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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프로복싱 Jr미들급 챔피언 역사

by Ajan Master_Choi 2009. 12. 2.
  • 데니 모이어 Vs 스탄 해링턴
1950년대말 Jr.라이트급과 Jr.웰터급을 부활시킨 NBA는 WBA로 이름을 바꾼 1962년 주니어 체급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세계타이틀전을 개최해 돈벌이에 나설 심산으로 1962년 8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154파운드를 한계체중으로 하는 주니어 미들급의 신설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으나 이와같은 주니어 체급의 양산은 전문가들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고 전통의 복싱전문지였던 링지의 창간인 네트 플레셔같은 경우에는 날이 갈수록 황금만능주의에 빠져들어 타락하고 있는 프로복싱계를 강하게 질타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니어 체급 신설에 탄력을 받은 WBA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니 모이어>와 조이 지암브라 간의 챔피언 결정전을 승인해 10월 20일 미국 포틀랜드의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모이어가 무난한 승리를 거두며 초대챔피언에 올랐다.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는 물론 삼촌과 동생 모두 복서였던 집안 내력 때문에 일찍부터 링에 올랐던 모이어는 이미 아마추어 전미복싱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기본기가 충실한 안정된 기량의 소유자로서 레프트잽의 활용이 유난히 돋보였다.

챔피언에 오르기 전 웰터급과 미들급을 오가며 승패를 반복한 탓에 세계챔피언은 요원해 보였지만 시대를 잘 만난 덕분에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지만 강호 스탄 해링턴의 도전을 뿌리친 뒤 어그레시브한 도전자 <랠프 듀파스>와 치열한 접전 끝에 6개월만에 낙마해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10년 후 카를로스 몬손이 장악한 미들급 정상에 도전할 기회를 잡기도 했으나 극강의 챔피언에게 5R를 넘기지 못한 채 참담한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라이트급과 웰터급 세계타이틀 도전 실패를 극복하고 프로데뷔 13년만에 정상에 오른 듀파스는 잘생긴 훈남 스타일의 외모를 소유한 백전노장으로서 빠른 스피드와 푸트웍, 날카로운 카운터 펀치로 정평이 나있었는데 부족한 파워는 중량급으로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50여일 만에 갖은 모이어와의 리매치에서 승리해 우위를 입증했지만 이탈리아 원정에서 24살의 젊은 도전자 <산드로 마징기>에게 뭇매를 얻어맞고 챔피언벨트를 풀었다.
  • 랠프 듀파스 Vs 산드로 마징기
1960년대 이탈리아 복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중 하나였던 마징기는 아마추어 군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고 수완 좋은 프로모터였던 아드리아노 스콘세티 덕분에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프로데뷔 2년만에 정상에 오르는 수훈을 세웠다.
스피드는 떨어지나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폭풍같은 좌우연타로 비교적 높은 KO율을 기록했던 전형적인 유럽스타일의 파이터였다.
첫 방어전에서 듀파스를 재차 KO로 굴복시킨 뒤 승승장구했으나 수비불안을 노출시키며 동국의 <니노 벤베누티>의 펀치세례를 받아 4차방어전에 실패했다.

119승 1패의 경이적인 아마추어 전적의 소유자로서 로마올림픽 웰터급 금메달리스트였던 벤베누티는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에 고루 능한 복싱 마스터로서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 복싱의 황금기를 맞이한 자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정석에 가까운 정확한 원투스트레이트를 주포로 하여 강력이 조절된 날카로운 펀치와 유럽출신 특유의 힘을 갖춘 그는 자신의 거리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장악하는 능력마저 탁월해 롱런이 기대되었다.
  • 산드로 마징기 Vs 니노 벤베누티(제1전)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적지에서 맞이한 우리나라의 <김기수>에게 근소한 차의 판정으로 석패해 2차방어전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프로데뷔 이래 65연승만에 첫 패배를 기록했다. 그러나 본래 체급인 미들급으로 돌아간 이후 벤베누티는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두차례나 정상을 차지해 이탈리아의 명장으로서 유럽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로마올림픽 8강전에서 벤베누티에게 당한 쓰라린 패배를 설욕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한 김기수는 프로데뷔 2전만에 한국챔피언에 오른 뒤 15전만에 동양타이틀을 따내며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린 엘리트복서로 당시 동양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사우스포답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예리한 카운터 펀치를 장착했고 리드미컬한 좌우스트레이트와 노련한 디펜스웍은 공수의 균형을 지켜주었으며 지능적인 히트 앤드 어웨이 전법은 우리나라 프로복싱사의 한 획을 그은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에서 미국세의 거센 도전을 정신력으로 버텨낸 뒤 이탈리아로 날아가 전 챔피언 <산드로 마징기>를 상대로 후반에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선전했지만 3R에 당한 다운이 끝내 짐이 되어 판정으로 패하고 말았다.
  • 니노 벤베누티 Vs 김기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 번씩이나 왕좌에 오른 마징기는 벤베누티가 떠난 이 체급에서 다시 한번 기대를 모았지만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프레디 리틀>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며 양쪽 눈자위가 모두 커트돼 경기를 포기하고도 TKO패는 커녕 무판정을 선언받아 수치스럽게 타이틀을 지켰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논란이 많은 경기결과로 인해 사필귀정처럼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리틀이 스탠리 헤이워드를 압살시켜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미 김기수에게 도전해 다운을 빼앗는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억울한 판정패를 당해 세계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을 것만 같았던 리틀은 살인적인 위력의 라이트훅을 소유한 하드펀처로 흑인답게 유연성과 밸런스가 좋은 편이었지만 푸트웍이 거의 없고 몸놀림도 빠르지 못해 발을 쓰는 상대에게는 약점을 보였다.

첫 방어전에서 홈링의 미나미 히사오를 역시나 환상적인 라이트훅 한방으로 기절시킨 후 금단의 땅이었던 동독까지 날아가 게하르트 피아스코비를 너끈히 제압해 3차방어에 성공했지만 2차방어 상대였던 복병 <카멜로 보시>에게 약점을 고스란히 털려 왕좌에서 내려왔다.
  • 프레디 리틀 Vs 카멜로 보시
​또 다시 이탈리아로 챔피언 벨트를 가져온 보시는 로마올림픽 L.미들급 은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양훅을 중심으로 한 파이팅과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인상적이었던 반면, 가드가 낮고 허술한데다가 기술적으로도 테크니션치고는 낮은 수준이어서 2차방어전에서 일본의 <와지마 고이치>에게 후반 추격을 허용하며 타이틀을 잃고 말았다.

1970년대 일본 프로복싱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와지마는 트럭 운전과 건설현장을 전전하다가 25살의 늦은 나이에 프로복싱에 입문했는데 기량 자체는 그다지 뛰어날 것이 없었으나 양팔을 돌리듯 움직이며 불규칙한 위빙과 더킹으로 상체를 흔들어 상대를 현혹하다가 강렬한 좌우스트레이트로 안면을 강타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했다.
특히, 개구리처럼 점프해 체중을 실어 날리는 기습적인 연타는 와지마의 전매특허로서 멀리서 날아온 서구의 도전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강인한 투지와 근성을 바탕으로 끈기있게 펼치는 장기레이스에 능했고 몇번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불꽃의 사나이라는 링네임을 얻을 정도로 자국팬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초반 KO로 장식한 뒤 후일 WBC 챔피언에 오르는 강호 미구엘 데 올리베이라의 도전을 재차 뿌리치며 6차방어에 성공했으나 지명도전자인 미국의 <오스카 알바라도>와 처절한 사투 끝에 15RTKO패를 당해 1차 집권기를 마감했다.
  • 와지마 고이치 Vs 미구엘 데 올리베이라(제1전)
웰터급 시절에는 중요한 일전마다 번번히 고배를 들어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 체급에서 와지마의 롱런 가도를 끊어내는 개가를 올린 알바라도는 수비에 빈틈이 많았지만 레프트잽을 활용한 라이트스트레이트와 레프트보디샷이 위력적이었고
닉네임인 샷건답게 끊임없는 공격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터프가이였다.
첫 방어전에서 류 소리마치를 통쾌한 KO로 쓰러뜨린 후 또 다시 일본을 찾아 <와지마 고이치>와 리매치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와지마가 많은 손을 내며 알바라도의 강타를 수월하게 봉쇄해 타이틀을 탈환했다.

재임에 성공한 와지마는 WBA와 WBC의 서로 다른 지명방어전 이행 요구에 잠시 갈등을 겪다가 당시 신설기구 WBC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상이 높았던 <WBA>를 선택해 WBC 타이틀을 박탈당한 채 지명도전자인 우리나라의 <유제두>를 불러들여 첫 방어전에 나섰다.
경기에 앞서 내한해 생각보다 무서운 상대라며 엄살을 떨던 와지마는 유제두의 폭발적인 강타 앞에 7R에서 세차례나 캔버스를 구르는 수모를 당하며 자신의 예언을 현실로 입증(?)했다.
  • 와지마 고이치 Vs 유제두(제1전)
​미들급 동양타이틀을 14차례 방어하며 동국의 선배 김기수와 마찬가지로 무적함대로 군림했던 유제두는 떡 벌어진 어깨와 강인한 완력, 그리고 중량급 치고는 유연한 상체를 갖고 있었는데 굵고 힘찬 다리를 바탕으로 상대의 위, 아래를 고르게 타격하는 눈부신 공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게다가 완벽할 정도의 레프트 보디블로우는 언제든 KO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무기였다.

첫 방어전에서 수준 미달의 미사코 마사히로를 곤죽으로 만든 뒤 8개월만에 재회한 <와지마 고이치>에게 선전이 기대됐지만 약물중독의 의혹 속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최종회 TKO패를 당해 충격을 주었다.
이후 정상 복귀가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의 미숙한 복싱외교 탓에 정상 재도전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동양타이틀 최다방어 기록인 21차방어 성공의 대업에 만족하며 글러브를 벗었다.

이미 34살에 접어든 와지마는 그동안 무서운 집념으로 이 체급에서만 세 번째 왕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스페인에서 날아온 <호세 마누엘 두란>에게 초반부터 다운을 내주며 14R에 참담한 KO패를 당해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은퇴 후 후진양성을 위해 체육관을 운영했던 그는 연예계에도 진출해 대중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았다.
  • 엘리샤 오베드 Vs 에크하르트 닥게
한편, 1975년 사실상 이 체급의 타이틀 분리를 선언한 <WBC>는 5월에 스페인의 호세 마누엘 두란을 판정으로 꺽은 브라질의 <미구엘 데 올리베이라>를 새챔피언으로 인정했다.
과거 와지마에게 도전해 1무 1패를 기록하며 한계를 드러냈던 올리베이라는 안정된 공수에 연타능력이 좋고 쇼트펀치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었지만 너무 늦게 왕좌에 오른 탓인지 6개월 뒤 23살의 혈기왕성한 도전자 <엘리샤 오베드>의 힘찬 대쉬를 견디지 못하고 11R 시작과 함께 기권했다.

바하마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오베드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는데 탄력있는 움직임에 강력한 펀치력과 젊은 패기까지 더해 복싱팬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으나 세상은 넓고 선수는 많은 법이어서 두차례의 방어전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섰던 독일 원정길에서 <에크하르트 닥게>에게 턱이 부서지며 10R만에 무릎을 꿇어 기대와 달리 단명하고 말았다.

1930년대 헤비급의 막스 슈멜링 이래 독일에서 오래간만에 탄생한 세계챔피언인 닥게는 아마추어를 통해 기본기를 다진 테크니션으로 만년의 데니 모이어와 마누엘 곤살레스, 빌리 바커스를 연파하며 묵묵히 실력을 키웠고 자신에게 일격을 가했던 두란에게 설욕하고 유럽챔피언에 오르면서 비로소 세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불혹을 앞두고 최후의 도전에 나선 에밀 그리피스를 넘어선 뒤 3차방어전에서 이탈리아의 <로키 마티올리>에게 5R만에 침몰해 동독의 베를린을 드나들며 방어전을 갖은 것 외에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어려서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간 마티올리는 멜버른에서 데뷔했지만 이탈리아의 실력자 움베르토 브란치니의 수하로 들어간 뒤 조국으로 옮겨오면서 부쩍 물이 올랐다.

여느 유럽선수들에 비해 몸놀림이 유연했고 좌우컴비블로우의 연결도 부드러웠으며 주포인 레프트훅은 슬러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전 챔피언인 오베드와 두란을 연거푸 KO로 쓰러뜨리면서 각광받기 시작했으나 그것도 잠시여서 상대성이 나빴던 영국의 실력자 <모리스 호프>에게 시종일관 공매를 허용하며 9R 종료 후 경기를 포기해 3차방어에실패와 함께 무관으로 전락했다.
  • 로키 마티올리 Vs 모리스 호프
와지마를 쫓아낸 두란은 스페인이 배출한 3번째 세계챔피언으로서 푸트웍이 좋고 날카로운 원투스트레이트를 장착하고 있는데다가 외모와 달리 호전적이기까지 했으나 공수 자체가 솔직하고 기복도 심했기 때문에 롱런과는 거리가 멀어 5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미구엘 카스텔리니>와 혈투 끝에 타이틀을 넘겼다.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뛰어난 힘과 터프니스를 지닌 카스텔리니는 12년이 넘는 풍부한 캐리어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도 묻어나고 있었지만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던 얼치기 도전자 <에디 가소>에게 판정패를 당해 이미 전성기가 지났음을 드러냈다.

니카라과 출신의 가소는 흐느적거리는 것 같은 엉성한 모습으로 인해 도무지 챔피언다운 위용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해 절대 손해를 보는 일이 없었고 단 한차례의 다운도 뺏기지 않을 만큼 끈질긴 면도 있었다.
힘을 뺀 상태로 주먹을 내다가 임팩트 순간 힘을 실어 날리는 펀치가 이색적이었고 사이드스텝에 의한 측면공격 역시 가볍게 볼 것은 아니었다.

변칙적인 공수에 눈이 좋고 반사신경도 민첩한 편이어서 첫 방어전에서 왕좌 복귀를 노리던 와지마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정확히 요격해 KO로 잡아내기도 했으나 3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임재근과 홀딩과 클린치를 반복하며 지루한 승부를 펼쳐 웃음거리가 되더니 일본의 신예 <구도 마사시>의 적극 공세에 밀려 결국 타이틀을 빼앗겼다.

1978년 당시 자국의 세계도전 16연패의 사슬을 끊어내 졸지에 구세주로 떠올랐던 구도는 레슬링선수 출신으로 뮌헨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자 복싱으로 전향한 보기드문 케이스였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챔피언으로 지구력이 강해 꾸준함이 돋보였고 동양인치고는 푸트웍이 좋아 치고 빠지는 복싱에 능했다.
마누엘 리카르도 곤살레스와의 2차방어전에서 졸전을 펼쳐 악전고투를 경험한 뒤 재전에서 막판 연타를 집중시켜 TKO승을 거두었지만 이어 우간다 출신의 <아유브 카룰레>에게 완패하자 그대로 링을 떠났다.
  • 에디 가소 Vs 구도 마사시
이 체급은 신설 초기 주로 유럽과 동양에서만 흥행이 이루어진 가운데 이탈리아가 4차례나 세계챔피언을 배출해 유독 강한 면모를 과시했는데 태생적으로 비인기 체급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1960년 로마올림픽 복싱에서 금메달 3개를 비롯해 모두 7개의 메달로 우승하며 복싱 붐이 거세게 일어난 덕분이기도 했다.

이후 불꽃의 사나이 와지마가 뛰어난 정신력으로 3번씩이나 정상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양대기구 체제 하에서 두란-카스텔리니-가소-구도로 이어진 WBA 리니얼 챔피언들의 잇단 졸전은 Jr.미들급에 대한 인상을 더욱 더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 와지마 고이치
 
  • 모리스 호프 Vs. 윌프레드 베니테스
영국 속령이었던 카리브해의 소국 앤티가바부다 태생인 <WBC> 챔피언 <모리스 호프>는 일찍이 영국으로 건너와 국가대표로 뮌헨올림픽에 출전했고 이듬해 프로에 데뷔하여 영연방타이틀과 유럽타이틀을 차례대로 석권한 뒤 에크하르트 닥게에게 도전했으나 홈텃세로 분루를 삼킨 바 있었다.

날카로운 카운터 펀치가 일품이었던 사우스포로서 날이 갈수록 상대를 압박하는 힘과 펀치력이 향상돼 한때 요주의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스피드를 동반한 레프트스트레이트를 앞세워 순조롭게 방어 행진을 펼치다가 1979년 3월 양대기구 톱랭커였던 푸에르토리코의 신동 <윌프레드 베니테스>에게 12R 오버핸드 라이트훅 원펀치에 무너져 4차방어에 실패했다. 헨리 암스트롱 이래 무려 43년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베니테스의 등장은 이 체급의 물줄기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유럽과 동양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매치메이킹이 비로소 본고장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베니테스의 최연소 3체급 석권이라는 이슈까지 더해져 복싱팬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22살에 불과했던 베니테스는 천부적인 소질로 게으름을 피우는 와중에도 지명도전자 카를로스 산토스에 이어 슈거 레이 레너드에게 비겁자로 낙인찍힌 로베르토 두란까지 여유있게 압도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해 조숙한 천재가 이제야 만개하는 듯 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 웰터급에서 쫓겨난 <토머스 헌스>와의 3차방어전에서는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판정패를 당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후 재기를 모색했던 베니테스는 미들급으로 올라가 무스타파 햄쇼에게 한계를 드러낸 후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 승패를 반복하다가 32살에 은퇴한 뒤 펀치드렁크 증세에 시달리며 지금까지 불우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 윌프레드 베니테스 Vs. 토머스 헌스
우간다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WBA>의 <아유브 카룰레>는 1974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덴마크 출신의 프로모터 모겐스 팔레의 손에 이끌려 덴마크에서 프로데뷔했다. 사우스포의 테크니션으로 라이트잽에 이은 레프트스트레이트와 보디를 겨냥한 어퍼컷이 발군이었고 능수능란하게 상하를 가려치는 여유까지 갖고 있었다.​

다만, 중량급치고는 부족한 파워와 적극성이 결여된 경기 스타일은 아쉬움을 주었다. 홈링에서 연이은 승전보를 올리며 4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치러내 롱런의 가능성이 엿보였지만 라이벌 헌스와의 일전을 앞둔 <슈거 레이 레너드>의 워밍업 상대로 지목돼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Jr.미들급 침공에 성공한 레너드는 1966년 에밀 그리피스 이래 15년만에 동시에 2체급을 석권한데 만족하고 한달여 만에 타이틀을 반납해 결과적으로 카룰레의 앞길만 막은 꼴이 되었다.
  • 아유브 카룰레 Vs. 슈거 레이 레너드
​공석이 된 왕좌는 일본의 <미하라 다다시>가 미국 원정에서 로키 프라토를 꺽고 차지해 국민적 영웅 구시켄 요코의 몰락으로 실의에 빠진 자국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냉정한 마스크의 미하라는 면도날같은 원투스트레이트를 앞세워 비교적 깔끔하고 스마트한 복싱을 구사했다.

그러나 고심 끝에 골라잡은 미국의 <데이비 무어>에게 6R만에 참혹한 패배를 당해 석달도 못되어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과 9전만에 정상에 오른 무어는 아마추어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신예로 모스크바 올림픽 선발전에서 도널드 커리에게 패하자 곧장 프로에 뛰어 들었다. 엄청난 스태미나를 소유한 덕분에 속사포같은 연타가 멈출줄 몰랐고 스냅을 살린 스피디한 펀치와 오버액션에 가까운 터프니스는 확실한 장점이었다.

부실한 디펜스에도 불구하고 전 챔피언 카룰레를 포함해 3차방어까지 모두 KO로 장식해 내일의 스타 후보로 급부상했지만 아직은 덜 여문 탓에 1983년 32번째 생일을 맞이한 왕년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의 무자비한 펀치세례에 8RKO패를 당해 기대와 달리 일찍 시들고 말았다.
  • 데이비 무어 Vs. 로베르토 두란
1년반 전 베니테스에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퇴해 이제 두란은 끝났다는 말이 돌았지만 사상 7번째로 3체급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왕좌에 복귀한 두란은 예전의 기량과 경기감각을 회복한 것은 물론 야수성 짙은 투쟁본능까지 되살아나 당대의 미들급 제왕 마빈 해글러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새로운 신화창조에 나섰다.

이 경기에서 두란은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해글러의 강공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터프니스를 발휘하며 상당한 선전을 펼쳐 중량급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주가를 끌어 올린 그는 황금의 빅카드를 노리며 WBA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500만 달러가 보장된 헌스와의 빅매치에 나서는 바람에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 토머스 헌스 Vs. 로베르토 두란
​한편, 2관왕에 오른 <WBC> 챔피언 헌스는 퇴물 머레이 서덜랜드에 이어 첫 방어 상대 루이지 민칠로에게도 판정승에 머물러 새가슴이 됐다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레버리지의 장점을 활용한 소나기 펀치와 민첩한 회피능력은 여전히 유효했고 레프트훅은 물론 주무기인 라이트스트레이트는 그 위력이 더욱 더 배가된 모습이었다.

1984년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두란을 맞이해 히트맨답게 2R 메가톤급 파워를 장착한 환상적인 라이트스트레이트로 거함을 침몰시켜 레너드의 은퇴로 공허해진 프로복싱계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두란 전을 통하여 그 해 링매거진으로부터 최고의 복서에 선정된 헌스는 공포와 전율의 괴물성이 되살아났다는 여론에 힘입어 내친김에 해글러를 제물삼아 3체급 석권의 야망을 이루려는 위대한 거사에 나섰다.

그러나 내추럴 미들급이었던 해글러는 두란과 달랐고 짧지만 강렬했던 8분 간의 명승부를 펼친 끝에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1년여의 긴 공백에서 돌아와 IBF 초대챔피언을 지냈던 마크 메달을 8RTKO로 제압하고 4차방어에 성공한 후 체급을 올려 본격적인 다체급 사냥에 나섰다.
  • 마이크 맥컬럼 Vs. 도널드 커리
두란이 내팽개친 <WBA> 타이틀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미국의 숀 매니언을 가볍게 누른 자메이카 출신의 <마이크 맥컬럼>의 품에 안겼다. 전미 골든글러브에서 두차례 우승하며 250전의 풍부한 아마추어 경력을 갖고 있었던 맥컬럼은 카룰레의 재기를 가로막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조용한 실력자였다. 보디 스내처(Body Snatcher)라는 링네임답게 보디공격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묶어 놓은 뒤 연타로 조이는 타입이었는데 어퍼컷, 훅, 스트레이트의 3박자 조합은 눈이 부실 정도였고 너클보다 스냅을 이용한 컴비블로우는 맥컬럼만의 독특함이었다.

난적 민칠로에 이어 강타자로 소문난 데이비드 브랙스턴과 줄리안 잭슨을 잇달아 KO로 잡아내 진가를 발휘하더니 웰터급에서 올라온 밀턴 맥크로리와 도널드 커리마저 손쉽게 쳐부수고 6번의 방어전을 모조리 KO로 쓸어 담아 복싱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타이틀을 반납한 뒤 미들급으로 월장해 숨부 칼람베이에게 실족했지만 오래지 않아 미들급은 물론 L.헤비급까지 정복하며 무난하게 3관왕을 달성해 명복서의 반열에 올랐다.
  • 줄리안 잭슨 Vs. 프란시스코 데 헤수스
​후임에는 맥컬럼에게 상처를 입었던 미국령 버진군도 출신의 <줄리안 잭슨>이 동양의 KO왕 백인철을 3R에 무참히 쓰러뜨리고 자리를 꿰찼다.
장신의 후커로 특히 레프트훅이 빠르고 강하며 주먹 자체에 엄청난 파워가 내재되어 있어 슬러거로서의 대기가 엿보였다. 반면, 탁월한 신체조건이 아까울 만큼 잽 사용이 미숙하고 유연성도 부족했으며 연타 시 와이드 오픈되는 치명적인 약점도 갖고 있어 불안감이 공존했다.

나중에 이 체급에서 롱런챔피언으로 군림하게 되는 테리 노리스를 기가막힌 타이밍의 라이트훅 일발로 실신시키고 3차방어에 성공하자 돈 킹의 조언에 따라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미들급으로 올라섰다. 동향의 선배 에밀 그리피스에 비해 전체적인 평가는 떨어졌지만 펀치력 하나 만큼은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 지안프랑코 로시 Vs. 도널드 커리
안정된 투톱의 WBA와 달리 <WBC>쪽은 고만고만한 챔피언들의 각축장이 되어 혼란에 빠졌는데 먼저 미국의 <듀안 토머스>가 예상과 달리 존 무가비를 3RTKO로 누르고 동문인 헌스의 뒤를 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토머스의 승리가 서밍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팬들의 외면을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첫 방어전에서 무명의 <루페 아키노>에게 패배해 지극히 평범한 실력만큼이나 희미한 존재가 되었다. 멕시코 출신으로는 처음 Jr.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아키노는 투박한 복싱스타일에 지칠줄 모르는 힘과 터프니스만 눈에 띄었을 뿐 전체적인 수준은 정상과 거리가 있어서 정확히 83일만에 이탈리아의 <지안프랑코 로시>에게 바톤을 넘겼다.

아마추어에서 100전의 캐리어를 쌓았던 로시는 스위치가 가능한 아웃복서로 보잘 것 없는 펀치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따라 접근전을 마다하지 않았고 찬스가 나면 폭풍같은 연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전임 토머스를 링줄에 널어놓고 잠시 반짝했지만 절치부심하고 돌아온 <도널드 커리>의 빛나는 공격에 다섯 번이 캔버스를 구르며 2차방어에 실패해 첫 번째 집권은 단명에 그쳤다.

2년여만에 왕좌 복귀에 성공한 커리는 과거보다 파워는 떨어졌어도 섬세하고 날카로운 공격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어서 한때 WBA 챔피언 잭슨과 통합타이틀전이 거론될 정도로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프랑스 원정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듣보잡이나 다름없던 <르네 자코>의 훅과 어퍼컷에 시달리며 업셋을 당해 내리막을 강요받았다.

1950년대 알퐁스 알리미 이래 30년만에 조국 프랑스에 세계타이틀 바친 자코는 처음에는 전혀 싹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동국의 민칠로를 때려 잡고 세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투지만점의 파이터로 힘은 좋은 편이나 파워 결핍과 결정타 부족이 흠이었다. 5개월 뒤 정상 재도전에 나선 우간다의 <존 무가비>를 맞아 1R에 슬립다운 직후 발목을 다쳐 싱겁게 교체되었다.
  • 마크 메달 Vs. 얼 하그로브
1983년 새로 출범한 <IBF>에는 이듬해 3월 미국의 <마크 메달>이 동국의 하드펀처 얼 하그로브를 5R만에 스톱시키고 초대챔피언에 올랐다. 안정된 스탠스에 잽과 스트레이트가 정확하고 주무기인 레프트훅에는 상당한 파워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내구력에 치명적인 결함을 나타내 <카를로스 산토스>와 다운을 주고 받는 격투 끝에 첫 관문을 넘는데 실패했다.

3년전 베니테스의 벽에 울었던 산토스는 발이 잘 노는 스위치복서로 접근전에도 능한 편이었는데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부상으로 지명방어전을 갖지 못하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인기없는 신설기구 덕택에 1년 뒤 미국의 <버스터 드레이튼>을 상대로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힘에서 밀리면서 왕좌 복귀에 실패했다.

늦게 데뷔한데다가 별볼일없는 실력 탓에 일찍부터 승패를 반복하며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던 드레이튼은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타고난 맷집과 함께 공수의 균형감을 찾아가며 불같은 화력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베니테스를 잡고 재기를 노리던 무어의 도전을 10R만에 좌절시켜 잠시 주목을 받는 듯 하더니 3차방어전에서 캐나다의 신예 <매튜 힐튼>의 힘찬 대쉬에 타이틀을 넘겨 역시나 그릇이 모자랐음을 입증했다. 복싱가문 출신인 힐튼은 야성미 넘치는 인파이터답게 강력한 압박 복싱을 선호해 인기가 많았고 레프트훅과 위에서 내려치는 라이트펀치가 특히 위력적이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스타일때문에 수비가 허술하고 체력안배에도 익숙치 못해 <로버트 하인스>와의 2차방어전에서 초반 두차례의 다운을 빼앗고도 역전을 허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사우스포 하인스는 별다른 색깔이 없이 허약한 모습을 보여 화이트 호프로 급부상한 동국의 <다린 반 혼>에게 대차의 판정패를 당해 금방 쫓겨났다.

데뷔 4년만에 링매거진 커버모델로 등장하며 뉴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거창한 링네임까지 얻었던 혼은 180cm가 넘는 뛰어난 체격조에 인-아웃이 자유로운 복싱을 구사해 장래가 촉망되었지만 앞선 챔피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방어전에서 전 WBC 챔피언 <지안프랑코 로시>에게 힘 한번 못쓰고 무너져 거품이었음을 자인했다.
  • 매튜 힐튼 Vs. 로버트 하인스
1980년대 들어 이 체급은 잠시 발만 담궜던 레너드는 물론 베니테스와 헌스, 두란으로 까지 월장해 오면서 갑자기 수백만달러의 대전료를 호가하는 황금체급으로 변모해 격세지감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맥컬럼과 잭슨의 수준높은 KO씬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빠진 WBC와 신설기구인 IBF에서 함량 미달의 세계챔피언들이 속출하자 팬들의 관심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 테리 노리스 Vs. 슈거 레이 레너드
<WBC>챔피언에 등극한 <존 무가비>는 든든한 체격을 소유한 업라이트 스타일로 아마추어 출신답지 않게 거친 파이팅을 즐겼고 파괴력 높은 양훅은 상대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한번 찬스를 잡으면 무섭게 몰아쳐 야수라는 링네임이 붙었지만 발놀림이 적고 솔직한 공수패턴은 늘 마음에 걸렸다.

다소 늦게 왕좌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3년전 미들급의 제왕 마빈 해글러를 상대로 선전을 펼친데다가 무시무시한 일발 파워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롱런이 예상됐으나 불과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테리 노리스>에게 취약해진 내구력을 드러내며 1RKO로 무너져 허무하게 타이틀을 날렸다.

8개월 전 줄리안 잭슨의 한방에 고배를 마신 뒤 재수 끝에 소원을 이룬 노리스는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벨 산체스의 초기작으로 아마추어 시절 특별한 입상경험은 없었지만 291승 4패의 놀라운 전적을 기록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소유했다. 미끈하게 잘 빠진 체격에 흑인 특유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번개같은 스피드와 대포알을 방불케하는 파워를 동시에 겸비해 복싱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 테리 노리스 Vs. 멜드릭 테일러
​특히, 화려한 컴비네이션과 감각적인 풋스피드 그리고 아찔한 연타공격은 묘한 매력을 발산시켰다.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킨 안정된 복싱이 최고의 장점이었고 따로 감량이 필요없을만큼 컨디션 조절에도 능해 롱런의 발판이 되었다.

전 챔피언 르네 자코를 가볍게 넘어선 뒤 황혼기에 접어든 레전드 슈거 레이 레너드에게 비참한 종말을 안겨주며 일약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후 세계챔피언 킬러를 자임한 노리스는 도널드 커리 역시 무수한 연타를 퍼부어 은퇴시켰고 멜드릭 테일러와 모리스 블록커마저 초반 KO로 일축해 많은 미디어로부터 1990년대 미국의 흑인을 대표하는 영웅으로까지 칭송받았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되어 11차방어전에서 웰터급 통합챔피언 출신의 베테랑 <사이몬 브라운>의 기습을 받고 4RKO패를 당해 실족하고 말았다. 어느덧 서른 줄에 들어선 브라운은 여전히 강력한 한방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스피드 부재로 5개월만에 재회한 <테리 노리스>의 스틱 앤드 무브 전법에 탈탈 털려 1차전과 달리 비교적 큰 차이의 판정패를 당하며 2차방어전에 실패했다.
  • 질베르 데일 Vs. 카를로스 엘리오트
공석인 <WBA>왕좌에는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과달루페 태생인 <질베르 데일>이 카를로스 엘리오트의 턱을 부수어 버리는 인상적인 대관식을 갖고 등극했다.

중량급답지 않은 빠른 발과 예리한 라이트잽으로 레너드의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켰던 그는 몸의 회전력이 좋아 연타의 속도가 빨랐고 주포인 라이트어퍼컷은 일발파워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지명도전자였던 황준석의 거센 압박을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으로 조롱한 뒤 미국으로 날아가 퇴물로 생각했던 <비니 파지엔자>를 상대로 악전고투 끝에 최종회 서밍으로 눈을 찔리며 등을 돌려 단명하고 말았다.

로베르토 두란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라이트급과 Jr.미들급 석권의 기록을 남긴 파지엔자는 명트레이너 케빈 루니를 만나 침착하고 날카로운 공수를 갈고 닦았지만 도박과 폭력으로 사생활이 얼룩진데다가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어 부득이 타이틀을 반납해야만 했다.

걷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우려가 있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하며 노웅 두란을 꺽고 마이너기구 슈퍼미들급 정상을 차지해 미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뒤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이어간 파지엔자의 인간승리는 지난해 <Bleed For This>라는 제목의 영화로 발표되기도 했다.
  • 비니 파지엔자 Vs. 로베르토 두란(제1전)
후임에는 가미야마 히토시를 180초만에 KO시킨 <훌리오 세자르 바스케스>가 올랐다. 흡사 동국의 선배 카를로스 몬손과 후안 도밍고 롤단을 섞어 놓은 듯한 바스케스는 아르헨티나의 들소 그 자체였다.

전투력 충만한 사우스포의 강타자로서 엄청난 체력과 함께 보기에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무지막지한 압박으로 상대의 복싱을 철저히 봉쇄했고 타점높은 레프트스트레이트와 바람을 가르는 양훅은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까지 느껴졌다. 복병 하비에르 카스티예호를 적지에서 너끈히 잡아낸 뒤 아론 데이비스에게 고전했지만 이후 놀라운 하이 페이스로 본고장은 물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어 행진을 이어 나가 10차방어에 성공하며 롱런가도를 달렸다.

전반적으로 챌린저리스트의 순도는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방어전을 거듭할수록 관록이 붙어 나중에 이 체급에서 3대기구 통합챔피언에 오르는 로날드 라이트를 무려 다섯 번이나 캔버스에 굴리기도 했다. 그러나 4관왕을 노리고 도전해 온 WBC 웰터급 챔피언 <퍼넬 위태커>의 날다람쥐같은 스피드를 잡지 못해 한차례 다운을 빼앗은데 만족하고 타이틀을 내주었다.
  • 훌리오 세자르 바스케스 Vs. 토니 마샬
그동안 함량 미달의 세계챔피언을 양산했던 <IBF>는 <지안프랑코 로시>가 5년 넘게 장기집권하면서 겉보기에는 노리스와 바스케스가 장악한 메이저기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교를 갖춘 투타임 챔피언이었지만 슬로우스타터에 결정타가 부족하고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그의 롱런을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 넘는 노장의 투혼을 발휘한 로시는 4차방어전까지 매번 한차례씩 다운을 빼앗는 날카로움을 보여주더니 다린 반 혼과 자코를 연파해 베테랑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후 약골들과 춤을 추며 홈링에서 방어 횟수를 늘려나갔지만 데일과의 두차례 방어전을 통해 벼랑 끝에 몰렸고 미국의 <빈센트 페트웨이>의 레프트훅에 추락해 12차방어에 실패하며 오랜 권좌에서 내려왔다. 빠른 발을 가진 페트웨이는 취약한 내구력에도 불구하고 타격전을 선호해 늘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호 브라운을 맞이해 두차례나 다운을 주고 받는 하드코어 액션으로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지만 지명도전자 <폴 바덴>에게 12R 레퍼리 스톱이 걸려 아쉽게 2차방어에 실패했다.
  • 지안프랑코 로시 Vs. 빈센트 페트웨이(제2전)
아마추어에서 300전이 넘는 화려한 전적과 함께 내셔널 챔피언을 지냈던 바덴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채점방식과 스포츠 정치화에 대한 불만을 품고 프로에 전향한 의식있는(?) 젊은이였다. 선수비 후역습의 카운터 펀처였지만 접근전 시 쇼트펀치에도 능해 기회만 온다면 타격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편, 1988년 창설한 <WBO>는 루페 아키노를 물리친 미국의 <존 데이비드 잭슨>을 초대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사우스포의 정력적인 인파이터였던 잭슨은 스태미나가 부족해 초반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었는데 반타작 승률의 마르텡 카마라에게 사실상 KO패를 당하고도 레퍼리의 어줍지 않은 고집으로 왕위를 연명해 평가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서서히 체력 안배를 통한 장기전에 적응하더니 6차방어에 성공한 후 미들급으로 월장해 2관왕에 오르는 뒷심을 발휘했다.

잭슨의 뒤를 이은 벨리즈 출신의 <버노 필립스>는 재도전에 나선 아키노에게 역전 KO승 거두고 왕좌에 올랐는데 유연하고 안정된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매번 순탄치 못한 방어전을 이어갔다. 4차방어전에서 로시에게 판정패를 당했지만 로시가 도핑테스트에 실패한 덕분에 기사회생했다가 6개월 후 영국의 <폴 존스>에게 석패해 챔피언 벨트를 풀었다.
  • 루이스 산타나 Vs. 테리 노리스(제3전)
<WBC> 재집권에 성공하며 기세등등했던 노리스는 도미니카의 <루이스 산타나>를 상대로 첫 방어전에 나섰는데 5R 뒤통수를 얻어 맞고 쓰러진 산타나가 끝내 일어나지 않는 바람에 실격패를 당해 6개월만에 다시 무관이 되었다. 만년에 운이 트여 챔피언에 오른 산타나는 아직도 펀치력은 쓸만했지만 이미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지 오래여서 그의 왕좌는 좌불안석이었다. 다시 만난 노리스로부터 초반에 두차례의 다운을 당해 패색이 짙은 가운데 이번에는 3R 종료 공이 울린 후 가격당해 연이은 실격승으로 행운을 이어갔다.

그러나 새로운 각오로 머리까지 밀고 나타난 <테리 노리스>의 무시무시한 융단폭격을 받고 2R에 무너져 9달만에 타이틀을 돌려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산타나와의 괴이한 악연을 끊어낸 노리스는 1995년 바덴을 제물로 <IBF> 타이틀까지 어깨에 두르고 3차 집권기를 화려하게 열어 젖히며 이전과 다름없이 테러블다운 파이팅으로 페트웨이를 비롯한 도전자들을 차례대로 격파해 나갔다.

그러나 6차방어에 성공한 후 IBF의 지명방어전 요구에 불응해 타이틀을 박탈당하더니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빅매치를 앞두고는 한수 아래의 <키스 멀링스>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 하비에르 카스티예호 Vs. 오스카 델 라 호야
​태생적으로 비인기체급인데다가 동시대에 이렇다할 라이벌도 없어 평가가 높지 않았지만 슈퍼웰터급은 노리스라는 공식을 성립시키며 7년 넘게 최강으로 군림했을 뿐만 아니라 스피드와 파워가 조화를 이룬 뛰어난 실력과 통산 16차방어의 대기록은 내추럴 슈퍼웰터급으로는 올타임 넘버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자메이카 태생의 멀링스는 펀치력이 좋은 인파이터로 기복이 심한 경기력 때문에 장래를 보장받기 어려웠다. 2차방어전에서 적지 스페인의 <하비에르 카스티예호>에게 아슬아슬한 판정으로 패해 금새 무대 뒤로 사라졌다.

자국에서 역대급 챔피언으로 대접받았던 카스티예호는 고급스러운 테크니션은 아니었지만 헤라클레스로 불릴 만큼 뛰어난 힘을 자랑했고 각도 큰 좌우훅은 제법 위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기말 WBC의 정책적 배려(?) 덕분에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5차방어에 성공했으나 2001년 돌아온 골든보이 <오스카 델 라 호야>에게 철저하게 응징을 당하며 톱클래스와의 격차를 드러냈다.
  • 훌리오 세자르 바스케스 Vs. 퍼넬 위태커
장기집권 중이던 바스케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4체급 석권을 달성한 <WBA>챔피언 <퍼넬 위태커>는 흡족한 마음으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자신의 원래 체급인 웰터급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빈 자리는 미국의 <칼 다니엘스>가 도미니카 출신의 훌리오 세자르 그린를 격파하고 차지했다.

빠른 발을 앞세워 상당히 감각적인 복싱을 구사했던 다니엘스는 3년전 노리스에게 한계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연타공격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전임 <훌리오 세자르 바스케스>에게 11R 통렬한 레프트훅을 맞고 쓰러져 정확히 6개월만에 타이틀을 잃고 말았다.
재임에 성공한 바스케스는 과거에 비해 다소 박력이 떨어져 보였는데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적중하여 첫 방어전에서 프랑스의 복병 <롤랑 부두아니>에게 5RKO패를 당해 생각보다 빨리 야인으로 전락했다.
  • 롤랑 부두아니 Vs. 칼 다니엘스
​당시 카스티예호를 누르고 유럽무대를 평정하고 있었던 부두아니는 서울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답게 부드럽고 정확한 연타와 예리한 복부공격이 인상적이었고 뛰어난 결정력으로 높은 KO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다니엘스의 도전을 뿌리친 뒤 장신의 기예르모 존스에게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4번째 왕좌 복귀의 과욕을 부린 노리스를 9RTKO로 물리쳐 은퇴로 몰아넣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나이로 왕좌에 오른 탓에 5차방어전에서 미국의 신예 <데이비드 리드>에게 완패를 당해 자신도 링과 작별을 고했다.

불과 12전만에 정상정복에 성공한 리드는 호야처럼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에 프로 전향과 동시에 미디어는 물론 팬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탄력이 넘치는 몸놀림과 함께 빠르고 정확한 원투 펀치가 돋보인 반면 가드를 내리는 과도한 허슬 플레이는 위기를 자초하는 불필요한 모습이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치러낸 뒤 본격적으로 상위체급 공략에 나선 <펠릭스 트리니다드>와 격돌했으나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수차례 캔버스를 구르며 대차의 판정으로 패해 많은 부분에서 20여년 전 데이비 무어와 데자뷰를 이루었다. 이후 아마추어시절부터 달고 살았던 눈부상이 악화되면서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기대와 달리 짧게 막을 내렸다.
  • 데이비드 리드 Vs. 펠릭스 트리니다드
<WBO>의 세 번째 챔피언이었던 장신의 존스는 ‘실키’(silky)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었지만 승률이 낮아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는데 첫 방어전을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않아 이례적으로 넉달도 못돼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존스의 상대였던 미국의 <브롱코 맥카트>가 산토스 카르도나를 꺽고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묵직한 주먹을 소유한 사우스포의 강타자로 연타능력이 좋고 맷집도 갖추었으나 움직임은 둔한 편이어서 첫 방어전에서 <로날드 라이트>의 감각적인 공수를 당해내지 못해 타이틀을 넘겼다.

아마추어 출신의 사우스포인 라이트는 긴 팔의 효과적인 라이트잽과 상체를 뒤로 젖힌 완벽한 디펜스 위에 능수능란한 움직임으로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을 적절히 구사했던 조용한 실력자였다. 프로 데뷔 초 무서운 화력으로 KO가도를 달렸지만 수완 좋은 프로모터를 만나지 못해 미국 태생임에도 한때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년전 첫 세계도전에서 바스케스에게 패퇴한 뒤 더욱 더 진지한 모습으로 재기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빈틈이 없는 완성도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닌 탓에 정작 본고장에서 찬밥 신세였던 라이트는 계속하여 영국 원정 방어에 나설 수 밖에 없었고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여주며 착실하게 방어 횟수를 쌓아 나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날아가 벌인 4차방어전에서 <해리 사이먼>과 접전 끝에 무승부가 선언된 후 다시 판정패로 번복되면서 억울하게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그의 복싱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미비아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사이먼은 아마추어 시절 273전 중 2패만 기록할만큼 숨은 인재였는데 바르셀로나 올림픽 1회전에서 탈락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프로데뷔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챔피언에 올랐다. 부지런한 움직임과 함께 상대를 질리게 할만큼 손이 많았고 비교적 보디공격에도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위험할 것이 없었던 4명의 도전자를 해치우고 미들급으로 짐을 챙겨 2체급을 석권했다.
  • 로날드 라이트 Vs. 엔슬리 빙햄
노리스가 박탈당한 <IBF> 타이틀은 멕시코계인 미국의 <라울 마르케스>가 앤서니 스테펜스를 9RTKO로 누르고 차지했다. 늘씬하고 핸섬한 용모를 지닌 사우스포로서 상체의 움직임이 좋고 날카로운 좌우훅을 지닌데다가 호쾌한 타격전으로 인기가 높았으나 3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요리 보이 캄파스>에게 부실한 디펜스를 드러내며 생애 첫 패배 속에 바톤을 넘겼다.

원래 이름이 루이스 라몬이었던 캄파스는 70전에 이르는 풍부한 링경험이 밑천이었는데 접근전을 선호하는 터프한 멕시칸 스타일로 일발 파워는 물론 연타에도 능했던 반면 안면 수비가 허술해 웰터급 시절 두차례 정상 도전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3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한 뒤 세기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미국의 <페르난도 바르가스>에게 걸려들어 만신창이로 얻어터지며 7R만에 경기를 포기했다.
  • 요리 보이 캄파스 Vs. 페르난도 바르가스
​아마추어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21살의 바르가스 역시 멕시코계로서 멧돼지처럼 거칠고 난폭한 경기스타일은 물론 나이답지 않은 링밖의 매너 때문에 악동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뛰어난 투지와 재능은 물론 엄청난 파워를 장착한 좌우훅까지 소유해 적잖은 기대를 모았다. 전임 마르케스를 초토화시킨 뒤 왕좌복귀를 노리던 라이트에게 고전했지만 까다로운 상대였던 아이크 쿼테이를 꺽어 챔피언다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0년 12월 WBA 챔피언 <펠릭스 트리니다드>와 충돌해 초반 KO패의 위기를 딛고 다운을 주고 받는 명승부를 펼쳤으나 최종회 쓰리 넉다운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벨트를 풀어 6차방어에 실패했다. WBA에 이어 IBF 타이틀까지 흡수한 트리니다드는 약한 턱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승부근성을 보여주며 이 체급에서도 큰 족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뚜렷한 라이벌이 없는데다가 서둘러 3체급 석권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타이틀을 모두 반납하고 미들급으로 올라섰다.
  • 페르난도 바르가스 Vs. 펠릭스 트리니다드
1990년대 초중반 노리스의 눈부신 활약으로 웰터급 챔피언들의 무덤이 되었던 이 체급은 아무래도 주류 체급이 아닌 탓에 복싱팬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리스는 물론 바스케스와 로시같은 롱런챔피언을 배출해 의미있는 성과를 올린데 이어 2000년대 초반 트리니다드와 호야의 잇단 월장으로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구어졌다.
  • 오스카 델 라 호야 Vs. 페르난도 바르가스
2001년 토머스 헌스와 슈거 레이 레너드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5체급을 석권한 <WBC>챔피언 <오스카 델 라 호야>의 출현은 이 체급을 다시 한번 술렁이게 만들었다. 비록 웰터급에서 펠릭스 트리니다드와 쉐인 모슬리에게 연패를 당해 정점을 찍은 듯 했지만 모두 근소한 차의 패배였기 때문에 그의 상품성과 스타성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를 새로운 트레이너로 맞이한 호야는 종전의 소극적인 전법(?)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인파이터로 변신했는데 154파운드에서도 통할만한 좋은 체격조건은 물론 활발한 푸트웍과 강력한 컴비네이션에 수차례의 빅매치 경험까지 갖고 있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한편, 트리니다드가 반납한 <WBA> 타이틀은 재기에 성공한 <페르난도 바르가스>가 시바다 구니아키를 동경했던 멕시코의 호세 플로레스에게 맹타를 휘둘러 7RKO로 눕히고 가져갔다. IBF에 이어 투타임 챔피언에 오른 바르가스는 아마추어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던 호야와 가시돋힌 설전을 주고받더니 곧바로 통합타이틀전 논의로 이어져 2002년 최고의 빅매치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 오스카 델 라 호야 Vs. 쉐인 모슬리(제2전)
​양자 간의 악감정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Bad Blood’라는 타이틀로 거행된 이들의 경기는 왼손 부상으로 공백이 길었던 호야가 초반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팽팽한 혈투를 펼친 끝에 11R 바르가스를 처참하게 침몰시켜 경기내용은 물론 흥행면에서도 자존심을 크게 세웠다. 앞선 두 번의 패배를 멋지게 승화시키며 슈퍼웰터급에서도 <WBC>와 <WBA>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호야는 통산 3차 방어전에서 버논 포레스트에게 좌초한 라이벌 <쉐인 모슬리>와 3년 3개월만에 재회했으나 이번에도 1차전에서 당한 패배를 그대로 답습하며 아주 근소한 차의 판정패를 당해 세 번째 오점을 남기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개운치 않은 뒷맛에도 불구하고 일반의 예상과 달리 골든보이에게 또 다시 뼈아픈 상처를 안겨준 모슬리는 연거푸 체급을 올리면서 과거와 같은 경쾌한 스피드와 순간적인 연타능력은 줄었어도 기민한 움직임과 함께 빠른 공수전환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 다니엘 산토스 Vs. 안토니오 마가리토(제2전)
그 사이 <WBA>는 각 기구 간의 통합타이틀전을 촉진시킨다는 명분 아래 슈퍼챔피언 제도를 처음 도입해 통합챔피언 호야를 승격시키고 잠정챔피언 <산티아고 사마니에고>를 정규챔피언에 앉히는 말도 않되는 짓거리를 저질렀다. 덕분에 사마니에고는 오랜만에 조국 파나마에 세계타이틀을 안겨주었지만 이미 숱한 패배를 겪은 탓에 챔피언 벨트가 어울리지 않았고 원웨이트 원크라운이 당연한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첫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가르시아>에게 기량을 발휘할 틈도 없이 3R만에 함락당해 역시 약체임을 숨기지 못했다.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했던 가르시아는 호전적인 인파이터로 후려치는 듯한 라이트펀치가 매력적이었고 장신의 테크니션을 때려 잡는데도 능해 전도가 유밍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미국의 <트래비스 심스>에게 클린치상태에서 레프트훅을 얻어맞고 5RKO당해 허무하게 타이틀을 날렸다. 공석 중이던 <WBO> 타이틀은 <다니엘 산토스>가 요리 보이 캄파스를 11RTKO로 누르고 거머 쥐었다. 2체급을 석권한 산토스는 고비가 될 것으로 보였던 강호 안토니오 마가리토와의 리매치에서 10R 부상판정승을 거두고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했지만 5차방어전에서 우크라이나의 <세르히 드진지럭>에게 한차례 다운을 내주며 판정으로 물러나 아쉬움을 주었다.
  • 쉐인 모슬리 Vs. 로날드 라이트(제1전)
<IBF>에는 미국의 <로날드 라이트>가 로버트 프레이저를 제압하고 3년만에 왕좌에 복귀했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잠재력이 풍부했던 라이트는 4차례의 방어에 성공했지만 경기를 이기는데만 몰두한 나머지 푸대접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WBA> <WBC> 통합챔피언인 모슬리의 선택을 받아 견고한 디펜스를 바탕으로 여유있는 공격을 펼치며 군말없는 판정승을 거두고 3대 기구 타이틀을 통합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동안 큰 경기에 약하다는 수군거림을 일소하고 아웃사이더에서 일약 최정상급 메인스트림 복서로 도약한 라이트는 지명방어전을 이행하지 않아 IBF 타이틀을 박탈당한 가운데 8개월만에 다시 만난 모슬리를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따돌려 우위를 입증했다. 할머니가 붙여준 ‘윙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라이트는 곧바로 미들급으로 올라가 2005년 최고의 시합인 트리니다드 전을 깨끗한 승리로 장식하고 당시 WBC WBO 통합챔피언이었던 저메인 테일러에게 도전했으나 펀치스탯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로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 리카르도 마요르가 Vs. 오스카 델 라 호야
2005년 라이트가 사라진 뒤 이 체급은 강호의 검객들이 물고 물리는 대혼전을 벌이며 빈번한 챔피언 교대극을 연출했다. 먼저 <WBC>쪽은 잠정챔피언 <하비에르 카스티예호>를 정규챔피언으로 올렸지만 지명방어전 요구를 무시하고 바르가스와 대전계약을 체결하자 즉시 타이틀을 박탈했다. 이에 따라 지명도전자였던 악동 <리카르도 마요르가>가 미켈레 피치릴로를 가볍게 누르고 왕좌에 복귀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호전적인 맛이 덜 했던 마요르가는 버나드 홉킨스 전 패배 후 20개월만에 컴백한 <오스카 델 라 호야>에게 6R만에 격추당해 2관왕에 만족해야 했다. 통산 10번째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며 건재를 과시한 호야는 1년 후 프레디 로치와 손잡고 최후의 라이벌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를 상대로 전세계가 주목한 세기의 대결(?)에 나섰다. 그러나 중반 이후 메이웨더의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펀치에 밀리며 석패해 메이웨더가 사상 처음 무패의 전적으로 5체급을 석권하는데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들의 경기는 역대 최고의 대전료(PPV 배당금 포함)와 흥행수입으로 언론을 도배했고 5,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호야가 마이크 타이슨의 기록을 갈아치워 더욱 더 화제가 되었는데 골든보이의 시대는 저물고 프리티보이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신구 교대극이 되었다.
  • 오스카 델 라 호야 Vs.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이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매니 파퀴아오와의 드림매치에서 9RTKO로 무릎을 꿇은 호야는 2009년 4월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해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2002년 설립했던 골든보이 프로모션 운영에 전념해 주지하다시피 굴지의 프로모션으로 키워냈다. 앞서 WBO 미들급까지 모두 6체급을 석권하며 10년 넘게 세계프로복싱을 주름잡았던 호야는 1990년대 스타부재에 시달리고 있었던 프로복싱의 인기를 되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천문학적인 흥행수입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세계복싱기구 난립에 편승한 다체급 석권으로 경기력의 질적 하락을 가져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이 당대의 뛰어난 복싱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는 소극적인 경기운영은 유독 라이벌전에서 근소한 차의 패배를 자주 불러왔고 복싱팬들 역시 입맛을 다시며 본전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호야 사냥에 만족한 메이웨더는 두달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웰터급으로 돌아가 무패의 리키 해튼을 격파해 2007년 링지로부터 최고의 복서에 선정되며 프로복싱의 흥행을 주도해 나갔다.
  •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Vs. 트래비스 심스
<WBA> 챔피언인 심스는 타르비스와 쌍둥이 형제복서로 오랜 아마추어를 거쳐 26살에 프로데뷔한 늦깍이였지만 탄력있는 움직임과 감각적인 공수로 사우스포임에도 불구하고 매경기 뛰어난 링장악력을 보여주었다. 브롱코 맥카트를 상대로 수월하게 첫 방어에 성공한 이후 매니저와의 불화때문에 자주 링에 오르지 못하더니 슈퍼챔피언 라이트에 대한 지명도전 요구를 WBA가 무시하자 소송을 제기해 2005년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한달 전 로쉬 웰스를 때려잡고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알레한드로 가르시아>가 정규챔피언 자리에 무혈입성해 1년반만에 복위에 성공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펀치력을 자랑했던 가르시아도 루카 메시에게 생애 첫 판정승을 경험한데 이어 미국의 <호세 안토니오 리베라>에게 후반 체력 저하로 4차례의 다운을 허용하며 날개가 꺽였다. 노장의 투혼을 보여주며 2체급을 석권한 리베라는 여전히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오랜 공백을 깨고 나타난 전임 <트래비스 심스>에게 9RTKO로 무너져 한계를 드러냈다.
  • 버노 필립스 Vs. 카심 오우마
​한편, 일찌감치 라이트를 왕좌에서 쫓아낸 <IBF>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급조된 대타 카를로스 보호케스를 제압한 전 WBO 챔피언 <버노 필립스>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맞이했는데 필립스 또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가 부담으로 작용해 더 이상의 기대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당초 챔피언 결정전 상대였던 우간다의 <카심 오우마>가 첫 방어전에 나선 필립스를 판정으로 꺽고 링네임처럼 꿈을 이루었다. 1998년 아마추어시절 해외 원정에 나섰다가 내전에 휩싸인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한 오우마는 압박에 능한 공격형 파이터였다. 유연한 위빙과 더킹으로 많이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했고 손이 많기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다가 까다로운 왼손잡이여서 맞추기 어려운 퍼즐과도 같은 선수였다. 챔피언에 오르기 전부터 월드랭커를 여러명 포획해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기도 했으나 가나 출신의 강타자 코피 잔투아를 넘어선 뒤 지명도전자 <로만 카르마진>에게 초반부터 다운을 내주며 시달린 끝에 대차의 판정패를 당해 그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 세르히 드진지럭 Vs. 다니엘 도슨
만만치 않은 전력의 베테랑 산토스를 잡고 <WBO> 타이틀을 손에 넣은 드진지럭은 파이터답지 않은 이쁘장한 외모나 과묵한 성품과 달리 링 위에서는 강인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외유내강형의 실력파였다. 아마추어 시절 220전의 전적을 쌓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할만큼 탁월한 기량을 소유했는데 우니베르숨의 클라우스 피터 콜에게 스카웃되어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다. 장신의 사우스포로서 몸놀림이 부드럽지는 않지만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은 좌우컴비블로우가 돋보였고 일발파워보다는 잔펀치로 서서히 상대를 무너뜨리는 수적천석의 테크니션이었다. 챌린저리스트의 네임밸류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방어전마다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챙겨 한때 본고장에서 숨은 실력자로 조명되기도 했다. 5년 넘게 왕좌를 지키며 6차방어에 성공한 후 35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진출해 당시 미들급의 실권을 잡고 있던 세르히오 마르티네스와 격돌했지만 생애 첫 다운과 함께 8R 쓰리 넉다운으로 참담한 KO패를 당한 뒤 1년 넘게 방어전을 갖지 못한 탓에 타이틀까지 몰수당하며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버논 포레스트 Vs. 카를로스 발도미르
​<WBC> 타이틀을 반납한 메이웨더의 후임에는 모슬리의 천적이었던 독사 <버논 포레스트>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카를로스 발도미르와 치열한 난타전 속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빅네임들이 모두 지나간 자리에는 먹을 것이 없어 좀처럼 큰 경기를 잡지 못했고 불과 2차방어전에서 한수 아래의 <서지오 모라>에게 예상밖의 판정패를 당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멕시코계인 모라는 리얼리티 TV쇼 컨텐더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빠른 핸드 스피드와 적극적인 공격이 인상적이었던 반면 중량급 치고는 펀치력이 너무 약했다. 이로인해 단단히 벼르고 재대결에 나선 <버논 포레스트>의 강력한 공격에 철저하게 리벤지를 당해 석달만에 챔피언 벨트를 돌려주었다. 이듬해 부상으로 신음했던 포레스트는 방어전에 나서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한 후 주유소에서 강도의 총격으로 사망해 아투로 가티 사망 소식에 이어 복싱팬들에게 또 다시 슬픔을 안겨주었다.
  • 트래비스 심스 Vs. 요아킴 알시느
​<WBA> 왕좌에 복귀한 심스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다시 한번 복싱팬들의 관심을 모았으나 첫 방어전에서 무패의 지명도전자 <요아킴 알시느>를 맞아 클린치를 남발하는 기대 이하의 졸전을 펼치며 판정패로 물러나 예상과 달리 6개월만에 무관이 되었다. 아이티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데뷔한 무패의 알시느는 예리한 레프트잽과 스트레이트를 소유했고 찬스 시 연타공격에도 능했으나 2차방어전에서 <다니엘 산토스>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실신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놀라운 저력으로 세 번째 정상 등극에 성공한 산토스는 어쩐 일인지 방어전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훈련에도 소홀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미 서른이 훌쩍 넘은 탓에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데다가 경험에 의존하는 복싱으로는 더 이상 왕좌를 지킬 수 없어서 16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벨라루스 출신의 톱랭커 <유리 포먼>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채 링을 떠났다.
  • 로만 카르마진 Vs. 코리 스핑크스
​러시아 출신으로 돈 킹의 눈에 띄어 대서양을 건너온 <IBF> 챔피언 카르마진은 동구권 특유의 업라이트 스타일로 큰 키에 강한 압박이 인상적이었고 끈기와 체력은 물론 힘찬 좌우훅에는 나름대로 챔피언의 기품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뻣뻣하고 유연하지 못한 그의 복싱은 <코리 스핑크스>정도의 아웃복서에게도 통하지 않아 결국 2관왕의 제물로 바쳐졌다. 웰터급 시절 3대 기구를 제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드를 위주로 한 어정쩡한 복싱스타일로 인해 통합챔피언이라는 명함에 많이 모자랐던 스핑크스는 이 체급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2007년 미들급 통합챔피언으로 군림하던 테일러에게 도전했으나 졸전의 극치(?)를 보여주며 판정으로 물러나 아무리 흔한 3관왕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음해 이 체급의 타이틀마저 <버노 필립스>에게 빼앗긴 스핑크스는 종착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나이를 잊은 완력으로 세 번째 왕좌에 오른 필립스는 커다란 태극기가 들어간 트렁크로 눈길을 끌었는데 6개월 뒤 폴 윌리엄스와의 WBO 잠정챔피언 결정전이 잡히자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타이틀을 반납했다.​
  • 코리 스핑크스 Vs. 버노 필립스
그동안 웰터급과 미들급 사이에 끼어 이렇다할 이슈가 되지 못했던 이 체급은 슈퍼스타 호야의 등장과 함께 전직 웰터급 챔피언들의 월장이 촉진되면서 풍부한 인재들이 자리다툼을 벌이는 격동의 현장으로 떠올랐다. 특히, 호야-모슬리-라이트 다시 호야-메이웨더로 이어지는 주도권 싸움은 당시 전체급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전쟁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빅매치의 연속이었고 당연히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빅네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2005년 이후로는 WBA와 WBC 모두 자고나면 챔피언이 뒤바뀌는 난세가 도래했고 IBF와 WBO 챔피언들은 희미한 존재감으로 팬들의 관심밖에 머물러 격세지감을 실감케 했다.
  • 세르히오 마르티네스 Vs. 알렉스 부네마
2009년 버논 포레스트를 왕좌에서 밀어낸 <WBC>는 1년전 알렉스 부네마에게 8RTKO승을 거두고 잠정챔피언으로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세르히오 마르티네스>를 정규챔피언으로 승격시켰다. 한때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조국을 떠나 스페인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마르티네스는 팜파의 들소 같았던 동국의 선배들과는 결이 달랐다. 빠른 발과 유연한 상체의 움직임을 통해 인-아웃을 반복하며 정확한 파워펀치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슬릭무버 스타일이면서도 때로는 특유의 터프니스로 상대를 압박하는 기술까지 구사해 33살의 나이에도 적잖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큰 돈을 원했던 그는 한차례의 방어전도 갖지 않은 채 이듬해 미들급으로 월장해 켈리 파블릭을 꺽고 WBC WBO 통합챔피언에 오르면서 타이틀을 반납했다. 이로인해 왕좌가 공석이 되자 WBC는 봅 애럼과 결탁해 당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대전협상이 결렬되어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하던 WBO 웰터급 챔피언 <매니 파퀴아오>에게 새로운 신화 창조의 기회를 부여했다.
  • 매니 파퀴아오 Vs. 안토니오 마가리토
톱랭커 안토니오 마가리토와 조우한 파퀴아오는 신장과 체급 차이에 따른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현란한 손놀림과 다채로운 공격으로 마가리토의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며 완승을 거두어 오스카 델 라 호야에 이어 두 번째로 6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그의 6체급 석권이 더욱 더 위대했던 것은 플라이급부터 무려 10체급을 올라오면서 이룩했기 때문인데 사실상 내추럴 페더급에 불과한 신장과 골격을 갖고도 상위 체급의 내놓으라고 하는 선수들을 차례대로 쓰러뜨려 게임으로 치면 거의 사기 캐릭터나 다름 없었다. 또한, 비록 페더급과 슈퍼라이트급에서는 소위 4대 기구의 메이저 타이틀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미국의 링지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로부터 당대에 두 체급에서도 무관의 챔피언으로 공인받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정복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현세에 다시 보기 어려운 초인적인 괴물성을 발휘하며 슈퍼웰터급 사냥을 마친 파퀴아오는 스스로 154파운드는 자신에게 무리였음을 고백하고 석달 뒤 웰터급으로 돌아갔다.
  • 미구엘 코토 Vs. 리카르도 마요르가
노웅 다니엘 산토스를 무너뜨린 <WBA> 챔피언 <유리 포먼>은 벨라루스 태생으로 이스라엘에서 자라며 아마추어를 경험했고 프로데뷔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와 같은 유대인이었던 봅 애럼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부드러운 푸트웍을 소유한 아웃복서로 오른손이 잘 놀았고 펀치력이 나쁘지 않은 편임에도 안전운행을 선호해 KO율은 낮은 편이었다. 과감하게 첫 방어전부터 3관왕을 노리고 월장한 빅네임 <미구엘 앙헬 코토>를 상대했으나 시종일관 열세를 드러낸 채 무릎 부상으로 9R에 기권해 단명에 그쳤다. 슈퍼웰터급 월장과 함께 명장 엠마누엘 스튜워드와 손잡은 코토는 이 체급에서는 왜소해 보이는 체격과 불안한 내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중한 테크닉과 파워를 과시했다. WBA로부터 슈퍼챔피언으로 승격된 후 2년만에 재기에 성공한 리카르도 마요르가를 최종회 통렬한 카운터펀치로 가라앉힌데 이어 구원의 숙적 마가리토 역시 일방적으로 두들기며 설욕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듯 했다.
  • 미구엘 코토 Vs.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그러나 3차방어전에서 WBC 웰터급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를 맞이해 분전에도 불구하고 판정으로 고배를 들어 또 다시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5년만에 다시 슈퍼웰터급에 모습을 나타낸 메이웨더는 코토 전을 통해 3,200만불에 달하는 최고의 대전료를 챙기며 마이크 타이슨의 기록을 갈아치워 몇몇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실력은 물론 흥행면에서 링 위의 제왕다운 면모를 한껏 뽐냈다. 한편, 코토를 업그레이드시킨 WBA는 리고베르토 알바레스를 일방적인 판정으로 따돌린 미국의 <오스틴 트라우트>를 새로운 정규챔피언으로 인정헸다. 아마추어 국가대표 출신인 트라우트는 빠른 스피드와 유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자신의 거리에서 펼치는 감각적인 공수가 일품이었다. 잽과 스트레이트가 정확하고 왼손잡이답게 카운터펀치는 물론 기습적인 공격에도 능했지만 파괴력 부족은 중량급으로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3차례의 방어전을 가볍게 넘어선 뒤 실지 회복에 나선 대어 코토를 대차의 판정으로 낚아 올려 단번에 전세계 복싱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 오스틴 트라우트 Vs. 미구엘 코토
복싱팬들의 관심에서 한참 멀어져 있었던 <IBF>에는 전 챔피언 <코리 스핑크스>가 1년만에 컴백해 무명의 디안드레 라티모어와 시소게임 속에 어렵게 왕좌에 복귀했다. 그러나 비인기 챔피언인 탓에 계속 스케줄이 밀리더니 16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수비는 물론 내구력에서도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며 <코르넬리우스 번드라지>의 강타 앞에 침몰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데뷔 15년만에 정상에 오른 번드라지는 컨텐더 시리즈 출전으로 얼굴을 알린 인파이터로 기술적으로는 대단치 않았으나 뛰어난 완력과 더불어 후퇴를 모르는 무지막지한 공격력만큼은 확실히 돋보였다.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시추 파웰을 설욕한 뒤 스핑크스를 또 다시 7RTKO로 돌려세워 잠시 기세를 탔지만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이쉬 스미스>와 레슬링을 방불케하는 졸전 끝에 판정패를 당해 바톤을 넘겼다.
  • 코리 스핑크스 Vs. 코르넬리우스 번드라지(제1전)
역시 컨텐더 시리즈 출신인 스미스는 라스베이거스 태생의 첫 세계챔피언이었는데 중요한 경기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추락했다가 마지막 찬스를 놓치지 않고 기사회생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7개월 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메이웨더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멕시칸 터프가이 <카를로스 몰리나>와 접전 끝에 판정으로 패해 그저 운좋은 사나이에 불과했음을 입증했다. 2011년 세르히 드진지럭의 타이틀을 걷어들인 <WBO>는 이미 잠정챔피언으로 세워 놓았던 러시아의 <자우르벡 바이산구로프>를 정규챔피언으로 올렸다. 아마추어시절 주니어 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던 바이산구로프는 프로 전향 후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접근전을 선호하는 장신의 강타자로 레프트잽의 활용이 좋고 원투스트레이트는 물론 각도 큰 좌우훅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지나친 업라이트 스타일에 유연하지 못한 허리는 왕좌에 오르기 전 번드라지에게 일격을 당했을만큼 단점으로 지적됐다. 유로피언을 상대로 두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뒤 부상으로 신음하며 지명방어전을 응하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1년반이 지나 마이너기구 챔피언으로 컴백하며 재기를 모색했지만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 사울 알바레스 Vs. 오스틴 트라우트
파퀴아오가 반납한 <WBC> 벨트는 약관의 나이를 갓 넘긴 멕시코의 신성 <사울 알바레스>의 차지가 되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리키 해튼의 동생인 매튜 해튼을 누르고 세계무대에 등장한 그는 친형 리고베르토의 뒤를 이어 불과 15살에 프로에 뛰어들만큼 조숙했다. 발군의 하드펀처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힘을 앞세운 강한 압박과 공격적인 복싱으로 제법 높은 KO율을 나타내며 승승장구했다. 눈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 경험이 쌓이면서 빠르고 정확한 컴비네이션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푸트웍이 부족해 발빠른 주자에게는 약점을 보이기도 했지만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좌우훅에 위력적인 카운터펀치까지 구사하며 중량급 멕시칸 스타일의 대명사로 각광받았다. 붉은색 머리 때문에 ‘카넬로’라는 애칭으로 불리운 알바레스는 노장 커미트 신트론과 쉐인 모슬리를 차례대로 제압하며 메인스트림 전면에 올라선 뒤 2013년 4월 <WBA> 챔피언 오스틴 트라우트와의 통합타이틀전에서 한차례 다운까지 곁들이며 무난하게 승리함으로써 2010년대 초반 이 체급의 최강으로 우뚝 솟았다.
  •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Vs. 사울 알바레스
그러나 불과 5개월 후 이미 <WBA> 슈퍼챔피언의 직함을 보유하고 있었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진검승부에 나섰다가 상대의 감각적인 디펜스와 스피디한 원투펀치에 가로막혀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다. 한편, 당시 WBA는 알바레스의 타이틀 통합으로 인해 기존의 메이웨더와 함께 두명의 슈퍼챔피언이 발생하는 모순에 빠지자 알바레스에게는 슈퍼(Super)가 아닌 통합(Unified)챔피언으로 호칭하는 잔꾀를 부렸다. 이와같은 WBA의 더블 슈퍼챔피언 사태는 3년전 페더급의 크리스 존과 유리오키스 감보아에 이어 두 번째였다. 알바레스 전을 통해 다시 한번 돈벌이(?) 기록을 경신한 메이웨더는 WBC 사상 처음으로 제작한 황금벨트까지 허리에 두르며 프로복싱의 흥행을 주도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임을 입증했다. 이듬해 마르코스 마이다나와의 WBA WBC 웰터급 통합타이틀전에서 고전했지만 이 체급의 양대기구 타이틀까지 모두 걸고 다시 맞서 일방적인 스쿨링으로 자존심을 회복한 후 주전장인 웰터급으로 돌아갔다.
  • 드미트리우스 안드라데 Vs. 바네스 마티로시안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며 <IBF> 왕좌에 등극한 몰리나는 KO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라이트펀치만큼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첫 방어전을 앞두고 미국에서 성범죄자 미등록 문제로 긴급 체포되더니 13개월만에 링에 올라 전임 <코르넬리우스 번드라지>의 무력시위 앞에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41살에 재집권한 번드라지는 이 체급의 최고령 세계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겼으나 이번에는 불과 첫 방어전에서 떠오르는 샛별 <저말 찰로>의 폭죽같은 연타 속에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1념 넘게 주인이 없었던 <WBO>쪽은 미국의 <드미트리우스 안드라데>가 바네스 마티로시안을 판정으로 물리치고 새로운 타이틀 홀더가 되었다. 185cm가 넘는 늘씬한 체격의 사우스포인 안드라데는 아마추어시절부터 골든글러브는 물론 세계선수권까지 석권해 장래가 촉망되던 재목이었다. 움직임이 유연하고 민첩하며 원투스트레이트와 카운터 펀치가 예리한데다가 찬스 시 몰아치는 고급스러운 컴비블로우는 내일의 스타 후보로 부족함이 없었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빅매치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프로모터의 능력 부족과 상대의 대전 기피로 허송세월하며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 에리스란디 라라 Vs. 유리 포먼
한편, <WBA>는 메이웨더가 알바레스를 꺽고 슈퍼챔피언 단일화(?)에 성공하자 2014년 잠정챔피언 <에리스란디 라라>를 정규챔피언으로 승격시켰다. 쿠바 출신인 라라 역시 아마추어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독일로 망명해 프로 데뷔한 뒤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했다. 발이 빠르고 스피드가 좋은 사우스포로 내구력 문제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디펜스와 함께 준수한 스트레이트와 어퍼컷을 장착하고 있어 금새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챔피언에 오른 직후 재기를 모색하던 알바레스와 논타이틀전을 벌여 석패했으나 만만한 상대를 제물로 여우같이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발휘하며 6차방어에 성공해 2015년 메이웨더 은퇴 후 슈퍼챔피언으로 승격됐다. 이에 따라 잠정챔피언인 독일의 <잭 쿨카이>가 정규챔피언으로 올라섰지만 우직하고 단조로운 공수로는 유럽무대를 벗어날 수 없어서 두달만에 <드미트리우스 안드라데>에게 타이틀을 넘겼다. 좀처럼 큰 경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안드라데는 빅네임들로 술렁이는 미들급 월장을 선언하며 6개월만에 타이틀을 반납했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잠정챔피언 <브라이언 카스타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단신의 인파이터인 카스타뇨는 바람을 가르는 양훅이 주무기로 찬스 시 속사포같은 빠른 연타를 자랑하고 있으나 전적이 15전에 불과하고 제대로된 임자를 만난적도 없어 오는 3월 전임 라라와의 두 번째 방어전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저말 찰로 Vs. 코르넬리우스 번드라지
<IBF> 정상을 차지한 저말 찰로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압도적인 파워와 쉴새없이 쏟아붓는 소나기 펀치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상대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공격과 탄탄한 수비는 객관적으로 동생 저멜을 능가하고 있다. 특히, 타점높은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어지는 좌우훅과 어퍼컷은 링네임 히트맨다운 찰로 최고의 무기다. 세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뒤 감량의 부담을 고려해 미들급으로 올라가 WBC 잠정챔피언 자리를 꿰차고 빅네임과의 일전을 노리고 있다. 찰로의 뒤를 이어 토니 해리슨을 누르고 정상을 차지한 미국의 <자렛 허드>는 큰 키와 긴 리치를 활용해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뛰어나고 날카로운 카운터펀치도 장착하고 있어 최근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아직은 밸런스가 불안정한 편이고 후반으로 갈수록 가드가 허술해지는 단점도 갖고 있어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첫 방어전에서 트라우트를 10R에 침몰시킨데 이어 베테랑 라라까지 제압하고 <WBA> 타이틀을 흡수하는 수훈을 세워 더욱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에리스란디 라라 Vs. 자렛 허드
메이웨더의 은퇴에 따라 <WBC>는 <저멜 찰로>와 존 잭슨 간의 챔피언 결정전을 지시했다. 이 경기에서 찰로는 8RTKO승을 거두고 IBF 챔피언 저말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쌍둥이 형제가 같은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동시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왕좌에 오른 찰로는 감각적인 몸놀림과 송곳같은 원투스트레이트를 앞세워 아웃복싱은 물론 인파이팅에도 능한 모습을 연출했다. 일발 파워는 부족해 보이나 기회가 왔을때 정확한 타이밍의 컴비블로우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솜씨는 형 저말에 못지 않았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KO로 장식한 뒤 형과 마찬가지로 트라우트까지 손쉽게 요리하며 '찰로 트윈스' 돌풍을 일으켰으나 지난해 12월 <토니 해리슨>에게 논란이 있는 판정으로 실족해 4차방어에 실패했다. 뜻밖의 횡재를 한 해리슨은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스튜워드가 공들여 키운 마지막 제자였다. 토머스 헌스를 꿈꾸며 갈고 닦은 레프트잽과 라이트스트레이트가 눈에 띄지만 공수에 허점이 많고 맷집도 의문스러워 크롱크짐의 옛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 저멜 찰로 Vs. 존 잭슨
연이은 타이틀 박탈로 또 다시 챔피언 결정전을 갖게 된 <WBO>에는 영국의 호프 <리암 스미스>가 존 톰슨을 7R만에 실신시키고 왕좌에 올랐다. 4형제 복서 중 한명인 스미스는 전형적인 업라이트 스타일로 훅과 어퍼컷의 연결이 부드럽고 특히 보디공격에 일가견을 보였다. 챔피언 등극을 전후해 8연속 KO승을 거두며 물이 오른 펀치력을 자랑했으나 WBA IBF 미들급 통합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대결을 피해 이 체급으로 돌아온 2관왕의 <사울 알바레스>에게 9RKO로 무너져 3차방어에 실패했다.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50전에 가까운 캐리어를 통해 경기운영마저 능숙해진 알바레스는 매경기 좀처럼 흐름을 내주는 법이 없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상대를 요리해 나가며 한층 신중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론에 떠밀려 골로프킨 전을 위한 지리한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미 하향세에 접어든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주니어를 상대로 워밍업을 마친 후 골로프킨과의 일전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했다.
  • 리암 스미스 Vs. 사울 알바레스
이로 인해 비어 있던 자리에는 한동안 링을 떠나 있었던 4관왕의 <미구엘 코토>가 친정과도 같은 WBO의 배려 속에 기회를 잡아 일본의 가메가이 요시히로를 농락하고 6번째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마지막 불꽃을 피웠다. 그러나 수차례 은퇴를 공언해온 코토는 화려한 피날레 상대로 점찍었던 미국의 <사담 알리>에게 업셋을 당한 채 17년 복싱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예멘의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알리는 빠른 발을 소유한 스피드스터로 공수 양면에서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었지만 첫 방어전에서 신예 <하이메 문기아>에게 신장과 리치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4차례나 캔버스를 구르며 참담한 KO패를 당해 그릇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멕시코 중량급의 차세대 주자로 평가받는 문기아는 파워넘치는 저돌적인 공격력이 장점으로 왕좌에 오른지 8개월만에 세차례의 방어에 성공하고 있으며 22살의 어린 나이에 벌써 30전이 넘는 전적을 기록할 정도로 경험이 풍부해 미완임에도 불구하고 자국은 물론 본고장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 사담 알리 Vs. 하이메 문기아
198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처럼 2010년대 들어서도 이 체급은 파퀴아오와 메이웨더, 코토를 비롯한 슈퍼스타들의 등장으로 잠시 복싱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그들의 다체급 석권과 돈벌이를 위한 무대에 불과할 뿐이었고 비교적 롱런이 기대되었던 알바레스와 라라 역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탓에 태생적인 비인기체급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경향은 크게 변함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과거 와지마 고이치나 테리 노리스처럼 화제성이 풍부한 내추럴 챔피언들의 탄생을 통해 소소한 존재감이라도 되찾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