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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by Ajan Master_Choi 2022. 12. 16.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의 크기·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패키지 다운사이징이라고도 불린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이 판매량을 유지하고 비용을 줄여 영업마진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격을 직접 인상하는 대안으로 자주 사용된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와 비즈니스인사이더(BI) 등 외신들은 미국에서 이와 같은 '숨겨진 인플레이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지만 용량까지 체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원재료비 상승을 전가할 수 있다.
BI는 "슈링크플레이션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발생했지만 인건비, 재료비 상승 및 수요 급증, 운송 위기로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체는 유제품 업체 틸라무크가 아이스크림 용기를 56온스에서 48온스로 축소한 것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슈링크플레이션 확산, 소비자 대처법은?

전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짓눌리고 있다.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8.6% 급등해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도 1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라 5.4%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에서 손쉽게 탈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출구는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지적처럼, 소비자도 기업도 서서히 옥죄는 고통에 힘겹게 맞서고 있다.

원자재값, 임금 상승 등에 직면한 기업은 비용 증가분을 오롯이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한다.
다만, 비용 전가 사실을 소비자가 가능한 한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게 기업 입장에선 최선의 방책이다.
이에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릴 때마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상품 크기와 용량을 줄이는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논란이다.
소비자는 이를 ‘기만적’ 가격인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기만적 가격인상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 영어사전인 메리엄웹스터는 현재 의미의 슈링크플레이션 용어를 만든 것이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의 공로일 수 있다고 적었다.
맘그렌은 2015년 1월 자신의 트위터에 “슈링크플레이션이 (기사에) 인용됐다. 코카콜라와 펩시가 음료캔의 크기를 줄여 온스당 더 높은 가격을 부과했다”고 올렸다.
그전에는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란 말을 주로 사용했고, 지금은 슈링크플레이션과 섞어 쓴다.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슈링크플레이션은 세계적 현상이 됐다.

<에이피>(AP) 통신의 6월 초 기사를 보면,
미국에서는 몇 달 전만 해도 크리넥스 갑티슈 한 통에 65장의 티슈가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60장이다.
‘초바니 플립스’ 요거트는 한 개 용량이 157mL에서 133mL로 줄었다.
인도의 ‘빔’ 식기세척용 비누 한 덩이는 155g에서 135g으로 작아졌다.

소비자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전 매사추세츠주 법무 차관보 에드거 드워스키는
“이제는 셀 수 없을 만큼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질소 과자’라는 비아냥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제과업체 등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은 거의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수십 년 슈링크플레이션을 연구한 드워스키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제조업체에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소비자가 가격인상은 금방 알아채지만, 화장지 롤의 길이나 제품 무게 등 세세한 사항은 잘 추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체가 포장지에 단위당 중량이나 부피를 정확하게 표기하면 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무게나 크기 축소에 주의를 기울지 못하도록 약간의 눈속임을 쓰기도 한다.
포장 모양을 바꾸거나 눈길을 끄는 더 밝고 새로운 라벨을 붙이는 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완화하면 경쟁이 치열해져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낮추거나 용량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드워스키는 작아진 상품이 “더 커지는 것은 아주 드물다”고 말한다.

또한 대다수 회사가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힘들어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펩시콜라의 경상이익은 2021년 11% 증가했는데,
2022년 1분기에는 128%나 증가했다고 <에이피> 통신은 전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공급망관리를 가르치는 히텐드라 차투르베디 교수는
“나는 그들이 부당이득을 취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런 냄새가 난다. 공급망 제약을 돈을 더 버는 무기로 활용하지 않는지 말이다”
라고 지적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역사는 꽤 깊다.
골드코어닷컴의 설립자인 마크 오번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미국 일간지 <시애틀 스타> 1면 기사를 소개하면서 슈링크플레이션을 설명한다.
기사는
“지난 목요일 감독관들이 빵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베이커리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10센트짜리 빵의 무게가 32온스에서 22온스로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5센트짜리 빵의 무게는 16온스에서 11온스로 줄어 있었다”
고 전한다.
당시에는 슈링크플레이션 용어가 없었지만, ‘다운사이징’ 현상은 오래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번에 따르면, 슈링크플레이션 용어 사용은 2016년 11월에 특히 급증한다.
토블론 초콜릿이 영국에서 큰 이슈가 된 때였다.
토블론을 생산하는 몬델리즈는 재료값 상승을 이유로 영국에서 초콜릿바의 무게를 170g에서 150g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파운드화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에 비상이 걸린 예민한 시기였다.

구매 중단 선택 어려워

소비자는 선호하는 제품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격인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데이터분석 기업 유고브(YouGov)가 2017년 3월 영국인 성인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절반에 가까운 46%가 ‘크기는 유지하는 대신 가격인상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36%만이 ‘가격은 유지한 채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기업이 ‘가격 유지, 크기 축소’를 택해도 소비자가 즉각 구매를 중단하기는 어렵다.
선택의 폭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응답자 10명 중 4명(38%)은 ‘크기가 줄어든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구매하고 있다’고 했다.
‘가격은 그대로였지만 크기가 줄어 구매를 중단했다’고 답한 비율은 17%였다.
유고브는
“소비자의 좌절감과 혼란, 당혹스러움이 뒤섞여 있음을, 또한 기업들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대놓고 슈링크플레이션을 홍보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드워스키는
“소비자가 크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이를 이용하는 것”
이라며, 소비자에게 제품의 단위당 무게를 기억하고 항상 주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똑똑한 소비자가 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