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니가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
"내일은 무얼 할꺼유? "
"하긴 무얼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
"내일이 무슨날인지나 아시우? "
"날은 무신날 !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습니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 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 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 해? "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어험~ "
아버지는 헛기침만 하셨습니다.
"세상 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기른 내죄지 내죄야! "
"어험 !! 안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해..."
아버지는 푸념이 듣기 싫은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다음 날, 5월 8일 어버이날이 밝았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렸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아침 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뽑고.."
어머니는 이곳 저곳 아버지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광에서 무얼하고 계시나 하고 광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설은 봇다리가 2개 있었습니다.
봇다리 한개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걸 알고 아버지가 준비해 두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그리고 민들래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허리도 안좋은 양반이 언제 높은 산을 다녀 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몇일을 캐야 저 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오셨던 것입니다.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니는 천천히 발을 옮겼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장승백이에 아버지가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구? "
" ......... "
"청승 떨지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오던 자식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
어머니가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일어났습니다.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기여? 어서 가서 아침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 ..... "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처다 보셨습니다.
"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듯 잊고 삽시다 "
"험험 ... "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지가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 먹읍시다. 까짓거 아끼면 무얼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 ......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 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닭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
"험험 ... "
그때였어요.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아브지~ 어므이~ "
하면서 재너머 막내 딸과 사위가 들거왔습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 왔습니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아니 니가 어떻게.. 제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어므지 아브이 !! 오늘 어브이날이라 왔어. 아브지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 해가지고 왔어. "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떡을 내 놓았습니다.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저이하고 나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런지 몰라 히히 "
"이보게! 박서방 !! 어떻게 된건가? "
"네 ! 장모님 저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첬어요. 장인 어른께서 쑥버므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
"그랬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저 사람이 쑥 버므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해서 가지고 왔어유~ "
"에이구 몸도 성치않은 자식인데.. "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니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습니다.
"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 "
하면서 딸이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밀었습니다.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
"내가 달아 드릴께 !! "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아브지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돼 !! 알았지? 히히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아니에요 장모님 !!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아브지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 맛이 어떨런지 몰라 히히 "
"그래 알았다 "
아버지와 어머니는
쑥떡을 입에 넣으며 울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참으며..
"그래 참 맛있구나 !!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흠흠 으응.. "
아버지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참 !! 술 술.. "
사위가 잊었다는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습니다.
"이거 아브지 어므이 드린다구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구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팔구 술 담은거야 "
"박서방이 산삼을 캤구먼 "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뿌리 캤시유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지의 손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
"아녀유?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유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
"장인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지는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습니다.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 자식이었는데..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듯 없는듯 신경 안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 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딸의 마음이 저렇게 깊은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왔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니 많이 미안했습니다.
한참 뒤 밖에서 씨 암닭 잡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귀한 사위 줄려고 장인어른이 씨 암닭 잡나보네 "
"어이구 황송해서 어쩌지요? 장모님? "
"아닐세 자네는 씨암닭 먹을 자격 충분하네 !! "
"장모님 고마워유 "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했던가요?
몸도 성치 않은 딸자식이 진정한 효도를 하고 있는 모습^^
효라는 것을
몇가지로 정해서 말할 수는 없으나
머니머니해도 살아생전의 효도가 진정한 의미 아닐지...
불효부모 사후회가 으뜸이듯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하지 아니하면
돌아가신 후에 반드시 후회한다 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살아 생전에 잘 모셔야 그것이 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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