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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자료실

공자

by Ajan Master_Choi 2017. 8. 1.

 

공자 강의를 들었다.

공자(孔子)가 강의한 것이 아니라

공자에 대한 강의를 들은 것이다.^^

 

공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 공자한테는 '님'자를 붙이지 않을까?

공자라고 할 때 이미 존칭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를 붙이는 것 자체가 이미 높임말이다.

 

공항에서 출입국 직원이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왜 직업란에 꼭 목사님이라고 쓰세요? 그냥 목사라고 쓰시면 될 텐데..."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 하셨다.

"야, 그럼 스님이 '스'자만 쓰냐? "

ㅎㅎㅎ

 

목사에 '사(師)'는 스승 '사'자를 쓴다.

이미 높임 말이다.

그렇다고 부를 때 '님'자를 붙이지 않으면 천국 가는데 약간 힘들지도 모른다.

부자같이 공손하지 못하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 것이다.^^

 

어찌하든 공자는 위대하다.

예수, 부처, 마호메트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랭크되어 있다.

빌보드 차트보다 더 견고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이 성경 즉 "Bible"이고 이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논어(論語)이다.

어떤 학생은 '논어' 하니까 먹는 생선 이름인지 안다.

'공자왈맹자왈' 하는 소리를 못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불행스럽게도 나는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내용도 어렵고 한문을 잘 하지 못해서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 논어의 조각들만 조금씩 알고 있을 뿐이다.

성경을 다 읽는데 9개월이 걸렸다.

논어도 최소한 다 읽으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인내력이 있다면...

 

논어는 공자의 언행록이다.

성경(신약)을 예수님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썼듯이, 논어도 공자의 제자들이 쓴 것이다.

중국 '4서'라고 하면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한다.

 

내가 이 책들을 다 읽었다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성현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았으면 이렇게 손가락이 아픈 고생을 안 했을 것이다.

내 제자들이 다 적었을 테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강의 내용을 되씹어본다.

 

유교가 종교인가?

종교가 맞다.

비록 신을 섬기지 않지만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영혼을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공자가 유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거룩한 가르침을 후세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종교화 된 것이다.

놀 '유(遊)' 자를 쓴 유교이다.

노는 종교!

 

인류문명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첫째,

불의 사용이다.

왜 신들만 사용하는 불을 인간이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그리스 신화에 잘 나와 있다.

인간들이 동물처럼 사는 모습을 본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천상에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갔다 준 것이다.

참 용기있고 참한 신이다.

 

그 절도죄로 어디 높은 산에서 바위에 묶여 간을 독수리한테 날마다 쪼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을 사랑한 죄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은 고통이 따르나보다.

"사랑하면서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다.

 

인간을 사랑한 또 다른 신인 시지프스는 큰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려올리는 벌을 받았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면 벌을 받는다니 참 신들도 거시기 하다.^^

 

그 불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었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불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봐라.

참 깜깜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불을 준 신에게, 창조주에게 감사하면서 전깃불 밑에서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둘째,

인간에게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철(Fe)의 사용이다.

수렵사회에서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로 전환은 삶의 형태를 바꾸었다.

"오늘은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하나?"

하는 삶에서 농사를 지으니 얼마나 좋은가?

먹을 것, 그 끼니 때문에 이 추운 새벽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씨앗 하나에 한 오십 배의 소출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농사가 정착됨으로써 먹을 걱정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먹고 살 만하니까 어떻게 살아야 더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예술이 생기고 종교도, 음악도 생기게 되었다.

소위 문화라는 것이 생기고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도시라는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농사로 인한 잉여생산물로 계급도 생겼다.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무릇 가진 자는 힘이 있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에게 종속되는 법이다.

 

우리는 자기보다 열 배 많이 가지고 있으면 비난한다.

백 배 많이 가지고 있으면 존경심을 갖게 되고, 만 배를 가지고 있으면 그의 노예가 된다고 한다.

 

농사에서 가장 큰 것은 철기의 사용이다.

청동기보다 철을 사용하니 농업에서 큰 변혁이 일어났다.

철은 강하다.

그 강함으로 심경법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소출을 대량으로 올리게 된 것이다.

먹고살기가 더 편해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빈익빈 부익부!"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못 가진 자는 더 못 가지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래서 계급사회가 더 공고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

가진 자는 위에서 군림하고 못 가진 자는 아양과 아첨과 아부를 떨면서 살던지 아니면 반항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영화 '내부자'에서 부장검사가 주인공 검사에게 한 말이 생각나는가?

 

"잘 태어나지 그랬어? 아니면 잘 하던가!"

 

편한 것은 좀 자존심을 죽이면 된다.

적당히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가진 자들은 왕후장상처럼 귀족으로,

못 가진 자들은 평민이나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출세하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

좀 가져서 행세를 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자들은 말한다.

"아니꼽고 더럽고 매시껍고 치사하면 출세해, 출세를 하라!"

"아더매치" 다 아는 얘기다.

 

가진 자는 자기 맘대로 하고 살았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렸다.

왜?

자신은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자라고 믿었으니까...

 

BC 770년에서 BC 476년 까지를 춘추시대, 그 후부터 진시황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는 BC 221년 까지를 전국시대라고 한다.

서민으로 살던 사람들이 돈 좀 벌어서 기존 기득권세력과 한 바탕 일전을 벌인 시기다.

이를 우리는 군웅이 활거한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맞짱은 기득권자와 새로운 강자가 하면 될 것을 애궂은 민초들이 고생을 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얼마나 전쟁으로 비참한 삶을 영위했겠는가?

고단한 인생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마 BC 550년 경에 인류에 불세출의 영웅, 성인이 탄생한 것이다.

공자다!

다스리는 자가 있으면 그를 도와주는 참모들이 있다.

 

군주!

하늘의 명인 천명을 가진 자가 하는 일을 누가 시비를 하겠는가?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비위를 맞추면서 살았을 것이다.

안 그러면 밥 먹기가 곤란하고 심지어는 목도 날라가니 설설 길 수밖에...

단지 이 말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지당하신 말쌈이옵니다~~"

 

그런데 '중니'라는 참모는 달랐다.

나중에 공자라는 칭호를 받은 자이다.

지 멋대로 하는 윗사람에게 맞짱을 뜬 것이다.

"너 그러면 안돼!"

웃기는 넘이 된 것이다.

감히 하늘처럼 지엄하신 왕에게 똑바로 통치를 하라고 훈수를 둔 것이다.

 

다스리는 자가 그의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웃기는 놈이네!"

웃어 넘겼다.

왜냐하면 공자가 예의가 바르니까...

 

맹자는 좀 과격했다.

백성은 물이고 왕은 배이니 배가 똑바로 못하면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소위 역성혁명이다.

왜 위정자들이 맹자를 푸대접하고 공자를 내세우는지 이유를 알 것이다.

목이 위험해서이다.

 

공자가 왜 그랬을까?

온갖 잡넘(사기에서는 영웅으로 칭하고 있다.)들이 뭐 좀 해보겠다고 생난리 부르스를 추니 그 많은 백성들이 얼마나 불쌍하겠는가?

공자는 느낀 것이다.

무엇을?

.

.

.

사랑이다.

"인(仁)"이다.

 

인간이 존엄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불교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부처나 공자나 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인간을 인갑답게 보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을 본 것이다.

하나는 '仁'이라는 사랑을

또 하나는 '자비'라는 사랑으로...

 

공자는 인간의 존엄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나라에서 야반도주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 유세를 했다.

결국 가진 자에게 말의 씨알이 먹히지 않자 교육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논어나 대학이나 '학(學)', 배움에 관한 말씀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지를 못하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했다.

'학고창신'이다.

배워서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옛날에는 가진 자들은 모두 군자였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가 되려면 가지되 덕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道)를 알고 닦으면 덕이 생긴다.

'도(道)'란 것은 인간의 길이다.

인간의 길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길을 가다보면 '덕(德)'이 생기는 것이다.

노자에서는 道는 기(氣)이며 德은 체(體)라고 했다.

그 덕을 가진 자가 군자이지 권력이나 재산을 가졌다고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졸부도 부자로 취급하고 그를 따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로토를 긁으면서...^^

 

君子和而不同 [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화이부동 하고 소인은 동이불화 한다"고 한다.

인간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다.

 

조화란 무엇인가?

사랑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하라라고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이다.

황금률(Golden rule)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대접 받고자 하면 그렇게 대접하라! "와 똑같은 말씀이다.

 

살아오면서 도전하려다 그만 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나이에 내가 무슨..."하면서...

열정이 식어서이다.

걱정도 되어서이다.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에게 군자삼도를 권한다.

 

君子三道(군자삼도)...

선비는 군자이니 선비도 마땅히 三道를 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하신 말씀이다.

논어 ‘헌문’ 편에 실려 있는 글이다.

 

君子道者三(군자도자삼)

我無能焉 (아무능언),

 

仁者不憂 (인자불우)

知者不惑 (지자불혹)

勇者不懼 (용자불구)

 

"군자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세 가지의 도리가 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를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것은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어떠한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오래 전 공자도 저 세 가지 태도를 취하기가 얼마나 쉽지 않았으면 스스로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을까?

 

옆길로 좀 갔다와야겠다.^^

지금부터 오래전...

리크라테스가 대××(?)에서 근무할 때 사무실 오른편에 높으신 분들이 식사하는 곳이 있었다.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다.

 

식당 출입문 위에 군자 3도가 정말, 정말로 멋진 붓글씨로 씌여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아~ 저곳에서 식사하시는 분들은 정말 군자들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액자를 보면서...

정신, 아니 영혼 깊숙히 저 깊은 뜻이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크라테스가 현직에 있을 때 그곳에서 식사한 어느 분을 열심히 밀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논리로써...

 

그런데

아! 배신을 때렸다.

리크라테스 기대를 산산조각으로 부셨다.

비리...

글과 행동의 다름이란 이런 것인가? ㅠㅠ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어진 사람은 왜 근심하지 않을까?

善(선)하게 살아서이다.

죄를 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착하게 살고 있으니 무슨 걱정과 근심이 있겠는가?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떤 분이 자주 쓴 붓글씨가 '대도무문 인자무적' (大道無門ᆞ仁者無敵)이다.

대도무문(大盜無門)는 '큰 도둑은 문이 필요없다'라고 우스개 소리도 있다.^^

 

원래 大道無門는 '군자가 가는 길은 거침이 없다'는 의미이다. 불가에서는 '지극한 도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큰 道는 이를 한정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은 '선하고 착하며 어진 사람에게는 敵(적)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을 해칠 사람도 없는데 왜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인자불우(仁者不憂)는 맞는말 같다.^^

 

지자불혹(知者不惑) !

'지혜로운 사람은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리크라테스가 옛날에는 좀 아둔하고 세상물정을 몰랐다.

쉽게 '혹' 했다는 것이다.

무피아에서 자기성찰이라는 것을 몇 년 해보니 옛날 혹한 일들이 모두 나의 어리석음에 기인했음을 깨달는다.

좌우명으로 '지분ᆞ수분ᆞ안분'만 했지 도대체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지 분수를 알고 지 분수를 지키면 지 분수가 안전하다..."

행동이 따르지 않은 말뿐이었다.

시쳇말로 '공염불'이었다.

 

智慧(지혜) 지(智)자는 알 지(知)에 날 일(日)을 합한 글자다.

아는 지식에 태양을 쬐여 밝게 빛나는 것이 지혜다.

책 몇 권 읽었다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오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도덕경을 보면서 많이 뉘우쳤다.

"겸양의 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현혹되지 않으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몇일 전에 어느 분이 사업 제안을 해왔다.

리크라테스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일언지하에 "No"했다.

이 세상에 많은 승냥이(?)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긴 알면서도,

두 눈을 뜨고도 당한다고 한다.

세상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용자불구(勇者不懼)다.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뜻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진정하게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명랑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라.

"두려움! 그것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一夫當千(일부당천)이다."

 

老子에서도 많이 배운다.

특히 정치하시는 분들은 용감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두려워 해야 진정하고 용감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통치자는 백성 -요새는 국민이다-을 하늘로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고로 통치자는 백성의 안위와 생활의 풍족함을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 어떤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글이 매우 길어졌다.

손가락도 아프다.

이제 손가락에게도 안식의 시간을 주는 것도 군자(?)의 도리다.

君子和而不同 [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 [소인동이불화]

 

여러분을 이 글을 읽고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군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