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관우는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죽이고, 다섯 개 관을 돌파해 적장 여섯을 죽인 일부터, 칠군을 수장시킨 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설을 남긴 백전노장이자, 백전백승을 거둔 용맹한 장수다.
관우가 토산에서 궁지에 몰린 적이 있지만, 조조와 세 가지 약조를 하고 잠시 조조에게 투항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맥성에서 패해 평생 씻지 못할 한을 남기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교만심을 스스로 억제하려고 할 때 관우의 맥성 패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음을 다잡곤 한다.
이 밖에도 관우의 맥성 패배는 병가에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백전백승을 거둔 장수가 어쩌다가 이런 역사의 비극을 연출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승부는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서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화 곁에는 복이 기대어 서 있고, 복 속에는 화가 숨어있다”고 했다.
승리는 좋은 일이지만 지휘관은 승리 때문에 교만해지고 적을 얕보게 되기 때문에 승리는 곧 패배할 수 있는 화근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실패는 나쁜 일이지만 지휘관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전술로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전쟁사를 살펴보면, 승리가 패배를 부르고, 패배가 승리를 불러온 예가 수없이 많다.
관우도 이 논리를 피해가지 못하고 연이은 승리에 자만심이 점점 커져, 자신의 청룡언월도만 있으면 동으로는 오를 뒤흔들고, 북으로는 위를 평정할 수 있다고 자만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정확하게 전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관우가 맥성에서 패배한 후, 동오가 계속 마음을 공격하는 전술로 촉군을 와해 시키는 바람에 촉군의 군사력이 날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관우는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군대를 정돈하거나 군심을 안정시키지 않고, 오로지 제 한 몸 용맹함만을 믿고 무조건 맞서 싸우려 했다.
나중에 군사 몇 기만을 데리고 포위 당했을 때도 “좁은 길에는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큰길로 가야 한다”는 부장 왕보의 건의를 묵살하고 “매복이 있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외치며 독불 장군처럼 행동했다.
그러더니 동오의 매복에 걸려들어 가까스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도망쳤지만 결국에는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병법에 “가장 큰 화는 적을 얕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장수가 여러 번 승리해 교만해지면 지략도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전투를 벌이게 된다.
관우 역시 홀로 궁지에 몰렸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계략도, 지혜도 아니요, 오로지 용기밖에 없었다.
지휘관이 승리감에 도취되면 적을 무시할 뿐 아니라, 전략목표를 잊고 대국적으로 사태를 조망하지도 못하게 된다.
관우의 이런 약점을 잘 아는 제갈량이 군대를 이끌고 서천으로 진격하면서 그에게 “북으로는 조조에게 대항하고 동으로는 손권과 화친하라”는 형주를 지키는 원칙을 당부하며 반드시 지킬 것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관우도 처음에는 신중을 기하여 동오의 동향에 주의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제갈량의 당부를 잊기 시작했다.
관우의 맥성 패배를 분석할 때는 이 사건을 전체적인 전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군사지휘관이 훌륭한지를 평가할 때는 단순히 승리 횟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안목을 갖추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쟁터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열심히 싸우면 그만이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면 그 전쟁에서 진정으로 주도권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예로부터 전쟁터를 누빈 영웅호걸들이 최종적으로 패배한 원인은 출중한 무예를 갖추지 못했거나 군대가 오합지졸이어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과 전략적 목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한쟁패 시기에 초패왕 항우는 힘으로 따지면 산이라도 뽑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괴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강동 최고의 부대를 거느리고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해하전투에 패배해 스스로 오강에 몸을 던져야 했다.
어찌 보면 관우는 항우의 전철을 밟은 셈이다.
마오쩌둥은 《중국혁명의 전략문제》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전쟁사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후 한 번의 패배로 이전의 공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든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연전연패 후 단 한 번의 승리로 전체적인 국면을 역전시킨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서 ‘연전연승’이나 ‘연전연패’는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전체적인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 ‘한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가 바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군사지휘관에게는 전쟁의 전체적인 상황에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장수들이 각각의 지위에 따라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직급을 가진 지휘관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모든 것을 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
관우가 맥성에서 패배한 사실은 《자치통감》에도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스스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처했음을 알고 서쪽으로 가서 맥성을 지켰다. 손권이 사자를 보내 투항을 권유하자, 관우가 거짓 투항하며 성벽에 기치를 내걸고 허수아비를 세운 뒤 기회를 보아 도주했다. 그러나 병사들이 모두 흩어져 그의 곁에는 겨우 10명의 기병밖에 남지 않았다. 손권이 이에 앞서 주연과 반장을 보내 관우가 지나는 길목을 차단했다. 12월, 마충이 장향에서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을 잡은 뒤 이내 그들의 목을 베자 이로써 형주가 완전히 평정되었다.”
연의에서는 관우가 거짓 투항한 사실을 삭제하고, 손권이 제갈근을 맥성에 보내 투항할 것을 권유했지만 관우가 거절하며 손권과 결사의 일전을 벌이기로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관우의 고집스러움과 강한 자존심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깔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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