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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조선이 좀 더 빨리 개항했다면, 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by Ajan Master_Choi 2018. 12. 8.

그러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구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린다면,

한 마디로 개항시기와 망국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개항 이후 의 선택과 개혁,

그리고 주변의 국제 정세가 더 중요했습 니다.

 

물론 개항 시기가 좀 더 일렀다면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딱 그 정도.

 

개항 이후의 행보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지 개항시기가 문제가 아닌게 이미 중국의 경우 마카오, 광저우 등지에서 더 많은 국가 들과 접촉해오고 있었고 당시 일본은 막부의 쇄국정책 으로 문을 닫고 있었는데 개항시기가 중요했다면 중국이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어야 정상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마카오, 광저우의 제한적 접촉이라면 일본 역시 왜관과 속국 류큐, 북쪽에서 러시아인과의 접촉, 데지마의 네덜 란드와 제한적으로 바깥 소식은 계속 주고받았죠.

 

당시 권력층들이 적극적이고 진취 진보적으로 개항에 대한 의지와 해당과 필요사항들을 어느정도 충족시켜 나가고 또한 자주적이고 우리 세력측에 손해가 나지 않는 방향 쪽으로 개항과 교역 등을 단행해야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개항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여러 혜택과 근대 문명과 문물의 이점 등을 국민(백성)들이 확실히 (공평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 대부분이 조금이라 도 어느 정도씩은 느끼고 체험하게 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 등을 더욱 증진시키게 되는 방향으로 돌아갔어야만 했죠.

 

일단 국제 정세 파악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고, 대대 적인 환곡미 & 세제 개혁으로 빈약한 재정을 확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세세하게 따지자면 문제는 많겠지만, 일단 고종 자체는 즉위 당시부터 황제 중심의 독재정을 추구했고, 결국 개혁의 방향성은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지금껏 중앙은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중앙이 대대적인 개혁을 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실제 역사를 따져보았을 때, 대한 제국의 근대 화 진척은 생각보다 준수했습니다.

타국으로부터 차관 들여오고(특히 청) 화폐 팔아 별짓을 다해 자금을 모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때문에 안그래도 심했던 청의 압력이 굉장히 거세지면서, 동학농민운동 진압과정에서 청이 지원 요청 하라고 조선 조정에 압박을 하는 정황이 드러날 정도로 중요한 국면에서 외교적 자유도는 굉장히 떨어졌습니다.

이는 비단 청 뿐 아니라 개항시킨 일본을 비롯한 수 많은 열강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더욱 상황은 심각했죠.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당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고사하고 조약 하나만 믿고 경계하지 않는 모습 마저 보일 정도로 국제 관계에 대한 이해도는 처참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열강들의 내부사정까지는 모르더라도, 표면적인 외교 관계만이라도 이해했다면 망국은 피할 수 있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죠.

 

솔직히 전 삼국 간섭 등의 중요한 국면에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는 가능했을 거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행복회로 조금 돌리면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일본이 꿀꺽하기엔 좀 애매한 체급이고, 진행하던 근대화를 계속해 그럭저럭 괜찮게 성장해 1-2차 대전을 틈타 조용히 국력을 기를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는 지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개항했으면 잘나졌을텐데라는 시각이 너무 강합니다.

개항해서 잘나진 건(?) 사실상 일본 하나뿐입니다.

청은 그 이전부터 서양과 계속 무역 중이었고, 베트남 같은 경우는 개항과 동시에 식민지 화가 진행되었죠.

인도는 그 이전부터 천천히 영국에게 먹히고 있었구요.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개항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떤가를 생각해보세요.

지속적인 일본의 영향력 확대와 식민지화였죠.

 

우리나라는 일본을 증오한다고 하지만 역으로 너무 일본의 사례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항해서 근대화에 성공한건 일본이 유일합니다.

전세계에서 유일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개항 이후 자체적으로 열심히 내부강화를 한 것도 있지만 열강의 식민지화가 진행 되지 않는 행운도 있었죠.

아주 이례적인 사례이죠.

 

아주 이례적인 사례를 일반적인 사례처럼 인식하고 "조선도 일본처럼 개항했으면 일본처럼 근대화 되었을 까?"…라고 생각하는 것자체가 제가 보기엔 좀 무리수 입니다.

 

제가 보기엔 "조선도 일찍 개항을 했다면"이라는 일본 따라하기 IF놀이보단 일본 이외의 사례들을 더 많이 아는게 더 좋은거 아닌가 싶습니다.

 

망할 운명이었죠.

조선이 특히 못나거나 약했던 것도 아니고 옆나라 일본이 유럽, 미국 제외한 국가들 중에서 특별히 제국주의 국가 반열에 올라갔던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조선이 못했다기 보단 일본이 대단했던 거죠.

 

조선 이외에도 대다수의 아시아 국가들 거의 전부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으니까요.

영국과 프랑스가 충돌을 우려해 특별히 중립지역으로 놔둔 태국만 제외하고요.

 

확실히 개항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경우를 접목시키는 건 일본이 특이한 케이스임을 간과한 것이 문제인 듯 싶습니다.

 

미국은 당시 유럽과 달리 시장이 포화상태가 아닌 한창 성장하는 상태여서 일본을 굳이 원료시장, 상품시장의 식민지로 만들 필요가 없었기에 기항지 정도로만 개항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일본이 다른 식민지들의 운명과 달리한 것은 이 영향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조선이 일찍부터 개항하고 변화를 수용했더라도 결과가 큰 폭으로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설령 조선이 일찍부터 개항하고 변화를 수용했더라도 결과가 큰 폭으로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개항이 늦었던 것이 훨씬 더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강화도 조약부터 청일전쟁에 이르는 그 시기는 이제 막 개항한 조선이 자체적으로 뭘 해보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고, 너무 늦은 시기라 주변의 국제정세도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일단 보다 이른 시기에 개항이라도 해야 국제정세를 알고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잡을텐데 강화도조약 시점은 너무 늦은 감이 있죠.

안타깝지만 정부상태도 좋지 못했기에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에 이르는 내부 혼란을 피하지 못했고 시기적으로 국제정세와 맞물려 열강의 개입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역사를 배울 때 단어에 속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분법으로 보면 더 안돼구요.

개항을 하면 근대화 성공,

쇄국하면 근대화 실패,

이런 건 절대 아니니까요.

 

만약 당시 조선이 근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그냥 당시 유럽국가들과 무역을 좀 한다고 해서 그 나라가 근대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19세기쯤 오면 국가의 자본과 기술력 바탕이 있어야만이 근대화 국가로 나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당시 조선에 근대화 개혁에 필요한 자본이 있었느 냐 없느냐라는 거죠.

그리고 근대 기술력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유럽국가들과 개항을 했다고 무조건적으로 조선이 근대화로 나갈거 라는 그런 베이스는 하나도 없어요.

아니 솔직히 개항을 했다고 해서 그 나라가 근대화가 되었다는 라는 그런 말도 안돼는 소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니 개항을 해서 조선이 근대화 국가가 됬었다 라고 한다면 조선은 개항을 했었어요.

강화도 조약 이후로 얼마나 많은 국가들과 개항을 했는데요.

 

그래서 개항을 했다고 해서 곧 그 나라가 근대국가가 된다는 것 부터가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시각입니다.

청일전쟁의 최신전함이 10년 뒤 러일전쟁에선 구식 고철이 될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던 그 시기에 쇄국을 오래 했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사라지고 개항을 빨리 했으면 생존할 가능성은 적더라도 약간이나마 기회가 늘어난다는 차이는 있고 개항을 하고 근대국가로 체질개선하는 과정을 잘 거치는 게 제일 중요하죠.

 

개항이니 뭐니를 떠나서 수뇌부가 중요합니다.

수뇌부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하는지, 얼마나 국제정세를 잘 읽는지,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특히나 조선같은 전제군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수뇌부의 능력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수뇌부 같은 경우는 제국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수뇌부는 정말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삐끗하면 그대로 국가가 통째로 날라가는 시대에 어울리는 수뇌부로는 더더욱 아니었다고 봅니다.

 

청나라 , 베트남, 이집트 같은 제법 근대화 된 나라들도 결국 결국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가 되었죠.

일본, 태국, 에티오피아가 주권을 보존한건 운이 작용 한게 큽니다.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비난을 받는 사람은 바로 대원군이죠.

저 역시 한 때는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모든걸 망쳤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개화기, 근대화같은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의 문제를 어느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한 결론이 라고 봅니다.

 

확실히 그 시절 조선은 운이 없었습니다.

안팎으로요.

그런데 일본은 정말 운이 좋기도 했네요.

물론 안팎으로 모두 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