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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전역하면 목봉체조 끝날 줄 알았지?

by Ajan Master_Choi 2013. 10. 24.

이대리의 '직장 생태 보고서'

 

군사훈련 중 나는 목봉체조가 제일 힘들었다. 많고 많은 '빡센' 훈련들 중 목봉체조를 꼽는 이유는 개인의 판단이 철저히 배제된 순수 팀워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쇳덩이에 나무를 씌운 게 아닐까 의심되는 엄청난 무게를 몇몇이 합을 맞춰 올렸다 내렸다 끌어안기도 하다 보면 입에서 단내와 욕설이 차지게 버무려진다. 남이 봐서는 모르지만 목봉을 같이 드는 사람은 안다.

 

누가 순간순간 힘을 빼고 꾀를 피우는지. 모두가 전력을 다해도 현기증이 나도록 용을 쓰는 훈련인데 제 몸 하나 편하자고 요령 피우는 동료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물론 키가 아주 작거나 몸이 너무 약한 동료와 한 팀이 됐을 때 나머지가 발휘하는 '십시일반' 정신은 아름답다.


아무튼 전역과 동시에 목봉체조는 안녕이라고 생각했지만, 일하면서 가끔 맞닥뜨리는 상황은 그것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C대리는 얼마 전 팀장의 지시로 업무분장을 새로이 했다.

맞교대자인 D대리의 평소 업무량이 훨씬 적고, 다른 팀원들의 과중한 업무를 조금도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C는 쾌재를 불렀다. 실제 인수인계를 해보니 D의 업무량은 예상보다 더 적었다. '남는 시간에 다른 팀원들 일은 돕더라도 내 너의 일은 돕지 않으리'라고 C대리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돌발 상황 발생! 며칠간 일을 해본 D대리는 가장 바쁜 결산기간에 일주일 휴가를 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부여잡고 '2인분'을 감당해온 C대리에게 이번엔 사고 상황 발생! 돌아온 D는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만지작댄다. 보다 못해 C대리가 "너무한 것 아니냐. 어떻게 딱 본인이 편한 만큼만 일을 하냐"고 일갈했다. '멘탈 갑(甲)' D는 "조직이 구조적으로 일을 잘못 배분해 놓은 것을 왜 개인의 희생으로 메워야 하냐"며 "이 조직과 나는 합이 맞지 않는다"고 대꾸한다. '멘붕'한 C대리의 입에서 단내와 욕설이 버무려진다.

 

수평적 관계에서 느끼는 동료의식은 인내와 희생정신을 북돋우는 원동력이다.

자기를 희생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동기와 선후배에게서 우리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상사가 착취 전문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일 할 일도 오늘 해야 직성이 풀리는 A부장에게 부하는 소모품이다.

A는 "내가 초년병 때는 일 년에 휴가라고 쓸 수 있었던 게 여름철에 주말 끼워서 3일이었다"며 하루 13시간 이상 사무실에 머무른다. 자기 성격을 못 이겨 주말에 출근한 날이면 발신번호가 찍힐 수 있게 사무실 전화로 부하들의 휴대폰에 전화를 건다. 전혀 급하지 않은 일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끊을 때 "그런데 지금 어디야?"라고 묻는 것은 울화를 부르는 옵션. A부장을 관찰하노라면 열심히 '목봉체조'를 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호루라기를 삑삑 불다가 본인 목욕에 쓸 쑥을 뜯게 하던 못된 교관이 떠오른다. 체력이 약한 B대리는 코피를 쏟았고 홍삼 엑기스에 빨대를 꽂으며 모진 인생을 연명해간다.

 

그럼에도 사무실이 목봉체조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그만두겠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려 즉시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더 이상 '홍삼빨'로 버틸 수 없었던 B대리도 사표를 낸단다.

충원에 나선 A부장과 함께 일하려고 하는 직원이 없다.

경력직으로 외부 충원을 하려 해도 '저녁이 없는 삶'이 널리 알려져 쉽지 않다.

취업이 어렵다지만 가끔은 구인시장도 얼어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