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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자료실

모기와 에프킬라

by Ajan Master_Choi 2017. 9. 9.

나는 모기다.

하지만 임신한 내 동료모기 모스끼처럼 침을 꽂아 피빨아먹는 모험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그저 앵앵 돌아다니며 쓰레기통 속에 들어간 음식찌꺼기를 축낼 뿐이다.

모기장 속 노랑머리는 우리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여간해서 모기장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모기가 세상에 유용한 이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 세상 모든 모기가 모두 박멸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꽉차 있다.

백만마리 모기가 떼죽음을 당해도 기꺼이 웃을 양반이지만, 자기가 한방이라도 물리는 건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자 고통으로 여긴다.

에프킬라까지 준비해놓고도 모기장 밖으로 안 나오는 이유는 모기를 살려주려는 마음의 발로가 아니라, 모기에 물리기 싫기 때문이다.

노랑머리가 에프킬라를 들고 나오는 순간, 임신한 동료모기 모스끼뿐 아니라 죄없는 나까지 학살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나는 임신한 동료모기를 미워해야 하나?

노랑머리를 미워해야 하나?

 

파리.

음식찌꺼기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는 내 동료.

얘네는 침이 없다.

노랑머리가 우리와 맞서는 건 겁내면서도, 얘네들 죽일 때는 파리채 들고 거리낌없이 후려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료 파리들 중 까다피, 후까시, 아프까 등이 깩 소리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침이 없으니 노랑머리한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거나 냅다 도망치다가 결국 뒈지거나 선택지가 이 둘밖에 없다.

아무리 평소에 잘 알랑거렸어도 밉보이면 그걸로 끝장이다.

원래 노랑머리는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니까~~

 

나는 차라리 노랑머리에게 알랑거려 삶을 도모해야 한다는 쪽이다.

까다피, 후까시, 아프까가 침도 없이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는 걸 보고 모스끼는 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는지 열변을 토하지만 나같은 평화주의자가 보기엔 쓸데없이 노랑머리의 분노만 부추길 뿐, 살 길을 도모하는 방도는 아닌 듯싶다.

 

각자도생.

노랑머리는 모기장속에서 안전하게 살고,

모스끼는 침있는 대로 살고,

파리들은 침없는 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그뿐이다.

노랑머리더러 에프킬라 들고 모기장밖으로 나가라고 꼬실 필요도 없고,

모스끼더러 굳이 침 없애라고 협박할 필요도 없고,

파리들더러 침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나더러

 

"네가 모기인지, 사람인지 네 자신을 알라! 네가 침으로 스스로를 지킬 생각이 있는 모기인지, 침없는 파리만도 못한 모기인지 알라!"

 

고 쯧쯧거릴 필요도 없다.

 

나도 내가 스스로 모기인지, 사람인지 모르고 사람편에 설 권리, 에프킬라에 장렬히 죽는 그 순간까지 노랑머리 대신 모스끼뇬 탓하며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안 그런가?

 

내가 모스끼가 아무리 밉기로서니, 모기장안의 안전에 만족하고 자려는 노랑머리를 애앵~ 꾀어서 에프킬라 들고 나오게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에프킬라 무섭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노랑머리편에 서서) 에프킬라가 설치는 꼴을 자초할 정도로 내가 멍청할 줄 아나?

만약 실제로 그런다면 정말 나는 모기보다도 멍청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