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는 억울하다
장관급 공직자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제부터 김문수의 직책이나 존칭을 생략하겠다.
그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양해 바란다.
무엇보다 예전 발언이 문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이고 총살감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윤건영은 말과 행동으로 수령님께 충성한다.’
‘쌍용차 노조는 자살특공대, 민주노총은 김정은의 기쁨조다.’
김문수는 국회 답변과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취소하거나 사과할 뜻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취임하자마자 전문위원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 때 채용한 임기제 직원 열넷을 해고했다.
사실상 경사노위 실무자 전원을 쫓아낸 셈이다.
경사노위는 기업과 노동조합에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까지 노·사·정의 공식 비공식 접촉과 정보 교류를 촉진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공감과 합의를 도모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민주노총과 야당은 김문수가 경사노위 위원장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노동계 인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친일파가 된 독립운동가’라고 비난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비판이다.
그렇지만 김문수는 억울하다.
자기 책임이 아닌 일로 비난받고 있다.
그런데도 변명해 주는 이가 없다.
이건 공정하지 않다.
나라도 나서야겠다.
전향과 변절
김문수는 일흔두 살 먹은 남자다.
어려서는 총명했고 젊어서는 용감했다.
경북 영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대구 경북중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체포‧투옥‧수배당하는 고난을 겪었고 대학을 마친 다음에는 노동자로 ‘존재이전’을 했다.
여러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했고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 되었으며 구로공단 전자제품 회사 노조위원장인 ‘진짜노동자’와 혼인했다.
전두환 정권 때는 노동운동의 전설, 혁명적 청년 지식인의 모범이었다.
김문수는 노동운동에 머무르지 않았다.
노동자와 청년 지식인들이 손잡고 만든 ‘서노련’의 지도위원으로서 한국형 볼셰비키혁명을 추구했다.
1986년 5월 국군 보안사 요원들이 서노련 핵심 활동가 열셋을 불법 납치 구금해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을 때, 나는 그의 아내와 함께 불법 감금 장소를 찾아내 고문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갑자기 전향해 보수정당에 들어간 1994년까지 김문수는 내게 혈육만큼이나 가까운 동지이고 선배였다.
김문수는 국회의원을 세 번, 경기도지사를 두 번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는 극우 태극기 집회의 연사로 활약했다.
그가 혼자 전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옛 동지를 향해 빨갱이, 주사파, 김정은의 기쁨조, 김일성주의자, 총살감이라는 극언을 던지지는 않았다.
김문수는 정치노선만 바꾼 게 아니다.
가치관과 도덕규범까지 다 바꾸었다.
그것은 단순한 ‘전향’이 아니라 ‘변절’이었다.
배신감과 혐오감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나 혼자 씩씩댔다.
원래부터 권력과 돈을 탐하면서 남을 짓밟았던 사람보다 더 미웠다.
그가 ‘자유의지’로 변절을 선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김문수를 다른 극우 인사와 똑같이 대한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변절을 나쁘지 않은 행동으로 보게 되어서가 아니다.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와 그를 포함해, 인간 자체를 예전과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한테 ‘자유의지’라는 게 있는지, 설혹 있다고 해도 그걸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해도 될 만큼 확실한지 의심한다.
자유의지라는 허상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의 뇌를 자연이 만든 기계로 보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나는 받아들인다.
돌을 피하는 반사 행동에서 지지할 정당을 선택하는 정치적 의사결정까지,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오는 정보를 받아들여 최대한 신속하게 최적의 대응책을 찾는다.
그 목적은 생존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너무 높이 발전한 탓에 다른 일을 하나 더 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내 뇌는 우주에 하나뿐인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모든 면에서 나와 똑같은 뇌는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이다.
김문수의 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은 뇌가, 더 정확하게는 뇌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아(또는 인격)라 한다.
자아는 삶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른바 ‘자유의지’다.
그런데 모든 전향과 변절을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물질인 뇌에 깃들어 있으면서 물질인 몸을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쉼 없이 흔들리고 쉽게 비틀린다.
전향이나 변절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일 수도 있지만 뇌의 물리적 생화학적 변화 때문에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자아의 책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자아가 깃든 뇌는 860억 개의 뇌신경세포(뉴런) 덩어리다.
이것을 뇌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의 특정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인지‧기억‧추론‧판단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손상원인은 다양하다.
교통사고‧산업재해‧질병‧노화 등이 일반적이지만 고문과 같이 특수한 원인도 있다.
하드웨어에 변화가 생기면 성격‧언어습관‧행동방식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정치적 신념이라고 해서 특별히 단단할 리는 없다.
뉴런들은 전자와 화학물질을 주고받으면서 1백조 개 넘는 연결망과 무한대의 연결패턴을 만든다.
과학자들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비롯해 뇌에 작용하는 신경전달 물질은 백 개 넘게 찾아냈다.
뇌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뉴런 연결망의 패턴과 작동 방식은 전자 교환과 화학물질 분비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크게 달라진다.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 하나의 부족이나 과잉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방식을 극과 극으로 다르게 할 정도다.
뉴런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전혀 튼튼하지 않다.
쉼 없이 지진이 일어나는 땅 위에서 예측할 수 없는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는 집과 같아서 너무나 쉽게 부서지고 비틀린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인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환상일지도 모른다.
하나 더, 뇌는 학습하는 기계다.
매순간 빛과 같은 속도로 감각기관이 전해주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한다.
인공지능이든 천연지능이든, 데이터는 학습하는 기계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하드웨어 손상이나 소프트웨어 혼돈이 전혀 없어도, 데이터를 더 확보하면 같은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전향이나 변절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문수는 변절자가 아니다
김문수의 뇌에 아무런 물리적 생리학적 문제가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변절자 또는 위선자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옳다는 신념만으로 혁명운동을 했다가 보수정당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전향했다면, 추구하는 목표를 혁명에서 출세로 바꾼 셈이니 변절이라고 해도 된다.
하지만 원래 추구한 목표가 권력이었다면 다르다.
권력을 차지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 판단해서 혁명운동을 했다면 김문수는 변절자가 아니라 위선자라고 하는 게 맞다.
처음부터 권력을 차지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마치 혁명이 목표인양 꾸민 것이니까...
김문수는 여러 차례 이런 말을 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서 나 자신을 바꾸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성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한테 진보냐 보수냐는 큰 의미가 없다.
어느 쪽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가 중요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면 김문수는 변절자가 아니라 위선자일 뿐이다.
하지만 전향한 후의 김문수가 한 말을 가지고 전향하기 전의 김문수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인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김문수는 변절자도 위선자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진심으로 살았고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밝혔다.
전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로 한 선택은 아니었다.
뇌의 하드웨어 손상으로 발생한 현상일 뿐이다.
전향 이전의 김문수와 이후의 김문수는 너무 다르다.
정치노선만 바꾼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
총명한 사람이 전향했다고 해서 갑자기 멍청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김문수는 전향 이후 매우 빠르게 총명함과 멀어졌다.
형식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주장을 거침없이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다.
‘신영복은 간첩이다. 문재인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하니 김일성주의자가 분명하다. 따라서 총살감이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앞뒤 없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했지만 북한 간첩은 아니었다.
나도 신영복을 존경한다.
그러나 인간과 삶에 대해 그가 이야기한 생각과 감정이 아름다워 그런 것이지 북한 간첩이라서가 아니다.
김일성주의 하고는 아무 관계없다.
백보를 양보해 어떤 사람이 김일성주의자라고 하자.
그러면 총살해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김문수가 보안사에서 고문당했을 때 뇌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하드웨어의 물리적 손상이 소프트웨어의 혼돈을 야기해 자아가 달라졌다고 본다.
그의 뇌는 예전과 달리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생존이라는 목표만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고 단맛을 누리는 것을 정의로 여긴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현상이었다.
오늘의 김문수는 생각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
나는 김문수의 전향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
대통령이 문제다
나는 전향 이전의 김문수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에 간직한다.
고귀한 뜻을 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청년 지식인이었다.
지금의 그가 어떻든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내겐 여전히 소중하다.
김문수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스무 살에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벅찬 감정도 귀하게 품고 산다.
그 감정은 독자인 내 몫이니까 1991년 이후 시인의 언행에는 개의치 않는다.
어제의 김문수와 비교해 오늘의 김문수를 욕하지 말자.
오늘의 김문수를 들어 어제의 김문수를 비하하지도 말자.
나는 어제의 김문수를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고, 오늘의 김문수를 그 모습 그대로 싫어한다.
어제 아름다웠다고 해서 오늘 더 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판해야 할 대상은 김문수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다.
김문수는 휴일 서울 도심의 태극기 집회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극우 노인’일 뿐이었다.
국회의원과 도지사 경력을 내세우면서 극언과 망언을 내뱉었지만 세상에 해를 끼칠 실제적인 위험은 없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어찌 저리 되었나 혀를 찼을지언정 면전에 대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필이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도모해야 할 경사노위 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혈서 연기로 명성을 얻은 전직 국회의원한테 준 자리 비슷한 걸 주었다면 김문수가 이렇게까지 심한 욕을 먹지는 않았을 테고, 내가 김문수를 위한 변명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을!
하여튼 대통령이 문제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
'제왕회관 휴게실 >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모습들 (2) | 2022.11.28 |
---|---|
대접받는 자녀가 되는 길은... (0) | 2022.11.28 |
좌우명의 유래 (0) | 2022.11.23 |
세계인의 축제 2022카타르 월드컵 함께 응원 합시다 (0) | 2022.11.22 |
이 사람들 많아도 너무 많다^^ (0)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