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을 닮았다는 친구의 말에 소개팅 자리에 나갔던 인연이 42년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지지율 1위 대선 주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의 아내 김정숙씨를 만났다.
서울 이화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기로 한 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아내 김정숙씨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문재인·김정숙 부부는 어딘가 조금 들뜬 모습이었다.
특히 아내 김정숙씨는
“처녀 때 이화동에서 살았거든요. 그때는 성균관대학교 앞이나 혜화동에서 데이트했어요. 집까지 걷는 시간마저 좀 더 길었으면 했었죠. 헤어지기 싫으니까”
라며 자못 설레했다.
그러자 문재인 전 대표는
“뭐, 늘 집 앞 골목길 어귀까지 바래다주긴 했죠. 근데 요즘 커플들도 다 그렇지?”
라며 점잖게 운을 뗀다.
그도 옛 생각이 나는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부의 옛 감성을 깨지 않기 위해 풋풋했던 과거 이야기를 첫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하나요?
김정숙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1975년).
친한 친구가 아는 오빠 중에 알랭 들롱을 닮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해준다기에 나갔더니 남편이 나와 있었어요.
적어도 말끔한 양복은 입고 나올 줄 알았는데 점퍼 차림으로 나왔기에 그때부터 눈을 안 마주쳤죠(웃음).
문재인
첫 만남에 호감이 생길 만큼 눈길이 갔어요.
그때 참 예뻤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쁘지만.
그런데 만남을 이어가진 못했습니다.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교내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인연을 이어갔나요?
김정숙
남편이 학생 시위를 할 때였어요.
최루탄을 피해서 길을 지나다가 남편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죠.
최루탄에 맞았더라고요.
얼른 손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을 닦아줬어요.
‘의로운 일을 하는 남자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 후로 한두 번 더 만남을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법대생과 음대생이 만났는데 주로 어떤 대화를 했나요?
김정숙
워낙 암담한 시절이다 보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전 음대생이라 잘 알진 못해서 주로 남편의 얘기를 듣는 편이었어요.
문재인
아내는 그렇게 말하지만 시국이 그런 때고 대학생이다 보니 의식도 있었고 말도 잘해서 얘기가 잘 통했죠.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정숙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보통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전 그런 고정 관념이 싫었어요.
여자라고 해서 집에만 갇혀 있는 건 더욱 싫었고요.
그래서 미래의 배우자는 보수적이지 않고 좀 개방적인 사람이길 바랐는데, 남편은 만나면 만날수록 민주적이었어요.
무슨 일이든 함께하고, 함께 결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할까요?
나에게 부드럽고 자상해서 ‘이 사람과 같이 살면 마음이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워낙 자상한 남편이기에 결혼 후에도 다툴 일이 없었겠네요?
김정숙
결혼 초에 한 번 심하게 싸운 적이 있어요.
둘 다 절제하지 못해서 이대로 끝나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 한번의 싸움으로 서로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생겨서 이후론 부딪힌 기억이 없네요.
문재인
그 선을 서로 존중하는 거죠.
대화로 풀리지 않으면 좀 더 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얘기하는 식으로 해서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차 알아가며 싸움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겼죠.
‘문재인’ 하면 온화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인가요?
김정숙
비슷해요.
저는 성미가 급하고 막 참견하려 한다면, 남편은 항상 듣고 기다려주는 편이죠.
저는 애들을 깨울 때 애들이 한 번에 안 일어나면 막 소리를 냈는데 남편은 “여보, 애가 피곤한가 본데 놔둬”라고 하죠.
부모로서 둘의 역할 구분이 뚜렷한 것 같아요.
저는 좀 혼내고 뭐라 하는 스타일이라면, 남편은 큰소리 안 내고 훈육하는 스타일에 가깝죠.
남편은 처음부터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편이었어요.
집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청소하고 무거운 물건 있으면 정리하고 강아지 밥도 주고요.
남편은 집안일을 하고 나서도 워낙 내색을 안 해요.
저는 도와주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집 안이 정리된 걸 보면 ‘벌써 우리 남편이 왔다 갔구나’ 해요.
재미있죠?(웃음)
내 남편이지만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나요?
김정숙
1980년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가 됐는데도 사람이 안 바뀌더라고요.
그 시절엔 ‘사’ 자 달린 직업을 가지면 신분 상승의 욕구 같은 게 생길 수 있었는데, 남편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심지어 ‘돈’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도 자녀를 둘이나 키우는데 형편을 늘리지 않을 순 없어서 제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얘기하면 남편은 “우리의 신념대로 살자”라고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참 멋진 사람이라는 걸 느꼈죠.
그런 신념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요?
문재인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긴 것 같습니다.
변호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어요.
돈 버는 삶을 택할 수도 있고, 공익적인 삶을 택할 수도 있죠.
저는 후자의 삶을 살길 원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여러 법적인 능력을 활용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돈에는 자유로워야 해요.
씀씀이가 커지면 결국 돈 버는 데 치중하게 되죠.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면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겁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대권 재수생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 5년 만에 제19대 대선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여당 대선 후보가 줄줄이 출마를 선언하는 상황에서도 각종 여론 조사마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며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선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지켜오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문재인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국민께서는 반칙과 특권, 부정부패로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계시잖아요.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 위기 상황이에요.
새 정부는 내일 당장 국정을 맡겨도 안정되게 이끌 수 있는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난 대선 때 혹독한 검증을 거쳤고 철저한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이념과 지역 차별로 분열시킨 국민을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선이 50여 일밖에 남지 않아 무척 바쁠 텐데
집에선 어떻게 내조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정숙
남편이 참여정부 시절에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하면서 치아가 많이 안 좋아졌어요.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임플란트 10개를 했거든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참고 일하는 사람이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죠.
남편이 항상 집밥이 최고라고 치켜세워줘서 평소에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해요.
친언니가 디자이너고 제가 또 옷을 좋아하다 보니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엔 남편의 스타일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다 담당했었어요.
요즘은 기본적인 것만 체크하는 편인데, 그래도 넥타이는 제가 골라요.
요즘은 비교적 몸에 딱 맞는 정장이 유행하는 터라 넥타이는 단색의 차분한 느낌을 주는 걸 고르죠.
다른 어떤 후보의 아내보다
적극적으로 선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김정숙
우리는 한 팀이잖아요(웃음).
지난 추석부터 호남을 일주일에 한 번씩 1박 2일 일정으로 다니고 있어요.
최근에는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독립운동가 김남두 선생님의 며느리인 김양강 할머니를 만났어요.
여든의 나이에 홀로 지내는 할머니를 위해 도다리쑥국을 직접 끓여드렸죠.
앞으로도 제 발로 찾아가서 어르신들 따뜻한 손잡고 좋은 말씀 듣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일각에선 문재인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어요.
너무 예의가 바르다 보니 갈등에서 한발 물러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문재인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는 항상 바뀐다고 생각해요.
과거 투쟁 시기의 리더십하고, 민주화가 점점 발전하고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지금과 같은 시기의 리더십은 다를 수밖에 없죠.
앞의 투쟁 시기엔 뭔가 저돌적이고 강력한 리더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성숙한 사회라면 소통하고 함께 발맞춰 나아갈 줄 아는 민주적인 지도자가 더 필요하다고 봐요.
촛불 집회를 두고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라고 얘기했는데
그에 비해선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이것도 민주적인 리더십일까요?
문재인
다 아는 얘기지만 저는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생 동안 민주화 운동을 했어요.
많은 항쟁도 겪었고 구치소 생활도 해봤습니다.
단언컨대, 촛불 집회 때 정치인이 서로 나서서 이끌려고 했다면 금방 정쟁의 판으로, 진영 간의 이념 대립으로 번졌을 거예요.
‘촛불’이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시민들이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대표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행동한 거죠.
저는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금의 촛불 집회를 이끌어낸 우리 국민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여성의 안전, 일자리, 육아 문제 등
여성 정책에 관한 플랜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재인
마음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일하는 여성에게 좋은 나라, 살기에 안전한 나라를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키워드는 ‘텐 투 포’, 즉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엔 자유롭게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고 ‘초등돌봄교실’을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비정규직, 전업주부처럼 고용보험 미가입 여성에 대해서도 월 50만원씩 총 150만원의 출산 수당을 지급할 것이고요.
육아 휴직 급여도 크게 손볼 생각입니다.
성별 격차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을 법제화할 것이고 블라인드 채용제, 여성 고용 우수 기업 인센티브를 통해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을 확대할 생각이에요.
영부인이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요?
김정숙
남편은 퇴근길에 광화문 나가 막걸리 한잔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저도 남대문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그런 삶이라고 할까요?
보통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먼저 다가가는 영부인이 되고 싶어요.
문재인
제게 아내는 최고의 조력자예요.
지금도 바닥 민심을 듣고 와서 조언해주며 국민과 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죠.
아내가 말한 대로 영부인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는 대통령 탄핵 헌재 판결이 있기 며칠 전에 이뤄졌다.
하루하루 요동치는 혼란스러운 정국에 전 국민적 지지와 그만큼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있는 문 전 대표로서는 한 마디의 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성향적으로도 느긋하고 여유로운 문 전 대표는 특유의 조심스러운 어법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았을 김정숙 씨는 쏟아지는 질문에도 오히려 주저함이 없었다.
살짝 들떠 있는 것인지 밝고 쾌활한 에너지가 가득해 보였다.
그간 인터뷰 요청을 왜 그리 피했는지 묻자, “떨려서요”라고 답하며 싱긋 웃는다.
“이러다가도 막상 인터뷰할 땐 떨려서 말을 잘 못해요.”
그 말도 사실 같았다.
어딘지 상호 보완의 이미지를 가진 이 부부는 5월 9일까지 전진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들의 말처럼 가장 보통 사람, 보통 부부의 자세로 국민에게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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