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비친 한국경찰의 슬픈 자화상
약자에게 성폭행범 누명 씌우거나
테러리스트에 서슴없이 욕 퍼부으며 자극
재벌 · 정치권력에 휘둘리기도 일쑤
경찰내 특수조직 이야기 다룬 ‘감시자들’
박봉과 격무에서 활약하는 경찰 그려
극 중에서 부패하거나 무능하게 그려지는 경찰을 보고도 대부분의 관객은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 경찰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위부터 ‘더 테러 라이브’, ‘7번방의 선물’, ‘감시자들'
올해 관객 1000만명 동원의 대기록을 세운 ‘7번방의 선물’에서 주인공의 비극은 경찰 고위간부로부터 비롯됐다. 7살 지능을 가졌지만, 어린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는 착한 아빠 용구는 딸의 입학선물로 예쁜 책가방을 선물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딸과 함께 들른 가게, 진열된 가방을 집으려고 하는 순간 아뿔사,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인의 말. 그런데 같은 물건을 노리는 또 다른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경찰청장이다. 그런데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용구는 가방에 집착하고, 결국 경찰청장은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용구를 마구 때린다.
이후 용구가 억울하게 성폭행 살해범으로 의심받으며 영화는 비극을 향해 가는데, 하필이면 그가 죽였다고 오인받는 희생자가 바로 경찰청장의 딸이다. 분노와 증오, 복수심에 사로잡힌 경찰청장은 증거고 뭐고 앞뒤 가릴 것 없이 용구를 무조건 흉악범죄자로 몰고 간다. 경찰청장이 폭행과 탈법을 자행하며 사적인 원한을 무고한 개인에게 쏟아붓는다. 용구를 돕는 양심적인 교도관도 등장하지만 무력할 뿐이다.
영화를 본 1000만명 넘는 관객 중 “왜 악역이 경찰청장이어야 했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인물 설정이 억지스럽다”고 지적한 평자도 없었다. 극중 평범한 시민에게 엄청난 횡포를 부리는 경찰청장의 존재를 대부분의 관객이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차라리 낯선 존재는 주인공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교도관이었다. 그러니 국민을 지키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시민을 때려잡는 ‘민중의 방망이’라는 말이 농담만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경찰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올해의 또다른 흥행작 ‘더 테러 라이브’에도 반영됐다. 극중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고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협박하는 범인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경찰청장이 이를 대신해 수습하겠다고 스튜디오를 찾아 출연한다. 그런데 경찰청장은 사과는커녕, 전화 속 테러리스트를 향해 비난과 공격을 서슴없이 퍼부으며 극단적으로 자극한 끝에 생방송 중 살해되고 만다. 경찰청장은 ‘협상’의 ABC도 모르는 무능하고 무지하며 비열한 인물일 뿐 아니라, 뻔뻔하고 권위적이며 가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전화 속 테러리스트를 통해 비리 혐의도 언급된다.
이처럼 한국영화는 경찰을 무능하거나 부패한 인물로 묘사하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드물거니와, 영웅적인 활약상을 그린 작품은 ‘희귀하다’. 그나마 올해 나온 작품 중에는 ‘감시자들’ 정도가 기울어진 균형추의 한쪽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 ‘감시자들’은 범죄대상에 대한 감시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경찰 내 특수조직 요원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밤을 새우고 잠복을 밥먹듯이 하는 격무 속에서도 명예도 영광도 없이 음지에서 일해야 하는 경찰의 활약이 담겼다.
하지만 범죄자의 감시보다는 권력에 비판적인 시민이나 일반인, 정치인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 혐의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하면 극중 경찰의 모습은 오로지 영화의 재미만을 위해 창조된 캐릭터로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원작은 홍콩영화다.
지금도 범죄자의 위협에 시달리며 박봉과 격무에서도 시민의 안전과 사회악의 근절을 위해 뛰어다니는 일선의 경찰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영화는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을 검ㆍ경 사법권력을 통해 드러내왔다. 경찰은 영화 속에선 무능하고 무기력해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가해자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를 더 괴롭히고, 불법범죄조직과 은밀한 ‘커넥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신세계’의 경우 폭력조직 속에 내부 첩자를 심어 놓고 범죄를 소탕하려는 경찰을 보여주지만, 여기서의 경찰업무란 공익을 위한 행위가 아닌 사적인 욕망의 발현이다. 주인공은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고, 불법과 탈법의 테두리를 마음대로 넘나든다. 또 재벌이나 정치권력에 휘둘리며, 강자에겐 굽신대고 약자들에겐 ‘추호’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경찰을 믿지 못하니 대신 영화 속 평범한 개인은 아빠나 엄마의 이름으로 직접 사건 해결과 응징, 복수에 나선다. ‘이웃사람’은 죽이는 자도 이웃이고, 희생자도 이웃이며, 그것을 막을 자도 이웃뿐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공정사회’와 ‘돈 크라이 마미’에서 경찰은 범인 검거의 의지마저 없다. 오히려 증언을 강요하고 말도 안 되는 절차를 이유로 대며 희생자와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한국영화에 사적 복수극이 유난히 많이 쏟아지는 것은 장르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치안망의 부재와 처벌체계의 비합리성, 사법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속 경찰, ‘강철중’(공공의 적 시리즈의 형사 주인공)은 점점 멀어지고, ‘다이하드’의 맥클레인은 다만 꿈일 뿐인 것은 왜일까. ‘경찰의 날’ 특집으로 상영할 만한 한국영화를 찾는다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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