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를 잡곡으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현미는 엄연히 쌀이다.
껍질만 벗겨내다 보니 색깔이 거무스레해 검을 현(玄) 자를 써서 현미라 한다.
껍질만 겨우 벗겼으니 영양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물에 담그면 다시 싹이 트는데 이런 쌀을 발아 현미라고 한다.
겨는 물론이고 씨눈까지 도정한 백미와 비교하면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
현미밥은 건강식이다.
특히 식이섬유와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동맥경화와 당뇨병도 예방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정이 달랐다.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이 아닌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지어야 했던 옛날에는 현미밥 짓기가 쉽지 않았다.
기껏 밥을 지어놓아도 쌀알이 딱딱하고 껄끄러우며 거칠어서 먹기가 거북했고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현미밥을 무척 싫어했다.
어느 정도로 싫어했는지는 유교의 성현인 주자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유교에서 공자, 맹자와 함께 주자로 받드는 주희는 남송 때 사람이다.
대학자로 이름을 떨치니 사방에서 가르침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중에 호굉이라는 자도 있었다.
주자는 공부를 하겠다며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탈속반을 대접했는데 바로 현미밥이다.
당연히 자신을 찾아온 호굉에게도 현미밥을 내놓았다.
그러자 호굉이
“이것은 인정이 아니다. 아무리 산중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찾아온 손님에게 한 마리 닭과 한잔 술이 없을 것이냐”
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이튿날 주자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다.
후에 감찰어사가 된 호굉이 주자를 괴롭힌다.
주자가 혹세무민하고 잘못된 학문을 가르친다며 열 가지 죄목을 만들어 모함을 했다.
심지어 주자의 목을 베어 그릇된 학문을 퍼뜨리는 자를 근절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말년에 박해를 당하자 평소에 주자를 따르던 사람들도 주자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리지 않았고
주자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발각될까 겁이 나 변장을 하고 다녔다.
고난을 겪는 주자를 보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후학과 제자를 보고
조선시대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인심의 흉흉함과 세상의 험악함을 한탄했지만
따지고 보면 굳이 옛날 일만도 아니다.
호굉에게 심한 핍박을 받은 주자는 결국 귀양을 가서 사망한다.
《송사》 〈호굉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미밥을 대접받고는 무시를 당했다며 원한을 품은 호굉의 인물 됨됨이도 그렇지만 당시에 현미밥이 얼마나 형편없는 식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800년이 지난 지금은 현미밥이 최고의 건강식으로 꼽히고 있으니 호굉이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호굉과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재상이 되었어도 남들이 다 먹기 싫어하는 현미밥을 먹으며 솔선수범 근검절약에 앞장선 인물도 있다.
한나라 무제 때의 재상 공손홍으로 대기만성의 표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공손홍은 어렸을 때 무척이나 가난했기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향에서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됐지만 일자무식이었던 탓에 실수를 저질러 그 자리에서 해임됐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공손홍은 마흔 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예순 살에 박사가 되었고 이후 승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참고로 역사책에서 공손홍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예컨대 조정회의에서 어떤 문제가 쟁점이 될 경우 공손홍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적하면서 황제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고 한다.
황제의 뜻을 최대한 반영한 유능한 참모라는 평가도 있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참모였다는 평가도 함께 받는다.
어쨌든 업무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공손홍은 청렴하고 검소한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많은 녹봉을 받았음에도 언제나 베옷을 걸치고 지냈으며 먹는 것은 현미밥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상에는 고기가 한 접시 이상 오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적지 않은 봉급은 모두 손님을 대접하는 데 지출했는데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할 경우에는 나랏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한서》 〈공손홍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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