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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TV 인기 드라마ㆍ70년대 ‘아씨’ ‘여로’ 방송땐 거리 텅 비어

by Ajan Master_Choi 2017. 10. 13.


드라마가 방영되던 저녁 7시30분이 되면

‘전국의 부엌에 밥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할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던 <여로>는 TV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인기 드라마의 ‘원조’는 1970~71년 TBC에서 방영된 <아씨>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공식 시청률 조사가 없었지만 <아씨>가 방송되는 시간대에는 거리가 텅 빌 정도로 이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심지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문단속을 잘해 도둑을 조심하고 수도꼭지가 꼭 잠겼는지 점검한 뒤 프로그램을 시청해달라’는 스포트(짤막한 광고)가 나올 정도였고,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2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주제가는 대중의 애창곡이 되었다.

<아씨>는 지체 높은 양반 가문으로 시집온 아씨(김희준)가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 속에서도 희생과 인내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내조한다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아씨>의 뒤를 이은 ‘메가 히트작’은 KBS의 <여로>였다.

가난한 집안의 착하고 예쁜 처녀(태현실)가 부잣집에 팔려와 바보 남편 영구(장욱제)와 살아가는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방송사가 추산한 당시 시청률은 70%대였다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선 “땍띠(색시)야, 밥 줘” 하는 영구 흉내를 내는 게 유행이 됐고, 영구가 아내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선 온 국민이 눈물바다를 이뤘다.

<여로>는 갔어도 ‘영구’라는 캐릭터는 살아남아, 90년대에 코미디언 심형래씨가 영구를 재연하기도 했다.

<아씨>와 <여로>의 성공 이후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홈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70~80년대 드라마의 대종을 이뤘다.

<새엄마> <신부일기> <결혼행진곡> <청실홍실> <후회합니다> <청춘의 덫> <달동네>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시청자인 여성들이 변하면서 순종, 인내, 헌신, 희생하던 여주인공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979년 선보인 <청춘의 덫>이 대표적 사례다.

이 드라마에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성이 복수를 시도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 등장했다.

결국 미혼모라는 ‘부적합한 소재’를 다뤘다는 이유로 이 작품은 조기종영되고 만다.

작가 김수현은 정확히 20년 후인 99년 <청춘의 덫>을 리메이크해 성공시킨다.

리메이크작에서 심은하가 독기 서린 표정으로 내뱉는 대사 “부숴버릴 거야”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대사로 꼽힌다.

1992년 박진숙의 <아들과 딸>은 이란성 쌍둥이 후남과 귀남을 주인공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정면도전해 화제를 모았고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은 뚱뚱하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물론 드라마가 진화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파리의 연인> 등은 ‘신데렐라 내러티브’에 의존했고 <아내의 유혹>과 <수상한 삼형제>는 ‘욕하며 보는 드라마’라는 평을 들으며 ‘막장 드라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0년대 중반 이후 50~60%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메가 히트작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TV 시청 외에 다른 여가활동이 늘었다는 점과 지상파 방송 외에 케이블TV, IPTV, 인터넷다시보기 등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화됐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