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길었던 겨울방학.
찬기가 겨우 걷히는 한 낮이 되면 친구들은 느린 기지개를 켜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골목길에 모이곤 했습니다.
여자친구들은 양지바른곳에서
검정색 가느다란 머리실핀을 빠빳한 종이에 꼽아다니며, 땅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 삔따먹기를 했고,
남자친구들은 부지깽이보다 큰 나뭇가지를 들고 창싸움을 하며 마치 장군이나 되는것처럼 기개와 위엄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한데 어울려 깡통차기, 술래잡기를 했는데
술래가 된 친구는 눈을 감고 잔돌멩이가 든 깡통을 밟고 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를 몇번 외치는 사이에
나머지 친구들은 후다닥 숨기에 바빳습니다.
가을볕에 누런볏단으로 보기좋게 만들어 놓은 초가집 구석구석 숨을곳은 얼마나 많던지..
소마굿간,
나뭇간,
짚단을 쌓아 놓은 더그매위,
심지어는 장독간에도 숨을 곳은 많고도 많았습니다.
어쩌다 친구들이 장독간에
후다닥 뛰어들면 엄마들은 소리를 냅다 지르시며
" 야 이~눔들아 ..장독 깨진다~!"
불호령을 내리셨고
친구들은 머쓱한 키득거림으로 대신했습니다.
소리높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 술래는
"이제 찾는다~!! "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을 곧잘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술래가 한 눈을 판 사이에
날쌘 친구가
"술래야~!"
를 외치며 깡통을 냅다 차버리면
좁은 골목길은 빈깡통에 들어있는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로 얼마나 요란하던지~^^
친구들의 깔깔거리는 함성과
빈 깡통 굴러가는 소리로 좁은 골목길이 왁자지껄해지면,
목구멍이 매캐해지면서 이집 저집 굴뚝의 연기가 뽀얗게 솟아오르다가 골목길에 낮게 내려 앉았습니다.
겨울밤의 한기를 몰아내느라
이른 군불을 지피는 어느집에선가 마르지 않은 청솔가지를 때는지 매캐한 연기가 목구멍까지 파고들지만 결코 싫지 않은 푸릇한 향이 나서 좋았습니다.
연기탓인지 주위에 흐릿한 어둠이 몰려오면 집집마다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로 요란합니다.
이름따라 친구들은 고샅을 뛰어 각자의 집으로 내달리고 빈깡통과 친구들의 무수한 발자욱만 골목길에서 겨울밤을 보냅니다.
아침이 오면
어제의 일들은 기억에도 없습니다.
또 오늘이 어제와 같은 일상이 되어도 친구들은 결코 지루해하지도 않았고 어제도 했는데 오늘은 하지말자며 트집을 잡는 친구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마치 처음하는 놀이처럼 모두들 까르륵 거리며 즐거워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술래가
"찾는다아~!!"
라며
숨은 친구들에게
이제 찾겠다는 것을 알리고 찾는 그 순수함.^^
얼마나 솔직하고 담백한 일이었는지..
어쩌다 술래잡기 놀이에 지친 친구가 볏단사이에 숨은 채 잠이 들어버려서 술래가 끝내 찾지못한채 어둠이 몰려오고,
급기야는 동네 어른들까지 나서서 찾았던 일화는 온 마을에 퍼지는 웃음거리로 유명했지만,
결코 놀림이 아닌 즐거운 화제거리였고 매번 들을때마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배꼽을 잡으며 웃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고,
문득 이밤 그런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엄마의 반질반질하던 검은 낭자머리 뒷봉우리가 겨울햇살에 빛을 받아 더욱 검게 보였고,
집 울타리에 잎이 모두 떨어진 도토리나무 가지끝에 까치가 떼악거리며 울면
엄마는
"손님이 오실랑가~!"
하시며 먼 들판을 내려다 보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아궁이 깊숙하게 가득 밀어넣은 청솔가지가 아침이 오도록 온돌방 아랫목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그 시절 그 겨울 밤.
설을 쇠려고 겨울 짧은 햇살속에서 풀 멕여 발라놓은 하얀 문풍지에 어리던 달빛에 으스스 두려움을 느꼈던 그 겨울밤...
이젠 그런 겨울밤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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