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주니어체급을 인정하는 NBA의 설립과 동시에 신설된 이 체급은 당시 Jr.라이트급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았던 체급이었지만 조니 던디를 초대챔피언으로 세우며 서서히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던 Jr.라이트급과 달리 세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선뜻 초대챔피언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NBA는 미니애폴리스의 주간지 ‘복싱블레이드’ 발행인인 마이크 콜린스에게 새로운 챔피언의 발탁을 요청했고 콜린스는 2천달러짜리 챔피언벨트를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40파운드의 사나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후보를 놓고 독자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를 반영하여 밀워키출신의 <마이런 핑키 미첼>을 1922년 11월 15일 첫 번째 세계챔피언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강펀치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경기운영으로 인기가 없었던 미첼은 페이퍼챔피언이라는 비아냥속에 진정한 챔피언으로 대접받지 못했고 더욱이 4년 가까이 방어전도 치루지 않아 이 체급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이듬해 라이트급의 제왕 베니 레너드에게 10RTKO패를 당한 뒤로 급격한 하락세에 접어들어 연패에 빠지기 일쑤였던 그는 1926년 9월 이 체급 최초의 세계타이틀전에서 동국의 <머쉬 캘러한>에게 두차례의 다운을 내준 채 완패해 초대챔피언으로서는 무척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체급의 구원에 나섰던 캘러한은 좌우펀치를 무섭게 몰아치는 인파이터이면서도 비교적 수비도 견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패의 앤디 디보디를 비롯한 3명의 도전자를 차례대로 격파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체중고속에 적지에서 맞이한 영국의 <잭 키드 버그>에게 양쪽눈자위가 커트되고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채 9R종료 후 시합을 포기하고 말았다.
은퇴 후 복싱영화의 기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1962년 세계적인 인기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복서로 출연한 영화 ‘키드 갈라하드’에서 레퍼리로 깜짝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당시 영국이 주니어체급을 강력히 반대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미국에서 활동해야만 했던 버그는 항상 에너지가 충만한 모습으로 공격일변도의 복싱을 구사했고 파워히터는 아니었지만 지독한 전진을 통해 마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엄청난 연타를 퍼부었던 논스톱 펀처였다.
이미 전성기의 토니 칸조네리를 제압할 정도로 한창 물이 올라 있었던 그는 왕좌에 오른 뒤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12연승가도를 달렸는데 그 중 다섯 번은 타이틀 방어전으로 치렀고 무패의 키드 초콜레이트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토니 칸조네리>와 14개월만에 재회하여 두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걸고 싸웠으나 3R에서 칸조네리의 그림같은 라이트카운터펀치를 맞고 떡실신하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6차방어에 실패하며 희미해져 갔다.
트리플크라운에 오른 칸조네리는 세실 페인과의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다시 한번 두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걸고 버그와 러버매치에 나서 완승을 거둔데 이어 키드 초콜레이트의 도전마저 일축하며 중(中)량급 최강의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5차방어전에서 동국의 복병 <조니 재딕>에게 일격을 당해 이 체급의 타이틀을 상실했지만 라이트급 타이틀은 계속 보유하며 이 체급의 타이틀을 탈환하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업셋의 주인공이었던 재딕은 우크라이나태생답게 라이트급시절 특유의 터프니스를 발휘하며 연승가도를 달리다가 어느새 승패를 반복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는데 유독 칸조네리에게만은 천적행세를 하며 리매치에서도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판정승을 거두어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어서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배틀링 쇼>의 강력한 대쉬에 맥없이 타이틀을 빼앗겼다.
원래 이름이 호세 페레스 플로레스였던 쇼는 16살에 프로데뷔한 이래 제법 유능하고 투지넘치는 전사로 활약했으나 당시의 세계수준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탓에 석달 뒤 <토니 칸조네리>에게 허무하게 왕좌를 넘겨주었다.
끈질긴 집념으로 16개월만에 다시 두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게 된 칸조네리는 불과 한달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바니 로스>에게 근소한 차의 판정으로 패해 타이틀을 모두 잃고 원래의 체급인 라이트급으로 돌아갔다.
아마추어시절 미국 골든글러브대회에서 우승하며 대기로서의 자질을 숨기지 않았던 로스는 완력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저돌적인 파이터로서 일발필도의 파워는 부족했지만 집요한 연타와 함께 정확한 타이밍의 공수연결이 일품이었다.
더욱이 상대의 품안에 들어가 갈겨대는 복부공격은 영리하기 짝이 없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었고, 타고난 맷집과 철저한 디펜스는 불사신의 사나이로 불리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례적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정부각료가 관전한 라이벌 칸조네리와의 리매치에서 미국 전역을 흥분시키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판정으로 승리해 이제는 한수 위임을 입증한 뒤 체중고를 고려해 라이트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이 체급의 타이틀 방어에 전념했다.
6차방어에 성공한 뒤 웰터급까지 치고 올라가 챔피언 지미 맥라닌을 꺽고 사상 3번째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지만 리매치에서 패하자 다시 돌아와 5차방어전에서 논란이 많은 무승부를 기록했던 Jr.라이트급 전챔피언 프랭키 크릭에게 군말없는 승리를 거두는 등 이 체급에서만 9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1935년 5월 28일 숙적 지미 맥라닌에게 재도전하여 웰터급 타이틀을 탈환하면서 이 체급의 타이틀은 미련없이 포기했다.
이후 유일한 주니어체급이었던 이 체급은 1년전 먼저 사양길에 접어든 Jr.라이트급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면서 주니어체급은 모두 소멸되고 말았다.
11년이나 지난 뒤 미국 메사추세츠주 복싱위원회가 뉴욕주 체육위원회(NYSAC)에 이 체급의 부활을 건의해 1946년 4월 29일 뉴저지주 출신의 <티피 라킨>과 인디애나주 출신의 윌리 조이스 간의 챔피언결정전을 성사시켰는데 이 경기에서 라킨은 세차례의 다운을 빼앗는 우세한 시합을 펼쳐 이 체급의 9번째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유리턱 때문에 라이트급 시절 챔피언클래스에는 미치지 못했던 그는 비교적 움직임이 좋고 타점높은 스트레이트를 장착하고 있어 쉽게 넘볼 상대가 아니었다.
4개월 뒤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조이스와의 재전에서 압승을 거두고 첫 방어에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체중고에 부딪힌데다가 주니어체급에 대한 복싱계의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지자 더 이상 타이틀 방어에 나서지 못하면서 이 체급의 타이틀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의 붐이 한창 일어나던 1959년 들어 NBA가 변화된 시류를 타고 주니어체급을 재건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 체급은 Jr.라이트급과 함께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6월 12일 푸에르토리코의 <카를로스 오르티스>가 6개월전 자신에게 패전을 안겨주었던 구원의 숙적 케니 레인을 2RTKO로 꺽고 라킨 이래 13년만에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후일 라이트급에서 오르티스의 복싱이 만개하기 전에도 날카로운 레프트훅을 장착한 하드히터였던 그는 첫 방어전에서 무패의 강타자 배틀링 토레스를 10R만에 때려 잡았으나 이탈리아의 백전노장 <두일리오 로이>와의 2차방어전에서 가까스로 신승을 거둔 뒤 3개월만에 적지에서 열린 리매치에서는 텃세 판정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Jr.미들급의 니노 벤베누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복싱의 얼굴로 활약했던 로이는 중량감 넘치는 터프한 왼손잡이 복서로 비교적 단신에 펀치력도 볼품없었으나 상대의 공격을 무마시키는 재주가 뛰어났고 레프트펀치로 복부를 공격한 뒤 라이트훅으로 안면을 노리는 매우 고전적인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첫 방어전에서 재회한 오르티스에게 6R에서 다운을 안겨주며 여유있게 승리를 거두어 2차전의 텃세 판정에 대한 잡음을 일소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미국의 <에디 퍼킨스>에게 무승부로 타이틀을 방어해 불안감을 드러내더니 리매치에서 두차례의 다운을 빼앗고도 퍼킨스의 공세에 밀리면서 결국 소중한 왕좌를 빼앗기고 말았다.
전라운드를 풀로 뛸 수 있는 왕성한 체력의 소유자였던 퍼킨스는 손이 많기로도 유명했는데 비록 발을 쓰는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롱런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투철한 프로정신만큼은 프로복서들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석달만에 열린 <두일리오 로이>와의 세 번째 대결에서 치열한 접전 속에 디펜스가 좋은 로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왕좌복귀를 허용해 후일을 기약해야만 했다.
재임에 성공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로이는 15년간 120전이 넘는 오랜 전투에 지친 나머지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해 한달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링과 작별을 고해 아쉬움을 주었다.
극도로 약한 펀치력을 테크닉과 디펜스로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로이는 훗날 등장하게 되는 니콜리노 로체와 함께 복싱을 펀치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인 대표적인 복서였다.
체급 신설 초기 한동안 개점휴업상태였던 이 체급은 잭 키드 버그에 이어 토니 칸조네리와 바니 로스의 등장으로 팬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역시나 주니어체급의 한계를 넘지 못해 신설된지 13년만에 소멸되는 비운을 맞았고 무려 24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두일리오 로이가 반납한 타이틀은 필리핀의 <로베르토 크루즈>가 1963년 3월 21일 미국 다저스스타디움에서 열린 트리플헤더에 출전해 멕시코의 강타자인 배틀링 토레스를 불과 127초만에 KO로 눕히는 업셋을 일으키며 차지했다.
이 날 동반 출전한 세계 페더급 챔피언 데이비 무어는 슈거 라모스와의 시합에서 10R TKO패한 뒤 이틀만에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비교적 장신이었던 크루즈는 사정권 안에서 휘두르는 펀치에 거포같은 위력이 있었지만 스피드나 테크닉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지명도전자였던 전임 <에디 퍼킨스>에게 완패해 석달도 못되어 왕좌에서 미끌어졌다.
또 다시 적지에서 인상적인 모습으로 챔피언에 등극한 퍼킨스는 프로페셔널한 기질을 발휘해 여전히 해외를 돌아다니며 방어전을 거듭하다가 3차방어전에서 <카를로스 에르난데스>에게 브레이크가 걸려 낙마하고 말았다.
베네수엘라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에르난데스는 안정된 기본기와 밸런스를 갖춘 강타자로 리드 잽에 이은 라이트스트레이트와 레프트어퍼컷이 아주 강렬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초반 KO승으로 장식하며 휘파람을 불었지만 논타이틀전에서 이스마엘 라구나에게 혼쭐이 난 뒤 이탈리아의 <산드로 로포포로>에게 석패해 벨트를 풀었다.
로마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서 깔끔하고 스마트한 외모를 지닌 로포포로는 여느 유러피언 복서와 달리 비교적 경쾌한 푸트웍과 날렵한 잽을 소유한 사우스포이면서도 때로는 접근전을 불사할 만큼 용감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니콜리노 로체와의 논타이틀전에서 패배하며 불안감을 드리우더니 적지에서 벌인 2차방어전에서 <후지 다케시>의 해머같은 펀치에 흠씬 두들겨 맞고 불과 2R만에 실신해 단명하고 말았다.
호눌룰루출신의 일본계 3세인 후지는 폴 후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일본복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에디 타운센드의 지도를 받으며 프로에 데뷔한 이래 내셔널챔피언과 동양챔피언을 거쳐 무서운 하드펀처로 성장했다.
서툰 일본어나마 ‘야마토 다마시이’를 유난히 강조해 자국팬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매니저와의 금전적 갈등이 지나쳐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공백기를 갖은 뒤 필리핀의 페드로 아디게와 2차방어전을 갖기로 했던 후지는 <WBA>쪽에서 지명방어전 이행을 요구해 아디게와의 계약을 파기하자 당시 WBC 회장이었던 필리핀의 주스티니아노 몬타노가 자국의 아디게와 방어전을 치룰 것을 요구해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후지가 고심 끝에 WBA의 지명방어전을 선택하면서 WBC 타이틀을 박탈당해 이 체급의 타이틀도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13개월만에 방어전에 나선 후지는 톱랭커인 아르헨티나의 <니콜리노 로체>의 화려한 아웃복싱에 헛스윙만 남발한 채 10R만에 경기를 포기해 반쪽짜리 타이틀마저 넘겨 주고 말았다.
실제로 100전을 넘게 싸워 온 백전노장으로서 완벽한 수비를 자랑했던 단신의 로체는 파워풀한 복싱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지만 뛰어난 동체시력과 순발력을 이용해 상대선수의 손이 닿지도 않은 채 경기를 끝낸다고 하여 ‘인토카블리’로 불리웠다.
상대가 펀치를 내미는 순간 정확한 레프트잽에 이은 라이트스트레이트로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상대가 정면으로 들어오면 뒤로 빠지면서 좌우어퍼컷으로 공략한 후 반드시 위빙이나 더킹으로 사정권 밖에 머물렀다.
이러한 로체의 복싱은 유난히 많은 시합을 치루는 아르헨티나 복서 특성상 오래 살아남기 위해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면서 터득한 스타일로 여겨졌다.
홈링에서 벌인 5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판정승으로 장식했지만 카를로스 에르난데스나 안토니오 세르반테스같은 실력파들을 연파하며 3년 넘게 재임한 사실은 마땅히 높은 점수를 받을만 했다.
처음으로 적지에 뛰어든 6차방어전에서 뜻밖에도 <알폰소 프레이저>의 날카로운 잽에 왼쪽눈자위가 베인데다가 특유의 보브 앤드 위브가 먹혀들지 않아 무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상을 깨고 수훈을 세운 파나마의 프레이저는 비교적 하드펀처에 속했지만 내구력이 부족한 탓에 첫 방어전에서 이 체급 최강의 복서로 손꼽히는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의 원투스트레이트에 골병이 들어 10RKO로 주저 앉았다.
콜롬비아 복싱의 전형과도 같았던 ‘키드 팜벨레’ 세르반테스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리드미컬한 푸트웍과 탄력이 넘치는 능숙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컨트롤했고, 특히 허리를 이용한 공수연결이 뛰어나 아웃복서이면서도 자유자재로 인-아웃을 반복하며 교본과도 같은 복싱을 구사했다.
게다가 장신에서 터져나오는 강력한 라이트스트레이트와 절묘한 타이밍에 날리는 레프트카운터펀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정확히 요격하는 그의 연타는 가히 예술작품같았다.
전임 로체와 프레이저는 물론 동방의 맹주로 떠오른 이창길을 KO로 꺽어 6차방어에 성공한 뒤 논타이틀전에서 WBC 챔피언이었던 페드로 아디게마저 5R KO로 제압해 당대의 넘버원으로 군림했다.
이후 일본으로 날아가 가도다 신이찌를 상대로 8차례나 다운을 빼앗으며 공포를 안겨주었고 라이트급의 명장 로베르토 두란과 승패를 나누어 가질 만큼 강호였던 에스테반 데 헤수스를 완벽하게 제압해 이 체급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세르반테스도 11차방어전에서 17살의 <윌프레드 베니테스>에게 일격을 당하며 권좌에서 물러나 화려했던 1차 왕조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불과 14살에 프로무대에 뛰어든 베니테스는 복싱의 명가인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알프레도 에스칼레라와 에스테반 데 헤수스를 지도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이 복싱에 입문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복싱감각과 뛰어난 스피드, 고급스럽기까지한 디펜스능력을 갖춘데다가 재빠른 레프트잽과 강력한 라이트펀치까지 장착해 조숙한 천재로 불리웠다.
두 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세르반테스와의 재전 지시를 거부하고 당시 파이트머니가 높았던 웰터급으로 월장해버려 이 체급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았으나 4년 가까이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특급챔피언을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평가받을만 했다.
한편, 후지 다케시가 박탈당했던 <WBC> 타이틀은 필리핀의 <페드로 아디게>가 홈링에서 미국의 아돌프 프루이트를 누르고 차지했다.
한때 연패에 빠지며 그저그런 복서로 전락할뻔 했던 아디게는 우리나라의 강부영을 꺽고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소 뻣뻣한 스타일로 기술적으로도 대단치 않았으나 라이트펀치의 위력이 뛰어났고 타고난 근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전진스텝을 밟았다.
두달 뒤 프루이트와의 논타이틀전에서 KO패를 당해 망신살이 뻗치더니 로마까지 날아가 <브루노 아르카리>와 접전 끝에 벨트를 풀어 단명하고 말았다.
유난히 이 체급과 인연이 많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세 번째 챔피언으로 오소독스한 유럽복싱의 전형이었던 사우스포의 아르카리는 라이트잽으로 상대를 견제하고 정확하고 날카로운 레프트스트레이트로 포인트를 올리는 교과서적인 복싱을 구사했다.
약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번 불이 붙으면 앞뒤가리지 않고 맹공을 펼쳤고 체력안배에 능한데다가 정신력도 뛰어나 포기가 빠른 여느 이탈리아 복서들과는 달랐고 언뜻 보면 단순히 힘이 좋은 유럽복서같지만 어떠한 상대이든지 자신의 페이스로 유도할 줄 아는 지능적인 복싱을 펼쳤다.
4년간 8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그 중 5번은 KO승으로 장식하기까지 했으나 챌린저리스트의 퀼리티가 낮아 동시대에 WBA 챔피언이었던 로체나 세르반테스에 비해서는 박한 대접을 감수해야 했다.
명예롭게 타이틀을 반납하고 웰터급 월장을 선택했으나 연승가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자 그대로 은퇴하고 말았다.
비어 있던 왕좌는 유럽을 평정하고 있었던 스페인의 <페리코 페르난데스>가 일본의 라이언 후루야마를 꺽고 차지했다.
업라이트스타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발을 많이 쓰며 끊임없이 상대의 안팎을 들락거렸던 페르난데스는 기습적으로 날리는 라이트펀치가 위협적이었지만 한번 수세에 몰리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방어전 상대였던 <사엔삭 무앙수린>을 2전짜리 애송이로 생각하고 태국까지 날아갔다가 무에타이 출신답게 무지막지한 강펀치에 만신창이가 되면서 8R KO로 무너졌다.
불과 3전만에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던 무앙수린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크고 발달된 골격을 바탕으로 무에타이 선수시절 상대의 늑골을 부러뜨리거나 내장파열의 중상을 입히는 괴물로 군림했었다.
복싱관점으로 봤을땐 매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스타일로 푸트웍도 거의 없어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 무에타이 스타일의 무시무시한 파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첫 방어전에서 라이언 후루야마를 판정으로 누르고 15R를 뛸 수 있는 체력을 입증했지만 스페인에서 벌인 <미구엘 벨라스케스>와의 2차방어전에서 두차례나 다운을 빼앗으며 압도하던 중 4R 종료 공이 울린 뒤 벨라스케스의 목덜미를 후려쳐 쓰러뜨리는 바람에 실격패를 선언당했다.
다분히 홈링의 편파적인 판정 덕분에 32살의 나이로 왕좌에 오른 벨라스케스는 라이트급시절 켄 부캐넌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었을 정도로 기본기를 잘 갖춘 인파이터였으나 5개월 뒤 재회한 <사엔삭 무앙수린>에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으며 4차례나 다운을 허용한 끝에 2R만에 리벤지를 당해 어거지로 빼앗은 타이틀을 돌려 주었다.
1960~70년대 중남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이 체급은 명장이었던 니콜리노 로체와 안토니오 세르반테스를 배출한 데 이어 기록의 사나이들인 최연소 세계챔피언 윌프레드 베니테스, 도합 16R만에 세계타이틀을 거머쥔 사엔삭 무앙수린까지 등장하면서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인기체급으로 정착해 갔다.
윌프레드 베니테스가 박탈당한 <WBA>챔피언벨트는 절치부심하며 왕좌 복귀를 노리던 <안토니오 세르반테스>가 1977년 6월 과거 4차방어전 상대였던 카를로스 히메네스를 5RTKO로 꺽고 도로 찾아왔다.
이로써 15개월만에 2차왕조의 문을 열어 젖힌 그는 여전히 빼어난 기량과 위력적인 연타를 앞세워 제2의 무앙수린을 꿈꾸던 태국의 폭격기 통타 키아트바유팍디를 적지에서 6R만에 요절낸 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까지 날아가 노먼 세가페인을 9RKO로 가라앉히며 예전과 다름없는 굳건한 난공불락의 아성을 구축했으나 어느덧 34살에 접어든 그의 복싱도 서산에 해가 지듯이 미구엘 몬티야와의 4차방어전을 기점으로 점차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화려한 연타보다는 교묘한 히트앤클린치를 반복하며 특유의 테크닉과 고도의 노련미에 의존하게 됐다.
이로 인해 당대의 라이트급 최강 로베르토 두란의 도전을 기피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우리나라에서 김광민을 제압한 뒤 다시 도전해 온 몬티야에게 압승을 거두어 잠시 노장의 건재를 과시하는 듯 했지만 이듬해 8월 벌어진 7차방어전에서 미국의 신예 <아론 프라이어>의 폭풍같은 강타 앞에 4R만에 무릎을 꿇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함락당해 장장 8년여 동안 이어져 온 왕조에 종지부를 찍었다.
참혹했던 최후 때문에 후대에 다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당대의 막강한 도전자들을 상대로 통산 16차방어의 대기록을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조차했던 뛰어난 복싱실력으로 1970년대 초 별볼일 없었던 Jr.웰터급의 인기를 단번에 끌어올린 그의 공로는 실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추어시절 하워드 데이비스의 그늘에 가려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자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프라이어는 들짐승같이 거칠고 사나운 복싱으로 KO가도를 달리며 복싱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교적 단신에 밸런스도 좋지 못해 공격자세가 엉성한데다가 와이드오픈에 공수전환까지 늦어 빈틈투성이였지만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투지넘치는 전진스텝, 상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매서운 눈과 뛰어난 푸트웍, 한번 터지면 걷잡을수 없이 폭발하는 스피디한 연타는 많은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만큼 강력했다.
특히 아무렇게나 난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정확하게 들어맞는 무수한 연타는 동물적 감각을 자랑하는 프라이어복싱의 정수였는데 이는 그만큼 자신의 복싱에 확신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살인펀처였던 개탄 하트를 비롯한 도전자들을 차례대로 KO시켜 나갔고 아마추어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던 슈거 레이 레너드와의 경쟁심리 때문에 빅매치를 고집하던 중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4관왕를 노리던 알렉시스 아르게요와 충돌하여 신들린듯한 연타세례를 퍼붓고 14R에 레퍼리스톱을 끌어내 일약 세르반테스를 뛰어넘는 역대급 챔피언으로 떠올랐다.
이후 전 WBC 챔피언 김상현을 가볍게 요리한 그는 열달만에 재대결에 나선 아르게요를 또 다시 깨끗한 10R KO로 제압해 1차전의 약물복용설을 일축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프라이어는 WBA로부터 지명방어전 이행 지시를 받고도 이에 불응한 채 8차방어를 끝으로 갑자기 은퇴를 선언해 의구심을 갖게 했는데 바로 이 때부터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프라이어가 떠나간 왕좌에는 예상대로 내일의 챔피언으로 각광받았던 <조니 범푸스>가 아르헨티나의 로렌조 가르시아를 누르고 등극했다.
미국의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코트로 인해 금메달의 꿈을 접었던 범푸스는 장신의 우수한 신체조건에 발군의 좌우컴비블로우와 경쾌한 푸트웍을 고루 갖춘 테크니션이었는데 긴 리치로 쏘아대는 잽은 독침을 방불케했고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카운터펀치는 인화성이 아주 강했으나 치명적인 결함이었던 유리턱때문에 첫 방어전에서 <진 해처>의 레프트훅 한방에 역전 KO패를 당해 예상외로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텍사스출신의 해처는 미친개로 불리울 정도로 힘을 앞세운 강한 압박이 특기였고 주무기인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위력적이었으나 허술한 수비로 인해 첫 방어전에서 개운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던 아르헨티나의 <우발도 사코>와 7개월만에 조우해 수많은 잔펀치를 허용하더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9R만에 닥터스톱이 걸리고 말았다.
레프트의 활용이 좋고 좌우어퍼컷이 위력적이었던 사코는 파워 부족이 흠이었는데 8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인 <파트리치오 올리바>의 핸드스피드를 따라 잡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니다 왕좌를 넘겨준 뒤 약물복용문제까지 겹치면서 은퇴했다.
이 체급의 전통적 강국이었던 이탈리아 태생의 올리바는 모스크바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선배인 산드로 로포포로와 마찬가지로 스피드가 빠르고 푸트웍이 좋은데다가 날카로운 잽까지 소유해 상대의 접근을 차단하며 자신의 공격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지만 터프한 상대에게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로인해 3차방어전에서 사코의 대타로 나선 <후안 마틴 코히>의 엄청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3R만에 고꾸라지는 참극을 당하며 타이틀을 날렸다.
WBC쪽은 타이틀 탈환에 성공한 <사엔삭 무앙수린>이 비로소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며 WBA 챔피언 세르반테스와 쌍벽을 이루었는데 우선 지명도전자였던 먼로 브룩스를 최종회에 때려잡은 뒤 2관왕을 노리던 거츠 이시마쓰의 야욕을 분쇄하며 강력한 하드펀처로서의 위용을 떨쳤다.
특히, 상대의 펀치를 무력화시키는 터프니스와 회초리같은 레프트훅은 탁월한 디펜스와 맷집을 보유한 사울 맘비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1977년 한해에만 여섯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는 괴력을 발휘한 무앙수린은 도무지 적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면서 광고와 TV 출연이 부쩍 늘어난데다가 지나친 여성 편력과 눈수술에 이은 여배우와의 결혼 등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훈련을 게을리해 8차방어전을 앞두고 스스로 허물어져 갔다.
이 와중에 기회를 잡은 우리나라의 <김상현>은 허세로 가득찬 무앙수린을 서울로 불러들여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와 레프트카운터블로우로 철저히 유린한 끝에 13R TKO승을 거두고 화려한 대관식을 가졌다.
로컬복서로서 건실한 성적을 쌓아 왔던 김상현은 중앙무대 활약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웠는데 사우스포의 카운터펀처로서 잘다듬어진 기본기에 장신에서 내리꽂는 레프트스트레이트와 예측을 불허하는 보디블로우가 매서웠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은 첫 방어전에서 피츠로이 귀세피를 상대로 KO패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원인이 되었다.
적지에서 일본의 요가이 마사히로에게 장쾌한 KO승을 거두어 왕좌 등극이 결코 요행이 아니었음을 보여줬으나 3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였던 미국의 <사울 맘비>에게 14R에서 역전 KO패를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멧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맘비는 재빠른 스텝을 밑천으로 백스텝을 밟거나 철저히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는데 레프트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라이트스트레이트로 타격하는 아웃복서의 전형이었다.
비록 지저분한 전적을 가졌지만 제법 스피드도 있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더킹과 위빙에 능해 두란이나 세르반테스같은 강타자로부터도 큰 주먹을 맞지 않았을 만큼 수비력이 좋았다.
첫 방어전에서 마약밀매혐의로 곤욕을 치른 에스테반 데 헤수스를 13R TKO로 제압한 뒤 리매치를 요구했던 김상현을 끝까지 따돌린 채 돈 킹의 후광으로 통산 5차방어에 성공하는 예상밖의 업적을 쌓았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53살까지 현역으로 뛴 것도 모자라 8년 뒤 실제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링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맘비를 밀어내고 왕좌에 오른 미국의 <르로이 헤일리>는 척추부상을 딛고 프로데뷔 11년만에 정상정복에 성공한 대기만성의 복서였다.
볼품없는 펀치력에도 불구하고 변칙복싱으로 한몫했지만 인기는 물론 기량면에서도 WBA 챔피언이었던 프라이어의 상대가 되지 못해 2류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했다.
맘비와의 리매치에서 승리한 뒤 3차방어전에서 <브루스 커리>에게 초반의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타이틀을 잃었다.
동시대에 웰터급 통합챔피언 도널드 커리와 함께 사상 첫 형제챔피언으로 화제가 됐던 커리는 프로데뷔 후 강력한 레프트훅과 빠른 발을 이용한 아웃복싱으로 연승가도를 달리다가 윌프레드 베니테스에게 연거푸 브레이크가 걸려 평범한 복서로 전락할뻔 했으나 로니 쉴스를 꺽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전임 헤일리의 도전을 뿌리친 뒤 과도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에 무리한 온 탓에 3차방어전에서 동국의 <빌리 코스텔로>에게 거의 전라운드를 압도당한 채 맥없이 물러났다.
기술적인 면이나 내구력이 대단치 않아 무패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평가가 높지 않았던 코스텔로는 타이밍 좋은 레프트훅과 크로스카운터만큼은 눈에 뛸 정도로 강력했고 더블펀치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톱랭커였던 쉴스를 비롯해 전챔피언인 맘비와 헤일리를 모두 대차의 판정으로 물리쳐 잠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무명의 <로니 스미스>를 맞아 초반부터 캔버스를 허우적거리다가 도합 5차례의 다운을 내주며 8RTKO로 패퇴했다.
언더독을 깨고 코스텔로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스미스는 과도한 스웨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잦았지만 뛰어난 유연성을 바탕으로 아웃복싱에 능하면서도 찬스포착이 빠르고 연타의 집중력이 눈길을 끌었으나 9개월만에 가진 첫 방어전에서 <레네 아레돈도>의 라이트스트레이트 한방에 가라앉아 금새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멕시코 출신으로는 무려 53년만에 이 체급을 정복한 아레돈도는 장신의 하드히터로서 가냘퍼 보이는 몸매에도 불구하고 타점높은 스트레이트와 스냅이 들어간 화려한 강타를 자랑했는데 역시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하마다 쓰요시>에게 180초만에 실신해버려 충격을 주었다.
마치 후지 다케시가 재림한 것처럼 야성미 넘치는 강펀치를 선보였던 하마다는 일본 최다인 15연속 KO승의 주인공으로 접근전에서 만큼은 우악스러울 정도로 강했지만 세기가 떨어지는데다가 발도 없는 편이어서 자국의 호평만큼 유능한 복서는 아니었다.
2차방어전에서 설욕에 나선 <레네 아레돈도>에게 피투성이가 된 채 6R에서 레퍼리스톱이 걸려 타이틀을 상실했고 무릎부상으로 은퇴한 뒤에는 TV해설가와 복싱라이터를 거쳐 지금은 테이켄 프로모션의 대표로 있다.
한편, 1983년말 신설기구인 <IBF>로부터 초대챔피언으로 지명된 <아론 프라이어>는 은퇴를 번복하고 이듬해 6월 닉 푸르라노를 상대로 링복귀에 나섰으나 이미 총기가 사라진 모습이었고 9달 뒤 동국의 게리 힌튼과 갖은 두 번째 방어전에서는 가까스로 판정승을 거둘 정도로 그의 복싱은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후 이혼과 마약중독, 프로모터와의 불화 등 악재가 이어져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타이틀 방어에 나서지 못하게 되면서 IBF에서 조차도 버림받아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필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레너드가 오랜 공백을 비웃으며 마빈 해글러를 꺽고 화려하게 컴백한데 자극받아 프라이어는 1987년 8월 2년반만에 다시 한번 링복귀에 나섰지만 무명의 보비 조 영에게 7RTKO패를 당해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고 왼쪽눈까지 크게 다치면서 사실상 링을 떠나고 말았다.
은퇴 후에는 마약을 완전히 끊고 목회자로 변신했으며 틈틈이 트레이너로 활동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석이 된 왕좌에는 프라이어에게 선전을 펼쳐 유명세를 탔던 사우스포 <게리 힌튼>이 레예스 크루스를 꺽고 올랐는데 민첩한 카운터펀치가 뛰어났고 때로는 거칠게 시합을 이끌어가며 맹렬한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수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불과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조 맨리>와 팽팽한 승부를 벌이다 후반에 덜미가 잡혔다.
아마추어시절 프랭키 랜들을 꺽고 모스크바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을 정도로 실력파였던 맨리도 범푸스와 마찬가지로 떠밀리다시피 프로에 전향했는데 탄탄한 기본기에도 불구하고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 크게 성장하지 못하다가 하워드 데이비스를 누르고 잡은 기회를 살려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4개월 뒤 역시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영국의 <테리 마시>에게 10R만에 무릎을 꿇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올드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거함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와 괴물 사엔삭 무앙수린이 퇴장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이 체급은 1980년대 들어서도 폭풍같은 연타를 앞세운 아론 프라이어의 등장으로 계속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이어갔지만 알렉시스 아르게요와의 2연전을 스윕하고 스타덤에 올랐던 그가 기대와 달리 스스로 자멸하면서 기억조차 하기 어려운 고만고만한 복서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해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실수를 만회하고 1년만에 <WBC>왕좌를 탈환한 <레네 아레돈도>는 한물간 줄 알았던 미국의 <로저 메이웨더>에게 6R에서만 세번이나 캔버스를 뒹굴며 챔피언벨트를 넘겨줘 이번에도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라이트급을 건너 뛰어 2체급을 석권한 메이웨더는 아무래도 펀치력은 좀 떨어져 있었지만 이미 산전수전을 겪은 터라 블랙맘바답게 안정된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유연한 몸놀림과 경기운영은 확실히 노련해져 있었다.
긴 리치를 살린 레프트잽과 스트레이트가 여전히 잘 놀았고 상대의 레프트를 스웨이한 뒤 후려치는 라이트펀치는 그 타이밍이 절묘해 위력이 배가됐다.
만만치 않았던 실력파들을 상대로 한 네차례의 방어전에서 연이어 압승을 거두며 과거에 보여줬던 유리턱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Jr.라이트급 시절 수모를 안겨준 구원의 숙적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에게는 또 다시 클래스의 차이를 절감한 채 10R TKO로 패해 무관이 되었고 이후로도 10년 가까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왕좌 복귀를 노렸지만 더 이상 메이저챔피언에 오르지 못했다.
은퇴한 뒤로는 형과 함께 조카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를 지도해 현역 최고의 복서로 키워내기도 했다.
무패의 전적으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해 더욱 더 빛나는 업적을 세운 차베스는 돈 킹을 만나 비로소 슈퍼스타로 발돋움하며 세계프로복싱을 주도했는데 거듭된 월장으로 전보다 몸놀림은 다소 부족해졌지만 강력한 대쉬를 앞세운 타이트한 압박과 상대의 도주로를 차단한 채 터뜨리는 다양한 컴비블로우는 ‘클리아칸의 사자’다운 강렬한 포스를 내뿜었다.
1990년 3월 WBC IBF 통합타이틀전에서 멜드릭 테일러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리다가 후반에 뒷심을 발휘해 최종회에서 회심의 라이트훅으로 테일러를 쓰러뜨리고 종료 2초전 레퍼리 스톱승을 거두어 일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신이 빚은 복서로 불리우는지를 입증했다.
WBC 톱랭커였던 우리나라의 안경덕에게 3R TKO승을 거둔 뒤 곧바로 IBF쪽에서도 지명방어전을 요구받자 IBF 타이틀을 내던진 차베스는 이렇다할 호적수가 없었던 탓인지 로니 스미스와의 6차방어전 이후로는 지극히 경험에 의존하는 복싱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WBO 타이틀을 박탈당한 엑토르 카마초와의 철지난 라이벌전에서 대승을 거둔 데 이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상대였던 2관왕 그렉 호건마저 역대 최고인 13만의 대관중 앞에서 5R만에 요리해 85연승을 구가하며 살아있는 신화로 군림했지만 4체급 석권에 욕심을 부리고 1993년 9월 WBC 웰터급 챔피언 퍼넬 위태커와의 세기의 대결(?)에 나섰다가 경기내내 테일러보다 더 빠르고 교묘한 위태커의 아웃복싱에 철저히 농락당하고도 편파판정으로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해 전승신화가 깨지고 말았다.
이후 노쇠의 기미가 역력해진 차베스는 결국 이듬해 13차방어전에서 톱콘텐더였던 미국의 <프랭키 랜달>에게 생애 첫 다운까지 당하며 91전만에 첫 검은별을 달아 그도 역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조 루이스의 세계타이틀전 최다승인 26승과 동률을 이루는데 만족해야 했다.
놀라운 업셋으로 차베스시대의 엔딩을 재촉한 랜달은 골든글러브 5회 우승의 화려한 아마추어전적에도 불구하고 프로전향 후 에드윈 로사리오와 프리오 라모스에게 번번히 브레이크가 걸려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철저하게 다져진 기본기와 교과서적인 원투스트레이트, 침착하고 섬세한 경기운영으로 재기를 노리던 로사리오를 리벤지한 뒤 차베스마저 잡아내 복싱의 의외성을 실감케 해주었던 복병중의 복병이었다.
비록 백여일만에 재회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에게 8R부상판정패를 당해 단명에 그쳤지만 2차전에서도 여러차례 차베스를 궁지에 몰아 넣어 천적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차베스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WBA>타이틀은 <후안 마틴 코히>가 자신의 우상이었던 카를로스 몬손처럼 이탈리아 원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챔피언을 꺽고 왕좌에 올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세련된 복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릴 때 익힌 스트리트파이트의 영향으로 두둑한 배짱과 끈질긴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했던 그는 때로는 지능적인 반칙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터프했다.
사우스포로서는 드물게 레프트훅의 파괴력이 뛰어났고 한번 잡은 찬스는 놓치는 법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연타의 집중력이 좋았다.
또한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스태미나가 좋아 후반에도 펀치력이 살아있었고 부실한 내구력과 빈약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따라 가드를 달리하며 나름대로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줬다.
왕좌에 오른 직후 간염으로 인해 공백을 갖은 뒤 논타이틀전을 거쳐 10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톱랭커였던 우리나라의 이상호를 역시 레프트훅 한방으로 2R KO시킨 뒤 후일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터프가이 히라나카 아키노부의 강펀치에 죽다가 살아났지만 4차방어전에서 투타임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를 대차의 판정으로 눌러 조명을 받기 시작했으나 사람의 일은 알수가 없는 법이어서 5개월 후 미국의 강타자 <로레토 가르사>에게 근소한 차로 석패해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178cm의 장신에서 뻗어져 나오는 라이트스트레이트와 레프트훅이 강렬했던 가르사는 훈련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전도가 유망했지만 뾰족한 턱에 가드까지 엷어 디펜스에 결함이 있었다.
이로 인해 2차방어전에서 불사조같은 역전의 노장 <에드윈 로사리오>의 강타에 걸려들어 경기시작 12초만에 캔버스 신세를 지더니 네차례나 다운을 허용한 끝에 3R TKO로 무너져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1980년대 라이트급에서 세차례나 세계챔피언을 지냈던 로사리오 역시 예전에 비해 집중력이나 움직임이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력적인 파워와 유연한 스윙을 자랑해 WBC챔피언인 차베스와 통합전을 겸한 리매치가 거론되었으나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강타자 <히라나카 아키노부>를 맞아 초장부터 난타전을 벌이다가 불과 92초만에 서있는 채로 충격적으로 실신해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1993년 은퇴 후 4년만에 컴백해 5연승을 달리며 한때 WB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오스카 델 라 호야의 도전자로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마약과 알콜중독에 버무려져 겨우 34살의 젊은 나이에 동맥류비대증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소설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우락부락한 외모를 지닌 이변의 주인공 히라나카는 다소 거칠고 지저분한 싸움꾼 스타일로 동국의 후지 다케시나 하마다 쓰요시와 마찬가지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인파이팅과 해머같은 단발펀치로 3년전에도 이미 코히를 두 번이나 쓰러뜨렸을 만큼 공포스러웠지만 만만하게 보고 고른 필리핀의 <모리스 이스트>에게 뜻밖의 고전을 펼치더니 11R에서 카운터펀치에 가라앉아 첫 방어에 실패했고 경기 후 뇌출혈 증세까지 보여 그대로 은퇴했다.
링지로부터 1992년 최고의 KO에 선정될만큼 화려한 대관식을 갖은 이스트는 사우스포의 카운터펀처로 19살의 어린 나이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계챔피언에 올라 CNN방송의 도움으로 어릴적 헤어졌던 미국인 아버지를 해후하는 감격을 누렸지만 넉달 뒤 왕좌복귀를 벼르고 있던 <후안 마틴 코히>의 레프트훅을 턱에 맞고 무너져 역시 첫 방어에 실패했다.
2년반만에 왕좌에 복귀한 코히는 필살기인 레프트 펀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방어횟수를 거듭했지만 홈링에서 벌인 에더 곤살레스와의 5차방어전에서 사실상 일찌감치 KO패한 경기를 세컨드는 물론 레퍼리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역전 KO승을 거두는 사상 최악의 강도짓(?)을 자행해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열린 곤살레스와의 리매치에서 선제다운에도 불구하고 3R에서 재차 역전 KO승을 거둔 뒤 차베스에게 밀려난 <프랭키 랜달>에게 세차례나 다운을 당하며 완패해 7차방어에 실패했다.
아마추어시절 영국을 대표하는 복서로 활약했던 <IBF> 챔피언 <테리 마시>는 체스챔피언출신으로 왕실해병대를 거쳐 소방구조대로 복무했던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는데 유럽스타일의 전형으로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이었지만 파워 부족이 절대적인 흠이었다.
첫 방어전에서도 가메다 아키오를 가볍게 누르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중 뇌전증 진단을 받아 무패로 은퇴한 챔피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소형탱크라고 불리우던 무패의 프랭키 워렌을 최종회에 리벤지하고 왕좌에 오른 미국의 <제임스 맥거트>는 유연한 허리와 타점높은 스트레이트를 지닌 기교파였는데 승부근성이 좋고 찬스포착에도 민감해 남다른 결정력을 자랑했다.
첫 방어전에서 하워드 데이비스를 초살시킨 뒤 2차방어전에서 한참 물이 오른 <멜드릭 테일러>의 빠른 핸드스피드에 밀려 고배를 들었지만 3년 뒤 WBC 웰터급 정상정복에 성공해 역시 실력파임을 증명했다.
불과 17살의 나이에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테일러는 단신의 핸디캡을 천부적인 스피드와 현란한 테크닉으로 커버했던 아웃복서로 감각적인 디펜스능력과 폭죽처럼 터지는 연타는 선배인 슈거 레이 레너드를 떠오르게 할 만큼 탁월했다.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당대 최강인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와 조우했지만 끝까지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분루를 삼켰다.
IBF의 지명방어전 요구에 미련없이 타이틀을 반납한 차베스의 후임에는 전 WBC챔피언 메이웨더를 9R에 레프트훅 일발로 실신시킨 콜롬비아의 <라파엘 피네다>가 등극했다.
단발의 파괴력과 왕성한 스태미나만 갖고는 다체급 석권을 노리고 진군해 온 스피드스터 <퍼넬 위태커>의 적수가 되지 못해 2차방어에 실패하며 단명에 그쳤다.
이미 트리플크라운의 야망을 갖고 있었던 위태커는 징검다리에 불과했던 이 체급에서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곧바로 웰터급으로 월장해 아쉬움을 주었다.
다시 주인을 잃은 챔피언벨트는 미국의 신예 <찰스 머레이>가 동국의 로드니 무어를 제압하고 허리에 감았다.
아마추어 출신으로 컴비블로우가 다양한데다가 보기보다 힘이 좋고 매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기대를 모았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제이크 로드리게스>에게 석패해 예상보다 일찍 사그라들었다.
한편, 신설 기구인 <WBO>쪽은 초대챔피언으로 푸에르토리코의 <엑토르 카마초>를 옹립했는데 그는 은퇴한 지 4년이 넘은 미국의 레이 맨시니를 불러내 춤추는듯한 경쾌한 발놀림과 리드미컬한 잽으로 근소한 차의 승리를 거두고 빛바랜 3관왕에 올랐지만 중량급다운 펀치력이나 적극적인 파이팅과는 거리가 멀어진 카마초는 수비에 있어서는 변함없이 빈틈이 없었지만 오직 빠른 발에만 의존하는 아웃복싱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두차례의 방어전 역시 잽과 푸트웍으로 선방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그렉 호건>의 끈질긴 접근전에 생애 첫 검은별을 달면서 일단 왕좌에서 물러났다.
경기 후 마리화나 양성반응이 나타나 승리가 반감된 호건은 여전히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한몫했지만 3개월 후 다시 만난 <엑토르 카마초>에게 아쉽게 패해 업셋을 일으킨 데 만족해야 했다.
왕좌에 복귀한 카마초는 차베스와의 통합전을 고집하며 방어전을 기피해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차베스에게 패한 뒤로는 48살까지 마이너기구 챔피언을 전전하며 슈거 레이 레너드, 로베르토 두란과 노인정 매치로 관심을 끌다가 절도 및 폭행사건으로 구설에 오르더니 3년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IBF 라이트급 챔피언 출신인 지미 폴을 2RKO로 꺽고 빈 자리를 꿰찬 멕시코의 떠오르는 샛별 <카를로스 곤살레스>는 비교적 큰 키의 하드펀처로 세차례의 방어전을 모조리 KO로 쓸어담으며 차베스의 후계자로까지 촉망받았으나 상대적으로 무딘 발로 인해 미국의 <잭 파디야>에게 접전 끝에 패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프로데뷔 1년만에 KO패의 충격으로 링을 떠났다가 5년만에 복귀한 경력 때문에 링지로부터 1993년 최고의 컴백에 선정되었던 파디야는 제법 푸트웍이 좋고 스피드를 겸비한데다가 접근전에도 강해 네차례의 방어전에서 모두 압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으나 이듬해 프로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은 쉐인 모슬리와의 스파링 도중 강펀치를 맞고 머리에 이상을 느껴 불행하게도 더 이상 링에 오르지 못했다.
아론 프라이어가 은퇴한 뒤 빈번한 챔피언 교체로 지리멸렬했던 이 체급은 1990년대 들어 펀치력과 테크닉, 스태미나의 3박자를 모두 갖춘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가 신이 빚은 복서라는 찬사를 받으며 롱런가도를 달려 다시 한번 팬들의 관심을 돌려 놓는데 성공했다.
비록 절대적인 라이벌 부재로 눈에 띄는 빅카드는 별로 없었지만 헤비급의 마이크 타이슨마저 사라진 1990년대 전반기 프로복싱은 차베스의 연승신화 창조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94년 9월 프랭키 랜달과의 재전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의 버팅으로 어렵게 <WBC>왕좌에 복귀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는 멜드릭 테일러와 토니 로페즈를 잇달아 KO로 제압해 일단 명예회복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트레이드마크인 철저한 압박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드가 뚫려 연타를 허용하는 장면까지 이어져 박력 넘치던 예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상징한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5차방어전에서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차베스는 4RTKO패를 당하며 보기에도 안스러울 정도로 참혹한 신구교대극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골든보이 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알린 호야는 이미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신체조건에 연승가도를 질주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이 시기는 탁월한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아웃복싱이 절정에 달해있던 때로 찬스시 터지는 폭발적인 연타와 경기를 주도하는 능력, 타고난 링감각 등은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로 대접받기에 충분했다.
첫 방어전에서 WBC 라이트급 롱런챔피언이었던 무패의 미구엘 앙헬 곤살레스를 가볍게 일축한 뒤 곧바로 웰터급으로 월장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노웅 차베스의 복싱인생에 사실상의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최고의 업적이었다.
WBC로부터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받은 차베스는 곤살레스를 상대로 재집권을 노렸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끝내 왕좌에 복귀하지 못한 채 결국 2005년 링을 떠났다.
복싱왕국 멕시코가 배출한 최고의 챔피언으로 말년에 탈세와 마약조직 연루설 등으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지만 1980년 프로데뷔 이래 3관왕에 오르며 14년간 무패 행진을 벌인 전과가 돋보였고 통산 16차방어의 위업 속에 강한 체력을 앞세운 지속적인 전진스텝과 강한 압박으로 이 체급의 조류를 바꾸어 놓을 만큼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IBF>챔피언 <제이크 로드리게스>는 접근전을 선호하는 사우스포로 보디공격에도 능해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했으나 러시아의 <코스티아 추>에게 경기시작 10초만에 캔버스신세를 지더니 6RTKO로 패퇴해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냈다.
조선시대 말기 러시아로 이주한 한국계 3세 출신인 추는 아마추어에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뒤 한때 우리나라에서 프로데뷔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결국 호주행을 선택했다.
초기에는 오랜 아마추어생활로 인해 단조로운 스타일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펀치력과 잔인한 연타로 14전만에 세계정상에 올라서며 이 체급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과 두둑한 배짱으로 상대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 적절한 터프니스와 빠른 핸드스피드, 그리고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링장악력을 선보였는데 특히 라이트펀치의 위력은 일발파워를 갖춘 하드펀처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강력했다.
첫 방어전에서 로저 메이웨더에게 압승을 거둔 뒤 3연속 KO방어를 내달렸으나 6차방어전에서 뜻밖의 암초였던 미국의 <빈스 필립스>에게 크로스카운터를 맞고 흔들리더니 예상밖의 KO패를 당해 좌절하고 말았다.
그 뒤 혈액검사를 통해 빈혈증이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 추는 식이요법과 훈련을 병행하며 후일을 도모해야만 했다.
링지로부터 1997년 최고의 업셋과 컴백부문에 동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필립스는 아마추어로 활동하다가 비교적 늦게 프로에 넘어왔는데 단점인 낮은 가드에도 불구하고 주먹에 파워가 붙어 있고 정교한 컴비블로우를 자랑하는 강타자였다.
미키 워드와 프레디 펜들턴같은 중견들을 KO로 잡아내 기대를 모았으나 4차방어전에서 동국의 <테론 밀레트>에게 5RTKO로 패해 만년에 오른 왕좌에서 물러난 뒤 승패를 반복하는 평범한 복서로 전락했다.
양대기구를 석권하며 <WBA>챔피언으로 재임하고 있었던 <프랭키 랜달>은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차베스의 천적임을 자임하며 러버매치를 위해 추파를 던졌지만 차가운 외면을 받으며 3차방어전에서 전임 <후안 마틴 코히>에게 5R부상판정패를 당해 왕좌를 돌려주고 말았다.
끈질긴 집념으로 또 다시 왕좌복귀에 성공한 코히는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순발력은 물론 체력에도 무리가 따르면서 공수분리의 경향이 확연해졌고 더 이상 교묘한 반칙(?)도 통하지 않아 7개월 뒤 홈링에서 다시 만난 <프랭키 랜달>에게 완벽하게 수술당하며 영원히 야인으로 물러났다.
비록 차베스와 동시대에 활약한 탓에 세차례나 세계챔피언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챔피언으로 머물렀고 때로는 지저분한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통산 10차방어의 업적을 기록한 코히는 사우스포이면서도 끈질긴 승부사적 기질과 초강력 레프트훅을 앞세운 개성넘치는 챔피언이었다.
코히전 직후 도핑테스트에서 코카인과 테오필린이 포함된 약물이 검출돼 타이틀 박탈설이 돌았던 랜달은 모로코의 터프가이 <칼리드 라힐로우>와의 첫 방어전에서 11R에 소나기펀치를 맞고 레퍼리스톱으로 단명한 뒤 차베스의 연승신화를 깬 사나이로서 쓰리타임 챔피언의 위엄도 잊은 채 저니맨신세로 급락해버려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프랑스에서 데뷔한 라힐로우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출신답게 충실한 기본기와 함께 상대를 모는 재주가 있었지만 보기보다 소심하고 내구력도 부실해서 3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인 미국의 <삼바 미첼>에게 4차례나 다운을 당하며 완패해 이변의 주인공으로 그쳤다.
이 체급에서도 기구의 난립 덕분에 삼류나 다름없었던 푸에르토리코의 <새미 푸엔테스>가 엑토르 로페스의 대타로 나서 멕시코의 피델 아벤다노를 2RTKO로 누르고 비어 있던 <WBO>왕좌에 올랐다.
중남미 선수 특유의 유연성과 스피드를 지닌 푸엔테스는 제법 좋은 펀치력도 소유하고 있었으나 부실한 디펜스와 저질 체력으로 인해 이미 동네북신세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대타의 기회를 준 로페스를 꺽어 잠시 고개를 끄덕이게 하더니 2차방어전에서 이탈리아의 <지오바니 파리시>에게 8RTKO로 패해 세계챔피언에 명함을 내민 것에 만족해야 했다.
기세좋게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해 차베스의 아성에 도전했다가 높은 벽을 실감했던 파리시는 선수층이 얇은 WBO로 방향을 틀어 기어코 2관왕을 달성했는데 홈링에서 만만한 상대를 골라 호쾌한 타격전으로 방어횟수를 늘려나가며 인기를 이어갔지만 첫 방어전에서 무승부로 틀어 막았던 멕시코의 <카를로스 곤살레스>의 끈질긴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9R만에 스스로 경기를 포기해 6차방어에 실패하며 왕좌에서 내려왔다.
은퇴한 지 3년만에 자동차 사고로 인해 41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해 그를 사랑했던 자국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절치부심 재기에 성공해 무려 5년만에 왕좌에 복귀한 곤살레스는 겨우 한숨 돌리는 듯 싶었지만 1년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당시 18연속 KO승을 달리던 <랜달 베일리>의 전율적인 레프트훅을 맞고 이 체급 최단시간인 41초만에 넉아웃되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차베스와 곤살레스 간의 무승부로 인해 1년 넘게 비어 있던 <WBC>왕좌는 차베스가 월장한 뒤 이미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코스티아 추>가 곤살레스에게 10R TKO승을 거두고 호야의 후임으로 등극했다.
투타임 챔피언에 오른 추는 IBF 챔피언 재임 시 보여준 경직된 파이팅을 효과적으로 완화한 공격기술로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는데 2차방어전에서 노욕을 부리며 돌아온 차베스를 마음껏 두들기며 6R TKO승을 거두어 견고한 아성을 구축한 뒤 사분된 이 체급의 천하통일을 위해 박차를 가했다.
먼저 WBA 챔피언 삼바 미첼을 압도하며 7R TKO승을 거둔 추는 9달 뒤 IBF 챔피언 잡 주다를 상대로 2R에 충격적인 KO씬을 찍어내며 3대기구 타이틀을 휩쓸어 아론 프라이어 이래 18년만에 링지로부터 이 체급의 리니얼 챔피언으로 인정받으며 본고장에서도 인정받는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두차례의 방어전을 더해 통산 7차방어에 성공한 뒤 2003년 갑작스러운 어깨부상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진 채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면서 WBC와 WBA 타이틀을 모두 박탈당해 아쉬움을 주었다.
이로 인해 미키 워드와의 트릴로지로 링을 뜨겁게 달구었던 불굴의 용사 <아투로 가티>가 기회를 잡아 톱랭커였던 지안루카 브란코를 누르고 무려 9년만에 2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난타전의 귀재에서 아웃복서로 돌아선 가타는 집요한 리드펀치와 경쾌한 스텝을 바탕으로 치고 빠지는 복싱을 구사하면서도 아랫체급에서 올라온 전임 세계챔피언들을 잇달아 KO로 잡아내 노련함을 과시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다체급 석권에 시동을 건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에게 6R만에 레퍼리스톱이 걸렸고 은퇴 후 2009년 가족과의 브라질 여행 중 의문사를 당해 충격을 주었다.
생애 최초의 PPV 시합에서 3관왕에 오르며 인기복서 대열에 합류한 메이웨더는 이전과 다름없는 빠르고 정확한 펀치를 구사하며 기가 막힌 복싱감각을 발휘했는데 이때만 해도 복싱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서 당분간 그의 천하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타이틀 방어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다관왕과 함께 빅머니를 노리며 웰터급으로 월장해버렸다.
<IBF> 챔피언 밀레트는 호쾌한 스윙의 강타자로 무딘 발이 단점이었는데 첫 방어에 성공한 뒤 1년 가까이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미국의 <잡 주다>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얀 피에트 베르그만을 꺽고 왕좌를 차지했다.
사우스포의 스피드스터였던 주다는 공격적인 위태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뛰어난 순발력에 감각적인 공수를 자랑했는데 전광석화처럼 터지는 컴비블로우는 마치 하드펀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지나친 자신감은 다소 경망스럽게 비춰지기까지 했고 유리같은 멘탈로 인해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반칙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악동의 이미지가 강했다.
첫 방어전에서 후일 WBC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주니어 위터를 누른 데 이어 전임 밀레트와 다운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이며 KO승을 거두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5차방어에 성공한 뒤 승리를 장담하며 3대기구 타이틀을 놓고 <코스티아 추>와 통합타이틀전에 나섰지만 가드를 내린 채 까불다가 기가막힌 타이밍의 라이트스트레이트를 얻어 맞고 2RTKO로 무너져 첫 패배를 기록했다.
부상에서 회복해 2년여에 이르는 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추는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미첼과의 재전에서 초반부터 철저히 부수는 파괴의 미학을 보여주며 3R TKO승을 거두어 건재를 과시했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복싱은 갈수록 노련미를 더한 반면 스피드는 줄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드러내 체중조절에 실패한 채 영국의 저격수 <리키 해튼>과 시종일관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R종료 TKO패를 당해 엔딩을 맞이했다.
뛰어난 기량은 물론 자기관리나 경기매너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던 추는 동구권 복서가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할 필수조건을 보여준 전형이었는데 이는 차베스의 복싱스타일과도 맥이 닿아 있었다.
추의 아성을 무너뜨린 해튼은 하드펀처도 아니고 대단한 기량을 소유한 것도 아니었지만 특유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파이팅과 화끈한 연타공격으로 KO가도를 질주하며 자국에서 각광받는 스타로 군림했다.
카를로스 마우사를 9R 그림같은 레프트훅으로 가라앉히고 WBA 타이틀까지 흡수한 뒤 웰터급으로 올라가 2체급 석권에도 성공해 하늘을 찌를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WBC 챔피언 추의 맹활약으로 인해 존재감이 약했던 <WBA> 챔피언 미첼은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컴비블로우가 인상적인 테크니션이었는데 라이트급시절 허약한 맷집때문에 연패에 빠지기도 했지만 돈 킹의 품에 안기면서 폭발적인 화력을 더해 KO가도를 달렸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챔피언에 오른 뒤 지나친 프레스에 따른 수비불안을 의식한 탓인지 네차례의 방어전에서 모두 판정승에 만족하더니 <코스티아 추>와의 통합타이틀전에서 무릎부상으로 7R만에 경기를 포기해 소중한 챔피언벨트를 잃었다.
통합챔피언에 오른 추가 슈퍼챔피언으로 격상되자 공석이 된 정규챔피언 자리에는 가이아나 출신의 다크호스 <비비안 해리스>가 잠정챔피언으로 있던 강타자 디오벨리스 우르타도를 불과 2R만에 격침시켜 버리며 등극했다.
180cm에 이르는 장신으로 긴 리치를 활용한 속공에 능했던 해리스는 쇼트펀치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기교파에 속했다.
특히, 먼 거리에서 찔러대는 원투스트레이트의 위력이 탁월했고 찬스시 몰아치는 연타는 그의 별명처럼 아주 사나웠다.
첫 방어전에서 톱랭커였던 무패의 술레이만 음바예를 완파한 뒤 추에게 선전을 펼쳤던 난적 오크테이 우르칼마저 KO로 무찔러 챔피언에 오른 것이 결코 이변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지만 4차방어전에서 맞이한 콜롬비아의 복병 <카를로스 마우사>에게 7R에서 레프트크로스카운터를 맞고 드러누워 급락하고 말았다.
해리스와 마찬가지로 키가 컸던 마우사는 마치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롱펀치로 데뷔초 연속KO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으나 기본적으로 밸런스가 나쁜데다가 가드마저 허술해 디펜스에 문제가 있었다.
용감하게도 왕좌에 오른 지 5개월만에 IBF 챔피언 <리키 해튼>의 통합타이틀전 제의에 응했다가 참담한 KO패를 당해 역시 럭키가이에 불과했음을 자인했다.
팬들의 관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던 <WBO>의 챔피언 베일리는 KO킹으로 불리울만큼 하드펀처였는데 매경기마다 상대의 안쪽을 파고들어 짧게 끊어치는 레프트훅과 라이트스트레이트가 폭발적인 화력을 발휘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콜롬비아의 <에너 훌리오>에게 체력적인 열세를 드러내며 예상밖의 판정패를 당해 단명에 그쳤고 이후 웰터급으로 월장해 무려 12년만에 IBF 왕좌에 올라 2관왕을 달성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국제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훌리오는 비교적 장신에 궤적이 큰 좌우훅을 소유한 슬러거였는데 체력은 좋으나 접근전을 선호하면서도 몸싸움에 약해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11개월만에 첫 방어전을 앞두고 양쪽눈에 백내장이 발견되어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수술 후 컴백과 동시에 내리막을 향하고 말았다.
챔피언결정전은 당초 훌리오의 도전자였던 펠릭스 플로레스와 <데마르커스 콜리>가 갖게 되었는데 당시 콜리는 10위에 불과했지만 드래프트 방식으로 출전하게 되어 신설기구의 난맥상을 드러낸 가운데 콜리가 플로레스를 1R에 초살시켜 새챔피언에 올랐다.
신체조건이 뛰어나고 레프트스트레이트에 강점을 갖고 있었던 콜리는 일류는 아니었지만 전챔피언인 훌리오와 베일리를 잇달아 잡아내며 그런대로 자기 자리를 지킬 것으로 여겨졌으나 3차방어전에서 <잡 주다>의 재빠른 스피드에 눌려 타이틀을 상실한 뒤로는 반타작복서로 전락했다.
기구를 갈아타며 왕좌에 복귀한 주다는 날카로움이 다소 무뎌져 있어 이전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첫 방어에 성공한 뒤 웰터급으로 월장해 2관왕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주다의 월장으로 인해 남미의 두 슬러거였던 푸에르토리코의 <미구엘 앙헬 코토>와 브라질의 켈슨 핀투가 챔피언결정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한수위의 압도적인 화력을 선보인 코토가 6RTKO승을 거두고 화려한 대관식을 가졌다.
냉정한 표정의 타고난 싸움꾼이었던 코토는 시종일관 끊임없이 내던지는 묵직한 연타와 레프트보디블로우를 앞세워 강력한 파워를 과시하며 다섯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쓸어담아 일찍부터 물건임을 입증했다.
6차방어전에서 발빠른 주자였던 폴 말리그나지에게 판정승을 거둔 뒤 웰터급으로 올라가 슈퍼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명장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퇴장으로 잠시 어수선했던 이 체급은 당시만해도 비주류였던 동구권 태생의 코스티아 추가 두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세계챔피언으로 군림하며 3대기구 통합챔피언으로서 본고장을 주름잡아 식을 줄 모르는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빅머니를 쫓아 다체급 석권을 노리던 슈퍼스타급 복서들에게 이 체급은 징검다리에 불과할 뿐이어서 팬들의 이목은 점차 대어들이 몰려 들었던 웰터급으로 쏠리고 말았다.
2005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 체급은 이듬해 WBA IBF 통합챔피언이었던 리키 해튼을 필두로 WBC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WBO 챔피언 미구엘 앙헬 코토가 차례대로 웰터급 월장에 나서면서 공교롭게도 4대 기구 모두 공석사태가 빚어져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WBC>에는 영국의 <주니어 위터>가 전WBO 챔피언 데마르커스 콜리와 난타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왕좌에 등극했다.
비교적 늦게 프로에 뛰어든 위터는 자메이카계답게 반사신경이 뛰어난 감각적인 스위치히터로 가끔 가드를 내리고 상대를 유인할만큼 여유가 있었고 찬스시 섬광처럼 폭발하는 컴비블로우는 매서운 위력을 장착하고 있어 아주 까다로운 스타일의 은 실력자였다.
2차방어전에서 전WBA 챔피언 비비안 해리스를 7R만에 때려 눕혀 역시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으나 8개월 후 맞이한 미국의 <티모시 브래들리>에게 다운까지 허용하며 뜻밖의 패배를 당해 예상과 달리 단명하고 말았다.
근육질의 단단한 체격과 달리 파워가 부족했던 브래들리는 유연한 상체와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으로 상대를 요리했고 때로는 난타전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남다른 승부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2차방어전에서 켄달 홀트의 카운터펀치에 두차례나 다운을 허용하고도 판정승을 거두어 WBO 타이틀을 흡수했으나 WBC의 지명방어전 요구를 거부해 이례적으로 20여일만에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공석이 된 왕좌에는 지명도전자였던 미국의 <데본 알렉산더>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손부상으로 고전한 전임 위터를 8RTKO로 꺽고 뒤를 이었다.
아마추어에서 300전이 넘는 전적을 쌓으며 내셔널 챔피언에도 오를만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알렉산더는 사우스포 특유의 안전운행과 단조로운 공격루트로 인해 흥행과는 거리가 먼 지루한 스타일이었는데 첫 방어전에서 투타임 IBF 챔피언이었던 후안 우랑고를 환상적인 라이트어퍼컷으로 침몰시키고 통합챔피언에 오르면서 과대포장되기 시작했다.
WBA 챔피언을 지냈던 안드레아스 코텔닉을 어렵게 넘어선 뒤 IBF 타이틀까지 박탈당하면서 WBO 챔피언 <티모시 브래들리>와 격돌했지만 심약한 모습을 나타내며 10R부상판정패를 당해 무관으로 내려 앉았다.
한편, WBC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브래들리는 6개월넘게 방어전에 나서지 않아 휴양챔피언을 밀려났다가 끝내 또 다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WBA>쪽은 프랑스의 <술레이만 음바예>가 두 번째 정상도전에서 2관왕을 노리던 라울 발비를 4R만에 무너뜨리고 새챔피언으로 등장했다.
세네갈출신의 이민자였던 음바예는 무려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영리했는데 아마추어복서는 물론 킥복서로도 활동했던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큰 키에 비해 짧은 리치에도 불구하고 카운터블로우에 능했고 스피드를 동반한 컴비블로우는 가속도로 인해 파워가 배가될 만큼 위력적이었지만 선이 가는 복싱을 구사해 불안한 왕좌를 지켜야 했다.
첫 방어전을 간신히 무승부로 세이브하더니 2차방어전에서 <가빈 리스>의 저돌적인 압박을 당해내지 못하며 결국 챔피언벨트를 잃었다.
웨일스출신으로 불같은 투지와 근성을 자랑했던 리스는 기술적으로나 파워면에서 눈에 뛸 정도는 아니어서 첫 방어전에서 우크라이나의 복병 <안드레아스 코텔닉>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다가 최종회 레퍼리스톱이 걸려 과분한 자리에서 내려왔다.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독일에서 프로데뷔한 코텔닉은 오랜 아마추어 경험을 통해 터득한 안정된 공수를 갖추었고 강철같은 체력과 묵직한 펀치는 다소 둔탁해보이기는 했어도 힘좋은 강타자 마르코스 마이다나를 압도할 정도로 쓸만했으나 3차방어전에서 맞이한 <아미르 칸>의 스피드를 따라 잡지 못해 완패했고 1년 뒤 WBC IBF 통합챔피언이었던 알렉산더에게 석패하자 미련없이 링을 떠났다.
파키스탄 혈통인 영국의 칸은 17살의 어린 나이로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냈을만큼 조숙했고 프로데뷔 후 환상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현란한 테크닉과 긴 리치의 속사포같은 연타로 스타급 대어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에 오르기 전부터 치명적인 유리턱을 노출시켰던 칸은 마이다나와의 3차방어전에서도 위험천만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통합타이틀전을 거부한 브래들리 대신 IBF 챔피언 잡 주다를 라이트보디샷으로 가라앉혀 로우블로우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 기구를 석권하며 이 체급을 호령했으나 5개월 뒤 적지에서 벌인 통산 6차방어전에서 미국의 <라몬트 피터슨>에게 다운을 빼앗고도 두차례나 감점을 받으며 석연치않은 판정패를 당해 2년반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IBF>타이틀은 콜롬비아의 <후안 우랑고>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튀니지의 나우펠 벤 라바에게 엄청난 고전을 펼치고도 왕좌에 올라 링지로부터 2000년대 최악의 판정 중 하나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사우스포이면서도 크라우칭스타일의 하드펀처였던 우랑고는 터프니스가 좋은 후커였으나 첫 방어전에서 WBA 웰터급을 정복하고 돌아온 <리키 해튼>에게는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며 억지스럽게 오른 왕좌에서 물러났다.
때리고 붙잡는 지저분한 복싱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확실히 빠르고 정확한 공격력으로 무장한 해튼은 거추장스러운 벨트를 집어 던진 채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투타임 라이트급 챔피언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를 1만여 영국관중 앞에서 불과 4R만에 레프트보디샷으로 KO시켜 일약 흥행의 보증수표로 떠올랐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해튼의 연승행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대 최강의 5관왕이었던 메이웨더에게 첫 KO패를 당한데 이어 1년반 뒤에는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치던 매니 파퀴아오에게도 실신 KO패를 당해 링에서 멀어졌고 한때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해튼의 타이틀 반납으로 당초 지명도전자 결정전이 챔피언 결정전으로 격상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러브모어 은도우>가 라바에게 11RTKO승을 거두고 바톤을 이어 받았지만 36살의 노장이었던 은도우는 그동안 푸트웍이 좋은 상대에게 드러냈던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신세대 복서인 <폴 말리그나지>에게 완패해 넉달만에 벨트를 풀었다.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 이민자였던 말리그나지는 극단적인 스피드스터로 솜주먹에도 불구하고 경쾌한 푸트웍을 앞세워 날카롭게 찌르는 잽과 스트레이트가 압권이었다.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해튼과 충돌했다가 복슬링(?)에 가까운 졸전을 벌이며 11RTKO로 패해 고개를 떨구었다.
비어 있던 왕좌에는 <후안 우랑고>가 말리그나지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던 헤르만 은고조의 턱을 부수며 재임에 성공했다.
랜달 베일리를 누르고 첫 방어에 성공해 자신감을 회복한 뒤 과감하게 WBC 챔피언 <데본 알렉산더>와의 통합타이틀전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한 KO패였다.
통합챔피언에 오른 알렉산더는 지명방어전을 거부하고 WBO 챔피언 티모시 브래들리와의 경기에 나서면서 곧바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WBO>타이틀은 콜롬비아의 <리카르도 토레스>가 그리스의 마이크 아르노티스에게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어렵게 차지했다.
기민한 움직임에 좌우훅을 주무기로한 저돌적인 공격이 인상적이었던 토레스는 이미 코토를 KO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을 만큼 뛰어난 펀치력을 인정받았지만 허술한 수비와 취약한 맷집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2차방어전에서 역전 KO로 이겼던 미국의 <켄달 홀트>와의 리매치에서 1R에 두 번의 다운을 빼앗고도 61초만에 역전 KO패를 당해 층격을 주었다.
토레스전에서 버팅 논란으로 인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홀트는 긴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에 능하면서 접근전에도 일가견을 보였으나 첫 방어에 성공한 뒤 WBC 챔피언 <티모시 브래들리>와 통합타이틀전에서 두차례의 다운을 빼앗는 선전을 펼치고도 점수에서 뒤져 타이틀을 흡수당했다.
WBC 타이틀을 박탈당한 브래들리는 잠정챔피언이었던 강호 라몬트 피터슨을 잡은 뒤 자신의 후임으로 WBC 챔피언에 오른 알렉산더를 누르고 1년 9개월만에 WBC 타이틀을 탈환했지만 장기간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면서 또 다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이후 10개월만에 링으로 돌아와 3관왕을 노리던 말년의 호엘 카사마요르를 일방적으로 유린하며 통산 6차방어에 성공한 뒤 메이웨더와 함께 세계복싱계를 양분하고 있던 WBO 웰터급 챔피언 파퀴아오에게 도전해 열세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도둑질(?)하며 2관왕에 올라 타이틀을 반납했다.
두차례의 왕좌 통일전에서 모두 승리했던 브래들리는 사막의 폭풍이라는 닉네임에 걸맞는 인상적인 경기도 없었고 아미르 칸과의 대결을 회피해 아쉬움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상 WBA를 제외한 3대 기구를 정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코스티아 추에 이어 2000년대 후반 이 체급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던 사실만큼은 인정받을만 했다.
브래들리가 박탈당한 <WBC>타이틀은 팬들의 뇌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던 멕시코의 트리플크라운 <에릭 모랄레스>가 당초 상대인 루카스 마티세의 부상으로 급조된 파블로 세자르 카노를 10RTKO로 꺽고 차지해 멕시코 선수로는 처음으로 4체급을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했으나 5개월 전 마이다나와의 WBA 잠정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했던 모랄레스가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할 기회를 잡은 것은 멕시코에 본부를 두고 있는 WBC의 엄청난 배려 덕분이어서 그 의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35살의 모랄레스는 관록을 앞세워 여전히 투지를 불사르고 있었지만 이미 갈기없는 늙은 사자에 불과했다.
6개월 뒤 첫 방어전을 앞두고 체중 오버로 타이틀까지 놓친 상황에서 제2의 골든보이로 떠오르던 미국의 유망주 <대니 가르시아>에게 대차의 판정패를 당해 이제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느껴야 했다.
푸에르토리코계인 가르시아는 아마추어에서 내셔널챔피언에 오를 만큼 기본기를 잘 갖춘 신예로 골든보이 프로모션에 스카웃된 이래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군더더기없는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과 위력적인 컴비블로우를 선보이며 연승가도를 질주해 이미 내일의 챔피언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첫 방어전부터 칸을 맞이해 불과 4R만에 굴복시키며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고 경기를 앞두고 칸이 WBA 슈퍼챔피언으로 추대된 상태여서 졸지에 WBA WBC 통합챔피언에 등극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후 다시 한번 모랄레스를 처참하게 능욕한 그는 최대의 난적으로 손꼽혔던 하드펀처 마티세마저 난타전 끝에 한차례 다운을 빼앗으며 판정으로 물리쳐 당분간 이 체급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5차방어전에서 마우리시오 헤레라에게 예상밖의 고전을 펼쳐 의문부호를 남기기도 했지만 웰터급 월장을 노리며 타이틀을 반납하고 논타이틀전에서 챔피언클래스의 피터슨과 말리그나지를 연파해 지금까지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칸이 통합챔피언에 오르자 슈퍼챔피언으로 격상시킨 <WBA>는 잠정챔피언으로 있던 아르헨티나의 <마르코스 마이다나>를 정규챔피언으로 그대로 인정했다.
다부진 체구에 엄청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시종일관 강한 압박을 주특기로 하는 마이다나는 일발필도의 강펀치를 소유한 무시무시한 하드펀처였지만 발이 빠른 선수에게 약하다는 수군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체중고를 견디지 못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웰터급으로 월장해 무패의 3관왕이었던 애드리언 브로너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2관왕에 올랐다.
한편, WBA는 칸을 누르고 새로운 슈퍼챔피언 자리에 오른 <라몬트 피터슨>이 칸과의 경기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되자 그를 휴양챔피언으로 밀어낸 뒤 <아미르 칸>을 다시 슈퍼챔피언으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단행했으나 며칠 뒤 칸이 통합타이틀전에서 패배함에 따라 승자인 <대니 가르시아>를 슈퍼챔피언으로 격상시키면서 피터슨의 타이틀을 아예 박탈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호안 구스만에게 8R부상판정승을 거둔 러시아의 <카비브 알락베르디에프>를 정규챔피언으로 인정해 벨트 장사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2005년 아마추어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출신으로 일찍이 봅 애럼의 눈에 들어 2년 뒤 미국에서 프로데뷔한 알락베르디에프는 파워 부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전진스텝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며 연승가도를 질주했는데 첫 방어전에서 전임 음바예를 11R에 침몰시키며 잠시 유망주로 반짝했으나 미국의 신예 <제시 바르가스>에게 발목이 잡혀 단명에 그쳤다.
경쾌한 푸트웍을 바탕으로 한 아웃복서인 바르가스는 카운터블로우가 예리한 반면 펀치력이 떨어지는데다가 소극적인 경기운영으로 인해 큰 기대를 걸만한 재목은 아니었다.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웰터급으로 월장해 2관왕을 노렸으나 역시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알렉산더를 밀어낸 <IBF>쪽은 웰터급에서 돌아온 <잡 주다>가 지명도전자였던 카이저 마부자에게 선제다운을 내주고도 7R에서 역전 KO승을 거두어 이 체급에서만 세 번째 왕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과거와 같은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황혼녁에 접어든 주다는 한참 물이 올라있었던 WBA 챔피언 <아미르 칸>의 상대가 될 수 없어서 일방적으로 몰리며 허무한 KO패를 당해 타이틀 헌납하고 말았다.
칸에 이어 WBA IBF 통합챔피언이 된 <라몬트 피터슨>은 뛰어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내구력때문에 자주 다운을 허용했지만 노련하고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한몫했다.
칸과의 경기 후 판정 시비가 불거진데다가 WBA 타이틀까지 박탈당해 의기소침한 가운데서도 IBF 타이틀 홀더로서 14개월만에 첫 방어전에 나서 전WBO 챔피언 홀트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며 8RTKO승으로 건재를 과시했으나 논타이틀전으로 치러진 마티세와의 경기에서 세차례나 캔버스를 구르며 3RTKO로 패해 한계를 드러냈고 3차방어에 성공한 뒤 웰터급 체중으로 가르시아와 또 다시 논타이틀전에 나섰다가 판정으로 패해 타이틀마저 박탈당했다.
피터슨의 후임에는 아르헨티나의 <세자르 쿠엔카>가 중국의 양익을 적지나 다름없는 마카오에서 대차의 판정으로 누르고 올라섰다.
프로데뷔 이래 48연승 중 KO승이 단 2번에 불과할만큼 깃털같은 주먹을 가졌지만 부지런히 상대의 안팎을 들락거리며 쏘아대는 잽과 스트레이트가 빠르고 정확한데다가 ‘인토카블리’로 불렸던 동국의 선배 니콜리노 로체가 환생한 듯한 탁월한 디펜스까지 갖추고 있어 앞으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브래들리의 타이틀을 박탈한 <WBO>는 세르히 페드첸코를 누르고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멕시코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를 그대로 정규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마르케스도 페더급부터 시작해 4체급을 석권한 셈이 되었지만 오직 파퀴아오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차 있었던 마르케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2012년 12월 마침내 웰터급 논타이틀전으로 열린 파퀴아오와의 4번째 대결에서 그는 다운을 주고받는 열전속에 6R 강력한 라이트카운터펀치로 파퀴아오를 실신시키며 KO승을 거두어 전세계 복싱팬들을 충격속에 몰아넣었다.
비록 6개월전 파퀴아오가 브래들리로부터 억울한 판정패를 당하긴 했어도 여전히 메이웨더와 함께 양강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파퀴아오였기 때문에 그의 KO패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기세가 오른 마르케스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웰터급으로 월장했지만 브래들리에게 막혀 5관왕 달성에는 실패했다.
공석이 된 왕좌는 브랜든 리오스에게 설욕하고 잠정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미국의 <마이크 알바라도>가 승계받았는데 비교적 장신의 강타자로서 인-아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장점을 갖고 있었지만 첫 방어전에서 시베리아 출신의 백곰 <루슬란 프로보드니코프>의 해머같은 펀치를 얻어맞고 10RTKO패로 물러났다.
아마추어를 거쳐 프로에 데뷔한 프로보드니코프는 강한 체력과 힘을 앞세운 저돌적인 하드펀처로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와 ESPN의 FNF를 통해 성장했지만 투박한 공수와 느려 터진 발때문에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크리스 알지에리>로부터 1R에 두차례 다운을 빼앗아 내고도 시종일관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판정으로 패해 아쉬움을 주었다.
장신의 아웃복서였던 알지에리는 킥복서 출신답지 않게 펀치력이 약했지만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히트앤드런에 능했다.
왕좌에 오른지 5개월만에 거액의 대전료에 현혹돼 타이틀을 반납한 채 WBO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파퀴아오에게 도전했다가 도합 5차례나 다운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비로소 세계와의 차이를 실감했다.
알지에리의 후임에는 라이트급에서 올라온 무패의 <테렌스 크로포드>가 금년 4월 챔피언 결정전에서 토머스 둘로르메를 6R만에 침몰시키고 2관왕에 올라 판도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니어라이트급과 마찬가지로 탄생과 소멸을 반복했던 이 체급은 1970년대 초반 명장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의 등장과 함께 메이저 체급 못지않은 비상한 관심을 끌어 모았고 그 뒤로 아론 프라이어,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코스티아 추와 같은 슈퍼스타들을 배출하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고만고만한 선수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한 가운데 한체급에 머물기 보다는 돈과 명예를 쫓아 체급을 오르내리는 세태로 인해 한때 황금기를 누렸던 이 체급의 앞날도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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