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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세상에 마침표를 이룬 사랑은 없다.

by Ajan Master_Choi 2014. 4. 3.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참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일 수도 있다.

참사랑의 경험은 인간 한계의 확장을 가져오므로
그 경험은 자아 경계와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한계가 자아 경계이다.

사랑을 통해 한계를 확장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돕기 소망하면서
그 대상을 향해 다가가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사랑하는 대상에서 사랑을 느껴야 한다는 거다.
그래 우선 사랑에 빠져야 하는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
자아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 밖에 있는 대상에 끌려야 하고 자신을 투자하고 완전히 헌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끌림과 투자와 헌신하는 현상을 애착이라 한다.

자신 밖에 있는 대상에 애착할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 대상의 상징을 자신과 일치시킨다.

그러면서 점진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아의 확장,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통합, 이에 따른 자아 경계가 붕괴되고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종류의 황홀감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 세상과의 '신비한 합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는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대변되는 절정 체험과
매슬로우가 말하는 고원체험 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이다.

매슬로우는
3가지 자기초월적 경험으로
절정경험, 절망경험, 고원경험을 제시하였다.

절정경험은
짧지만 강력하고
충격적인 경험으로써
평범한 삶 속에 인생을 통찰하도록 도전을 한다.

절망경험은
죽음과의 직면, 응급의료 및
심리적 외상과 같은 강렬한 경험으로써
평범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기 초월적 인식을 시작하게 된다.

고원경험은
침착하고 고용하며
통쾌한 기쁨과 행복감을 포함한다.
고원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소유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비우려면
그것을 갖고 있거나 성취해야만 하며,
여전히 우리 능력과 생활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아 경계는 부드러워 지기 전에 먼저 굳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자아가 초월하기 전에 자아가 확립되어야 한다.

열반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깨달음,
진정한 정신적인 성장 등은
오로지 참사랑을 부단히 실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을 향한 동기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참사랑은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늘 나는 다음 문장을 떠올린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순간 끝이 난다.'

하나되는 사랑은 사랑의 종말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혹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함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많은 글을 쓴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래서 사랑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 둘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조르쥐 바타이유에 의하면,
인간은 어떤 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욕망한다고 했다.

특히 에로스적 사랑을 하면
이성에 대한 판타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성적 관계 속에서 성적인 영역이 작아져야 한다.
관계에 속하는 다른 영역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하나의 ‘이성'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남녀 관계에서 성적인 것은
상대방의 많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성적인 부분이 크게 보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 성이 매력적인 것은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예쁘게 만져 주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해서 나를
상대방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처럼, 몸을 만지는 것도, 예컨대 애무도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는 애무와 비교될 수 있다.
애무와 폭력의 경계는 매우 미미하고 얄팍하다.
상대 몸의 자연적인 곡선을 따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으면 폭력이 된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것을 강요하면, 사랑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의 의견을 말 그대로 믿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시 협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늘 협상을 하여야 한다.

물론 성적욕망 때문에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은 이 음악을 좋아하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갖는 다는 것은 [소유나 장악의 의미의] 성적인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모든 면에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기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하다.

사랑은 모든 면에서 둘이 되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 레비나스) 사랑은 진짜 둘로 서는 순간이다.
제3의 요소가 개입되면 사랑을 못한다.
진짜 둘이 설 때, 사랑의 꽃이 핀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면, 너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사랑하면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그 헌신이 나에게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다만 사랑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적인 지속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비약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란 정확히 말해 너무나 강렬해서 영원히 온 몸에 각인된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시각적인 지속만을 하는 것은 단지 조화같은 것일 뿐이다.
사랑이 꽃 폈다는 것이 중요하지, 지는 때는 중요하지 않다.

질 것 같아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헤어질 것 같아서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화도 언젠가는 끝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젠가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소멸하게 마련이다.

사랑의 영원함은 꽃이 피었는지 피지 않았는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꽃을 피운 적이 없는 경우란 주인공이 된 경험이나 둘이 된 경험이 없다는 말이다.

정으로 지낸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식을 때, 상대방의 사랑도 식는다.
내가 사랑의 손을 꽉 잡지 않고 느슨하게 쥐면, 상대방도 꽉 잡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사회학자 자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두 주체가 객체가 되는 시간이다.
사랑하는 나는 주체이고, 동시에 사랑의 대상인 객체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객체이자 또한 그 사랑의 주체인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객체)이 의지를 갖는 주체이므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상대도 그 사랑의 주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남편이나 아내는, 아니 타인은 사실 실체가 모호하다.
다 내 판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합(合)이다.
내가 만든 개념일 수 있다.

그 개념 안에는 내 기억과 경험, 타인에게 들은 평가 등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만든 그 허상을 지우면,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태어날 사람이다.
그래 우리는 힘들지만, 현실에서 묵은 감정을 지우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한 번 가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창조해야 하고,
매번 다시 살려내야 하고,
죽을 때까지 만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마침표를 이룬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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