1R에 다섯차례나 다운을 빼앗는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발목부상을 입은 로아이사가 2R에서 경기를 포기해 싱거운 승리를 거두었다.
펀치력도 없고 기술적인 레벨도 낮았지만 잘 생긴 외모에 끈질긴 투혼을 발휘했던 구드리치는 140전 중 34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단 한차례도 KO패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5개월만에 갖은 첫 방어전에서 이탈리아계인 동국의 <로키 캔사스>와 치열한 난타전을 펼친 끝에 근소한 차의 패배를 당해 그저 레너드의 후임으로 만족해야 했다.
157cm의 단신이나 별명인 헤라클레스답게 단단한 체격을 갖추었던 캔사스는 언제나 파이팅넘치는 난타전으로 유명했고 레너드 재임시절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만 세차례의 대결에서 맹렬한 대쉬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줘 한때 레너드의 라이벌로 불리우기도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왕좌에 오른 탓에 첫 방어전에서 22살의 신예인 동국의 <새미 만델>의 젊은 패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완패하고 말았다.
군시절 아마추어를 거친 만델은 강력한 펀치력을 소유한 영리한 복서로 핸드스피드가 빠르고 탁월한 디펜스능력까지 갖춘 유망주였다.
특히, 어깨를 낮추고 빠른 헤드웍과 변화무쌍한 사이드스텝으로 상대의 펀치를 흘린 뒤 섬광처럼 폭발하는 카운터블로우는 그의 장기였다.
Jr.라이트급 세계챔피언 토드 모건의 인기에 밀려 2년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후일 투타임 웰터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는 지미 맥라닌을 꺽은데 이어 페더급에서 올라온 미래의 트리플크라운 토니 칸조네리마저 열광적인 좌우훅의 타격전 끝에 돌려 세우고 2차방어에 성공해 Jr.라이트급에 빼앗긴 이 체급의 인기를 되찾아왔다.
하지만 맥라닌과의 논타이틀전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부진에 빠지더니 3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동국의 <알 싱어>에게 충격적인 1RKO패를 당해 추락했다.
복서로서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던 싱어는 일찍부터 기라성같은 챔피언클래스와 글러브를 섞어왔기 때문에 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부지런히 주먹을 내는 스타일이었는데 넉달만에 갖은 첫 방어전에서 <토니 칸조네리>의 레프트훅을 맞고 불과 66초만에 넉아웃돼 자신이 챔피언에 오를 때보다 40초나 더 빠른 시간에 왕좌를 내주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라이트급 사상 최단시간 KO타임으로 남아 있다.
초대 세계챔피언인 잭 맥콜리프의 얼룩진 탄생에도 불구하고 파이오니아시절의 초특급복서였던 조 간스와 베니 레너드의 등장으로 세인들의 큰 관심을 끌어 모았던 이 체급은 한때 후발체급인 Jr.라이트급의 인기에 눌리기도 했지만 토니 칸조네리의 출현과 함께 희망찬 새시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1930년대를 맞이한 이 체급은 페더급에 이어 불과 66초만에 라이트급 정상을 정복한 <토니 칸조네리>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그의 복싱은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정력적인 파이팅뿐만 아니라 위빙과 더킹을 활용한 디펜스능력까지 가미해 완전히 만개해 있었다.
그리고 챔피언으로 등극한지 5개월만에 칸조네리는 내친김에 구원의 숙적인 Jr.웰터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영국의 잭 키드 버그에게 도전하여 3RKO승으로 깨끗이 설욕하고 봅 피치몬즈에 이어 28년만에 사상 두 번째로 3체급을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로써 라이트급과 Jr.웰터급 챔피언벨트를 양손에 거머 쥐게 된 칸조네리는 Jr.웰터급 타이틀을 한차례 방어한 후 버그와 두체급의 왕좌를 모두 걸고 러버매치에 나서 완승을 거둔데 이어 쿠바의 테크니션 키드 초콜레이트의 도전마저 일축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Jr웰터급 타이틀을 잃은 뒤 라이트급 타이틀 3차방어에 성공하자 끈질긴 집념으로 배틀링 쇼를 꺽어 다시 Jr.웰터급 정상에 올랐으나 장차 트리플크라운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바니 로스>의 도전을 받아 레프트잽과 철벽같은 디펜스를 뚫지 못한 채 아쉽게 판정으로 패하면서 두 체급의 타이틀을 모두 잃고 말았다.
아마추어시절 미국 골든글러브대회에서 우승하며 대기로서의 자질을 숨기지 않았던 로스는 완력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저돌적인 파이터로서 일발필도의 파워는 부족했지만 집요한 연타와 함께 정확한 타이밍의 공수연결이 일품이었다.
더욱이 상대의 품안에 들어가 갈겨대는 복부공격은 영리하기 짝이 없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었고, 타고난 맷집과 철저한 디펜스는 불사신의 사나이로 불리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례적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정부각료가 관전한 라이벌 칸조네리와의 리매치에서 미국 전역을 흥분시키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판정으로 승리해 이제는 한수위임을 입증한 뒤 체중 맞추기가 용이한 Jr.웰터급 타이틀방어에 전념하기 위해 라이트급 타이틀은 반납해 버렸다.
로스가 떠난 뒤 초콜레이트를 또 다시 2RKO로 괴멸시키며 링의 베이브 루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식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토니 칸조네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왕년의 스파링파트너였던 동국의 루 앰버스에게 모처럼 화력을 폭발시키며 판정승을 거두어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희대의 승부사에게도 쇠락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더니 2차방어전에서 설욕의 한이 서린 <루 앰버스>의 투지와 근성에 밀려 완패하고 말았다.
은퇴 후 사업실패로 불우했던 칸조네리는 쉰살이 넘은 나이에 브로드웨이 뒷골목의 싸구려호텔에서 사망한지 48시간만에 발견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웅의 서글픈 종말을 느끼게 했다.
보기보다 어그레시브한 파이터였던 앰버스는 넉아웃히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접근전에 능했고 허리케인같은 연타가 특기였다.
첫 방어전에서 칸조네리와 재회하여 압승을 거둔 뒤 3차방어전에서 페더급과 웰터급 세계타이틀을 동시에 거머 쥐고 있던 미국의 <헨리 암스트롱>과 백중세의 시합을 펼쳤으나 근소한 차의 패배를 당해 2년만에 권좌에서 밀려 났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미증유의 3체급 동시 석권을 이룩한 암스트롱은 주지하다시피 항상 올타임 랭킹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레전드급 터프가이로서 이 시절 후려치는 듯한 좌우훅에는 박력 그 이상의 마력이 숨겨져 있었으며 강철같은 심장으로 풀라운드를 논스톱으로 치고 들어가는 모습은 글자 그대로 스트롱맨이었다.
놀랍도록 빠른 템포로 6개월만에 웰터급 타이틀을 7차례 방어한 뒤 1년만에 <루 앰버스>와 재전에 나서 3만여 대관중이 운집한 양키스타디움에서 시종일관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타격전을 전개했지만 로우블로우 남발로 여러차례 페널티를 받은 끝에 판정으로 패해 앰버스에게 타이틀을 돌려주고 페더급 타이틀까지 반납한 채 웰터급 타이틀방어에 전념했다. NYSAC와 NBA는 기구 설립 후 이 체급에서 베니 레너드 이래 단일한 세계챔피언을 유지해 왔으나 앰버스가 NBA에서 지명한 데이비 데이의 도전을 기한 내에 이행하지 않자 그의 타이틀을 박탈해버려 이 체급도 다른 체급과 마찬가지로 복수챔피언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역대급 최강의 파이터였던 칸조네리와 암스트롱의 틈바구니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두 번이나 왕좌에 오르며 꽃을 피웠던 앰버스는 비록 <NYSAC>만 인정하는 반쪽짜리였지만 동국의 <류 젠킨스>를 골라 첫 방어전에 나섰다가 뜻밖에도 젠킨스의 폭풍같은 러싱파이팅에 힘한번 못쓰고 3R만에 무릎을 꿇어 허무하게 타이틀을 날리고 말았다.
링안팎에서 다혈질적인 기질을 숨기지 않았던 젠킨스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하드펀처였지만 중요한 시합전에 술을 마시고 출전하거나 오토바이사고로 뼈가 부러진 다음날 시합에 출전하는 유명한 괴짜복서였다.
한편, <NBA>는 앰버스가 타이틀을 상실하기에 앞서 데이비 데이를 15R판정으로 물리친 미국의 <새미 앤고트>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1년 12월 19일 앤고트가 통합타이틀전에서 젠킨스의 강타를 완벽히 봉쇄하고 압승을 거둠으로써 왕좌가 분리된 지 2년여만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펀치력은 떨어져도 터프하고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재미를 봤던 앤고트는 끊임없이 때리고 붙잡는 스타일로 클러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톱랭커였던 앨리 스톨스를 상대로 첫 방어전에 성공한 뒤 2년전 봅 몽고메리전에서 다친 오른손 부상 치료를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타이틀을 반납해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매니저였던 찰리 존스의 간청에 앤고트는 불과 넉달만에 링복귀를 선언하며 무패의 페더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윌리 펩에게 생애 첫 패배를 안겨줘 많은 복싱팬들을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앤고트가 타이틀을 반납하자 당시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던 NYSAC와 NBA는 각각 독자적인 챔피언을 결정했는데 <NYSAC>에서 먼저 티피 라킨을 3RKO로 누른 미국의 <보우 잭>을 새로운 챔피언으로 옹립했다.
구두닦이로 일하다가 오거스터 골프클럽에서 만난 전설적인 골퍼 보비 존스의 후원으로 프로복싱에 입문한 잭은 힘이 실린 우월한 어퍼컷과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스워밍스타일로 언제나 스릴 넘쳤던 그의 복싱은 뉴욕에서 아주 인기가 높았다.
복싱의 메카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전 세계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프리치 지빅과 헨리 암스트롱을 연파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정작 첫 방어전에서는 라이벌로 떠오른 <봅 몽고메리>에게 판정패로 고배를 마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유난히 빠른 핸드스피드를 자랑했던 몽고메리는 일발필도의 위력적인 파워까지 장착하고 있었지만 와신상담하며 타이틀 탈환을 노리던 <보우 잭>의 끈질긴 공격에 리벤지를 당해 불과 6개월만에 무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봅 몽고메리>는 내일의 챔피언으로 떠오르던 동국의 아이크 윌리엄스에게 12R에서 기적같은 역전KO승을 거두어 도전권을 획득한 뒤 잭과의 러버매치에 나서 혼신을 다한 전투를 벌인 끝에 근소한 차의 판정승을 거두어 왕좌복귀에 성공하는 기쁨을 누렸다.
잭과의 논타이틀전에서 또 다시 패한 몽고메리는 잠시 의기소침했지만 두차례의 타이틀 방어전에서는 모두 KO승을 거두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은근히 새미 앤고트의 왕좌복귀를 기대하고 있었던 <NBA>쪽은 1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챔피언결정전에서 루터 화이트를 꺽은 <새미 앤고트>를 다시 챔피언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앤고트는 넉달 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후안 수리타>에게 예상밖의 좌초를 당해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프레디 웰쉬 이래 무려 27년간 미국의 수중에서 빠져나올지 몰랐던 이 체급의 타이틀을 차지한 수리타는 챔피언에 오를 당시 이미 145전을 넘게 싸워 온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상대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고 부드러운 공수연결이 돋보였던 노장이었다.
하지만 만년에 차지한 왕좌는 바늘방석과도 같아서 1년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신예 <아이크 윌리엄스>의 무자비한 공세에 2R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수리타를 은퇴시켜버린 윌리엄스는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주먹의 소유자로 지금의 복싱테크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뛰어난 기교를 보여 주었다.
전진과 후진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발놀림은 물론 레프트로 견제한 뒤 강력한 라이트로 공격의 흐름을 장악하는 능력과 상대를 로프로 몰아 넣고 연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결정력 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하자 자연스럽게 지난날 자신에게 뼈아픈 역전패를 안겨 주었던 NYSAC 챔피언 봅 몽고메리와의 통합전이 성사되었는데 1947년 8월 4일 3만여 관중이 꽉 들어찬 필라델피아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윌리엄스는 6R에서 잡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몽고메리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빨래를 널어 놓은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인상적인 TKO승을 거두어 설욕과 동시에 앤고트 이래 명실상부한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이듬해 또 한명의 숙적인 보우 잭의 도전마저 가볍게 뿌리친 윌리엄스는 그해 미국의 링지로부터 최고의 복서로 선정된 후 4년간 통산 8차방어에 성공하며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어느덧 서산의 해가 기울듯이 윌리엄스도 동국의 <지미 카터>에게 5R와 10R 그리고 14R에 다운을 빼앗기며 TKO패로 무너져 흐르는 세월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1930년대 토니 칸조네리, 바니 로스, 헨리 암스트롱으로 이어지는 트리플크라운들의 각축전으로 인기몰이에 시동을 걸었던 이 체급은 1940년대 들어서 세계타이틀까지 둘로 쪼개지며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혼전의 연속을 겪었다.
새미 앤고트, 봅 몽고메리, 보우 잭으로 이어지는 챔피언계보는 저마다 자신의 색깔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치열한 레이스를 펼쳤고 결국 이들의 처절한 사투는 아이크 윌리엄스에게로 귀착되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다재다능한 흑인복서였던 미국의 <지미 카터>는 선수층이 두터운 이 체급에서 처음으로 3차례나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오뚜기같은 복서로 파워히터는 아니었지만 안정된 스탠스와 능숙한 푸트웍으로 공수가 구분되지 않았고 강인한 체력과 끊임없이 쏟아내는 펀치세례로 상대를 스스로 지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레프트잽에 이어 터지는 강력한 라이트어퍼컷이 위력적이었고 클린치상태에서 찔러대는 쇼트펀치 또한 상대에게 적잖은 부담을 주었다.
논타이틀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아트 아라곤을 상대로 첫 방어전에 나서 두차례 다운을 빼앗으며 완승을 거두었지만 2차방어전 상대였던 <라우로 살라스>와의 리매치에서는 예상밖으로 근소한 차의 패배를 당해 실족하고 말았다.
전체적인 수준은 높지 않았어도 멕시칸파이터답게 쉴새없이 퍼붓는 연타가 트레이드마크였던 살라스는 5개월 뒤 재회한 <지미 카터>에게 현저한 기량 차이로 완패해 왕좌 등극이 결코 실력만은 아니었음을 드러냈다.
재집권에 성공한 카터는 논타이틀전에서의 잇단 부진을 씻고 세차례의 방어전에서 모두 KO승을 거두며 이 체급을 호령하는 듯 했으나 이번에는 동국의 <패디 데 마르코>의 힘찬 전진속공에 밀려 또 다시 무관으로 떨어졌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전이 장기였던 마르코는 이미 페더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샌디 새들러를 두차례나 제압할 만큼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독하게 마음먹고 덤벼든 <지미 카터>의 예리한 공격을 견디지 못한 채 퉁퉁부은 얼굴로 최종회 KO패를 당해 왕좌를 돌려 주고 말았다.
세번째 왕좌에 올라 다시 한번 기대를 모았던 카터는 7개월만에 갖은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월리스 버드 스미스>에게 왼쪽 눈자위를 커트당해 뜻밖에 고전을 펼치더니 결국 판정으로 패해 세 번째 왕좌는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전미아마추어복싱 챔피언출신으로 펀치력이 좋아 프로전향 후 기대를 모았지만 들쑥날쑥한 경기력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스미스는 네번째 왕좌 등극을 노리던 카터의 재도전을 일축한 뒤 희대의 걸작인 <조 브라운>에게 벨트를 풀어 주고 완전히 나락에 빠져들었다.
온화한 인상에 기품있는 말솜씨로 당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브라운은 100전이 넘는 수많은 시합을 통해 자신의 복싱을 완성시켰던 베테랑으로서 긴 리치를 활용한 날카로운 잽과 가공할 위력의 라이트펀치를 지녔고 낮은 가드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반사신경과 유연성까지 갖추어 난공불락의 이미지가 강했다.
백전노장답게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상대할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했던 브라운은 챔피언에 오른 뒤부터 타점높은 공격력을 발휘해 KO횟수가 부쩍 늘어났고 매방어전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냉정함으로 열강들이 우글거리던 이 체급의 타이틀을 11차례나 지켜냈다.
특히, 원정방어전이었던 데이브 찬리와의 10차방어전은 초반의 열세를 뒤집은 명승부로 1961년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재임 중 항상 깔끔한 복장과 밝은 미소로 프로복서의 이미지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던 브라운은 자신의 대전료 중 일부를 청소년 선도사업에 쓰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목돈을 기탁할 정도로 마음씨가 따뜻한 사나이로 유명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치닫게 되면서 한계에 이르게 된 브라운은 이 체급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카를로스 오르티스>에게 왕좌를 넘겨주고도 44살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놀라운 체력을 과시했다.
고향인 푸에르토리코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일찌감치 복싱에 입문했던 오르티스는 빠른 스피드와 파워는 물론 견고한 디펜스까지 갖춘 불후의 테크니션으로서 레프트잽에 이은 라이트스트레이트와 원투펀치 뒤에 날아드는 레프트훅이 정교할뿐만 아니라 강렬하기까지 해서 전율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프로데뷔 4년만에 다시 부활한 Jr.웰터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던 그는 3차방어전에서 듀일리오 로이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인기가 많은 라이트급으로 진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일본 원정시합에서 고사카 데루오를 5RKO로 일축해 첫 방어에 성공한 뒤 필리핀의 영웅 가브리엘 플래쉬 엘로르데마저 14RTKO로 무너뜨려 동양권에 공포심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역시 적지에서 맞이한 톱랭커 <이스마엘 라구나>의 무서운 스피드에 강타를 봉쇄당한 채 5차방어전에 실패해 왕좌에서 물러났다.
밴텀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알 브라운 이래 30년만에 챔피언벨트를 조국 파나마의 품에 안기며 전국민을 흥분속에 빠뜨렸던 라구나는 175cm가 넘는 호리호리한 몸을 마치 표범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며 변화무쌍한 공수를 구사했고 칼날같은 잽과 스트레이트 또한 상당한 파괴력을 장착하고 있었다.
비록 7개월만에 <카를로스 오르티스>의 홈링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리벤지를 당해 타이틀을 돌려 주었지만 라구나의 복싱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돌아온 오르티스는 더욱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며 페더급에서 올라온 살인펀처 슈거 라모스를 두차례나 누인 데 이어 뉴욕으로 날아온 엘로르데를 다시 한번 괴멸시켜 무시무시한 완력을 과시했다.
라구나와의 러버매치에서 압승을 거두어 5차방어의 벽을 넘어서며 롱런에 접어드는 줄 알았으나 10개월의 링공백 후에 상대한 도미니카의 <카를로스 테오 크루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석패해 아쉬움을 주었다.
전임 조 브라운과 후일 등장하는 로베르토 두란의 틈바구니에서 다소 빛이 가렸지만 세계타이틀전 경험이 풍부한 특급 도전자들을 상대로 6년간 통산 9차방어에 성공한 눈부신 업적은 아직까지도 역대급으로 통할만한 훌륭한 레코드였다.
이변의 주인공인 크루스는 데뷔초만해도 승패를 반복하는 평범한 복서였으나 강력한 내구력을 바탕으로 한 거침없는 공격으로 승수를 쌓기 시작하면서 월드클래스로 도약했던 대기만성의 전형이었다.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지는 않았어도 상체를 일으키며 날리는 라이트펀치가 위협적이었고 지겹게 달려드는 끈적끈적한 복싱스타일은 상대에게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떠오르는 샛별 <만도 라모스>를 맞이해 언더독을 극복하며 완승을 거둔 뒤 재전에서는 눈부상으로 11RTKO패를 당해 만년에 오른 왕좌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불과 약관 20세의 나이로 세계정상을 정복했던 라모스는 훤칠한 키에 핸섬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푸트웍은 느리지만 발군의 펀치력과 화려한 좌우컴비블로우로 데뷔초부터 주목을 받았던 스타후보생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룬 뒤부터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주색잡기와 마리화나에 빠지더니 불과 2차방어전에서 전임 <이스마엘 라구나>의 스피드에 허우적거리다 9RTKO로 무너져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4년여 만에 왕좌에 복귀한 라구나는 이미 만년에 접어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가츠 이시마쓰를 얄미운 아웃복싱으로 데리고 놀 정도로 여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화려한 푸트웍의 소유자였던 영국의 신예 <켄 부캐넌>에게 근소한 차의 판정패를 당해 두 번째 왕좌도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부캐넌은 영국식의 업라이트스타일로서 산뜻한 테크닉과 함께 빠른 스피드와 리듬감이 넘치는 푸트웍을 자랑했다. 첫 방어전 상대였던 전임 라모스가 갑자기 경기를 취소해 불과 이틀만에 급조된 도전자 루벤 나바로를 가볍게 넘어선 뒤 WBC가 지명한 페드로 카라스코를 외면한 채 라구나와 2차방어전에 나서 물오른 기량을 뽐내며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WBC 타이틀을 박탈당했던 부캐넌은 25년만에 반쪽짜리 챔피언으로 전락했고 <WBA>타이틀 3차방어전에서 선배 라구나의 복수를 위해 나선 <로베르토 두란>의 끝없는 돌격에 분전했으나 13R 종료공과 함께 보디블로우를 맞고 시합을 포기해 이마저도 잃고 말았다.
자세히 보면 부캐넌측의 주장대로 로우블로우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두란쪽으로 승부가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TKO패를 선언한 레퍼리의 판단은 두란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알리는데 손색이 없었다.
한편, <WBC>는 스페인의 <페드로 카라스코>를 새챔피언으로 인정했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라모스에게 네차례나 다운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거친 몸싸움과 로우블로우로 인해 12R에서 행운의 실격승을 거두고 자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이미 100전을 넘게 싸워 오면서도 데뷔초 당했던 한차례의 패배 외에는 패한 적이 없어 유럽에서 무적함대로 불리웠던 카라스코는 장신에서 뻗어나오는 강력한 스트레이트가 주무기였다.
WBC의 재시합 결정에 따라 LA로 날아가 <만도 라모스>를 상대로 첫 대결과 달리 초박빙의 접전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홈타운디시전에 울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왕좌에 복귀한 라모스의 파워는 여전했지만 경기운영능력은 과거에 비해 무뎌져 있었고 적지에서 카라스코에게 재차 승리를 거둔 뒤 소변검사에서 암페타민성분이 검출돼 이래저래 구설에 오르내렸다.
2차방어전에서 언더독에 불과했던 멕시코의 자객 <찬고 카르모나>에게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1930~40년대에 몰아친 광풍이 끝나가면서 이 체급은 세인들의 관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지만 1950~60년대에도 지미 카터의 끈질긴 타이틀 탈환전에 이어 조 브라운과 카를로스 오르티스로 이어지는 롱런챔피언의 등장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 냈고 조연이었던 이스마엘 라구나와 만도 라모스도 양념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프로복싱의 황금기인 19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명품 중의 명품인 <WBA>챔피언 <로베르토 두란>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복싱을 위해 태어난 사나이였다.
어린시절 스트리트파이트로 단련된 승부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타고난 돌주먹에 비길데 없는 터프니스와 놀라운 스태미나로 무장한 두란은 쉴새없이 퍼붓는 끈질긴 연타와 묵직한 보디블로우를 앞세워 초창기에 싸우는 기계로 불리울만큼 야성미넘치는 호쾌하고 박력있는 복싱을 구사했다.
더욱이 캐리어가 쌓이면서 상대에 따라 다양한 공격루트를 찾아 내는데 도가 트기 시작했고 유연한 좌우 리드펀치와 롱 앤드 쇼트펀치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활화산같은 그의 공격력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상대의 펀치를 죽인 뒤 곧바로 받아치는 카운터블로우는 경탄의 대상이었고 정교한 더킹과 스웨이백, 감각적인 헤드슬립으로 절대 클린히트를 허용하는 일이 없어서 4체급을 석권한 뒤에도 쉰살까지 링위에 오르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프로데뷔 후 심판의 판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일사천리의 KO가도를 달려왔던 두란은 에스테반 데 헤수스와의 논타이틀전에서 생애 첫 다운을 당하며 판정패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세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이긴 뒤 타이틀을 걸고 재시합을 벌여 폭풍노도같은 펀치세례를 퍼부은 끝에 11RKO로 앙갚음해 주었다.
이후 다카야마 마사다카, 레이 램킨, 루 비자로, 알바로 로하스, 빌로마 페르난데스 등 세계 각지의 내놓으라고 하는 강호들을 하나같이 모두 KO로 때려눕혀 10연속 KO방어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당대의 무하마드 알리, 카를로스 몬손과 함께 가장 강력한 철옹성을 구축하며 돌주먹의 위용을 만방에 과시했다.
비록 에드윈 비루에트전에서 15R종료 공소리를 들어 오점(?)을 남겼지만 1978년 1월 WBC 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숙적 헤수스와 통합전에 나서 최절정기의 기량과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12RTKO로 제압해 7년만에 이 체급의 유일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이들의 시합은 당시 미국 전역은 물론 중남미와 유럽에 생중계될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모았고 두란 역시 라이트급 사상 최고인 30만달러의 대전료를 받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누렸다.
5년여간 통산 12차방어에 성공하며 야성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겸비한 절대자로 군림했던 그는 체중고를 고려해 더 이상 상대가 없는 이 체급의 타이틀을 반납하고 윗 체급으로 월장해 두란시대의 제2막을 준비했다.
한편, 조국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며 <WBC>챔피언에 등극한 <찬고 카르모나>는 선이 가는 복싱을 구사하긴 했어도 제법 기교와 파워를 겸비한 재목이었으나 동국의 라이벌이었던 <로돌포 곤살레스>의 강펀치에 시합내내 흔들거리다 12R 종료 후 기권해 불과 50여일만에 왕좌에서 추락했다.
파괴력높은 주먹때문에 슬러거의 이미지가 강했던 곤살레스는 밸런스가 안정적인데다가 공수전환이 빨라 기대주로 떠올랐다.
특히 가공할 위력을 보유한 좌우어퍼컷이 매서웠고, 사자몰이전법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도주로를 찾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마친 뒤 WBA 챔피언 두란과의 통합전을 겨냥했으나 뜻밖의 복병이었던 일본의 <가츠 이시마쓰>에게 8R에서 좌우훅을 맞고 세차례나 캔버스를 기어 다녔다.
전 열도를 뒤흔들만큼 통쾌한 승리를 거두며 자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로 이 체급을 정복한 가츠의 본명은 스즈키 유지로 가츠는 용기나 근성을 뜻하는 링네임이었다.
데뷔초 지저분한 전적을 기록할만큼 싹이 보이지 않다가 2관왕이었던 시바다 구니아키의 스파링파트너로 기용되면서 부쩍 성장해 이미 두차례나 세계도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평범한 기량에 발도 느렸지만 상대를 몰아붙이는 힘이 좋고 자타가 공인하는 환상의 라이트펀치는 확실히 위력이 있었다. 특히 매경기마다 두둑한 배짱과 끈기로 맞서는 불굴의 정신력은 일본인 특유의 야먀토정신을 연상케 했다.
감량의 어려움으로 첫 방어전을 간신히 무승부로 넘긴 뒤 왕좌복귀를 꿈꾸던 전임 곤살레스와 켄 부캐넌을 풍차같이 휘두르는 양훅과 어퍼컷으로 연달아 무너뜨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챔피언의 반열에 올랐다.
20만달러의 거액에 현혹돼 적지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에스테반 데 헤수스>를 상대로 6차방어전에 나섰다가 헤수스의 스피드를 따라 잡지 못해 무수히 얻어터진 채 완봉당해 왕위를 이양했다.
은퇴 후에도 배우 및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두란으로 인해 환희와 좌절을 맛보았던 헤수스는 탄력있는 푸트웍과 안정된 공수를 바탕으로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에 모두 능할 만큼 약삭빠른 솜씨를 지녔었다.
빠른 잽과 쭉쭉뻗는 스트레이트가 돋보였고 주무기인 레프트훅은 두란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다운을 빼앗아 낼만큼 위력이 있었다.
홈링에서 세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승으로 장식했지만 숙적인 두란과의 러버매치에서 패퇴한 뒤 마약밀매에 연루되더니 살인까지 저질러 복역하던 중 에이즈에 감염되어 3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두란이 떠나면서 이 체급은 새로운 얼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WBA>쪽은 왕좌의 부침이 극심했다.
우선 베네수엘라의 하드펀처 <에르네스토 에스파냐>가 톱랭커였던 클로드 노엘을 13RKO로 꺽고 두란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180cm의 장신이었던 그는 긴 리치를 활용한 레프트잽과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좋고 궤적이 큰 좌우훅과 어퍼컷은 일발파워를 장전한 주무기로서 수많은 원라운드 KO승의 이유였다.
첫 방어전에서 조니 리라의 턱을 부수며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으나 큰 단점이었던 스피드 부재로 인해 2차방어전에서 미국의 <힐머 켄티>에게 허우적거리다 9RTKO로 무너졌다.
조 루이스 이래 디트로이트 최초이자 크롱크짐의 제1호 세계챔피언이었던 켄티는 동문인 토머스 헌스를 교본으로 장신과 스피드를 살린 세련된 복싱을 구사했다.
파워는 떨어져도 섬광같이 빠른 스피드와 눈부신 컴비블로우를 소유했던 그는 아마추어시절부터 슈거 레이 레너드, 아론 프라이어, 하워드 데이비스같은 거물들과 글러브를 섞으면서 성장했고 그 와중에서 전미선수권을 두번이나 차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오영호와 전임 에스파냐의 도전을 가볍게 일축했지만 4차방어전 상대인 <숀 오그래디>의 보디공격을 막지 못해 왕좌를 넘겨 주었다.
오클라호마지역의 프로모터였던 아버지 패트의 영향과 속전속결의 승부근성으로 데뷔 3년차에 이미 50전이 넘는 엄청난 캐리어를 쌓았던 오그래디는 곱상한 외모와 달리 장신에서 터져나오는 좌우펀치의 위력이 뛰어나고 아이리쉬혈통답게 치고 받는 타격전을 선호해 반드시 상대를 쓰리뜨려야 직성이 풀릴만큼 용맹스러웠다.
아버지가 지명도전자 노엘과의 방어전을 거부하는 바람에 타이틀은 한번도 방어해보지 못한 채 박탈당했고 이에 분노한 아버지가 아예 WAA라는 복싱기구를 스스로 설립해 오그래디를 챔피언으로 앉히려 했지만 앤디 개니건에게 2RKO패를 당하는 실수를 범한 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급락했다.
공석이 된 왕좌에는 역시 <클로드 노엘>이 멕시코의 신예 로돌포 가토 곤살레스를 판정으로 꺽고 트리니다드토바고 최초의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히트앤클린치의 전형으로 자신의 거리에서 날리는 레프트훅에 힘이 있었으나 나이가 많은데다가 가드가 낮고 스피드도 떨어지는 편이어서 첫 방어전에서 대타에 불과했던 미국의 <아투로 프리아스>의 젊음에 압도당한 채 8RKO로 쓰러져 약체 챔피언이었음을 드러냈다.
행운의 왕좌에 오른 프리아스는 솜방망이같은 펀치력에도 불구하고 인파이팅을 즐겨했고 스피드가 좋은데다가 눈이 좋아 공수연결이 빠르고 정확했다.
첫 방어전에서 전임 에스파냐의 거센 도전을 막아낸 뒤 동국의 강타자 <레이 맨시니>와 1R 시작부터 맞장을 뜨다가 종료직전 장렬하게 산화해 새로운 스타탄생의 희생양이 되었다.
WBA가 혼전을 겪는 동안 <WBC>쪽은 이 체급 사상 최초의 사우스포 챔피언이었던 금발의 <짐 와트>가 알프레도 피탈루아에게 12R에 역전 TKO승을 거두고 두란의 절반을 차지했다.
두란 재위시절 장기간 넘버원 콘텐더에 올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와트는 언뜻 보면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였지만 영국출신답게 테크닉이 좋고 라이트잽의 선제타에 이어지는 라이트훅과 레프트스트레이트가 날카로왔울 뿐만 아니라 펀치에 힘이 실려 있었다.
나이 서른에 오른 왕좌였기 때문에 단명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4차례의 방어에 성공했고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특급 테크니션 하워드 데이비스를 왼손의 기교로 누른데 이어 오그래디의 강공마저 유혈극을 펼치며 기권을 받아냈던 일은 그가 보기와 달리 안정된 세계챔피언이었음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고별전이 된 <알렉시스 아르게요>와의 5차방어전은 이미 경기전부터 승리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탓에 한차례 다운을 내주긴 했어도 아주 신사적인 스파링처럼 치러 자신의 말대로 위대한 챔피언 아르게요에게 트리플크라운을 헌납하다시피했다. 사상 6번째로 3체급 제패에 성공한 아르게요는 첫 방어전에서 한창 치고 올라오던 신예 레이 맨시니를 맞아 고전하는 듯 했으나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며 14R에서 강력한 레프트훅으로 가드를 뚫은 뒤 라이트어퍼컷에 이은 3연타로 가라앉혀 전세계 복싱팬들에게 다시 한번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후 로베르토 엘리존도와 제임스 버심을 간단히 요리한 아르게요는 당시 전인미답의 4체급 제패를 앞두고 앤디 개니건과 마지막 방어전에 나서 1R에서 불의의 다운을 허용하며 체면을 구긴 채 5RKO승을 거두고 이 체급에서 무사히 하차했다.
하지만 아르게요의 라이트급 시절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정확한 각도와 타이밍에서 터져나오는 레프트훅과 스트레이트는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가드가 견고하고 밸런스가 뛰어났던 이전보다 안면수비가 옅어졌고 빈틈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었다.
1970년대 등장한 로베르토 두란의 맹활약으로 이 체급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숙적이었던 에스테반 데 헤수스와의 3연전은 권웅 두란을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이후 두란이 떠난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질만큼 왕좌교체가 잦았지만 선수층이 두터웠던 이 체급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나마 1980년대 들어 알렉시스 아르게요가 월장해 오면서 그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알렉시스 아르게요가 반납한 <WBC>타이틀을 차지한 푸에르토리코의 강타자 <에드윈 로사리오>는 타고난 재능에 발군의 펀치력과 기교를 겸비한 무패의 뉴페이스로서 일찍이 자국에서 제2의 고메스라고 불릴만큼 민첩한 움직임과 함께 눈이 좋고 상대를 모는 능력이 탁월했을뿐만 아니라 찬스에도 몹시 강했다.
비교적 크지 않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스냅이 들어간 예리한 각도의 양훅과 어퍼컷이 일품이었고 잽을 툭툭치다가 전광석화처럼 터트리는 라이트펀치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워드 데이비스를 꺽고 2차방어에 성공한 뒤 챔피언결정전 상대였던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와 재회하여 초반에 두차례나 다운을 뺏고도 처절한 역전 KO패를 당해 예상밖으로 일찍 왕좌에서 내려왔다.
25살의 나이에 이미 80전을 훌쩍 넘기고 있었던 사우스포의 라미레스 역시 찬스포착에 능하고 체력과 맷집이 상당히 뛰어난 인파이터였다.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은 좌우훅을 주무기로 한 폭발적인 연타는 상대가 쓰러지거나 공이 울릴때까지 이어졌지만 상체의 움직임이 적고 공격도 안면에만 치우쳐 몸놀림이 좋은 상대에게 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겨우 첫 방어전에서 슈퍼페더급 챔피언벨트를 버리고 월장해 온 <엑토르 카마초>에게 손한번 쓰지 못한 채 2관왕을 헌납하고 말았다.
슈퍼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카마초는 이 체급에서도 현란한 테크닉과 스피디한 움직임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첫 방어전에서 재기를 노리던 전임 로사리오와 박빙의 승부를 펼쳐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지만 2관왕을 노리던 코르넬리우스 보자 에드워즈에게 대차의 승리를 거두고 2차방어에 성공해 당대 최강으로 대접받았다.
체중고 때문에 장기간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자 WBC로부터 타이틀을 박탈당해 자의반타의반으로 Jr.웰터급까지 떠밀려 가야했다.
카마초의 월장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은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가이아나의 테렌스 알리를 일축하고 투타임 챔피언에 올랐다.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냉정하면서도 침착한 공격력을 앞세워 재도전에 나선 에드워즈를 5R에 침몰시킨 뒤 날쌘돌이 퍼넬 위태커마저 무력으로 진압해 새로운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매니저 라몬 펠릭스 수하에서 함께 운동한 동문이면서 이미 WBA 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와의 양대기구 통합타이틀전에서 11R부상판정패를 당해 스타메이킹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록 아르게요에게 역부족을 실감한 바 있지만 백인이라는 프리미엄과 함께 물러설 줄 모르는 불파이팅으로 식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WBA>챔피언 <레이 맨시니>는 오로지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 터프하고 익사이팅한 인파이터로 허술한 블로킹과 어설픈 클린치웍은 커다란 약점이었지만 붐붐소리를 내며 끝도없이 휘둘러대는 좌우훅은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김득구를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뒤 자책감으로 인해 잠시 방황했으나 10개월만에 컴백해 지명도전자 올란도 로메로와 3관왕을 노리던 보비 차콘을 잇달아 KO로 침몰시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인파이팅의 강도가 떨어진 탓에 5차방어전에서 세인트키츠네비스 출신의 <리빙스턴 브램블>에게 14RTKO로 패퇴해 한참 대전설이 오갔던 카마초와의 빅매치에 출전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
인터뷰장소에 방울뱀을 목에 걸고 나타나거나 경기전 이상한 주술을 외우기도 해 괴짜복서로 알려졌던 브램블은 비쩍마른 체구에 지나친 허리회전으로 불안해 보이는 스타일이었지만 몸에 탄력이 붙어 있어 유연성이 좋고 맨시니같은 불파이터를 변칙적인 아웃복싱을 이용해 다스리는 능력이 특출났다.
맨시니와의 리매치에서 또 다시 근소한 차의 판정승을 거두어 천적임을 과시했지만 절치부심 재기에 나선 전 WBC 챔피언 <에드윈 로사리오>의 폭발적인 화력 앞에는 불과 2R만에 무릎을 꿇어 3차방어에 실패했다.
1986년 링지로부터 최고의 컴백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양대기구를 석권한 로사리오는 여전히 강력한 파워와 집중력있는 연타가 돋보였지만 한창 물이 오른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에게는 거의 일방적으로 난타당한 채 11RTKO로 무너져 이번에도 2차방어에 실패하며 단명에 그쳤다.
시작과 끝이 똑같은 지속적인 전진으로 2체급을 석권한 차베스의 복싱은 더욱 더 만개하여 제2의 산체스라 불리울 정도였다.
푸트웍이 재빠른데다가 다양한 테크닉과 매서운 눈으로 공격력이 뛰어나고 정확했던 그는 블로킹도 좋은 편이었으나 일발필도의 펀치가 아니라 연타에 의존하고 있어 초반에 다소 고전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넘버원 챌린저 로돌포 아귈라를 간단하게 제압해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동문이었던 WBC 챔피언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를 11R 부상판정으로 누르고 로베르토 두란 이래 10년만에 이 체급을 천하통일시켜 진정한 슈퍼스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합챔피언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5체급 석권을 호언하며 곧바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한체급 위로 월장해버려 이 체급의 왕좌는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
1983년 11월 출범 당시 <IBF>는 레이 맨시니를 초대챔피언으로 옹립하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듬해 1월 초대챔피언 결정전을 통해 멜빈 폴을 누른 미국의 <찰리 브라운>을 챔피언으로 인정하며 이 체급에서도 제3의 챔피언을 등장시켰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번개같은 연타공격이 인상적이었던 브라운은 정교하지 못한 공수로 인해 종종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방어전에서 무패의 동국인 유망주 <해리 아로요>에게 14RTKO로 패퇴해 신생기구 챔피언의 수준을 드러냈다.
178cm의 장신으로 스마트하면서도 힘과 기술이 좋은 편이었던 아로요는 브라운과의 리매치에서 승리한 뒤 테렌스 알리마저 누르며 메이저 타이틀 탈환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나 3차방어전에서 대타로 나섰던 크롱크짐 출신의 <지미 폴>에게 세차례나 다운을 허용하며 큰 코를 다쳐 이후 내리막길을 향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폴은 발군의 펀치력을 소유한 강타자로 흑인치고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접근전에도 미숙했으나 러싱파이팅에 능해 강호 로빈 블레이크를 무너뜨린데 이어 다릴 타이슨에게도 리벤지하며 메이저 챔피언들을 위협했지만 예상외의 복병이었던 동국의 <그렉 호건>에게 간발의 차로 판정패를 당해 4차방어에 실패했다.
파괴력은 떨어지는 편이나 카운터펀치가 예리하고 방어기술이 훌륭했던 호건은 스위치복싱에도 능해 때로는 변칙적인 복싱을 구사할 정도로 까다로운 복서였다. 첫 방어전에서 <비니 파지엔자>의 기에 눌려 생애 첫 패배를 당하며 타이틀을 상실했지만 호건의 복싱은 이제 시작일뿐이었다.
힘이 좋은 강타자였던 파지엔자는 지나치게 호전적인 복싱을 구사하는 만큼 빈틐도 많아 더욱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렉 호건>과의 재전에서 초반부터 피를 흘리는 혈전을 벌인 끝에 완패해 첫 방어전에서 챔피언벨트를 돌려 주고 말았다.
유럽원정전을 포함해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며 안정된 왕좌를 누리는 듯 했던 호건은 3차방어전에서 IBF로 눈을 돌린 <퍼넬 위태커>의 빠른 발놀림과 날카로운 잽에 유린당해 1년만에 또 다시 무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차베스가 떠나가면서 마지막 기회를 잡게 된 <에드윈 로사리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미국의 신예 앤서니 존스를 강력한 라이트훅으로 초살시키고 <WBA>챔피언에 등극해 1950년대 지미 카터에 이어 두 번째로 쓰리타임 챔피언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왕년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감춰진 탓에 첫 방어전에서 한번 싸워 이긴 적이 있었던 동국의 <후안 나사리오>에게 기대밖의 졸전을 벌인 끝에 눈부상으로 인한 8RTKO패를 당해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드러냈다.
장신의 사우스포였던 나사리오는 찬스 포착에 강하고 거미같이 긴 리치의 좌우훅이 매서웠지만 공수연결이 부드럽지 못한 것이 거슬렸다. <WBC>쪽은 이미 IBF 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톱랭커 <퍼넬 위태커>가 투타임 챔피언이었던 구적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를 완벽하게 셧아웃시켜 두 기구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링지로부터 1989년 최고의 복서로 선정되었다.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후 프로에 전향하여 강호들만 상대로 성장한 디펜스복싱의 달인 위태커는 단신의 사우스포 아웃복서였지만 접근전에도 능하고 워낙 움직임이 변칙적이어서 상대방에게 절대 타이밍을 허용하는 법이 없었다. 성실한 방어자세와 놀라운 스피드를 겸비한데다가 경이적인 동체시력이 바탕이 된 위빙과 더킹은 가히 동물적인 감각력을 방불케 해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했다.
예리한 반사신경으로 상대의 펀치를 무마시키고 끊임없이 내뻗는 라이트잽과 왼손스트레이트는 적중률이 높았고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정확한 카운터펀치도 때때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솜주먹에 타도본능 결핍이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싸우기 위해서라기 보다 즐기기 위해 링에 올랐던 것 같은 그의 복싱은 상대의 수를 훤히 꿰뚫는 화려하고 능숙한 기량 때문에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호시탐탐 3관왕을 노리던 아주마 넬슨의 월장을 봉쇄한 뒤 내친 김에 <WBA> 챔피언 나사리오에게 통합전을 제의해 1R 종료직전 정확한 레프트스트레이트를 턱에 꽂아 넣고 3대기구 통합챔피언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로써 중량급 최고의 슈퍼스타로 부상한 그는 매방어전마다 링을 훨훨 날아 다니며 통산 8차방어에 성공했고 4관왕을 향한 진군을 위해 타이틀을 모두 반납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했던 이 체급은 한두사람의 장기집권을 허락지 않으며 치열한 왕좌교대극을 연출했고 이 와중에서도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와 퍼넬 위태커같은 통합챔피언을 잇달아 배출해 아무나 넘볼수 없는 전통의 체급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제4의 기구 <WBO>는 1989년 5월 이 체급의 초대챔피언으로 멕시코의 <마우리시오 아세베스>를 인정했는데 반타작 승률에 가까웠던 콜롬비아의 아만시오 카스트로와 두 번에 걸친 챔피언결정전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왕좌에 올랐을 만큼 월드클래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1년전 WBC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로저 메이웨더의 한방에 나가 떨어졌던 그는 좋은 펀치력을 뒷받침할만한 디펜스나 스피드가 부족한 탓에 2차방어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예 <딩간 토벨라>에게 연패를 당하며 조용히 사라졌다.
소웨토의 장미로 불리웠던 토벨라는 순간적인 스피드가 빠른 아웃복서임에도 불구하고 난타전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로 매 경기 손이 많기로 유명했다. 녹록치 않은 도전자였던 마리오 마르티네스와 안토니오 리베라를 차례로 돌려 세운 뒤 WBA 타이틀 도전을 위해 당시로서는 보잘 것 없었던 WBO벨트를 내던졌다.
토벨라의 후임으로는 서울올림픽 페더급 금메달리스트였던 이탈리아의 <지오바니 파리시>가 멕시코의 강타자 프란시스코 알타미라노를 10RTKO로 누르고 왕좌에 올랐다. 잘생긴 외모에 화끈한 파이팅을 즐겨해 자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던 파리시는 벼락같은 레프트훅과 함께 상체의 움직임이 민첩하고 핸드스피드도 빨랐던 반면 공수전환이 늦어 가끔 상대에게 결정타를 허용하는 등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리베라를 상대로 2차방어에 성공한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본고장 미국으로 진출해 슈퍼라이트급으로 활동했다. 챔피언들의 잇단 타이틀 반납으로 괄시받는 처지였던 WBO는 1990년대 프로복싱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되는 <오스카 델 라 호야>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옹립하면서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전 IBF WBO 페더급 통합챔피언 호르헤 파에스를 초장에 박살내고 2관왕이 된 호야는 한층 리드미컬해진 움직임과 번개같은 컴비네이션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실력파인 존 존 몰리나를 가볍게 누른데 이어 <IBF>챔피언이었던 강타자 라파엘 루엘라스마저 2R만에 격추시키며 통합챔피언에 올라 당대 최강의 파이터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슈퍼페더급 메이저챔피언 출신인 게나로 에르난데스와 제시 제임스 레이하를 차례대로 쓰러뜨리고 통산 6차방어에 성공한 뒤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목을 치기 위해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한편, 1992년 퍼넬 위태커가 떠나가면서 기존의 3대 기구는 모두 챔피언결정전에 나섰는데 <WBC>쪽은 멕시코의 강타자 <미구엘 앙헬 곤살레스>가 콜롬비아의 윌프리도 로차를 손쉽게 제압하고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다.
1980년대 이 체급에서 활약했던 로돌포 곤살레스의 친동생으로서 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이재혁에게 판정패를 당한 뒤 곧바로 프로에 데뷔했다. 잘생긴 외모에 익사이팅한 승부를 선호했던 곤살레스는 냉정한 경기운영과 속전속결의 스타일로 데뷔초 제2의 쿠에바스라는 말을 들었지만 외형상 정교한 맛이 떨어지고 하드펀처치고는 선이 굵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도쿄 미다이라는 이름으로 링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레프트의 활용도가 높은데다가 눈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거리를 지키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치는 능력이 탁월했고 좌우훅과 어퍼컷을 중심으로 한 컴비블로우는 날카로운 위력을 장착하고 있었다.
방어횟수가 쌓이면서 노련하게 치고 빠지는 능력까지 겸비해 장래의 세계챔피언 장 밥티스테 멘디나 레반더 존슨같은 실력파들을 연달아 KO로 무너뜨리며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가 쇠퇴하던 시기에 일약 멕시칸스타일의 계승자로 떠올랐다.
비교적 정직한 복싱을 구사해 디펜스가 부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레벨 다운된 챌린저리스트 덕분에 난공불락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10차방어까지 무난하게 롱런한 뒤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곤살레스의 마지막 도전자로 선전을 펼쳤던 미국의 라마 머피를 누르고 새 챔피언에 등극한 <장 밥티스테 멘디>는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긴 리치와 리드미컬한 푸트웍을 바탕으로 반박자 빠른 아웃복싱을 구사했는데 왼손잡이 특유의 날카로운 카운터블로우와 예리한 스트레이트를 적당한 타이밍에 꽂아 넣는 재주가 있었다.
첫 방어전에서 같은 사우스포인 미국의 <스티비 존스턴>을 맞아 기와 기의 대결을 펼쳤지만 근소한 차의 판정으로 패해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아마추어 시절 270전이 넘는 엄청난 캐리어를 쌓으며 기본기를 잘 갖추고 있었던 존스턴은 160cm가 조금 넘는 단신임에도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무브먼트를 통해 히트앤드런에 능했고 공수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만큼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접근전에서도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비교적 강타자였던 사카모토 히로유키와 사울 두란을 스피드를 이용해 가볍게 처리한 뒤 4차방어전에서 장신인 멕시코의 <세자르 바산>과 치열한 접근전을 벌였으나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왕좌에서 미끌어졌다.
<WBA>는 우리나라의 전칠성을 누른 미국의 <조이 가마체>를 이 체급의 새챔피언으로 인정했는데 불과 1년사이에 2체급을 석권한 백인데다가 전진속공을 펼치는 호쾌한 스타일로 인해 레이 맨시니의 뒤를 잇는 뉴히어로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첫 방어전부터 터프가이 <토니 로페즈>의 힘찬 프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11R에서 캔버스를 허우적거려 실망을 안겨 주고 말았다.
IBF Jr.라이트급 투타임 챔피언출신인 로페즈의 복싱은 타이거라는 별명답게 더욱 더 거칠고 사나워져 있었던 반면 투박하고 답답한 모습도 병존하고 있어서 첫 방어전에서 애를 먹었던 복병 <딩간 토벨라>에게 적지에서 타이틀을 빼앗겨 슈퍼라이트급으로 밀려났다. WBO 타이틀에 이어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며 승승장구했던 토벨라는 홈링에서 열렸던 첫 방어전에서 키르기스스탄출신의 지명도전자 <오르주벡 나자로프>에게 한차례 다운까지 허용하며 완패해 예상밖으로 단명에 그쳤다. 후일 계속 체급을 올리며 싸웠던 토벨라는 7년이나 지난 뒤 WBC 슈퍼미들급 챔피언으로 등장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한해 먼저 세계챔피언에 오른 유리 아르바차코프와 함께 구소련 복싱의 선봉장을 자처했던 나자로프는 아마추어에서 유럽선수권 금메달에 이어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을 정도로 기본기가 출중했고 펀치력도 좋은 편이었다. 일본에 수입돼 사우스포로는 이례적으로 거칠고 터프한 이미지의 인파이터로 활약했는데 리치가 길고 스트레이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컴비블로우를 구사하기 때문에 상대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사자몰이한 상태에서 퍼붓는 연타가 위력적이어서 한번 갇히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적지에서 토벨라를 또 다시 유린한 뒤 본고장으로 날아가 왕좌복귀를 노리던 전임 가마체를 2R만에 묵사발로 만들어 미국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홈링이나 다름없는 일본에서 3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나자로프는 두 번째 미국 원정길에 나서 레반더 존슨을 링줄에 걸쳐놓고 두들기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했지만 1년만에 나선 프랑스 원정방어전에서 전 WBC 챔피언인 <장 바티스테 멘디>에게 뜻밖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해 7차방어에 실패했다.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가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200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IBF>타이틀은 미국의 잡초복서 <프레디 펜들턴>이 유망주로 각광받던 동국의 트레이시 스판을 돌려 세우고 차지했다. 전적은 매우 지저분했으나 전현직 세계챔피언 7명과 글러브를 섞었던 그는 강자에게 유난히 강해서 로저 메이웨더와 리빙스턴 브램블같은 챔피언클래스를 KO로 때려 잡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이 없었던 펜들턴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수많은 경기경험을 통해 터득한 러싱파이팅과 히트앤드런을 적절히 활용해 가며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켰고 취약한 디펜스를 상쇄할만한 일발파워를 갖추고 있어 어설피 상대했다가는 경을 치기 십상이었다.
난적 호르헤 파에스를 상대로 넉넉한 승리를 거둔 뒤 동국의 <라파엘 루엘라스>에게 1R에서 두차례의 다운을 빼앗고도 역전을 허용해 2차방어에 실패하며 짧은 영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형인 가브리엘보다 먼저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라파엘도 형과 마찬가지로 장신의 하드펀처였으나 WBO 챔피언 <오스카 델 라 호야>에게 걸려들어 안면 내구력의 부실함을 그대로 드러낸 채 2R에서 두차례나 캔버스를 뒹굴다 레퍼리스톱을 당했다.
호야의 타이틀 반납에 따라 콜롬비아의 미구엘 훌리오를 꺽고 새챔피언에 오른 <필립 홀리데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는 WBC 크루저급 챔피언 피에트 크로스 이래 거의 10년만에 등장한 백인챔피언으로 경량급 특유의 활기는 떨어졌어도 평소 주먹을 많이 내고 찬스가 오면 불같은 화력으로 끝장을 내기도 해 요주의 인물로 부상했다. 3차방어전에서 3관왕 출신의 제프 페네크를 2R만에 무너뜨린 뒤 유망주 이반 로빈슨의 앞길을 가로막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한참 떠오르던 <쉐인 모슬리>의 빠른 스피드와 압박에 굴복해 7차방어에 실패했다.
아마추어시절 250전 안팎의 화려한 캐리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시합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며 늘 2인자에 그쳤던 모슬리는 프로에 들어와서 현란한 스피드를 동반한 감각적인 무브먼트와 폭죽처럼 터지는 연타 게다가 강렬한 KO씬까지 연출하며 팬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는데 상대에 따라 페이스배분까지 염두에 둘 만큼 주도면밀하여 대기로서의 가능성을 물씬 풍겼다. 비록 퇴물에 불과했지만 존 존 몰리나와 제시 제임스 레이하를 포함한 8명의 도전자를 상대로 8연속 KO방어를 기록하며 ‘슈거’로써의 면모를 충분히 과시한 뒤 이미 웰터급을 선점하고 있었던 오스카 델 라 호야와 롱런챔피언 펠릭스 트리니다드를 겨냥해 2체급을 월장했다.
과거에 비해 확실히 격이 낮아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1990년대의 이 체급은 미구엘 곤살레스와 오르주벡 나자로프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 정도였고, 오스카 델 라 호야나 쉐인 모슬리같은 미래의 슈퍼스타가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떠나간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스카 델 라 호야가 떠나간 <WBO> 왕좌에는 아마추어에서 380전이 넘는 엄청난 캐리어를 쌓으며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거두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아투르 그리고리안>이 안토니오 리베라를 꺽고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홍성식에게 패한 뒤 독일의 명문 우니베줌프로모션의 품에 안겼던 그는 무수한 경기경험과 사우스포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며 프로에서도 승승장구했는데 동구권복서답지 않게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하며 쏘아대는 롱펀치와 쇼트펀치의 믹스가 부드러웠고 로베르토 두란처럼 탁월한 반사신경으로 상대의 펀치를 죽이면서 자신의 복싱을 구사하는데 능숙해 큰 실점이 없이 항상 넉넉한 차이로 시합을 이끌었다.
라이트잽에 이은 레프트스트레이트가 주무기로 접근전에서 폭발하는 좌우훅과 어퍼컷에도 제법 화력이 있었다. 챔피언에 오른 뒤에도 마이너기구 챔피언인 탓에 한동안 푸대접을 받았지만 장래에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라울 발비와 아마추어시절 숙적이었던 마르코 루돌프를 누이면서 비로소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차방어전부터 주먹에 더욱 더 불이 붙어 KO승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16차방어전에서 전 WBA 챔피언 스테파노 조프를 꺽는 기염을 토하며 ‘킹 아더’의 위용을 과시했다. 어느덧 30대 후반을 치달으면서 욱일승천의 기세로 월장해 온 브라질의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에게 4차례나 다운을 내주며 맥없이 허물어져 8년 가까이 지켜왔던 왕좌에서 물러났다.
비록 17번의 방어전 중 두어차례를 제외하고는 홈링이나 다름없는 독일에서 안방장군행세를 하긴 했지만 이 체급 최다방어기록을 갈아 치우고 최장수 롱런챔피언으로 재임한 사실만은 평가받을만 했다.
아더왕의 전설을 종식시키고 2체급을 석권한 무패의 프레이타스는 그동안 보여준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당분간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였으나 불과 첫 방어전에서 호엘 카사마요르를 설욕하고 월장해 온 <디에고 코랄레스>에게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 후반들어 통렬한 라이트훅을 맞고 침몰해 이 체급을 난기류 속으로 빠뜨렸다.
여전히 불안한 수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타격전에 강한 면모를 과시하며 2관왕에 오른 코랄레스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에게 선전을 펼쳤던 WBC 챔피언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를 상대로 당대의 라이트급 최강을 가리기 위한 통합전에 나섰다. 중반 이후 치열한 난타전을 전개하며 10R에서 두차례의 다운을 당해 회생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으나 끈질긴 정신력을 발휘해 도저히 믿기 어려운 통렬한 역전 KO승을 이끌어 내 전세계에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레퍼리의 보이지 않는 지원과 코랄레스의 고의적인 마우스피스 뱉기 때문에 다소 빛이 바래긴 했지만 끊임없이 때리고 맞는 고통을 견뎌내며 승부를 가리는 프로복싱의 리얼리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들의 시합은 2005년 링지로부터 최고의 시합에 선정될만큼 명승부중의 명승부였다. 5개월 후 체중을 맞추지 못한 카스티요와의 리매치에서는 4RKO로 무너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코랄레스는 부상과 감량실패로 인해 끝내 카스티요와 러버매치에 나서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다가 WBO로부터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코랄레스를 쫓아낸 WBO는 그동안 기구를 대표해왔던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 프레이타스가 자히르 라힘을 물리치고 무난하게 재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호시탐탐 빅매치를 노리던 프레이타스는 1년만에 나선 WBA WBO 통합전에서 젊은 사자 <후안 디아스>의 저돌적인 공격에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며 8R 종료 후 시합을 포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를 선언해 아쉬움을 주었다.
장신에 다부진 체구를 지닌 <WBC>챔피언 <세자르 바산>은 고감도의 레프트어퍼컷을 장착한 슬러거로서 긴 리치를 활용한 잽과 스트레이트가 좋은 편이었던 반면 치고 빠지는 테크니션에게는 약점을 갖고 있어서 3차방어전에서 재회한 <스티비 존스턴>의 액티브한 움직임을 잡지 못한 채 타이틀을 되돌려 주었다.
8개월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존스턴은 매경기마다 날다람쥐같은 화려한 무브먼트로 공수 양면에서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며 빠른 페이스로 4차례의 방어전에 성공해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숨은 강자였던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의 끈질긴 접근전에 말려들어 또 다시 실족하고 말았다.
미국의 링지로부터 2000년 최고의 업셋에 선정되며 화려하게 등장한 카스티요는 정통 멕시칸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하는 인파이터로 한때 명장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스파링파트너로 활동하며 대선배의 복싱을 전수받았다.
발군의 펀치력에도 불구하고 잦은 눈부상때문에 번번히 브레이크가 걸려 챔피언에 오르기 전까지 별로 알려져 있지 못했던 그는 발이 느리고 기술적으로도 섬세한 편은 아니었지만 타이밍 좋은 좌우훅과 어퍼컷이 위력적이었고 큰 폐활량으로 후반 승부에 강한데다가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터프하고 노련한 경기운영능력은 스피드가 좋은 상대들도 고개를 가로저을만큼 강인했다.
석달뒤 다시 만난 존스턴과는 판정번복 소동 끝에 무승부로 방어했지만 전임 바산과 우리나라의 유승호를 연달아 KO로 누이며 요주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4차방어전에서 아랫 체급에서 월장해 온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스피드에 맞서 경기내내 쉴새없이 몰아붙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뛰어난 선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판정에 울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와 팬들로부터 메이웨더에게 사실상 첫 패배를 안겼던 승자로 기억되며 위로를 받았다.
팬들의 야유속에 겸연쩍은 모습으로 다관왕에 시동을 걸었던 메이웨더는 6개월 뒤 카스티요와의 재전에서 1차전에 비해 나은 시합을 펼치긴 했어도 과거에 비해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이 역력했고 빅토리아노 소사와 필립 은도우같은 2류를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3차방어에 성공한 뒤 또 다시 타이틀을 반납한 채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해 본격적인 ‘머니’(?) 메이웨더의 길로 접어들었다.
공석이 된 왕좌는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가 존스턴의 재기를 가로막았던 강호 후안 라스카노를 꺽고 차지했는데 더욱 더 강인한 상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2체급 석권을 노리던 호엘 카사마요르와 IBF 챔피언 출신인 훌리오 디아스를 연파하며 메이웨더전에서 선전한 이래 최고의 호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WBO 챔피언 <디에고 코랄레스>와의 통합전에서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한 코랄레스에게 역전 KO패를 당하며 또 다시 무관으로 전락해 그 영화가 오래가지 못했다.
공백이 길어지면서 WBO 타이틀을 박탈당한 코랄레스는 <호엘 카사마요르>와의 러버매치에서 아쉽게 판정으로 패해 첫 방어에 실패하며 하향곡선을 그었고 2007년 5월 오토바이사고로 인해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역시 2관왕에 오른 카사마요르는 WBC의 지명방어전을 무시하고 WBO 챔피언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와의 리벤지에 올인하다가 프레이타스가 WBA 챔피언 후안 디아스로 상대를 선회함에 따라 시합에 나서지도 못한 채 소중한 챔피언벨트만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세기말 <WBA>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우선 오르주벡 나자로프를 몰락시키는 업적을 세웠던 투타임 챔피언 <장 밥티스테 멘디>가 2차방어전에서 프랑스의 <줄리앙 로시>에게 로프에 내동댕이쳐질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으며 6RTKO패를 당해 충격을 주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유럽에서는 강타자로 이름을 알렸던 로시는 탱크처럼 거칠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묵직한 좌우훅과 어퍼컷을 해머처럼 휘두르는데다가 보디공격에도 일가견이 있어 기대를 모았으나 겨우 첫 방어전에서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조프>에게 예상밖의 일격을 당해 백일천하에 그치고 말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상체의 움직임이 좋고 히트앤런에 능했던 조프는 첫 방어전에서 베네수엘라의 <힐베르토 세라노>로부터 빠르고 위력적인 잽과 스트레이트를 너무 많이 허용한 탓에 오른쪽 눈부상을 당해 10R만에 레퍼리 스톱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최용수에게 도전했다가 KO패를 당하기도 했던 세라노는 비교적 장신에 스피드가 좋고 다양한 컴비블로우를 구사하는 교타자였으나 안면 내구력 부족으로 첫 방어전에서 사카모토 히로유키에게 1R에서 두 번이나 다운을 당하는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더니 2차방어전에서는 <하다케야마 다카노리>에게 다섯차례나 캔버스를 뒹구르며 8RKO패로 무너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홈링에서 멋지게 2체급 석권에 성공한 하다케야마는 대관식때 약속했던대로 사카모토에게 기회를 주어 10RKO로 제압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돌아온 <줄리앙 로시>에게 무수한 강타를 얻어맞고 패퇴해 역시 단명했다. 또한, 재임에 성공한 로시도 첫 방어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복병 <라울 발비>에게 한차례 다운을 허용하며 판정으로 패해 이번에도 백일천하에 머무르고 말았다.
일발파워가 돋보였던 발비 역시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국제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루마니아의 <레오나르드 도린>에게 왕좌를 넘겼다. 단신의 인파이터로서 악착같은 승부욕 때문에 허리케인으로 불리웠던 도린은 뛰어난 체력과 지칠줄 모르는 스태미나를 자랑했는데 발비를 재차 물리치고 IBF 챔피언 폴 스파다포라와의 통합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자의반타의반으로 타이틀을 반납한 채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공석이 된 왕좌는 몽골 최초의 세계챔피언이었던 <라크바 두가바타르>가 4년여의 무관 생활을 청산하고 톱랭커인 파나마의 미구엘 칼리스트에게 5RKO승을 거두어 가볍게 2체급 석권에 성공했다. 라크바 심이라는 닉네임을 버리고 원래의 이름을 되찾은 그는 적잖은 기대를 모았지만 첫 방어전에서 멕시코계인 미국의 <후안 디아스>에게 큰 차이를 보이며 수성에 실패해 역시 백일을 넘기지 못했다.
약관의 나이에 라크바를 능숙하게 요리해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내비쳤던 디아스는 이미 황소같이 저돌적인 러싱파이팅으로 정평이 나있었는데 비교적 단신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빠른 핸드스피드와 끈질긴 연타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힘이 뛰어났다. 전임 로시의 도전을 가볍게 일축한 뒤 도합 다섯차례의 방어전을 돌파한 그는 2007년 4월 28일 2관왕인 관록의 WBO 챔피언인 아셀리노 프레이타스를 사납게 몰아붙이며 8RTKO로 꺽어 타고난 비범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달만에 IBF 챔피언 훌리오 디아스에게도 8R만에 항복을 받아내며 3대기구 통합챔피언에 등극해 일약 복싱천재로 떠올랐다. 한편, 이 사이 WBA는 통합챔피언에 오른 디아스를 슈퍼챔피언으로 격상시킨 뒤 정규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호세 미구엘 코토와 프라웨트 싱왕차가 승부를 가리지 했고 기회를 낚아 챈 니카라과의 <호세 알파로>가 정상 재도전에 나선 싱왕차에게 두차례 다운을 빼앗은 뒤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슈퍼챔피언이었던 디아스는 이듬해 3월 동국의 <네이트 캠벨>을 맞아 5R에서 버팅으로 왼쪽눈자위가 커트되는 불운속에 캠벨의 거친 공격에 밀리면서 뜻밖으로 생애 첫 패배를 당한 뒤 급락하고 말았다.
쉐인 모슬리가 떠난 <IBF>쪽은 미국의 강호 <폴 스파다포라>가 1999년 8월 멕시코의 이스라엘 카르도나를 완봉시키고 왕좌에 등극했다. 아마추어를 거치면서 익힌 뛰어난 경기운영감각과 오른쪽 어깨를 이용한 지능적인 플레이로 한몫했던 스파다포라는 사우스포 특유의 카운터펀치에도 능해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선수였다.
펀치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스파링에서 보여준 것처럼 찬스가 왔을 때 폭죽처럼 터지는 정교한 컴비블로우는 마치 하드펀처를 연상케 했다. 2차방어전에서 빅토리아노 소사에게 초반에 두차례 다운을 당하며 위험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 수비를 강화하면서 7차방어까지 무난하게 롱런했고 내친김에 WBA 챔피언 레오나르드 도린과 통합전에 나서 무승부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링밖에서는 이탈리아계다운(?) 다혈질적인 기질을 숨기지 못하고 2003년부터 총기살해위협과 코카인소지,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감옥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이후 전신이 도화지인양 사방에 문신을 하고 나타나 어그레시브한 면모를 과시하며 한때 연승가도를 달리기도 했지만 38살이 된 지난해 요한 페레스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해 주춤거리고 있다.
레반더 존슨을 꺽고 스파다포라의 뒤를 이은 멕시코의 <하비에르 하우레기>는 비교적 강펀치를 소유한 하드펀처였지만 발이 느린데다가 가드가 낮고 기량자체도 떨어지는 편이어서 6개월만에 동국의 <훌리오 디아스>에게 챔피언벨트를 물려주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빠른 발과 스피드를 소유한 디아스는 수수하면서도 감각적인 컴비블로우가 돋보였는데 7개월 후 IBF 타이틀까지 반납하고 WBC 챔피언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에게 도전했지만 10RTKO로 무너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어있던 왕좌에는 집념의 파이터인 미국의 <레반더 존슨>이 올랐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전 WBA 챔피언 스테파노 조프를 꺽고 세계도전 4번째만에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둘러 무관의 설움을 털어냈다.
부실한 내구력에도 불구하고 장신에서 뻗어나오는 강렬한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인상적이었던 존슨은 첫 방어전에서 시종일관 저돌적으로 러싱하는 <헤수스 차베스>와 육탄전을 벌이다가 11R에 스톱되었고 라커룸에서 쓰러진 뒤 그대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2관왕에 오른 차베스의 거침없는 공격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으나 존슨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한동안 링에 오르지 못하다가 17개월만에 나선 잠정챔피언 <훌리오 디아스>와의 1차방어전에서 오른쪽 무릎부상으로 불과 3R만에 쓰러져 슈퍼페더급시절과 마찬가지로 타이틀 방어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디아스가 2년반만에 왕좌에 복귀하면서 2007년에 이 체급은 WBC 챔피언 데이비드 디아스, WBA WBO 통합챔피언 후안 디아스와 함께 디아스 트리오가 지배하게 되었는데 라이트급 천하통일을 노리던 <후안 디아스>와 3대기구 통합전에 나섰다가 경기시작부터 줄기차게 몰아붙인 후안에게 밀리며 8RTKO로 패해 또 다시 무관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이 체급은 역시 전통의 인기 체급답게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하며 화제만발의 명승부를 잇달아 연출해 많은 복싱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WBA쪽은 후안 디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회전의자를 방불케 하는 빈번한 왕좌교대극을 벌이며 5년간 9명의 세계챔피언을 쏟아내 메이저기구로서의 위상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던 <WBA> <WBO> <IBF> 통합챔피언 <네이트 캠벨>은 데뷔초 빠르고 정확한 강펀치를 휘두르며 KO가도를 달렸으나 슈퍼페더급 시절 호엘 카사마요르와 로비 페덴에게 잇달아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2류에 머물러 있다가 묵직한 라이트펀치와 터프한 공격력을 앞세워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첫 방어전부터 도전자 호안 구스만의 컨디션 부조로 시합이 전날 취소되더니 11개월만에 나선 알리 푸네카전을 앞두고는 자신이 체중을 맞추지 못해 시합에 이기고도 타이틀은 모두 박탈당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WBA> 정규챔피언이었던 니카라과의 <호세 알파로>는 강력한 한방을 소유한 하드펀처였지만 스윙이 큰데다가 부실한 안면 내구력으로 인해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고보리 유스케>에게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3R만에 레퍼리스톱이 걸려 왕좌에 등극한지 5개월만에 추락했다.
국제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고보리는 자국의 선배 챔피언들처럼 불굴의 정신력을 소유한 러싱파이터로 3관왕이었던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의 시합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역시 첫 방어전에서 무패의 강타자 <파울루스 모세스>에게 무릎을 꿇어 럭키가이에 불과했음을 입증했다. 나미비아 출신으로는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었던 모세스는 아프리카복서 특유의 유연한 복싱을 구사했는데 긴 리치를 활용한 레프트잽이 날카롭고 근접전에서 터져나오는 기총소사같은 연타가 위협적이어서 히트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2009년 2월 14일 캠벨이 타이틀을 박탈당하자 <WBA>는 정규챔피언 모세스를 무시하고 <WBO>와 공모(?)하여 불과 2주 뒤로 다가온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와 후안 디아스 간의 시합을 슈퍼챔피언 결정전으로 승인하는 기발한 발상을 내놓았다. 비록 양선수 간의 시합이 당시 라이트급 최강을 가리는 빅매치였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기구 난립으로 인한 자화상같아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었다.
시합은 팬들이 기대했던대로 초반부터 양선수가 엄청난 파이팅을 보여 주며 혈전을 벌인 끝에 노련한 마르케스가 9R에 라이트어퍼컷으로 디아스를 누이고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시종일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치열한 난타전을 펼치며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던 이들의 시합은 전통의 라이트급다운 명승부였고 링지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로부터 그해 최고의 시합에 선정될만큼 어마어마한 백병전이었다.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마르케스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둔화되고 내구력도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견고한 테크닉과 수준급의 파워를 보유한데다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경기운영으로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비록 5관왕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캐치웨이트 시합에서 원사이드하게 패해 체면을 구기긴 했어도 이듬해 재회한 디아스에게 다시 한번 완승을 거둔데 이어 영보이 마이클 캣시디스에게도 역전KO승을 거두어 최강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라이벌중의 라이벌 매니 파퀴아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3차전에만 집착하다가 2011년 11월 끝내 파퀴아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장기간 방어전에 나서지 못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WBC>는 호엘 카사마요르의 타이틀을 박탈한 뒤 잠정챔피언으로 있었던 미국의 <데이비드 디아스>를 그대로 정규챔피언으로 인정했는데 다부진 체구의 사우스포였던 그는 아마추어시절 세차례의 골든글러브대회에서 우승하고 잡 주다에게도 두 번이나 이겼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자랑했다. 첫 방어전에서 트리플크라운에 빛나는 에릭 모랄레스를 근소한 차의 판정으로 꺽고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라이트급으로 치고 올라온 <매니 파퀴아오>에게는 만신창이로 얻어맞은 끝에 9R 종반 정확한 레프트카운터블로우를 턱에 맞고 실신에 가까운 KO패를 당해 타이틀을 넘겨 주었다.
여전히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4체급을 석권한 파퀴아오는 후안 디아스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로부터 날아온 구애를 뿌리치고 웰터급을 한계체중으로 하는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드림매치를 선택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과거 6체급을 석권했던 호야가 이미 전성기를 지나 하향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했지만 파퀴아오는 슈퍼페더급에서 라이트급으로 월장한 지 겨우 6개월만에 갖는 시합이어서 시합전부터 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경쾌한 몸놀림의 파퀴아오는 체중을 맞추느라 컨디션이 떨어진 호야를 상대로 경기내내 펄펄날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예상밖의 9RTKO승을 거두는 괴물성으로 전세계 복싱팬들을 경악속에 빠뜨렸다. 이 경기에서 헤비급을 제외하고 역대 3번째인 125만 PPV를 기록하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그는 링지는 물론 모든 매체들로부터 2008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며 일약 전세계적인 흥행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다음 상대로 당시 슈퍼라이트급 최강이었던 리키 해튼이 지목되면서 이 체급의 타이틀은 10개월만에 반납했다.
파퀴아오의 후임은 밥 애럼의 품에 안긴 <에드윈 발레로>가 첫 미국 진출전에서 콜롬비아의 베테랑 안토니오 피탈루아를 2R만에 간단하게 요리하고 왕좌에 등극했다.
2체급 석권과 함께 이 체급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발레로는 즉시 파퀴아오와 마르케스에게 선전포고하며 도발했지만 또 다시 미국 입국 비자를 거부당한 채 자국에서 방어전을 치룰 수 밖에 없었고 적지에서 열린 2차방어전에서 잠정챔피언 안토니오 데마르코를 9RTKO로 제압해 27전 전KO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0년 4월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싸움꾼으로서의 타고난 감각에 무시무시한 펀치력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폭발력은 물론 미국에 대한 거침없는 입담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군림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프로복싱계의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공석이 된 왕좌는 발레로를 겨냥했던 멕시코의 <움베르토 소토>가 전임 데이비드 디아스를 맞아 두차례나 다운을 빼앗는 압승을 거두고 차지해 역시 2체급 석권에 성공했다. 슈퍼페더급 시절에 비해 다소 파워가 떨어진 듯했지만 강력한 체력과 노련한 경기운영능력을 바탕으로 후반에 강한 면모를 과시하며 네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흥행성이 좋은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팬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IBF>쪽은 네이트 캠벨의 타이틀 박탈 후 2009년 11월 28일 도미니카의 강호 호안 구스만과 캠벨에게 석패했던 알리 푸네카를 챔피언결정전에 붙였으나 오랜만에 링복귀한 구스만이 푸네카에게 고전을 면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프로모션인 골든보이로 이적한 덕분인지 어거지에 가까운 무승부를 기록해 논란을 낳았다.
더욱이 넉달 뒤 재시합에서는 무려 9파운드나 초과된 체중으로 링에 올라 또 다시 졸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왕좌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기회를 잡은 멕시코의 복병 <미구엘 바스케스>가 톱랭커였던 우리나라의 볼케이노 김지훈을 맞아 얄밉도록 능수능란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완승을 거두고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뛰어난 복싱감각을 자랑했던 바스케스는 데뷔초 웰터급으로 뛰면서 사울 알바레스와 티모시 브래들리와도 글러브를 섞으며 성장했는데 카리스마같은 것은 없지만 긴팔을 활용한 잽과 적당한 클린치웍으로 상대방의 공세를 차단한 뒤 카운터공격을 노리는 스타일로 상당히 까다로운 아웃복싱을 구사했다. 2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김지훈을 1R에 보내버린 레니 자파비냐를 가볍게 요리한 뒤 제법 견고한 아성을 구축하며 롱런채비에 들어갔다.
2000년대 후반 들어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미구엘 코토가 활약했던 웰터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는 덜 했지만 매니 파퀴아오와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의 월장으로 다시 한번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 체급은 그들이 오래 머물지 못한 탓에 금새 열기가 식어버렸고 어느새 프로복싱의 모든 관심은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가 월장해 오는 바람에 <WBA> 정규챔피언이면서도 괄시받는 처지였던 파울루스 모세스는 날카로운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밸런스와 맷집때문에 2차방어전에서 잠정챔피언 <미구엘 아코스타>의 강력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6RKO로 주저 앉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아코스타는 매섭고 정확한 컴비블로우를 앞세운 하드히터로 기대를 모았지만 봅 애럼으로부터 숨겨진 보석이라는 극찬을 받은 <브랜든 리오스>의 파워 앞에 역부족을 드러내며 10R만에 침몰해 역시 단명에 그쳤다. 아마추어시절 275전을 싸우며 미국 내에서만큼은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리오스는 스피드가 조금 떨어지기는 해도 다부진 체격에 터프하고 힘이 좋은 러싱파이팅으로 한때 이 체급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2차방어전을 앞두고 체중을 맞추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하더니 WBA의 세심한 배려(?) 속에 다시 출전한 챔피언결정전에서 또 다시 중량초과로 망신을 당하며 슈퍼라이트급으로 쫓겨가다시피 했다. 잠정챔피언으로서 리오스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배했던 쿠바의 <리차드 아브릴>은 판정논란이 일어날만큼 뛰어난 선전을 펼친 덕분인지 그대로 정규챔피언에 등극하는 행운을 누렸다.
아마추어시절 그다지 눈에 띄는 실적도 없었고 곧바로 프로에 데뷔한 것도 아니었지만 장신에서 뻗어 나오는 잽과 스트레이트가 날카롭고 디펜스도 탁월해 안정된 경기운영능력을 발휘했다. 지금까지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하고 있기는 하나 과도한 클린치웍과 사이드스텝으로 인해 재미없는 복싱의 전형으로 손꼽히고 있어 명가의 대를 잇기에는 다소 함량이 부족한 편이다.
<WBC>쪽은 에드윈 발레로의 벽에 막혔던 멕시코의 <안토니오 데마르코>가 3관왕을 노리던 호르헤 리나레스를 맞아 초중반의 열세를 뒤집고 11R에 맹공을 퍼부어 짜릿한 역전승으로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장신의 사우스포로 공격적이고 펀치력도 강했으나 다소 뻣뻣하고 순발력도 부족한 편이어서 슈퍼페더급에서 월장한 <애드리언 브로너>에게 시달리다가 3차방어에 실패했다.
날이 갈수록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복사판으로 불리운 브로너는 화려한 공격력과 안정된 디펜스로 스타부재의 이 체급에서 일약 최강자로 부상했다. 전 WBA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가빈 리스를 5RTKO로 일축한 뒤 넉달만에 돌연 두체급을 올려 폴 말리그나지를 누르고 WBA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함으로써 라이트급 타이틀은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공석이 된 왕좌는 이미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미국의 <오마르 피게로아>에게 챔피언결정전도 없이 그대로 승계되었다.
멕시코계인 피게로아는 낮은 가드로 인해 가끔 불안감을 주기도 하나 경쾌한 몸놀림과 폭발적인 좌우연타가 매력적인 강타자로 2차방어에 성공한 뒤 부상 치료가 장기화되면서 현재 휴양챔피언으로 물러나 있다. 이로 인해 WBC는 새로운 정규챔피언 결정전을 지시해 지난해 12월 30일 베네수엘라의 <호르헤 리나레스>가 하비에르 프리토에게 전성기시절의 화려한 컴비블로우를 되찾아 4RKO승을 거두고 염원해 오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WBO Jr.라이트급 타이틀을 버리고 월장해 온 스코틀랜드의 간판스타 <리키 번스>는 이 체급의 <WBO> 챔피언에 오르면서 영국은 물론 유럽에서 적잖은 기대를 모았다. 여전히 수준높은 테크닉과 예리한 카운터블로우를 자랑했던 번스는 연패에 늪에 빠져있던 호주의 마이클 캣시디스를 꺽고 잠정챔피언에 오른 뒤 WBA WBO 통합챔피언이었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의 타이틀 박탈 덕분에 정규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첫 방어전에서 전 WBA 챔피언 모세스에게 완봉에 가까운 승리를 거둔 뒤 강타자 케빈 미첼을 4RKO로 쓰러뜨리고 IBF 챔피언 미구엘 바스케스와 통합전을 추진했으나 잦은 시합 연기때문에 매니저인 프랭크 워렌과 결별을 선언해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급격한 컨디션 저하를 보인 번스는 잇달아 졸전을 벌이더니 5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미국의 라이징스타 <테렌스 크로포드>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그로기까지 몰리는 수모를 겪으며 타이틀을 내주었다.
아마추어에서 닦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프로에서도 승승장구해 온 크로포드는 스피드가 빠르고 몸놀림이 유연한데다가 펀치력까지 겸비해 아웃복싱과 인파이팅 모두 강점을 갖고 있으며 때로는 스위치복싱으로 상대를 현혹시킬만큼 경기운영능력도 뛰어났다. 첫 방어전부터 무패의 강타자 유리오키스 감보아와 정면대결을 펼쳐 예상을 뛰어 넘는 경기력으로 네차례의 다운을 빼앗고 9RTKO승을 거둔데 이어 2차방어전에서는 터프가이 레이문도 벨트란을 유린해 이 체급의 장래를 걸머지고 나갈 스타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금년 3월 WBO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할 예정이라 더 이상 그의 라이트급 시합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히트앤클린치 위주의 약아빠진 복싱을 구사하며 독주체제를 구축했던 <IBF>챔피언 <미구엘 바스케스>는 5차방어에 성공한 뒤 번스와의 통합전 취소와 건강문제 등으로 2013년 내내 링에 오르지 못하면서도 당시 무주공산같았던 이 체급에서 넘버원에 오르내릴 정도로 높은 명성을 이어 갔다.
14개월만에 나선 6차방어전에서 무패의 데니스 샤피코프를 가볍게 제압해 타고난 복싱감각을 다시 한번 입증했지만 하위 랭커에 불과한 미국의 <미키 베이>와 접전을 벌이다가 후반에 추격을 허용하며 2-1의 판정패를 당해 4년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2010년대 새로운 스타의 등장이 절실하던 시기에 브랜든 리오스와 애드리언 브로너가 기대를 받았지만 두 선수 모두 한두차례 경기 후 슈퍼라이트급으로 월장해버렸고 지난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테렌스 크로포드 역시 이미 월장이 확정된 상태라 앞으로 팬들의 관심을 받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역대 세 번째로 탄생해 전통과 권위를 자랑했던 이 체급은 두터운 선수층 속에서도 일찍이 명인 조 간스와 베니 레너드를 배출해낸데 이어 조 브라운과 로베르토 두란같은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팬들의 환호를 받았고 아래, 윗 체급인 페더급, 웰터급과 더불어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비교적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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