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그리고 띄엄띄엄 그러나 쉬지않고 울려퍼지는 나무와 놋쇠로 만들어진 태국 전통 피리 소리가 체육관의 높은 담에 부딪쳐 메아리를 남기고 있다.
또 다른 놋쇠로 만들어진 작은 심벌즈가 피리 소리를 더욱 흥겹게 만들어준다.
가로 네개의 줄이 쳐진 사각의 공간 주위에 뭔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울려퍼지는 리듬은 느리지만 혼령을 부르듯 구성지고 애절하다.
이윽고 두 사내가 각각 다른 곳에서 중앙의 사각지대로 다가온다.
두 파이터들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맞잡은 채, 마치 기도하는 순교자처럼 링에 올라서기 전 머리를 조아리며 행운을 갈구한다.
이윽고 로프를 잡고 날듯이 뛰어올라 캔버스 위에 올라선다.
귀를 울리는 음악은 계속되고 두명의 사나이들은 링위를 빙빙 돌며 몸을 풀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무엇에게 경의를 표한다.
빨간색과 하얀색 실로 꼬아 만든 몽콘은 조심스럽게 두 사내의 머리에서 벗겨져 보관되고 이제 두사람은 링 중앙으로 걸어간다.
심판은 두사람에게 좀더 가까이 서라고 얘기하고 뭔가 이런 저런 주문을 한다.
그리고 심판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촉!" 이라고 외친다.
이제 시작이다.
처음엔 느리게 울려 퍼지던 음악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템포가 빨라지고 소리도 한층 커져 있다.
마치 두 사람의 파이터에게 좀더 강하고 정열적으로 싸움을 하라는 부추김처럼 들린다.
양 주먹과 팔꿈치, 무릎, 정강이 그리고 양 발의 각 열개 파트로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무에타이 경기다.
상대의 몸은 어느 한 순간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근육들이 강한 아크등불 밑에서 물결치듯 움직인다.
그리고 순간!
커다란 승리의 환호가 들리며 시끄러운 드럼 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진다.
당신은 이젠 진정한 무에타이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무에타이, 예전에는 파후윳(산스크릿-범어-어로 바후 또는 파후는 팔을 의미하고 욧하 또는 윳은 싸움 또는 전투를 의미한다.)이라고 불리워졌었다.
태국의 고대 무술인 "파후윳"은 실로 태국의 아이콘이었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선수들과 체육관 그리고 특이한 시합전 행사는 태국에서 수세기 동안 그 전통을 굳건히 지켜왔다.
세계 여러나라 고유 무술인과 그 관계자들은 무에타이가 세계적으로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격투술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특히, 사각의 링에서 싸우게 되는 현대의 많은 격투기 중에서도 무에타이는 그 우위를 독점하고 있다.
물론 태국인들도 자신의 고유 무술이 세계적으로 우세하다는 데에 아무런 반감을 가질리 없다.
일본의 가라데와 킥복싱, 중국의 쿵푸와 산타 등이 이 아성에 도전을 시도했으나 모두들 무참히 패배한 전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일화는 홍콩에서 온 다섯명의 쿵푸 마스터들의 도전기일 것이다.
이들 다섯명의 쿵푸 마스터들은 태국의 무에타이에 도전했다가 모두 경기 시작 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다섯명의 도전자 모두 KO패를 당한 것이다.
예로부터 무에타이의 비전은 비밀리에 전수되어 왔다.
지금도 몇몇의 태국의 무에타이 도장들은 외국인을 문하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태국인이라 해도 함부로 무에타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물 세살의 젊은 나이에 싸울 상대가 없어 은퇴를 해야만 했던 디젤노이(Diesel Noi)라는 무패 챔피언은 그의 활동 기간중 어떠한 자세로도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무릎치기와 손목 관절을 이용한 스냅 카운터 펀치를 개발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도전자가 없어 은퇴를 해야만 하였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확히 언제,어느때부터 무에타이가 시작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태국의 기원으로 보아 태국 인접국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아마도 무에타이도 중국이나 남부 베트남 또는 미얀마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추측은 무용지물이 아니겠는가.
아유타야 시대까지 존재하였다가 버마군의 침범으로 파괴된 것으로 여겨지는 태국의 역사책인 추파삿에는 이 무에타이의 기록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기록으로는 치앙마이의 란나시대의 유물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지금과 비슷한 스타일의 무기없이 맨손으로 하는 경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의 국왕이 직접 평가를 내리는 경기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수코타이 시대에는 왕의 직속 예하 부대에서 이 무술을 훈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훈련을 끝낸 이들이 경기를 벌여 상위에 오른 실력있는 자들을 왕의 호위부대로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에타이의 역사적 기록은 버마와 캄보디아에서도 발견되어진다.
15~16세기경 버마군이 처음 아유타야를 침범하였을때 이들은 9살의 나렛이라는 소년을 포함한 수명의 포로들을 생포하여 함싸와티(현 페구 또는 바고, 미얀마)로 끌고 왔다.
소년은 무술에 꽤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소년이 15세 되던해 어느날 버마군 최고 파이터를 때려 눕혔다고 한다.
버머의 왕 바잉눙은 이 소년의 실력에 감탄하여 소년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고 하는데 이 소년이 바로 나레쑤언 왕이다.
그는 후에 태국의 왕이 되었고 태국의 모든 군인들에게 이 무술을 보급했다.
18세기 초 아유타야의 왕 쓰리싼펫8세는 무에타이를 국기로 정하고 대회를 개최하고 상금을 내거는 등의 장려책을 펼쳤다.
이 무렵부터 무에타이는 군대에서만 훈련되어지던 것이 아니라 일반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경기자들은 손에 두꺼운 말가죽을 감고 경기에 임하여 충격은 늘리고 위험한 데미지는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아유타야에서 방콕으로 수도를 옮긴 태국은 1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무에타이 개발에 나서게 된다.
왕실에서는 왕궁밖에 무에타이 트레이닝 캠프를 설치하고 재능있는 파이터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라마1세때에는 최초의 외국인과의 대결도 마련하게 되었는데
첫번째 국제 대결은 프랑스에서 온 형제 파이터들이였다.
태국 왕실에서는 이들에게 높은 액수의 수고비를 주기로 약속하고 자신들의 무에타이와 겨뤄줄 것을 요구하였다.
프랑스 영사의 승인으로 경기는 성사되었고 태국 왕실에서는 궁중 경비대 소속의 병사 문풀란을 프랑스 파이터와 대결케 했다.
프랑스 상대자와 비교해서 상당히 외소한 체격의 이 병사는 그러나 두명의 프랑스 형제를 아주 짧은 시간에 때려 눕혔다.
라마5세는 태국 최초로 일반인도 수용하는 무에타이 트레이닝 캠프를 마련했으며 다른 왕족들에게도 자신과 같이 동참할 것을 명했다.
라마6세는 지금의 방콕 로즈가든 궁전마당에 태국 최초 국제 규격의 사각링과 로프를 설치했다.
라마6세 이후 무에타이는 일반인들에게도 커다란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정식 경기로서의 틀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어느 정도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도 이 당시부터였고 태국 밖의 세상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무에타이는 세상의 무술가들에게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무에타이가 얼마나 강한 무술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소림사의 쿵후 마스터 친창을 태국에 보냈는데 태국은 이에 이산 지역 출신의 양한탈레 선수로 하여금 대적케 했다.
두 선수는 로즈 가든 궁전의 스타디움에서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쿵후 마스터 친창의 패배.
태국 선수의 발차기에 친창은 정신을 잃고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후, 무에타이는 아시아 일대와 유럽으로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무에타이가 널리 보급되자 그 만큼의 사고도 잇달았다.
사망과 부상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19년 정수리 치기가 허용되는 대신에 모든 선수들은 복싱 글러브 착용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1930년대부터는 3분 5라운드, 2분 휴식의 룰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경기는 물 양동이에 물을 채우고 코코넛 열매에 구멍을 뚫어 물에 담근 후 코코넛 열매가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까지가 1라운드 그리고 잠깐의 휴식, 이런 식으로 경기를 진행했었으며 경기종료는 상대편 선수가 정신을 잃거나 포기의사를 밝히거나 경기를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되었을 때 또는 항복 선언을 할때까지 몇회 전이든 싸워야만 했었다.
이후 계속 제한적인 룰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라운드 당 10점의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으로 옮겨갔다.
이때부터 양 선수들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의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발에는 붕대를 감았다.
하지만 현재는 그냥 맨발로 경기를 하고 있다.
체중에 따른 체급별 경기도 193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서양복싱의 체급기준을 도입하여 19개의 체급으로 나뉘어졌다.
작은 체구의 태국 선수들의 경우 J.미들급 이상의 선수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70% 이상의 선수들이 플라이급과 밴텀급에서 경기를 했다.
국제적인 스포츠로 성장하기 시작한 무에타이는 사각의 링도 국제 규격으로 맞추기 시작했다.
7.3 평방미터 크기의 링에서 경기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캔버스천의 바닥에 4개의 기둥이 있는 사각의 링,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기에는 조금 작은 링을 쓰기도 한다.
방콕 최초의 무에타이 전용 경기장, 라차담넌 스타디움(그들은 웨티라차담넌이라고 부름)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 갈 무렵 지금의 라차담넌 녹로드에 세워졌다.
이 일대는 원래 왕실의 땅이였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국은 국호를 씨암에서 타일랜드로 바꾸었다.
라차담넌에서 최초로 열린 무에타이 경기는 1945년 12월 23일에 개최되었다.
원래 이 경기장은 지붕이 없었기 때문에 건기에만 시합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1951년 지붕이 얹혀졌고 1년내내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복싱 영웅 록키 마르시아노는 1969년 라차담넌컵 쟁탈전에서 심판으로 활약한 적도 있다.
태국의 왕실 가족들도 라차담넌 경기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룸피니 스타디움도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무에타이 경기장이기는 하나 라차담넌 경기장에는 먼가 룸피니가 갖지 못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라차담넌 경기장도 룸피니 경기장처럼 주말과 주중 경기가 벌어진다.
월요일에는 오후 5시와 9시,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6시, 그리고 일요일에는 오후 5시에 경기가 있다.
1956년 12월 태국의 로얄타이아미에 의해 건립된 룸피니 경기장은 팔람 4 룸피니공원 근처에 있다.
룸피니 경기장은 라차담넌 경기장 보다 조금은 느슨한 분위기에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더 높다.
관중들도 좀더 실감나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룸피니 경기장을 더 많이 찾는다.
룸피니 경기장에서도 역시 많은 세기적인 경기들이 벌어졌었다.
무에타이에 도전하는 다른 세계적인 격투기 선수들의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태국인이 아닌 외국의 무에타이 복서-아프리카, 유럽, 미국-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몇몇은 태국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기도 하다.
룸피니 경기장 챔피언중 가장 유명한 복서 중 하나가 바로 몇년 전 개봉한 'Beauful Boxer'의 실제주인공 '파린야 끼앗부싸바'이다.
치앙마이에서 온 웰터급 복서는 나중에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자로 변신한 룸피니 챔피언이였다.
남자로써 룸피니 타이틀을 거머쥔 후 파린야는 자신이 벌어 들인 돈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Beauful Boxer'라는 타이틀로 극장에 상영했다.
1999년 프랑스 출신 무라드 사리는 또 다른 룸피니 경기장이 배출한 챔피언이다.
태국 최초 그리고 당연히 세계 최초로 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룸피니 경기장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6시에 경기가 벌어진다.
토요일에는 오후 5시와 오후 8시 30분 두 차례의 경기가 벌어진다.
태국에는 약 6만명의 무에타이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방콕에 있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의 숫자이다.
보통의 경기와는 조금 다른 무에타이는 이 경기에 빠져 지내지 않으면 계속 할 수가 없게 만든다.
보통 무에타이를 시작하게 되면 훈련생들은 훈련캠프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하게 된다.
보통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게 되는 무에타이 연습은 그래서 어린나이부터 마치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훈련하게 만든다.
훈련생과 코치들은 그들 사이의 유대관계가 매우 깊다.
전통적으로 무에타이 선수들은 자신의 체육관 이름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사용한다.
이러한 것들은 무에타이가 무도로써, 그리고 단순한 스포츠 차원에 운동경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보여지는 또다른 이유중에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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