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를 물리치고 강북을 제패한 조조는 동작대를 건립하고 그 기념으로 무장들의 활쏘기 경연대회를 열었다.
붉은 비단전포를 저 멀리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맞추게 하여 가장 솜씨가 뛰어난 장수에게 비단전포를 하사하기로 한 것이다.
조홍 장합 하후연 등 기라성 같은 무장들이 각각 활솜씨를 자랑하며 비단전포를 맞추었으나 비단전포가 걸려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직접 맞춘 장수가 있었다.
서황이었다.
가지가 부러지면서 비단전포가 땅에 떨어지자 서황은 얼른 주워 몸에 걸치며 말했다.
“승상께서 이토록 좋은 전포를 내려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때, ‘무슨 소리!’ 하고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와 서황이 걸치고 있는 전포를 뺏으려한 장수가 있었다.
허저였다.
서황이 손에 든 활로 허저를 후려치자 허저는 그 활을 한 손으로 맞받아 잡고 다른 손으로 서황이 타고 있는 말의 안장을 들어 엎어버렸다.
두 장수는 말에서 내려서 다시 육박전을 벌였다.
결국 조조의 엄명으로 싸움은 중단되었고 출전한 모든 장수들이 비단전포를 받는 것으로 경연대회는 마무리가 되었다.
조조진영의 장수들 중에서 하후돈 다음가는 서열을 놓고 두 효장(驍將) 서황과 허저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허저가 괴력을 지닌 직정적인 용장(勇將)이라면 서황은 신중하고 엄격한 지장(智將)이라고 할 수 있다.
무용에 있어서는 허저가, 지략에 있어서는 서황이 약간 우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서황(徐晃), 하동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용맹스러운 데다 큰 도끼인 대부(大斧)를 자유자재로 잘 써서 ‘도끼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자는 공교롭게도 저 유명한 제갈량과 같은 ‘공명(公明)’을 썼다.
서황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것은 이각과 곽사가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을 때 이각의 수하 장수였던 양봉의 지시로, 그가 도끼를 들고 출전하여 곽사의 부장을 한방에 찍어 죽이고 황제를 호위하여 낙양으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그 후, 정권을 잡은 조조가 무리하게 허도로의 천도를 강행할 때, 대담하게도 ‘조조는 어가를 겁박하여 어디로 가려는가?’ 하며 앞길을 막아선 이가 서황이었다. 허저가 큰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오자 서황도 도끼를 들고 맞선다.
칼과 도끼의 공방이 시작되어 50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서황의 눈부신 도끼 솜씨에 반한 조조는 그날 밤 서황의 고향친구 만총을 서황의 군막으로 보냈고 마침내 서황은 조조의 사람이 된다.
이때부터 서황은 조조와 함께 전쟁터를 누빈다. 여포 정벌 및 유비 정벌에도 앞장서고, 관도전투 때는 부하장수가 원소군의 세작을 잡아 정보를 얻은 덕분에 원소군의 병량 수송대를 습격하여 불태우는 개가를 올린다. 또 원소의 아들 원담의 부장인 왕소의 목을 베는 등 조조가 강북을 통일하는 데도 큰 공을 세운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조인이 지키는 번성을 공격하자, 조조의 명을 받은 서황이 조인을 도우러온다. 서황은 자신의 군사 대부분이 신병이므로 관우와 정면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 참호를 파서 적군의 뒤를 끊으려는 것처럼 꾸며 관우로 하여금 군영을 불태우고 물러나게 한다.
관우의 군사가 위두와 사총에 주둔하자, 적 가까이까지 접근한 서황은 위두를 공격하라고 명하고는 몰래 사총을 습격하여 격파한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때 사총이 무너지는 것을 본 관우가 5000명의 정예군을 뽑아 맹렬히 공격해오자, 서황은 관우와 맞서 80여 합을 싸워 관우를 패퇴시킨다.
조조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이번에 번성과 양양에서 열 겹이나 되는 적의 참호와 방책을 부수고 승리를 얻었으니 장군의 지략은 춘추시대 병법가인 손무(孫武)를 뛰어넘는 것이오.’하며 서황을 격려한다.
한편, 조조가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서량의 마등을 유인하여 처형하자, 그의 아들 마초와 부장 한수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서황은 다시 보병과 기병 4000명을 인솔하여 포반진을 건너 마초군을 격퇴시키고, 장로 정벌에도 공을 세운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자 우장군에 오른 서황은 상용에서 유비군을 무찌르고 다시 양평후로 봉해진다. 조조에 이어 그의 아들에게도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서황의 무용을 가늠해보자. 조조와 원소가 맞붙은 백마전투에서 원소군의 상장 안량이 무용을 뽐내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송헌과 위속이 차례로 나갔다가 목이 떨어지자, 서황이 도끼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채 20합을 견디지 못하고 쫓겨 들어왔다. 그 안량이 나중에 관우의 청룡도에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관우보다 무용이 처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황과 관우가 직접 일기토를 벌여 80여 합을 싸웠을 때 결국 관우가 물러선 것을 보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독화살을 맞은 한쪽 팔이 다 낫지 않은 관우가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서황의 무용은 관우와 거의 대등하거나 약간 처지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서황은 장료와 함께 조조군의 장수로서는 드물게 관우와 친밀한 교분을 가졌던 사이이다. 관우가 조조군의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속 깊은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서황의 마지막을 보자. 제갈량이 침공해오자 위에서는 사마의를 보내 그를 막게 한다. 신성을 지키던 맹달이라는 장수가 제갈량과 내통하는 것을 알게 된 사마의는 서황에게 선봉장을 맡기며 신성을 급습하게 했다. 이때 맹달의 군사가 쏜 화살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은 서황, 그날 밤 쉰아홉 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를 두고, 서황 같은 효장이 주인을 세 번이나 바꾸는 맹달 같은 시시한 장수에게 죽는 것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관우가 오나라의 여몽에게 붙잡혀 참수된 것이 서황에게 패퇴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처리된 것이라며.
생각하건대, 그것은 아마도 서황의 죽음이 그의 역량에 비해 너무 싱겁고 아쉬워서 나온 얘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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