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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후궁스캔들

by Ajan Master_Choi 2009. 12. 12.

세조가 자기 처소를 찾지 않자 환관에게 접근을 하니 이를 세조에게 일러바쳤다.

덕분에 환관 송중은 화를 면했지만, 박덕중은 후궁에서 나인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환관을 시켜 장안최고 미남으로 통하던 남자에게 연애편지를 전하게 했다.

그런데 연애편지를 받은 남자는 그녀의 연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조에게 알렸다.

박덕중이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자는 임영대군의 아들 구성군 이준이었다.

당시 이준은 스물 다섯 살 청년으로 인물 좋고 재주 많은 팔방미인이었다.

덕중은 궁중에서 이준을 한 번 보고 반해서 그에게 연서를 썼던 것인데 이준은 후환이 두려워 세조에게 고발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그녀를 궁궐에서 잡일이나 거드는 방자 신분으로 전락시켰다.

그런데도 그녀는 다시 환관을 통해 이준에게 연서를 전했다.
결국 세조는 더는 참지 못하고 편지 심부름을 한 환관들을 참형에 처하고 그녀를 교수형에 처했다.

이 일로 조정에서 구성군 이준도 함께 처벌할 것을 주장하자 세조는 결국 사건의 전말을 밝히게 되는데 실록은 세조 11년(1465년) 9월 5일 기사에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밝기 전에 내녀內女 덕중을 내치어 밖에서 교형에 처하였다.

덕중은 주상의 잠저 때 후궁에 들어와서 자식을 낳았고 즉위한 뒤에 봉하여 소용으로 삼았으나 자식이 죽었다.

승지 등이 합사하여 나인과 이준의 죄를 청하고, 의정부·육조에서도 또한 와서 아뢰었다.

“환시宦寺가 이미 처형되었으나, 서신을 서로 통한 것이 어찌 오늘에 시작하였겠습니까? 그 유래가 오랠 것입니다. 또 환자 두 사람은 또한 반드시 여러 번 서로 통하였을 것이니, 청컨대 나인과 준을 국문하여 죄를 정하소서.”

이에 임금이 말하였다.

“나인은 내가 이미 법에 처하였고, 구성군의 일은 단연코 의심이 없는 것을 내가 이미 분명히 아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

그리고 전교하였다.

“수십 일 동안에 다섯 사람이 주륙을 당하였으니, 여러 신하와 백성이 어찌 두려운 마음을 품지 않겠는가? 마땅히 은혜를 베풀어 대중의 마음을 편안히 하여야 하겠다.”

그러면서 박덕중 사건의 전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인 덕중이 일찍이 환관 송중을 사랑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아울러 그 죄를 다스렸는데, 다시 생각건대 죄는 나인에게 있고 송중은 상관이 없으므로 송중으로 하여금 직무를 유지하도록 했다. 뒤에 또 덕중이 편지를 써서 환관 최호로 하여금 구성군 이준에게 전하게 했다. 이준이 아비 임영대군 이구와 더불어 곧 내게 갖추어 아뢰었다. 내가 폭로하려 하지 않아서 곧 내치어 방자의 역役에 이바지하게 하였는데, 오히려 뉘우쳐 고치지 않고 지금 다시 편지를 써서 환관 김중호를 시켜 이준에게 전하였다. 이준이 이구와 더불어 또 즉시 갖추어 아뢰었으므로 내가 친히 물으니 하나하나 승복하였다. 곧 최호와 김중호를 때려죽이고 나인(박덕중)도 또한 율로 처단하였다.”

이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박덕중은 세조가 더는 자신을 찾지 않자,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이런 행위는 일반적인 후궁들은 감히 꿈도 꾸지 않는 일이다.
다만 기생 출신 첩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행동이다.
후궁 신분으로 다른 남자를 좋아하다 발각되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세 번이나 다른 남자에게 연정을 드러낸 여자, 결국 그녀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세조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어린 아들을 위하여 파격적으로 발탁했던 20대 새파란 나이의 영의정 이준은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이며 세조의 아우였던 임영대군의 아들 구성군이었다.

이준은 세종23년에 태어나, 자를 자청(子淸)이라했다.
그의 어머니는 좌의정 남지(南智)의 딸이었으니 이준은 성군세종의 손자에 대군의 아들이요 정승의 외손으로 천하에 부러울게 없는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출신이었다.

일찍부터 세조의 총애를 받던 이준은 23세에 구성군에 봉해지고 1466년 세조12년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5월 함경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신숙주의 주청으로 함경·강원·평안·황해의 4도병마도총사에 임명되어 그해 8월에 난을 평정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였는데 그를 보좌한 부장은 호조판서 조석문이었다.

커다란 반란을 평정한 이준은 개선과 함께 병조판서에 기용되었으니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 나라의 병권을 거머쥔 셈이 되었다.

해가 바뀐 1468년, 세조는 몸에 붙은 모진병이 점점 깊어져 삶에 대한 자신감이 사그러들자 뒷일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세자 황(晄)이 이제 경우 19세였으니, 자기가 옥좌를 낚어채 버린 조카 단종의 사연이 항상 마음에 젖어있어 뒷일이 매우 걱정되었다.
훗날을 부탁할 만한 인물로는 아무래도 친 조카인 구성군 이준 만한 인물이 없었다.

이에 세조는 병조판서에 오른지 1년 남짓한 이준을 일약 영의정에 특서하여 일품종실로 삼았으니, 1468년 7월의 일이었고, 세조는 두 달 뒤인 9월에 눈을 감으니, 어지간히 미리 준비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매사는 본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조가 세상을 뜬 직후 일어난 이른바 <남이(南怡)의옥>을 다스린 영의정 이준은 익대공신2등에 책록되고, 12월에 아버지 임영대군이 숨지자 치상(治喪)을 위해 이준은 자리를 내 놓고 말았다.
해가 바뀌어 1469년 11월, 세조가 걱정하던 예종이 한해 남짓 왕노릇을 하다가 그만 20세 새파란 나이로 숨을 모우니, 자연스럽게 왕위계승 문제가 불거졌다.
세조의 직계자손으로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세조가 처음 세자로 삼았다가 숨져버린 도원군의 아들 월산군과 자을산군(者乙山君) 셋이 있었는데, 왕실의 어른인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와 신숙주 등은, 한명회의 사위인 자을산군을 받들기로 작정하니, 이가 곧 나이 불과 13세였던 성종이다.

세상민심은 세조의 뒷일을 두고 단종의 비극을 들먹이며 쑤군거렸다. 이런 가운데 직장 최세호(崔世豪)와 권맹희(權孟禧)라는 어리석디 어리석은 두 인물이, 뜻 밖에도 구성군 이준을 왕위계승자로 들먹여, 치상중이라 가만히 있는 이준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갔다. 그들의 생각은 어린 임금을 세우는 것 보다야 영의정까지 오른 힘있는 인물을 세우자는 뜻이었으니. 지난날 수양대군의 생각과 일맥 통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제멋대로 결론을 지어 세조의 동서가 되는 좌찬성 한계미(韓繼美)를 찾아가 구성군 이준을 세워, 권력을 오로지하고있는 정인지·신숙주 등을 없애자고 하였다.

이때가 마침 경인년 정월이라 김윤생이라는 선비가 한계미에게 세배를 왔다가, 이들의 되거니 안되거니하는 입씨름 내용을 엿듣고 그만 궁중에 달려가 고변을 하고 말았다. 고위대신 한계미도 정보를 미리 알고 오해를 받지 않으려 정원에 들어가 공식으로 “권맹희·최세호가 구성군을 추대하려 하오!” 하고 고변하니, 구성군 이준은 우습게 역모의 한 가운데 들어서고 말았다.

이리하여 정인지 등의 구성군을 죽여 역모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으나 정희왕후가 한사코 반대, 죽이지는 못하게 하였다.

결국 이준을 모든 관작을 몰수하고 오늘날의 경상북도 영덕으로 귀양을 보내버리는 것으로 결정이 나니, 이준은 가만히 앉았다가 벼락을 맞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10년간 시골에 쳐박혀 한많은 유배살이를 하던 이준은, 1479년 성종10년 1월 39세 나이로 마음고생에 시달리다가 쓸쓸하게 죽어갔다.

소식을 전해 들은 성종은 비로소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백미10석 종이40권을 내려 장레를 현지에서 정중하게 치르도록 살펴 주었다.

먼 훗날 1687년 숙종13년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주장으로 이준의 관작은 회복되고 충무공으로 시호가 내려졌다. 오늘날의 경기도 고양시 선유동에 향토문화유적으로 관리되는 그의 묘소가있다.

이준은 15세때 김씨부인을 맞았었는데, 슬하가 없어 이시애의 난때 싸움터에서 얻은 경성도호부사 김근의 딸 수란이라는 여자를 첩실로 별당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러자 질투심이 강한 본 부인 김씨가 씨를 얻고자 어느날 외간 남자와 내통하고, 내친 김에 그 사내로 하여금 첩실 수란도 겁탈하게 했다. 그러나 마침 퇴궐하던 이준에게 들키니, 이준은 단칼에 사내를 베어버리고 김씨부인은 내 쫓아 버렸다. 같은 날 첩실 수란도 목을 매 목숨을 끊고 말았으니 이준이 병조판서때 있었던 일이다.


이리하여 이준의 뒤는 희미해 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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